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스루 뮤지컬(Song Through-Musical)은 대사가 아예 없거나 극도로 제한하고, 모든 대사를 뮤지컬 넘버로 처리하는 형식이다. 지나가는 대사 하나까지 모두 노래로 진행되기 때문에 대사와 감정 전달에 있어서 집중하기 어렵다는 단점이 있다. 이외에도 모두 노래로 진행하다 보니 청자 입장에선 다로 피로감이 쌓이는 것도 적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송스루 뮤지컬에는 그만의 매력이 있다. 적응만 하면 감정선 이해는 물론, 단순한 대사처리보다 더 리듬감 있게 이야기를 이해할 수 있다. 기나긴 시 한 편을 읽는 것과 같은 행위다. 쉽진 않지만 그만큼 매력적인 송스루 뮤지컬 영화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지, 지금 바로 소개한다. 만약 최고의 송스루 뮤지컬 영화가 리스트에 없다면 댓글로 알려주시길.
쉘부르의 우산
감독 자크 드미
출연 까뜨린느 드뇌브, 니노 카스텔누오보
<라라랜드>(2016)가 가장 많이 오마주한 영화 <쉘부르의 우산>(1965)은 프랑스 대표 감독 자크 드미가 연출한 영화다. 영화는 지나가던 우체부 대사 하나까지 노래로 이루어져 있어, 마치 영화 전체가 하나의 넘버 같은 인상을 준다. 짧은 대사 한 마디도 음율을 섞어 말하기 때문에 이 방식이 익숙치않은 이들이라면 낯설 수도 있으나 자크 드미의 화려한 연출력과 프랑스의 영원한 뮤즈, 까뜨린느 드뇌브의 미모를 보고 있으면 어느 샌가 사랑할 수밖에 없다.
1964년에 개봉한 <쉘부르의 우산>은 아름다운 영상미뿐만 아니라 현대 서사의 원형을 제시한 영화로서도 의미가 깊은 작품이다. 영화는 뜨겁게 사랑하던 두 남녀가 남자의 군입대로 인해 이별을 하고, 각자의 인생을 살아가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그 과정에서 여자는 새로운 사람과 만나 결혼을 하고, 두 사람은 우연한 계기로 다시 만나 그들의 인생에 있어 서로의 자리는 없다는 걸 확인한다. <라라랜드>와 스토리의 흐름도 꼭 닮은 영화인 만큼, <라라랜드>를 사랑했던 이라면 빼놓지 말아야 할 작품. 이후 자크 드미 감독은 쇼 뮤지컬 영화인 <로슈포르의 숙녀들>을 연출했는데, 송스루 뮤지컬과는 또 다른 매력을 지닌, 생생한 활기가 느껴지는 작품이다. 아름다운 영상미와 음악을 좋아한다면 두 작품은 반드시 보길 추천한다.

- 쉘부르의 우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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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자크 데미
출연 까뜨린느 드뇌브, 니노 카스텔누오보
개봉 1965.07.16. 2019.08.22. 재개봉

- 로슈포르의 숙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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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자크 데미
출연 까뜨린느 드뇌브, 프랑소와 돌리악
개봉 2019.08.22.
에비타
감독 알란 파커
출연 마돈나, 안토니오 반데라스
1996년, 시대의 아이콘 마돈나와 안토니오 반데라스가 주연을 맡은 <에비타>는 동명의 원작 뮤지컬 <에비타>의 특성을 최대한 살리기 위해 송스루 방식으로 연출되었다. <에비타>는 아르헨티나 대통령의 부인, 에바 페론의 생애를 그린 영화다. 에바 페론, 애칭 에비타는 자선사업과 여성 운동에 적극 나선 인물로, 당시 아르헨티나가 노동자 계층에 후한 정책을 펼칠 수 있도록 발판을 마련해 준 인물이다. 후에는 대통령인 남편보다 더 많은 관심을 받았다고.
실제 이미지는 차치하더라도, 우아하고 자애로운 이미지의 영부인인 에비타를 섹스 심벌인 마돈나가 연기한다고 밝혀졌을 때 논란이 많았다. 원작 뮤지컬 <에비타>의 높은 음역대 역시 마돈나가 소화하기엔 어려울 것이라는 예측이 많았다. 그러나 마돈나는 키를 낮춘 대신 자신만의 스타일로 에비타를 소화해 냈고, 그 결과 ‘유 머스트 러브 미’(You Must Love Me)가 제69회 아카데미상 주제가상을 수상하는 쾌거를 이뤄냈다.

- 에비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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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알란 파커
출연 마돈나, 안토니오 반데라스, 조나단 프라이스
개봉 1997.02.07.
레미제라블
감독 톰 후퍼
출연 휴 잭맨, 앤 해서웨이, 러셀 크로우, 아만다 사이프리드
이 분야의 대표작으로 손꼽히는 <레미제라블>(2012)은 알다시피 동명의 뮤지컬을 원작으로 하고 있다. <킹스 스피치>(2011)의 톰 후퍼 감독이 연출한 작품으로 그의 첫 번째 뮤지컬 영화였다. 단순히 프랑스 혁명을 뮤지컬 영화로 만들었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영화는 수많은 프랑스의 혁명들 중 ‘실패한 혁명’의 가장 찬란한 순간을 조명하고 있다는 점에서 특별하다. 배경이 된 시기는 기존 사회 질서의 붕괴, 자본주의의 발달, 이로 인한 빈민들의 떼죽음 속에서 여성들은 매음굴에서 일하고 아이들은 부랑아가 되었다. <레미제라블>에서 앤 해서웨이가 부른 ‘아이 드림드 어 드림’(I Dreamed a Dream)은 이러한 상황을 가장 절박하게, 처절하게 보여준 사례다. 그가 보여준 감정선은 단순한 대사로는 전달할 수 없는 것이었고, 톰 후퍼 감독은 송 스루 뮤지컬이란 장르를 완벽하게 활용했다.
<레미제라블>은 뮤지컬 영화계의 새로운 장을 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새로운 촬영과 연출 기법을 보여주었는데, 가장 눈에 띄는 건 바로 현장 동시녹음이다. 일반적으로 녹음을 먼저하고 촬영을 진행하는 뮤지컬 영화와 달리, <레미제라블>은 촬영과 동시에 녹음까지 진행해 연기와 노래를 한 몸처럼 표현할 수 있었다. 선녹음은 깔끔하게 정돈된 넘버를 듣는 느낌이지만, 동시녹음은 실제 뮤지컬처럼 그 순간의 감정을 표현할 수 있다는 점에서 강점이 생긴다. 인물 개개인을 클로즈업해 넘버를 진행하는 방식이었던 <레미제라블>의 전체 연출을 떠올려보면 톰 후퍼 감독이 왜 번거로움을 감수하고 현장녹음을 택했는지 알 수 있다.

- 레미제라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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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톰 후퍼
출연 휴 잭맨, 앤 해서웨이, 러셀 크로우, 아만다 사이프리드, 헬레나 본햄 카터, 사샤 바론 코헨
개봉 2012.12.19.
캣츠
감독 톰 후퍼
출연 제니퍼 허드슨, 테일러 스위프트, 이드리스 엘바, 프란체스카 헤이워드
<캣츠>는 <레미제라블>의 톰 후퍼 감독의 두 번째 뮤지컬 영화이자 최고의 흑역사로 기억될 작품이다. 이 작품 역시 전작과 마찬가지로 송스루 방식을 택했는데, 전 편에서는 소위 ‘먹혔던’ 방식이 다음에는 안 먹힐 수도 있다는 걸 잘 보여준 사례다. 서사를 노래로 전달하던 <레미제라블>과 달리, <캣츠>는 송스루 ‘쇼’ 뮤지컬 형식을 따르고 있어, 서사를 전달하기보다는 음악적으로 관객을 흥겹게 만드는 데에 집중하고 있다. 이때 문제가 되는 건, 서사가 없다면 쇼가 완벽해야 하는데 <캣츠>는 이에 실패했다는 것이다.
영화를 본 이라면 아마 ‘젤리클’만 떠올리지 않을까. 오프닝인 ‘젤리클 송스 포 젤리클 캣츠’(Jellicle Songs For Jellicle Cats)는 거의 5분에 다다르는 시간 동안 ‘젤리클’만 반복한다. 때문에 관객은 젤리클이 무엇인지 알지 못한 채 반복되는 젤리클 노래에 지겨움을 느낄 수밖에 없다. 또한 뮤지컬의 형식을 그대로 살리는 방식을 택하다보니, 뮤지컬처럼 각 캐릭터들의 주제가가 메들리처럼 이어지는데, 자연스럽게 서사가 약해지며 관객을 빨아들이는 힘이 약화되었다.

- 캣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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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톰 후퍼
출연 제니퍼 허드슨, 테일러 스위프트, 이드리스 엘바, 주디 덴치, 이안 맥켈런, 제이슨 데룰로, 제임스 코든, 레이 윈스턴, 레벨 윌슨, 프란체스카 헤이워드
개봉 2019.12.24.
아네트
감독 레오 카락스
출연 아담 드라이버, 마리옹 꼬띠아르
1984년 <소년 소녀를 만나다>부터 <나쁜 피>(1986), <퐁네프의 연인들>(1991) 등 적은 편수지만 영화사에 굵직한 흔적을 남기며 거장의 반열에 오른 레오 카락스 감독이 9년 만에 새로운 영화를 선보였다. 그것도 영어로 된 송스루 뮤지컬 영화로. 신작 <아네트>(2021)는 스탠드업 코미디언 헨리(아담 드라이버)와 오페라 가수 안(마리옹 꼬띠아르)이 열렬히 사랑하다가, 부모가 되며 심리적 혼란을 겪는 과정을 잘 나타내고 있다.
레오 카락스의 뮤지컬 영화인 만큼, <아네트>는 결코 평범한 길을 선택하지 않는다. 오프닝곡부터 그의 비범함이 느껴지는데, ‘소 메이 위 스타트’(So May We Start)라는 오프닝곡에서 카메라는 레오 카락스 감독과 그의 딸 나타샤를 보여주고, 맞은편에서 노래를 부르고 있는 밴드 스파크스(Sparks)의 듀오를 비춘 후 배우들을 등장시킨다. 언제나 스크린 밖에 있던 존재들이 스크린 안에 성큼 들어왔을 때의 당혹스러움, 그것마저 하나로 만드는 레오 카락스의 연출은 ‘역시나’라는 탄성만을 자아낸다. 그는 현실과 가상의 경계를 넘나드는 걸 넘어, 자유자재로 허물며 영화를 ‘즐기고’ 있다. 낯선 형식이 주는 기분 좋은 당혹감을 느끼고 싶다면 단연코 추천하는 작품.

- 아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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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레오 카락스
출연 아담 드라이버, 마리옹 꼬띠아르
개봉 2021.10.27.
씨네플레이 객원 기자 김명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