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월 베를린 영화제에서 심사위원대상을 받은 홍상수의 27번째 영화 <소설가의 영화>가 개봉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한층 더 자유롭고 미니멀한 환경에서 영화 만들기를 이어가고 있는 홍상수는 <소설가의 영화> 속 배우를 모두 작년 개봉한 두 영화 <인트로덕션>과 <당신얼굴 앞에서>에 출연한 이들로만 구성했다. <소설가의 영화>의 배우들이 이번 작품과 더불어 전작들에서 어떤 역할을 맡았는지 정리했다.


준희
이혜영

<당신얼굴 앞에서>(2021)
<소설가의 영화>(2022)

<당신얼굴 앞에서>

작년 가을 개봉한 <당신얼굴 앞에서>는 홍상수와 처음 작업한 배우 이혜영을 위한 영화다. 젊었을 적 배우로 활동하다가 미국으로 건너가 살았던 상옥(이혜영)은 수십 년 만에 동생 정옥(조윤희)을 찾아온다. 서울 근교 아파트 단지 근처에서 동생과 시간을 보내다가, 서울로 가 어릴 적 살던 집에 들러, 자신을 캐스팅 하려는 감독을 만나 동생에게도 털어 놓지 않은 처지를 밝힌다. 이혜영 특유의 연극적인 말투와 몸짓이 만드는 힘이 <당신얼굴 앞에서>를 완전히 장악했고, 홍상수는 다음 영화 <소설가의 영화>에서 다시 한번 이혜영을 캐스팅 해 제목 속 소설가 준희 역을 맡겼다. 몇 년 전 내놓은 책 이후로 도통 작품 활동을 하지 못하는 준희는 처음 만나는 배우 길수(김민희)에게 자기가 찍을 단편영화에 출연해달라고 청한다.


길수
김민희

<지금은맞고그때는틀리다>(2015)
 <밤의 해변에서 혼자>(2016)
 <클레어의 카메라>(2016)
 <그 후>(2017)
 <풀잎들>(2017)
 <강변호텔>(2018)
 <도망친 여자>(2020)
 <인트로덕션>(2021)
<당신얼굴 앞에서>(2021)
 <소설가의 영화>(2022)

<밤의 해변에서 혼자>

홍상수와 김민희의 연은 2015년 작 <지금은맞고그때는틀리다>로 거슬러 올라간다. 관객과의 대담을 위해 수원에 온 감독 함춘수(정재영)가 화성행궁에서 만나 첫눈에 반하는 화가 희정을 연기했다. 유부남과의 만남이 주는 스트레스로 괴로워 하는 배우 영희로 나온 <밤의 해변에서 혼자>로 베를린 영화제 여우주연상을 받은 이후, 다른 활동은 전혀 하지 않은 채 홍상수의 작품만 7개에 출연했다. 앞선 두 작품처럼 주인공으로 나오는 경우가 있는가 하면 <그 후> <강변호텔> <인트로덕션> (공교롭게도 셋 모두 흑백영화다)에선 조연을 맡기도 했다. 홍상수가 직접 촬영까지 도맡은 <인트로덕션>부턴 제작실장으로 활약하기 시작한 김민희는 <당신얼굴 앞에서>에선 얼굴을 비추지 않았지만, 이번 <소설가의 영화>에선 소설가 준희가 유일하게 흔쾌히 호감을 드러내는 배우 길수를 연기했다. '소설가의 영화' 속 길수 혹은 김민희의 얼굴은 너무나도 찬란하다.

<도망친 여자>

세원
서영화

<잘 알지도 못하면서>(2009)
<옥희의 영화>(2010)
<자유의 언덕>(2014)
<지금은맞고그때는틀리다>(2015)
 <밤의 해변에서 혼자>(2016)
 <풀잎들>(2017)
 <도망친 여자>(2020)
 <인트로덕션>(2021)
 <당신얼굴 앞에서>(2021)
<소설가의 영화>(2022)

<잘 알지도 못하면서>

서영화는 이 기획은 물론 홍상수와 작업한 이들 가운데 (기주봉과 더불어) 가장 많은 작품에 출연한 배우다. 총 11편. 2009년 작 <잘 알지도 못하면서>에서 영화제 심사위원으로 초청된 감독 구경남(김태우)과 함께 심사를 보는 배우, 이듬해 개봉한 <옥희의 영화>에선 감독이자 영화과 교수인 남진구가 학교 벤치에서 잠든 모습을 찍다가 망신 당하는 행인 역을 맡았다. 일본 배우 카세 료가 출연한 <자유의 언덕>에선 주인공 모리가 서울에서 기다리는 권을 연기한 서영화는 홍상수와 김민희의 첫 협업작 <지금은맞고그때는틀리다>부터 출연 빈도를 확 높이기 시작했다. 특유의 차분한 목소리가 걸맞는, 김민희의 캐릭터가 잘 따르는 심성 고운 언니 역을 맡는 경우가 많은 편. <인트로덕션>은 패션디자인을 공부하러 독일로 간 딸을 은근히 압박하는 엄마를 연기한 데 이어, <소설가의 영화>에선 서점 직원에게 불같이 화를 내다가, 서울 근교에 사는 자신을 연락도 없이 오랜만에 찾아온 선배(이혜영)를 불편해 하는 얼굴을 보여줬다.

<자유의 언덕>

효진
권해효

 <다른나라에서>(2011)
<당신자신과 당신의 것>(2016)
 <밤의 해변에서 혼자>(2016)
 
<그 후>(2017)
<강변호텔>(2018)
 <도망친 여자>(2020)
 <당신얼굴 앞에서>(2021)
<소설가의 영화>(2022)

<다른나라에서>

프랑스의 대배우 이자벨 위페르가 출연한 <다른나라에서>로 처음 홍상수 영화에 출연한 권해효 역시 홍상수 단골 배우 하면 결코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다. 만삭인 아내(문소리)와 부안 모항으로 여행 와서는 예전에 만났던 프랑스인 감독 안느(이자벨 위페르)에게 치근덕대다가 한바탕 망신당하는 감독으로 출연한 <다른나라에서> 이후, 5년이 지나 <당신자신과 당신의 것>을 통해 다시 홍상수 영화에 출연해 지난 6년간 일곱 작품을 함께 했다. 2017년 칸 영화제 경쟁부문에 초청된 <그 후>에선 여자 직원과 사귀는 걸 아내에게 들키고 이러지도저러지도 못하는 출판사 사장인 주인공 봉완을 연기했다. 앞서 언급한 작품들과 더불어 <도망친 여자> <당신얼굴 앞에서>처럼 여자 주인공과 독대해 긴 대화를 나누는 역할이 많았다. 전작에 이어 영화감독 역을 맡은 <소설가의 영화>에선 아내(조윤희)와 하남 유니온타워에 들렀다가 소설가를 만나 난처한 시간을 보낸다.

<그 후>

양주
조윤희

 <그 후>(2017)
 <인트로덕션>(2021)
 <당신얼굴 앞에서>(2021)
<소설가의 영화>(2022)

<당신얼굴 앞에서>

조윤희는 연극 무대에서만 활동하다가 <그 후>부터 홍상수 영화에 참여하고 있다. 실제 남편인 권해효가 주인공을 맡은 <그 후>에서 출근 전에 밥을 먹고 있는 봉완(권해효)에게 다른 여자를 만나냐며 추궁하고, 출판사에 찾아와 입사 첫 날인 아름(김민희)을 내연녀로 착각하고 머리채를 잡고 싸우는 역을 맡았다. 그리고 잠시 뜸하다가 (권해효가 출연하지 않은) <인트로덕션>에 다시 등장해 여자친구과 헤어지고 실제로 사랑하지 않은 사람과는 로맨스 연기를 못하겠다는 배우 지망생인 아들(신석호)을 걱정하는 엄마를 연기했고, <당신얼굴 앞에서>에선 이혜영과 함께 오랜만에 만난 자매로 호흡을 맞췄다. 권해효와 다시 부부로 등장한 <소설가의 영화>에선 소설가를 알아보고 눈치를 보던 남편을 억지로 끌고 와 반갑게 아는 척하다가 그의 냉랭한 태도를 마주한다. 


만수
기주봉

<밤과 낮>(2008)
<하하하>(2010)
<북촌방향>(2011)
<누구의 딸도 아닌 해원>
(2012)
<자유의 언덕>(2014)
<지금은맞고그때는틀리다>
(2015)
 <그 후>(2017)
 <풀잎들>(2017)
 <강변호텔>(2018)
 <인트로덕션>(2021)
<소설가의 영화>(2022)

<누구의 딸도 아닌 해원>

수많은 한국 영화에서 조역 단역을 맡아 강한 인상을 남긴 기주봉은 파리에서 촬영을 진행한 <밤과 낮>에서 주인공 성남(김영호)이 사는 하숙집 주인을 연기하면서 처음 홍상수와 연을 맺었다. 술자리에 동석한 중년 남자로 나오는 경우가 많은 와중, <누구의 딸도 아닌 해원>에선 마음이 복잡한 상태로 남한산성에 온 해원에게 막걸리를 건네는 아저씨로 등장하기도 했다. 기주봉이 주인공인 <강변호텔>은 강변의 호텔에서 무료로 묵으면서 두 아들(권해효 유준상)을 불러 대화를 나누는 시인을 따라가는 작품이었다. <인트로덕션>에서 로맨스 연기를 못하겠다며 고민하는 청년에게 대뜸 윽박을 지르며 꾸짖는 노배우로 나온 기주봉은 <소설가의 영화>에서 젊었을 적 소설가의 술친구였던 시인으로 나와 홍상수와의 협업 관계를 여전히 이어가고 있다. 

<강변호텔>

경우
하성국

<도망친 여자>(2020)
 <인트로덕션>(2021)
 <당신얼굴 앞에서>(2021)
<소설가의 영화>(2022)

<인트로덕션>

하성국은 최근 홍상수 영화 네 작품에 모두 출연한 유일한 배우다. 홍상수와 처음 작업한 <도망친 여자>에선 감희(김민희)와 수영(송선미)이 집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중에 불쑥 찾아와 위협적인 태도를 보이며 수영에게 구애하는 젊은 시인을 연기했다. 사람이 사람을 끌어안는 행위가 두드러지는 <인트로덕션>에선 겨울 바다에 들어갔다 나온 상처 받은 친구를 힘껏 안았다. 재원(권해효)의 조감독 역으로 짤막히 얼굴을 비춘 <당신얼굴 앞에서>에 이어, <소설가의 영화>에선 배우이자 형수인 길수(김민희)와 동행하다가 소설가의 영화를 찍게 되는 영화학도를 연기했다.


현우
박미소

 <인트로덕션>(2021)
<소설가의 영화>(2022)

<인트로덕션>

홍상수 영화의 새로운 터닝 포인트라 할 만한 <인트로덕션>은 20대 연인을 주인공으로 삼았다. 남자는 <그 후>에서 연출부로 일하고 <풀잎들>부터 배우로도 활약한 신석호, 여자는 홍상수가 교편을 잡고 있는 건국대학교에서 연기를 전공한 신예 박미소가 연기했다. 한편 신석호가 출연하지 않은 신작 <소설가의 영화>에선 수화를 배우는 서점 직원 역으로 소설가에게 수화를 가르쳐주는 순간을 새겼다.


재원
이은미

<도망친 여자>(2020)
 <당신얼굴 앞에서>(2021)
<소설가의 영화>(2022)

<도망친 여자>

<소설가의 영화> 속 소설가가 만든 영화를 상영하는 극장 프로그래머 배우 이은미는 <도망친 여자>와 <당신얼굴 앞에서>에서도 짤막하게 등장한 바 있다. 두 영화 모두 서영화의 캐릭터와 짝을 맞춰 등장하는데, <도망친 여자>에선 집에 방문한 감희(김민희)에게 사과를 깎아주고 고양이 밥을 주지 말라고 따지러 온 남자(신석호)를 대하고, <당신얼굴 앞에서>에선 공원에서 상옥(이혜영)을 알아보는 여자의 옆에 서 있다.


아이
김시하

 <당신얼굴 앞에서>(2021)
<소설가의 영화>(2022)

<당신얼굴 앞에서>

<당신얼굴 앞에서> 속 마치 환상 같아 보이는 신이 있다. 어릴 적 살던 집에 찾아와 이곳저곳을 둘러보는 상옥(이혜영)이 여자 아이를 만나는 대목. 마치 어린 시절 성옥처럼 보이는, 뒷모습의 아이는 인천에 살지만 여기(이태원)가 바로 우리집이라고 말한다. 소녀 역의 배우 김시하는 <소설가의 영화>에서도 등장한다. 소설가 준희(이혜영)와 사이좋게 떡볶이를 먹고 있는 배우 길수(김민희)를 바깥에서 빤히 쳐다보다가 눈이 마주치자 가던 길을 가고 다시 나타나 길수를 또 쳐다보다 결국 길수와 손을 잡고 어디론가 가는 아이 역시 김시하가 연기했다. 


씨네플레이 문동명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