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지면으로 된 만화, TV 방영용 만화 시리즈, 완구 라인업, 그리고 전세계적으로 흥행하는 영화 시리즈까지 문화 다방면으로 승승장구하고 있는 ‘트랜스포머’ 프랜차이즈는 콘텐츠 개발과 성공에 있어 내러티브의 요소가 얼마나 중요한지 보여주는 가장 좋은 예라 할 수 있을 것 같다. 특히 전세계적으로 영화가 크게 흥행하면서 주인공격인 ‘옵티머스 프라임’과 ‘범블비’, 그리고 적수 ‘메가트론’ 정도는 조금 과장하자면 10대~40대라면 대부분 알고 있는 유명 인사가 되었다.
<트랜스포머> 영화 프랜차이즈가 1984년 미국의 완구 대기업 하스브로에서 일본의 타카라(현 타카라 토미)와 합작해 선보인 완구 라인 ‘트랜스포머’를 기반으로 하고 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1970년대 후반의 ‘미크로만’, 그리고 1980년대 초반의 ‘다이아크론’ 시리즈라는 변형을 기반으로 한 로봇 장난감들로 높은 매출을 올리고 있던 타카라 사는 미국에 본사의 장난감들을 수출할 방법을 찾고 있었는데, 미국의 하스브로 사와 수출 계약을 맺게 된다.
그런데 하스브로 사는 똑똑하게도, 이 성공적인 완구 라인들을 그냥 수입만 하는 것이 아니라, 각 완구들에 스토리를 부여해서 ‘트랜스포머’라는 이름으로 리브랜딩해서 판매하기로 한 천재적인 결정을 내린다. 완구 자체도 변신이 가능한 고품질이었는데 거기에 내러티브까지 부여되자, ‘트랜스포머’ 라인은 엄청난 대성공을 거두고 80년대 미국, 일본, 유럽, 중국 등 세계 각지 소년들의 기억 속에 각인되게 된다.
트랜스포머 시리즈에 항상 등장하는 디셉티콘 진영의 수장 메가트론도 역시 일본에서 수입한 완구에서 시작한 캐릭터이다. 원래는 미크로만 라인업 제품 중 하나로 '건 로보 – P38'이라는 이름이었는데 당시 마블 코믹스에서 근무중이던 밥 부디안스키가 ‘메가트론’이라는 이름을 붙여 주었다.
하스브로 사는 마블 코믹스 사에 이 새로이 수입된 일본제 장난감들에 미국 이름을 붙이고 포장 박스에 기재할 만한 간단한 백스토리를 만들어달라고 의뢰하였는데, 당시 편집장 짐 슈터와 당직 근무중(!)이던 밥 부디안스키는 단순한 이름 바꾸기 수준을 넘어 거대한 세계관을 만들어버렸다. 실제로 당시 짐 슈터가 작성한 A4 용지 몇 장짜리 기안서를 보면 지금의 세계관과 큰 차이가 없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왜 굳이 메가트론을 디셉티콘 진영의 수장으로 선택했는지는 모르겠으나 크롬 도금이 되어 있는 완구가 눈에 확 띄고 잘 팔릴 것이라 판단해서 그러지 않았을까? 메가트론은 원래 만화 시리즈에서도 발터 P38로 변형하는 로봇이었으나, 이후 30년 동안 수 차례 업데이트된 완구들이 출시되면서 비행기, 탱크, 용 등 다양한 형태를 취하게 된다.
<트랜스포머>(2007)에 등장한 메가트론은 의외로 외계 제트전투기 형태를 하고 있었는데, 이 형태로 출시된 완구는 1995년 발매 예정되었다가 취소되어 수집가들에게 고가로 팔리는 <G2 전략폭격기 메가트론>에 등장하는 모습에 그나마 가깝다. 아마 트럭 형태의 옵티머스 프라임의 적수로 권총 형태의 메가트론을 등장시키기는 어려웠기에 내려진 결정이라 생각된다.
<트랜스포머: 패자의 역습>(2009)에선 형태를 바꾸어 외계 탱크로 등장하는데, 이 역시 1995년 발매된 <G2 메가트론> 완구와 모습이 그나마 가깝다. <트랜스포머: 다크 오브 더 문>(2011)에서는 완구로 발매되거나 원작 만화에 나온 적 없는 트레일러 트럭 모습으로 등장하지만, 3편의 주 적수는 엄밀히 말하자면 쇼크웨이브였는데 쇼크웨이브는 어느 정도 원작에 충실한 모습으로 등장했다.
마블 사와 DC 사의 원작 만화를 기반으로 한 영화들이 그렇듯이, 파라마운트 스튜디오는 예전 완구를 접한 관객들과 새로운 관객들을 둘 다 만족시키기 위한 절충안을 택한 것이라 보여진다. 90년대에 원작 만화를 기반으로 해 흥행에서 참패한 영화들의 패인 중 하나가 원작을 너무 크게 변형시켰다는 점인데 스튜디오로서는 그러한 위험을 무릅쓰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이번 <트랜스포머: 최후의 기사>를 보면서 느낀 점 중 하나는 그러한 올드 팬들에 대한 서비스가 많이 사라졌다는 것이었다. 메가트론을 제외하더라도, <트랜스포머> 1편에서 3편까지는 2편의 악역인 폴른 정도를 제외한다면 80년대에 트랜스포머 TV 만화를 보면서 타카라/하스브로의 완구를 갖고 놀던 소년들이라면 익숙할 캐릭터들의 현대화된 버전이 대부분 등장했었다. 4편인 <트랜스포머: 사라진 시대>에서도 주 적수인 락다운은 모르는 사람들이 많았지만, 메가트론이 갈바트론이란 새로운 형태로 등장했던 것이다.
1980년대에 쏟아져 나온 완구를 소재로 한 (또는 완구 라인과 함께 마케팅을 진행한) 만화영화 중에서도 가히 최고의 걸작으로 손꼽히는 <트랜스포머스: 더 무비>(1986). 비록 로튼토마토스 점수는 55%로 낮지만, 아직까지도 유튜브에 리뷰 영상들이 올라오고 있는 컬트 영화라 할 수 있는 극장용 만화이다. 이 영화에는 인상적인 장면이 몇몇 있는데, 그 중 하나가 부하 스타스크림에게 배신당해 파괴된 메가트론이 갈바트론으로 다시 태어나는 장면이다. <트랜스포머스: 더 무비>에서 깊은 인상을 남긴 갈바트론은 이후 인기 캐릭터로 자리잡게 되어 각종 만화에서 자주 등장하는 단골 악역이 된다.
하지만 <트랜스포머: 최후의 기사>에서는 별다른 설명 없이 다시 메가트론이 등장하는데, 이번 메가트론은 예전에 원작에서 등장했던 모습과는 많이 다르다. 이번 영화가 공개되기 전, 많은 팬들은 이번 영화가 1995년께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트랜스포머: 비스트 워즈> 완구 라인의 컨셉을 따를 것이라 예상했는데, 실제로 등장한 메가트론은 전혀 원작에 기반을 두지 않은 새로운 모습이었다.
<트랜스포머: 최후의 기사>가 전작보다도 많이 떨어지는 졸작이라는 평을 받고 있고 심지어는 흥행도 전작만 못한 상황이지만 이 프랜차이즈는 계속 이어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트랜스포머 프랜차이즈의 팬으로서 이후에도 다양한 모습으로 등장하는 메가트론의 모습을 보고 싶다.
최원서 그래픽노블 번역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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