대체 공휴일도 좋지만, 잊지 말아야 할 사실이 하나 있다. 10월 9일은 한글날이라는 것. 그렇지 않아도 넷플릭스 시리즈 <오징어 게임>이 전 세계 83개국에서 1위를 차지하며, 차오르는 ‘K부심’이 마를 새 없는 최근! 여기에 ‘국뽕’을 한껏 더 끼얹어 줄 작품들을 모아보았다. 한글을 논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세종대왕을 다룬 영화들과 후에 한글을 지키고자 노력했던 이들을 담은 작품들이다. 575돌 한글날을 맞아 한 번 더 애국심을 반질반질하게 닦아보는 것은 어떨까.
훈민정음 창제한 세종대왕
<세종대왕>(1978)
세종(신성일)은 왕위에 오른 후 나라의 발전을 위해 다양한 분야에서 변화를 꾀한다. 먼저 집현전을 확대하고 강화하여 젊은 학사들을 모았고, 과감하게 인재를 등용하는 등 여러 방면에서 대대적인 개혁을 하고자 했다. 또한 글이 없어 고생하는 수많은 백성들을 위해 훈민정음을 창제하기까지 이른다. 1978년 개봉한 영화 <세종대왕>은 장장 140분의 러닝타임을 자랑하는 작품인데, 그도 그럴 것이 비단 훈민정음을 창제한 세종대왕의 모습뿐 아니라 왕위에 오른 기간 동안 다방면에서 업적을 남긴 ‘참리더’의 모습까지 보여주기 때문이다. 세종대왕은 배우 신성일이 연기했는데, 그의 젊은 시절과 함께 선우용녀와 최불암의 곱던 시절도 엿볼 수 있는 작품이다.

- 세종대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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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최인현
출연 강신성일, 선우용여, 최불암
개봉 미개봉
<나랏말싸미>(2019>
훈민정음을 창제했던 세종의 마지막 8년에 집중한 영화 <나랏말싸미>. 문자와 지식이 곧 권력이나 다름없던 조선시대, 세종(송강호)은 백성들이 쓸 수 있는 조선의 언어를 만들고자 분투했지만, 신하들의 반대와 더불어 새 문자의 실마리를 잡지 못해 줄곧 괴로워한다. 그때 팔만대장경을 지키는 해인사 신미 스님(박해일)을 만나, 그에게 도움을 받으며 세종이 그토록 원했던 ‘모든 백성이 문자를 읽고 쓰는 나라’에 점차 다가서게 된다. 영화 <나랏말싸미>는 세종대왕이 훈민정음을 만들어낸 과정을 담아낸 작품임과 동시에 역사 왜곡 논란으로 몸살을 앓았던 작품이기도 하다. 영화를 연출한 조철현 감독은 이에 대해 “역사적 공백을 활용”한 것이라 밝혔지만 그럼에도 논란의 여지가 많은 작품인 건 맞는 듯하다.

- 나랏말싸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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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조철현
출연 송강호, 박해일, 전미선
개봉 2019.07.24.
그런데 이제 다양한 업적을 곁들인…!
<신기전>(2008)
앞서 잠깐 언급했고 이미 많이 알려져 있듯, 세종대왕의 업적이 훈민정음 창제만 있는 것은 아니다. 1448년 세종 30년, 세종(안성기)은 더 강한 조선을 꿈꾸며 세계 최초로 다연발 로켓 화포 신기전을 만드는 데 착수한다. 하지만 당시 대륙을 장악한 명나라의 습격으로 신기전 개발은 실패로 돌아가고, 세종의 호위무사 창강(허준호)은 부보상단 설주(정재영)에게 신기전 개발의 비밀을 알고 있는 홍리(한은정)를 맡아달라 부탁한다. 한편 명나라는 신무기 개발을 두고 또 한 번 조선을 압박하지만, 세종은 신기전 제작 재개를 명한다. 세종이 직접 무기 개발을 하지 않는 만큼 극중 그의 비중과 분량은 크지 않다. 하지만 나오는 장면마다 임팩트가 꽤 큰데, 왕의 인간적인 면모를 보여주기 위해 욕을 하는 장면이 나오기도 하기 때문. 드라마 <뿌리깊은 나무> 속 욕하는 세종보다 3년 앞선 작품이다.

- 신기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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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김유진
출연 정재영, 한은정, 허준호
개봉 2008.09.04.
<천문: 하늘에 묻는다>(2019)
<천문: 하늘에 묻는다>는 2011년 드라마 <뿌리깊은 나무>에서 한 차례 세종대왕을 연기한 적 있던 배우 한석규가 다시 한번 세종의 옷을 입은 작품이다. 세종과 함께 당대 최고의 과학자이자 발명가였던 장영실(최민식)의 업적을 다룬다. 당시 관노였던 장영실은 세종을 만나 물시계인 자격루와 천문 관측기 등을 발명하며 조선의 과학 발전에 크나큰 기여를 했고 정5품 관직까지 오른다. 하지만 1442년 세종 24년, 이천 행궁으로 행차하던 도중 세종이 타고 가던 가마 안여가 부서진다. 세종은 안여 만드는 것에 책임이 있던 장영실을 문책하며 궁 밖으로 쫓아내고, 이후 그는 자취를 감추고 만다. 개봉 당시 <쉬리> 이후 딱 20년 만에 한 작품에서 한석규와 최민식을 볼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화제였던 작품. 또 멜로 영화 장인으로 유명한 허진호 감독이 메가폰을 잡으며 세종과 장영실의 브로맨스를 섬세하게 잘 그려냈다.

- 천문: 하늘에 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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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허진호
출연 최민식, 한석규
개봉 2019.12.26.
한글을 지켜낸 사람들
<동주>(2016)
1945년 일제강점기, 시를 너무도 사랑해 시인을 꿈꾸었던 청년 동주(강하늘)와 자신의 신념을 지키기 위해 거침없이 행동하던 청년 몽규(박정민)는 한 집에서 태어나고 자란 동갑내기 사촌이다. 혼란스러운 시기에 일본으로 유학을 가게 된 두 사람은 같은 마음을 품고 있지만 각자의 방법으로 싸우며 갈등한다. 절망적인 순간에도 동주는 펜을 놓지 않았고, 그럴수록 몽규는 더욱 독립운동에 매진했다. 창씨개명을 강요 받던 시대에 우리 말로 시를 계속 써 나가는 것이 옳은 것인지 고민하던 영화 속 동주의 얼굴이 특히 오래 남는다. 그때 그가 포기하지 않고 한글로 시를 써왔기에 지금의 우리가 그 시를 읽고 감상할 수 있음이 더욱 의미 있게 다가온다. 어둡고 암울했던 시대 누구보다 빛났던 청춘들의 이야기를 화려한 색채를 빼고 흑백으로 담담하게 그려내 더욱 가슴이 뜨거워졌던 작품이다.

- 동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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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이준익
출연 강하늘, 박정민, 김인우
개봉 2016.02.17.
<말모이>(2019)
<동주>의 시대적 배경과 같은 1940년대 일제강점기. 민족 말살 정책의 일환으로, 모든 학교에서 조선어 과목을 없애며 우리말이 점점 사라지던 시기의 경성. 조선어학회 대표 정환(윤계상)과 회원들은 주시경 선생의 죽음으로 미완성으로 남아있던 국어사전을 다시 만들고자 한다. 여기에 까막눈인 판수(유해진)가 합류하며 조선어학회 회원들은 전국의 말을 모으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영화의 제목인 ‘말모이’는 최초의 국어사전 원고를 일컫는 말이자 ‘사전’을 뜻하는 순우리말이다. 또 조선어학회가 일제의 감시를 피해 전국의 우리말을 모았던 비밀 작전의 이름이기도 하다. 우리의 말과 글을 쓰는 것조차 허락되지 않았던 시대, 빼앗길 뻔했던 우리의 문자를 꿋꿋이 지켜낸 이들이 있었기에 지금 우리가 자유롭게 한글로 글을 쓰고 자랑스러워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 말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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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엄유나
출연 유해진, 윤계상
개봉 2019.01.09.
씨네플레이 객원기자 BR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