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 며칠 사이 영화 커뮤니티에는 '속보'라며 호들갑 떠는 글들이 적잖게 올라왔다. 이 글은 사실 진짜 속보가 아니라 <어벤져스: 엔드게임>에서 토니 스타크가 사망한 날, 그러니까 영화 속 2023년 10월 17일을 현실 시간에 대입해 만든 일종의 장난이었다. 팬이라면 가슴 한켠이 뭉클할 테고, 마블 영화 팬이 아니더라도 영화광들의 이런 귀여운(?) 장난에 슬그머니 미소 짓게 된다. 영화 속 2023년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많지는 않지만 몇몇 영화에서 그려진 2023년을 만나보자.
<어벤져스: 엔드게임> 이후
토니 스타크의 죽음이 인상적이어서 그렇지,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MCU)는 이후 여러 작품이 2023년을 기점으로 한다. <어벤져스: 엔드게임>에서 거의 곧바로 이어지는 <스파이더맨: 파 프롬 홈>이나 드라마 <완다비전> 모두 2023년이 배경이다. 아마도 <스파이더맨: 파 프롬 홈>에서 얼마 지나지 않은 시점을 다루는 <스파이더맨: 노 웨이 홈>도 올해나 내년을 배경을 할 가능성이 높다.
아무튼 MCU의 2023년은 그야말로 천국과 지옥을 오간 해인 셈이다. 타노스가 핑거 스냅으로 5년이나 지나, 사람들이 슬슬 그 고통을 털어내고 새로운 세계로 나아가려 할 때 헐크의 핑거 스냅으로 '블립'이 이뤄져 모두가 돌아왔으니 말이다. 문제는 그 블립도 모두가 생각한 것처럼 희망만을 가져오지 않았다는 것. 블립은 모든 사람들이 돌아왔다는 기쁜 소식과 함께 사회적인 혼란을 빚었다는 내용이 <호크아이>를 비롯해 여러 작품에서 묘사됐다. 동시에 핑거 스냅에서 살아남았어도 혼란이 된 세상에서 죽음을 맞이한 사람들도 없지 않았으니, 그들을 떠나보낸 사람들은 블립의 기적조차도 오히려 버거운 일이었을 것이다.
MCU 세계관의 2023년은 역사에 기억될 수밖에 없는 연도이다. 블립이란 초현실적인 기적뿐만 아니라 나노 테크놀로지와 양자 역할을 활용한 시간 여행이 실제로 실행된 연도이기도 하다. 비록 현실의 2023년은 시간 여행 같은 판타지스러운 일이 없지만, 그래도 여러 과학적 발견이 대중의 관심마저 사로잡을 정도로 화제가 된 바 있다.

- 어벤져스: 엔드게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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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안소니 루소, 조 루소
출연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 크리스 에반스, 크리스 헴스워스, 마크 러팔로, 스칼릿 조핸슨, 제레미 레너, 폴 러드, 돈 치들, 브리 라슨, 카렌 길런
개봉 2019.04.24.
뮤턴트가 멸종할 '뻔'한
영화 속 2023년엔 토니 스타크 사망보다 더 큰 비극도 있다. <엑스맨: 데이즈 오브 퓨처 패스트>는 개봉 당시 팬들에게 엄청난 충격을 안겼는데, 영화 오프닝에서 센티널들이 뮤턴트들을 몰살하는 장면이 그려졌기 때문. 이 센티널들을 막을 길이 도무지 없어서 시간 여행을 떠난다는 작중 스토리는 강력한 악역을 효과적으로 묘사한 사례로도 자주 언급된다.
전작이 리부트 겸 프리퀄인 <엑스맨: 퍼스트 클래스>였기 때문에 왜 2023년을 정했을까 궁금증이 들지만, 아마도 영화를 촬영한 2013년에서 적당히 10년 후 미래를 설정한 것이 아닐까 싶다. 영화 속 2023년은 센티널 때문에 이미 폐허가 된 데다 뮤턴트들이 사냥당하고 있는 상황이라 극중 사회가 어떤 모습이 됐을지, 혹은 일반인들은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는 자세히 묘사되진 않는다. SF적인 설정이나 배경의 <엑스맨>이지만, <로건>을 제외하면 20세기폭스 엑스맨 유니버스에서 가장 먼 미래가 이 영화의 2023년이란 점은 새삼스럽다.

- 엑스맨: 데이즈 오브 퓨처 패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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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브라이언 싱어
출연 휴 잭맨, 제임스 맥어보이, 마이클 패스벤더, 제니퍼 로렌스, 할리 베리, 엘렌 페이지, 이안 맥켈런, 패트릭 스튜어트, 니콜라스 홀트, 피터 딘클리지
개봉 2014.05.22.
폭력의 날, <더 퍼지: 거리의 반란>
영화에서 그리는 미래상은 대체로 어두울 수밖에 없다. 어떤 이야기를 풀어가기 위해선 그쪽이 좀 더 편하니까. 그런 연유로 그려진 ‘퍼지 데이’는 그런 노하우의 극한이 아닐까 싶다. <더 퍼지> 시리즈 속 미래에는 1년에 딱 하루, 12시간 동안 어떤 법적인 제재 없이 모든 범죄가 용인되는 ‘퍼지 데이’가 있다. 범죄와 폭력으로 가득 찬 이날은 어떤 사람들에겐 지난 1년의 억압을 신나게 풀어제끼는 날이지만, 어떤 사람들에겐 목숨이 오락가락하는 위험한 날에 불과하다.
시리즈의 2편 <더 퍼지: 거리의 반란>은 2023년의 퍼지 데이를 배경으로 한다(‘더 퍼지 데이’는 2017년부터 시행했다는 설정이다). 다른 영화들과 달리 미래라고 엿볼 만한 풍경은 별로 없다. 영화가 저예산인 것도 있고, 미래라기보다 지금 같은 현실에서 일어나는 일이라고 보이는 것이 더 공포스럽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도 2편에서 묘사하는 2023년의 퍼지 데이는 희망적인 편. 퍼지 데이에 대항하는 인물들이 극의 중심인물로 등장하기 때문이다.

- 더 퍼지:거리의 반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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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제임스 드모나코
출연 프랭크 그릴로, 자크 길포드, 키엘 산체즈, 마이클 K. 윌리엄즈, 채드 모건, 에이미 파프라스, 에드윈 호지, 카르멘 에조고, 니콜라스 곤잘레스, 칼라 지메네즈
개봉 2014.08.27.
세그웨이는 똑같네, <클릭>
앞선 영화들의 2023년은 무척 암울하지만, <클릭>의 2023년은 그래도 현실과 가장 비슷하다. 다른 의미로는 평범하다 싶을 정도. 인생의 순간을 마음대로 조종할 수 있는 만능 리모컨을 가진 마이클이 사고를 당하면서 우연찮게 리모컨을 조정해 6년의 시간을 건너뛰는데, 눈을 뜬 순간이 바로 2023년이다. 병실은 미래를 상상하는 영화에서 자주 묘사하는 것처럼 병실보다 살균실처럼 가까워 보인다. 마이클이 도착한 건물 로비는 커다란 스크린 옆에 떠다니는 홀로그램과 사람들의 알록달록한 패션이 눈에 띄는데, 가장 현실적인 건 세그웨이가 아닐까 싶다.
그 외에도 눈에 띄는 건 태블릿PC 묘사일 것이다. 마이클의 아들 벤이 사용하는 PC는 딱 봐도 거치대를 장착한 태블릿PC처럼 보인다. 펜을 들어서 쓰는 모습도 단순 터치에서 세밀한 작업용 도구로 진화한 근래 태블릿PC를 연상시킨다. 물론 가방처럼 생긴 손잡이(?)나 무기로 쓸 수 있을 것 같은 두께 등은 어색하지만, 영화가 2006년에 나오고 이후 4년이 지나 2010년부터 태블릿PC가 보급화된 것을 생각하면 꽤 그럴싸한 미래 예측이었다고 볼 수 있다.

- 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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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프랭크 코라치
출연 아담 샌들러, 케이트 베킨세일, 크리스토퍼 월켄, 헨리 윙클러, 데이빗 핫셀호프, 줄리 카브너, 제니퍼 쿨리지, 숀 애스틴, 제이크 호프만, 소피 몽크
개봉 2007.02.01.
과연 2024년은?
2023년도 얼마 남지 않았다. 영화 속 2024년은 어떤 모습일까. 가장 먼저 한국영화에서 찾아보자면 <인랑>이 2024년에서 출발한다. 남북한 통일을 앞두고, 이를 반대하는 아시아 주변국에 경제 제재를 가하면서 국내에서도 폭력적인 시위가 일어난다는 음울한 시대 설정이 처음부터 제시된다. 영화의 본격적인 배경은 5년 후인 2029년이지만, 그 기반이 되는 사건들이 2024년에 일어나는 것. <락다운 213주>도 암울하긴 만만찮다. 이 영화는 코로나19 팬데믹이 장기화돼 213주 동안 격리된 LA를 배경으로 한다. 엔데믹을 맞이한 현시점에선 이런 미래가 일어나지 않아서 다행이다 싶다.
씨네플레이 성찬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