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드 카운터>

이제는 얼굴천재라는 수식어도 구태의연하다. 미남들에게 붙는 이 수식어는 뭐랄까, 예전의 '꽃미남'처럼 조금은 심심하게 느껴진다(결코 기자의 질투심 때문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이 배우의 캐릭터들을 나열했을 때, 이 배우만큼은 정말 얼굴천재라는 말을 붙여야만 설명할 수 있을 것 같다는 기분이 든다. 최근 디즈니플러스의 <문나이트>와 넷플릭스의 <카드 카운터>로 활약 중인 오스카 아이작이다.


"민얼굴 최고야" 분야 출연작

<문나이트>
<카드 카운터>

앞서 언급한 <문나이트>나 <카드 카운터>나 오스카 아이작의 오랜 팬이라면 감격할 수 있겠다. 왜냐하면 그의 출연작에서 이처럼 멀끔한 얼굴로 등장하는 작품이 드물기 때문. 특유의 남성미가 진하게 나는 외모때문인지 오스카 아이작은 드문드문이든 덥수룩하든 유독 수염이 난 모습으로 얼굴을 비출 때가 많다. 마크 스펙터, 스티븐 그랜트라는 두 가지 인물로 소심과 터프 사이를 오가는 <문나이트>에서 그의 두 가지 얼굴을 민낯으로 보게 됐으니 팬들에겐 감개무량할 듯. <카드 카운터> 또한 군 심문관 출신 도박꾼 윌리엄 텔을 연기하면서 지난 과거에 얽매인 인물의 표정을 맨얼굴 위로 드러냈다.

<스타워즈> 시퀄 삼부작의 포 다메론

사실 오스카 아이작은 팬덤이 두텁고 역사가 오래된 것에서 민얼굴로 나온 바 있긴 하다. 다만 그것이 가면 갈수록 다른 의미로 주목받아서 문제일 뿐. 바로 <스타워즈>의 시퀄 삼부작이다. '깨어난 포스'-'라스트 제다이'-'라이즈 오브 스카이워커'에서 오스카 아이작은 저항군의 포 다메론 역을 맡았다. <스타워즈: 깨어난 포스>에서 얼굴을 보고도 못 알아봤다는 사람이 적지 않았다. 이 작품 전엔 한국에서 특히 유명한 작품이 <드라이브>나 <인사이드 르윈> 정도였기 때문. 시퀄 삼부작의 주연이긴 하지만 뒤로 갈수록 분량이 적어진 탓에 지금은 그의 출연작 중에서도 후순위에 있다고 할 수 있다. 

<테레즈 라캥>

위의 작품들이 오스카 아이작의 대표작격 영화들이라면, 그보다 인지도는 떨어져도 오스카 아이작의 민얼굴 영역 일부를 차지하고 있는 영화들은 다음과 같다. <테레즈 라캥>, <모스트 바이어런트>, <아고라>. 세 작품 모두 시대와 장르가 각각 다르지만 오스카 아이작의 짙은 눈썹과 각진 턱선이 (수염이 없어서) 돋보이는 얼굴을 볼 수 있다. 특히 <테레즈 라캥>은 엘리자베스 올슨과 호흡을 맞췄기에 비주얼 면에서는 단연 독보적이라고 할 수 있다. 각 작품들 모두 캐릭터의 뇌쇄적인 분위기와 외모를 완벽 재현했으니 눈여겨볼법하다. 


"더티 섹시" 분야 출연작

<드라이브>
<엑스 마키나>

원래도 진한 인상인데 여기에 수염을 덧대면? 흔히 말하는 '남자 냄새' 풀풀이다. 오스카 아이작이 인상적인 모습을 보여준 작품은 대체로 수염 때문에라도 그 인상이 상남자 느낌이 나곤 한다. 아마도 그 입문작은 <드라이브>일 것이다. 아이린(캐리 멀리건)의 남편 스탠더드로 출연했는데, 짧게 민 머리와 턱 전체를 덮은 수염은 쾌남의 분위기를 묘하게 풍긴다. 실제로는 범죄자임에도 괜스레 믿어보고 싶어지는 그런 외모. 반면 이와 비슷한 듯 완전히 다른 이미지를 형성한 작품이 <엑스 마키나>다. 스킨헤드에 가까운 머리와 한껏 기른 것 같은 수염은 은둔형 천재 과학자 네이던 베이트먼의 괴팍한 성격을 더욱 부각시켰다. 분명 훌륭한 과학자이자 고용주임에도 수상쩍은 그 풍채는 오스카 아이작이란 얼굴의 깊이를 또렷하게 전한다.

<듄>
아들내미 티모시 샬라메(왼쪽)와 다른 느낌의 꽃미남

그래도 이런 수염형 오스카 아이작의 정점은 <듄>일 것이다. 수염마저 희끗한 새치가 성성한 레토 아트레우스 1세를 연기하면서 오스카 아이작은 그 어떤 역할에서도 엿볼 수 없는 고결한 리더의 면면까지 완벽하게 내비쳤다. 관대하되 마냥 서글서글하진 않은 모습들은 좋은 아버지이자 훌륭한 리더의 중용을 제대로 보여줬다. 나신이 나오는 장면마저 회화적인 아름다움을 자아내며 꾸준한 자기관리의 중요성(?)을 보여주기도 한다. 캐릭터의 비중을 뛰어넘는 오스카 아이작의 아우라가 돋보이는 작품. 


"예술가 포스" 분야 출연작

<인사이드 르윈>

외모 분류에 넣긴 조금 치사할지 모르지만, 예술가형 오스카 아이작 또한 하나의 타입으로 분류하기 충분하다. 그의 대표작이자 출세작 <인사이드 르윈>은 집도 없어 친구들 집을 전전하는 포크 가수 르윈 데이비스의 이야기다. 오스카 아이작은 대충 넘긴 곱슬머리와 유독 퀭한 눈두덩이, 당장이라도 트더질 것 같은 외투에 의지해 이 추레한 포크 뮤지션으로 변신했다. 이 영화에서 그의 연기는 외모나 감정에만 국한되지 않았다. 르윈 데이비스가 부르는 노래뿐만 아니라 기타 연주까지 모두 그가 직접 한 것(그는 12살 때부터 기타를 쳤고 밴드도 있다). 영화도 좋고, 연기도 좋고, 노래도 좋고, 심지어 그걸 소화한 오스카 아이작의 목소리와 연주 실력조차 좋으니 영화와 포크 음악을 좋아하는 이들에겐 필견이라 할 수 있다. 

<고흐, 영원의 문에서>
오스카 아이작과 폴 고갱 자화상(오른쪽)

오스카 아이작이 보다 현실적인 고증을 맞춰 준비한 예술가 캐릭터는 <고흐, 영원의 문에서>의 폴 고갱이다. 잘 알다시피 그의 상대역 빈센트 반 고흐 역은 윌럼 대포가 맡았다. 고흐와 고갱의 우정과 그럼에도 서로 거리를 둘 수밖에 없는 사정을 두 배우의 열연으로 만나볼 수 있다. 폴 고갱의 자화상 속 모습을 그대로 반영한 패션이 유독 눈에 들어온다(물론 고흐와 윌럼 대포의 싱크로율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고갱과 고흐, 오스카 아이작과 윌럼 대포를 보고 있으면 각각 인텔리하고 영리한 인물과 야성적인 에너지가 넘치는 인물의 대비가 확연하게 느껴지는 것이 재밌는 부분. 


"이게 누구...?" 분야의 최고봉

<엑스맨: 아포칼립스>

오스카 아이작의 얼굴 변신 끝판왕은 항상 이 캐릭터가 왕좌에 있을 것 같다. <엑스맨: 아포칼립스>에서 그가 맡은 역은 아포칼립스. 고대에 등장한 최초의 뮤턴트이자 평생 인류에게 숭배받은 존재 아포칼립스를 위해 오스카 아이작은 촬영 내내 특수분장을 감내해야 했다. 이런 분장이 많은 캐릭터를 맡은 배우는 보통 누구보다 빨리 출근해서 늦게 퇴근하는 일정도 감수해야 하고, 무엇보다 움직임이나 시야 등에서 불편을 겪어야만 한다. 오스카 아이작도 <엑스맨: 아포칼립스>를 촬영하면서 다른 것보다 분장하는 과정이 가장 힘들었다고 토로했을 정도. 대신 그만큼 분장 퀄리티가 남달라서 오스카 아이작인지 알고 봐도 못 알아볼 정도이다. 영화가 좋은 평가를 받아 혼신의 연기!!라는 평가라도 받았으면 좋으련만, 고생 대비 얻은 것이 많지 않아 아쉬울 것 같다.

아포칼립스 분장을 받는 과정

씨네플레이 성찬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