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비드 시대를 겪으면서 우리 인류가 국경을 높이 올릴 때도 있었지만 또 하나의 단일한 공포와 근심을 공유하기도 했습니다. 영화도 극장에 손님이 끊어지는 시대를 겪었지만 그만큼이나 영화관이라는 극장이라는 곳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우리 모두가 깨닫는 계기가 됐습니다. 우리가 이 질병을 이겨낼 희망과 힘을 가진 것처럼 우리 영화도, 우리 영화인들도 영화관을 지키면서 영화를 영원히 지켜내리라 믿습니다". 영화 <헤어질 결심>으로 제75회 칸영화제 감독상을 수상한 박찬욱 감독의 수상소감이다. <브로커>로 함께 한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은 현장에서 눈물을 훔치기도 했을 만큼 박찬욱 감독이 전한 소감은 전 세계 '영화인' 모두를 감동시키기 충분했다.
2004년 <올드보이>로 칸영화제 심사위원 대상을 받은 박찬욱 감독은 <헤어질 결심>으로 다시 한번 칸의 선택을 받았다. 칸에서 영화를 미리 만나 본 이들은 "<헤어질 결심>은 <올드보이> 이후 박찬욱 최고의 작품"이라며 본인의 '클래스'를 또 다시 입증한 박찬욱 감독을 향해 힘찬 박수를 보냈다. 국내 영화 팬들이 벌써부터 예고편을 뜯고, 씹고, 맛보며 <헤어질 결심>을 기대하고, 기다리는 이유다. 6월 29일 개봉을 확정지은 <헤어질 결심>을 목 빠지게 기다리며 영화에 관해 알려진 사실 몇 가지들을 정리해봤다.

- 헤어질 결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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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박찬욱
출연 탕웨이, 박해일, 이정현, 고경표, 박용우
개봉 2022.06.29.
대체 무슨 이야기냐고?
"그냥 사랑 얘기다"
예고편만 봐선 잘 모르겠다. <헤어질 결심>, 대체 어떤 내용일까. 공식적으로 공개된 한 줄 스토리에 따르면 <헤어질 결심>은 산에서 벌어진 변사 사건을 수사하게 된 형사 '해준'(박해일)이 사망자의 아내 '서래'(탕웨이)를 만나고 의심과 관심을 동시에 느끼며 시작되는 이야기를 그린 영화다. 형사와 사망자의 아내, 이 두 사람의 관계성에 의지하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겠다.
박 감독은 제작보고회를 통해 "박해일이 연기하는 형사는 일밖에 모르는 사람이긴 한데 불면증이 있어서, 밤에도 잠을 못 자니까 잠복근무를 해서 부하들이 싫어하는, 책임감은 강하지만 친절하고 용의자에게도 친절하고 공무원으로서 시민에게 예의를 지키려는 사명감을 가지는 넥타이 맨 형사다. 어느 날 산에서 떨어져 죽은 남자의 시신을 발견하고 그 사람의 죽음의 원인을 추적하다가 죽은 사람의 부인을 만나게 된다. 그게 탕웨이다"라며 심문과 수사를 거치며 깊어지는 두 사람의 로맨스를 그릴 예정이라고 밝혔다.
무엇보다 박찬욱은 영화의 내용에 관해 <헤어질 결심>은 "100% 수사 영화이자 100% 로맨스 영화"라는 점을 강조했다. "형사가 용의자를 만나는 관계, 형사의 업무라는 것이 이 영화에서는 연애의 과정"이라며 수사와 로맨스 서사를 분리할 수 없다는 것이 이 영화의 핵심이라 전했다. 많은 영화 팬들이 다소 복잡하게 이 영화의 면면을 바라보고 있는 것과는 달리, 박 감독은 <헤어질 결심>은 "그냥 사랑 얘기다"라며 "이런 남자 이런 여자가 만나 좋아했는데 잘 이루어지지 못하고 안타깝게 헤어"진 이야기일 뿐이라며 영화의 맥을 간략하고 정확하게 짚어 설명했다.
정훈희, 송창식이 부른
'안개'가 여러 번 흘러나온다
<헤어질 결심>은 원작이 있는 작품은 아니나 출발점이 명확한 작품이다. 아주 멀리 동떨어진 두 가지의 울림으로부터 박찬욱은 <헤어질 결심>을 써 내려가기 시작했다. 먼저 박감독은 스웨덴의 범죄 추리소설 '마르틴 베크' 시리즈를 읽으며 영화의 캐릭터를 처음 떠올렸다. "고등학생 때 10권으로 이뤄진 시리즈 중 한 권을 읽은 후에 오랜만에" '마르틴 베크' 시리즈를 꺼내 본 박 감독은 "소설 속 형사처럼 속이 깊고, 상대방을 배려하고 신사적인 형사가 나오는 영화를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막연히 하게 됐다고 한다.
'마르틴 베크' 시리즈가 캐릭터 뼈대를 세웠다면, 가수 정훈희의 히트곡 '안개'는 영화의 장르를 결정했다. 박찬욱 감독은 <헤어질 결심>에 영감을 준 것 중 하나로 정훈희의 '안개'를 콕 집어 언급했는데, "이 곡을 너무 좋아했다"고 언급하며 "정훈희 버전, 송창식 버전의" '안개'가 흘러나오는 영화를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고 밝혔다. 뒤이어 "'안개'를 두 번(이나) 사용하는 영화라면 로맨스가 될 수밖에 없다"는 결론에 다다랐다고 밝힌 박 감독은, "신사적인 형사 이야기와 '안개'를 사용하는 로맨스 영화를 합쳐" '형사가 나오는 로맨스' 영화를 만들어야겠다 결심했다고 전했다. 실제로 <헤어질 결심>에는 정훈희와 송창식이 부른 '안개'가 여러 차례 흘러나온다고 전해진다. 송창식과 정훈희는 영화를 위해 새롭게 '안개'를 녹음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서경 작가가 생각한 박찬욱 감독 최고작
이제는 박찬욱 하면 빼놓을 수 없는 이름이 있다. <친절한 금자씨> <싸이보그지만 괜찮아> <박쥐> <아가씨>에 이어 <헤어질 결심>까지 책임진 정서경 작가다. <스토커>를 제외하곤 2005년 이후부터 쭉 박찬욱 감독과 작품 활동을 계속해서 함께 해오고 있다. 누구보다 가깝지만, 누구보다 냉철하게 박찬욱 감독 작품을 바라본다는 정서경 작가. 그런 그가 <헤어질 결심>을 두고 박찬욱 감독 작품 중 최고작이라는 평가를 내렸다. 정서경 작가는 "이번 작품을 통해 영화가 더 깊어지고 (박찬욱 감독님이) 진정한 예술가가 되셨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그동안 감독님 작품 중 개인적으로 <복수는 나의 것>을 가장 좋아했는데 이젠 <헤어질 결심>이 될 것 같다"고 밝혔다.
처음부터 박해일, 처음부터 탕웨이
감독상 트로피를 품에 안고 한국으로 돌아온 박찬욱 감독은 공항에서 예상 밖의 소감을 전해 화제를 모았다. "사실 제가 원했던 상은 남녀연기상이었다. 엉뚱한 상을 받게 되었다"며 “배우들이 상을 받으면 '저 감독과 일하면 좋은 상을 받게 해준다'는 인식이 생겨서 다음 작품 캐스팅할 때 도움이 된다. 그래서 연기상을 바랐는데 좀 아쉽다"며 솔직한 발언을 한 것이다. 천하의(!) 박찬욱에게도 캐스팅은 가장 큰 걱정거리라는 사실이 드러난 순간이었다. 그런 점에서 <헤어질 결심>은 박찬욱에게 효자와도 같은 작품일지도 모르겠다. 박 감독이 원하는대로, 상상한 그대로 캐스팅에 성공했기 때문이다.
박찬욱 감독과 정서경 작가는 <헤어질 결심>을 써 내려갈 당시부터 해준 역엔 박해일을, 서래 역엔 탕웨이를 염두에 뒀다. "예를 들어 박해일처럼", 캐릭터의 분위기와 말투를 박해일에 꼭 맞추어 상상한 두 사람은 '해준'이라는 캐릭터 명 역시 박해일의 이름을 따서 지었다고. 서래 역도 다르지 않았다. 서래라는 캐릭터가 탄생하기 전부터 탕웨이가 있었다. 특히 정서경 작가가 처음부터 끝까지 탕웨이를 고집했다고 전해진다. 캐릭터를 설계하는 당시부터 정서경 작가는 "여자(캐릭터)는 중국인으로 하자. 그래야 탕웨이를 캐스팅할 수 있"다며 박찬욱 감독에게 강력하게 주장했다는 후문이다. 정 작가는 "멜로에 자신이 없었는데 탕웨이가 나오면 할 수 있을 것 같았다"며 탕웨이가 연기하는 서래라는 캐릭터가 박찬욱 세계관 속 여성 캐릭터 계보를 이을 것이라고 밝혔다.
극단적 폭력과 섹스 장면이 없다
칸 영화제에서 <헤어질 결심>이 공개된 후 가장 화제가 된 대목이 있다면, 바로 <헤어질 결심>에는 수위 높은 폭력과 섹스 장면이 없다는 것이다. 그동안 박찬욱 감독 작품에서 그려졌던 적나라한 묘사와는 달리 <헤어질 결심>엔 극단적인 폭력과 섹스 장면이 없다고 한다. 실제로 한국에서 <헤어질 결심>은 15세 관람가 등급 판정을 받았다.
박찬욱 감독은 의도적으로 수위를 조절했다기보다는 "폭력과 섹스를 강하게 묘사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해" 그랬을 뿐이라고 밝혔다. "어른들이 이해할 수 있는 어른스러운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는 그는 "관객이 금방 알아챌 수 있는 대사나 표현이 없고 주인공들이 진심을 숨기는 순간이 많다"며 "심심한 듯 관객에게 스며드는 작품을 하고 싶었다"고 덧붙였다. 직접적으로 에로틱한 장면을 삽입해 로맨스를 표현하기보다는 캐릭터 간 대화와 눈빛을 통해 많은 것을 말하고 싶었다는 박찬욱. 그의 의도에 따라 영화 곳곳에 숨겨진 진심을 찾는 일이 <헤어질 결심>을 더 깊숙이 들여다볼 수 있는 중요한 방식인 듯 보인다.
개그우먼 김신영이 출연한다
그렇다. 우리가 아는 바로 그 개그우먼 김신영이다. <헤어질 결심>이 칸에서 공개된 후 국내 팬들에게 가장 화제를 모은 것 중 하나가 바로 김신영의 출연이다. 칸에서 영화가 공개되기 전까지 김신영의 출연 소식은 비밀에 부쳐졌기에, 극장에서 익숙한 얼굴을 발견한 한국 관객들은 김신영의 등장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헤어질 결심>에서 김신영은 박해일의 후배 형사로 출연한다.
잠깐 스쳐 지나가는 역할이라 생각하면 오산이다. 비중면에서도, 중요도면에서도 존재감이 큰 캐릭터라고 전해진다. 무엇보다 김신영의 연기에 호평이 쏟아지고 있어 관심을 모은다. 연기 경력이 두터운 배우처럼 박찬욱 감독 세계관에 자연스레 녹아든다는 평이다. 박찬욱 감독은 김신영을 캐스팅한 연유에 대해 "옛날 '웃찾사' 때부터 (김신영의) 팬이었다. 저 사람은 탁월한 천재라는 생각이 들었고, 영화계가 그런 사람을 내버려 두면 안 된다고 느꼈다"고 밝혔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모습을 벗고, 배우라는 가면을 쓴 김신영은 어떻게 변신했을지. 한국 관객이 유독 흥미롭게 느낄 수 있는 <헤어질 결심>의 관람 포인트 중 하나다.
'배운 변태'
박찬욱 감독 스스로가 만족한 완성도
영화 팬들은 박찬욱을 일컬어 '배운 변태'라는 수식어를 붙이곤 한다. 지독할 만큼 영화적 디테일에 공을 들인다는 의미의 말이다. 다른 말로는 완벽주의자라고도 할 수 있겠는데, 그런 그도 만족스러울 만큼 <헤어질 결심>은 사운드와 영상 면에서 완성도가 높은 작품이라고 알려졌다. 박찬욱 감독은 "언제 개봉할지 몰라서 끝없이 만지고 만지다 보니, 후반 작업에서 완성도 높은 영화가 본의 아니게 돼버렸다"면서 "극장에서 보실 만하다고 감히 말씀드리고 싶다"고 전했다.
특히 <헤어질 결심>은 로케이션이 빛나는 작품이라고 알려져 있는데, 이 역시 특수효과의 공이 컸다고 박찬욱 감독은 밝혔다. "우리나라의 아름다운 곳을 보여드린 것 같지만 특정 한 곳이 아니라 여기저기서 찍고 특수효과가 더해져서 아름답게 보여진 것이다"라며 "했는지 안 했는지" 모를 만큼 오랜 시간 공들인 특수효과로 영화의 로케이션이 빛날 수 있었다고 강조했다. 특히 해외 외신들이 주목한 '이포'라는 도시는 우리나라 동해와 서해를 돌아다니며 찍은 가공의 도시이며, 도시의 분위기를 완성한 "눈, 비, 구름, 안개, 파도, 태양"을 표현하기 위해 특수효과에 예산을 많이 썼다고 밝혔다. 박찬욱 스스로도 만족했다는 점에서 영화 팬들은 <헤어질 결심>의 미장센과 사운드의 완성도가 얼마나 훌륭할지 기대를 하고 있다.
원래는 두 개의 챕터로 나누어
영화를 구성했다
알고 보면 더 재밌는 사실. 원래 <헤어질 결심>은 사실 두 개의 장으로 나누어 이야기가 구성된 영화였다고 한다. 1장은 산, 2장은 바다였다. 박찬욱 감독은 해외 연예 매체 '데드라인'과의 인터뷰에서 "이 이야기는 어떤 환경에서 일어나는지에 따라 극명하게 분리되며 (이야기의) 성격도 갈린다"면서 산과 바다가 굉장히 중요한 요소로 작용하는 작품이라 밝힌 바 있다. 그렇기에 영화는 후반 편집 단계까지 두 개의 파트로 나누어져 있었는데, 박찬욱 감독은 최종적으로 두 개의 장을 하나로 합쳤다.
그 이유가 무척이나 흥미로운데, 박 감독은 "그냥 영화가 너무 길었"을 뿐이라고 밝혔다. "일반적인 장편 영화 길이와 맞먹는 1장을 다 봤는데, '제2장: 바다'라는 자막이 뜨게 된다면 관객들이 "또 다른 영화 한 편을 더 봐야" 할 것만 같은 공포감을 느낄까 싶어 1장, 2장 구성을 없앴다고 한다. 최종 상영본에는 챕터 구성이 빠졌지만, 박찬욱 감독이 생각한 1장과 2장의 편집점을 상상하며 영화를 감상해도 재밌겠다.
나우무비 에디터 파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