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욱 감독

박찬욱 감독의 신작 <헤어질 결심>이 절찬 상영중이다. <헤어질 결심> 속 탕웨이와 박해일의 호연으로 알 수 있듯, 그의 빛나는 장점 중 하나는 배우의 매력과 역량을 기대 이상으로 이끌어낸다는 데 있다. 그래서 미지의 배우들을 대중에게 널리 알린 경우가 많다. 과거 무명 시절 박찬욱 영화에 출연한 배우들의 면면을 살펴보자.

PS. 본 기획에 걸맞는 배우들이 특정 시기에 포진돼 있어, 2000년 <공동경비구역>부터 2005년 <친절한 금자씨>까지에 초점을 맞췄다.


<공동경비구역 JSA>

   

황 중사
이대연

연극 무대에서 활동하며 <내 마음의 풍금>(1999), <박하사탕>(1999)에 참여한 이대연은 박찬욱의 출세작 <공동경비구역 JSA>에서 황 중사 역에 캐스팅 됐다. 다른 동료 연극배우의 배역이었지만 급히 대타로 추천돼, 이수혁 병장(이병헌)에 대해 증언하는 역할을 맡았다. 그렇게 처음 박찬욱과 연을 맺은 이대연은 <복수는 나의 것>에서 류(신하균)가 벌인 살인사건을 수사하는 형사, <올드보이>에서 횟집 앞에서 오대수(최민식)에게 휴대폰을 건네는 노숙자, <친절한 금자씨>에서 이금자(이영애)가 신앙 간증할 때 교도소장 역으로 짤막히 얼굴을 비추면서 박찬욱의 '복수 3부작' 모두에 이름을 올렸고, <올드보이>와 <친절한 금자씨> 사이에 작업한 <쓰리 몬스터> 속 단편 <컷>(2004)에선 여고생 교복을 입은 배우로 출연했다. 

<해적: 바다로 간 산적>

<복수는 나의 것>

 
지 형사
지대한

<파이란>에서 최민식이 연기한 강재를 죽이는 건달을 연기했던 지대한은 <올드보이>에서 오대수의 친구 주환 역으로 얼굴을 알렸다. 오대수가 납치되기 15년 전을 그린 프롤로그부터 등장해, 오랜 세월 후에 다시 만난 대수를 돕고, PC방에서 이우진(유지태)의 누나 수아에 대해 못된 소리를 늘어 놓다가 우진에게 살해당하는 꽤나 비중 있는 조연이었다. 실은 지대한이 박찬욱 영화에 출연한 건 <올드보이>의 전작 <복수는 나의 것>부터였다. 이대연이 연기한 형사와 함께 다니는 덩치 좋은 후배 형사가 바로 지대한이었다. 하지만 뭐니뭐니 해도 지대한의 대표작은 <올드보이> 3년 후에 개봉한, 김래원 주연의 <해바라기>일 것이다. 새 삶을 살아보려 했지만 가족들이 화를 당하고 결국 각성하게 된 오태식(김래원)이 나이트클럽에 찾아와 병진(지대한)은 살려주는 장면이 인터넷 밈이 돼 '병진이형'으로 더 잘 알려져 있다. 

<해바라기>

노동자2
오광록

<복수는 나의 것>은 자기 딸을 유괴해 죽게 만든 청각장애인 류에게 복수한 동진(송강호)이 느닷없이 등장한, 무정부주의자 영미의 조직원(크레딧엔 '노동자 1,2,3,4'로 표기했다)에게 살해당하는 것으로 끝난다. 지프차에서 내린 네 명의 무리들 중 하나가 오광록이다. 대사 한 마디 없이 담배를 태우고는 동진의 몸에 칼을 찌르고는 현장을 떠난다.

오광록은 다음 작품 <올드보이> 초반에도 등장했다. 하루아침에 아파트 옥상에서 풀려난 오대수가 처음 만나는, 강아지를 끌어안은 채 투신자살 하려는 남자를 연기해 짧은 분량에도 불구하고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친절한 금자씨>에선 백한상(최민식)이 유괴한 아이들의 가족 중 하나로 등장해 이대연과 함께 박찬욱의 '복수 3부작'에 모두 출연한 배우가 됐고, 이후 특유의 나긋나긋한 발성과 움직임이 두드러지는 역할을 주로 맡아왔다.

<올드보이>

노동자3
신정근

동진이 살해당하기 전과 후, 4명의 노동자가 그를 멀뚱히 바라보는 걸 찍은 장면이 하나씩 붙는다. 전자는 오광록의 노동자2가 가장 크게 잡히고, 후자엔 신정근이 연기한 노동자3가 제일 커다랗게 찍혔다. <복수는 나의 것> 이후부터 본격적으로 영화 작업을 시작한 신정근은 (박찬욱이 각본을 쓴 <아나키스트>의 제작자였던) 이준익 감독이이 연출한 영화 7편(<황산벌>부터 <평양성>까지)에 연달아 출연했다. 전라도 영광 출신임에도 불구하고 이준익의 사극에서 김흠순을 두 번이나 연기하는 등 지역에 구애 받지 않는 능수능란한 사투리 연기를 선보이면서, 지난 20년간 영화와 TV드라마 흥행작들에서 신스틸러 역할을 톡톡히 해왔다. 특히 <강철비 2: 정상회담>(2020)에서 북한 핵잠수함 부함장 역을 맡아 주연배우 정우성, 곽도원, 유연석을 뛰어넘는 존재감을 뽐냈다. 

<강철비 2>

<올드보이>

 

철웅
오달수

오대수가 15년간 갇힌 사설감옥 관리자 철웅을 연기한 오달수는 <올드보이>의 조연 중 가장 큰 수혜를 누린 배우라 할 만하다. 단편 <믿거나 말거나, 찬드라의 경우> <친절한 금자씨> <싸이보그지만 괜찮아> <박쥐> 등 박찬욱 영화는 물론 수많은 흥행작에서 활약하면서 한국영화계 대표 배우로 발돋움 했다. 천만 관객을 돌파한 영화가 8편(주연작만 5편)이라는 지표가 전성기 시절 그의 영향력을 가늠케 한다. 하지만 미투 운동이 한창이던 2018년 2월 한 네티즌이 과거 오달수에게 성추행 당했다고 폭로해 파문이 커지면서 한국영화계에서 지워지다시피 했다.  

7번방의 선물

소년 우진
유연석

<올드보이>의 후반은 이우진(유지태)이 왜 오대수에게 복수를 하려는지 보여주는 데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회상 신 속 이우진의 소년 시절을 대학 신입생 시절 유연석이 연기했다. 아직 예명을 쓰기 전이라 엔딩 크레딧에도 본명인 안연석으로 표기돼 있다. 군 전역 후 2009년부터 제대로 배우 활동을 시작한 그는 독립영화 <혜화,동>(2010)을 거쳐 2012년 빌런 격의 조연으로 활약한 <건축학개론>과 <늑대소년>, 이듬해 드라마 <응답하라 1994>의 칠봉이 역으로 널리 얼굴을 알렸다. 주연을 맡은 영화들이 흥행에서 좋은 성적을 내지 못한 것에 비해 드라마는 <낭만닥터 김사부> <미스터 선샤인> <슬기로운 의사생활> 시즌1,2가 연달아 큰 성공을 거뒀다.

늑대소년

수아
윤진서

2002년 작 <버스, 정류장>과 <취화선>에 이름 없는 단역으로 참여한 신인 윤진서는 <올드보이>에서 어린 시절 이우진의 누나 이수아를 연기해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불과 몇 달 후, 서태지의 뮤직비디오 3편에 출연한 데 이어 실화를 바탕으로 한 스포츠 영화 <슈퍼스타 감사용>(2004)에 바로 주연으로 캐스팅 됐다는 사실이 당시 윤진서를 향한 주목도를 가늠해볼 만하다. <친절한 금자씨>에 짤막하게 얼굴을 비추고, 이후 <내 생애 가장 아름다운 일주일> <바람 피기 좋은 날> <비스티 보이즈> <비밀애> 등 꾸준히 주연을 맡았지만 <올드보이>의 이수아를 뛰어넘은 캐릭터를 만나지 못했다.

비밀애

경호실장
김병옥

묵묵히 이우진의 곁을 지키는 범상치 않은 외모의 경호실장은 당시 영화계에선 완전히 새로운 얼굴이었던 김병옥이 연기했다. 연극 무대에서 오랫동안 활동하다 44세 나이에 출연한 <올드보이>로 오달수만큼이나 강력한 인상을 남겼다. 버섯머리 전도사 역의 <친절한 금자씨>와 더불어 여러 작품에서 독특한 외모를 내세운 캐릭터를 선보였고, 2006년 한해에만 6편에 출연해 한국영화에서 빼놓을 수 없는 배우가 됐다. <올드보이> <해바라기> <신세계> 등의 무시무시한 캐릭터 때문에 악역 전문 배우로 유명한데, 필모그래피를 살펴보면 코미디 영화에서의 활약상도 많았음을 확인할 수 있다.

내부자들

<친절한 금자씨>

 


오수희
라미란

<친절한 금자씨>의 주인공 이금자(이영애)는 유괴범의 누명을 쓰고 13년 동안 복역하는 동안 여러 죄수들에게 친절을 베풀어 출소 후 그들을 찾아가 복수를 위한 도움을 받는다. 라미란이 연기한 오수희는 감방 안의 권력자 마녀(고수희)에게 성적으로 착취를 당하다가 금자의 도움을 받고, 출소한 금자에게 백한상(최민식)을 죽일 총에 어울리는 장식을 만들어준다.

연극 무대를 중심으로 활동하던 라미란은 <친절한 금자씨>로 영화 작업을 시작해, 스크린과 TV를 오가는 부지런한 활동으로 차근차근 얼굴을 알려, 영화 데뷔 14년째 되는 2019년 <걸캅스>로 처음 주연을 맡았다. 다음 주연작 <정직한 후보>는 코로나19 여파에 타격을 입은 2020년에 손익분기점을 넘긴 몇 안 되는 한국영화가 됐고, 라미란에게 청룡영화상 여우주연상을 안겼다.

<정직한 후보>

우소영 남편
고창석

오수희가 장식을 선사했다면, 그 총을 만들어준 건 감옥에서 금자에게 신장을 이식 받은 우소영(김부선)이었다. 정확히는 함께 은행강도를 했던 소영의 남편이, 남파간첩 고선숙(김진구)이 준 설계도를 바탕으로 총을 제작했다. 우소영의 남편 역을 맡은 고창석 역시 연극계에서 활동하다가 영화로 활동 반경을 넓힌 케이스. <친절한 금자씨>를 비롯해 <괴물> <서양골동양과자점 앤티크> <인사동 스캔들> 등에서 작은 역할을 맡아온 그는 <영화는 영화다> 장훈 감독의 <의형제> 속 베트남 조폭 보스를 연기해 뚜렷한 인상을 남겼고, 2011년과 2012년 TV 예능 <1박2일>과 <무한도전>에 출연해 인지도를 확 넓혀 영화와 TV드라마 작업을 꾸준히 병행하고 있다.

의형제

재경
김유정

<친절한 금자씨>의 후반부는 금자가 백한상을 잡아 과거 그가 유괴하고 죽인 아이들의 가족과 함께 응징하는 과정이 이어진다. 유혈이 낭자하는 복수가 시작되기 전 금자가 죽였다고 누명을 쓴 원모를 포함한 다섯 명의 아이들이 살려달라고 울부짖는 걸 백한상이 찍어놓은 비디오를 함께 보는 대목이 있는데, 그 중 재경이를 여섯 살의 김유정이 연기했다.

4살 때 모 과자 CF로 데뷔해 이듬해 영화 <DMZ 비무장지대>로 연기를 시작한 김유정은 <친절한 금자씨>를 거쳐, 영화 <내 생애 가장 아름다운 일주일> <추격자> <해운대> <우아한 거짓말>등과 TV드라마 <일지매> <동이> <욕망의 불꽃> <해를 품은 달> 등 숱한 화제작에 출연하면서 연기 잘하는 아역배우로 두루 인정받았다. <구르미 그린 달빛> <편의점 샛별이> <홍천기> 등 특히 드라마에서 남다른 존재감을 뽐내면서, 아역배우라는 꼬리표도 자연히 벗어던졌다.

구르미 그린 달빛

씨네플레이 문동명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