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 개런티(No Guarantee)'. 말 그대로 아무런 개런티 즉, 보수가 없다는 얘기다. 배우들은 종종 노 개런티로 특별출연 또는 우정출연해 지인의 작품에 힘을 싣거나, 주·조연임에도 작품의 내부 사정상 노 개런티로 출연해 실질적인 힘을 보태기도 한다. 억대의 몸값을 자랑함에도 불구하고 출연료 없이 작품에 주·조연으로 출연한 배우들을 소개한다. 


송중기
<화란>

<화란>


영화 <화란>은 폭력적인 아버지와 이어지는 가난, 시궁창이나 다름없는 삶에서 벗어나고 싶은 소년 연규(홍사빈)가 조직의 중간보스인 치건(송중기)를 만나게 되며 일어나는 일을 그린 누아르물이다. 돈을 모아 지긋지긋한 명안시를 떠나 '화란(네덜란드)'으로 가고자 했던 소년은 치건을 만나 헤어 나올 수 없는 폭력의 세계에 휘말리게 된다. 영화는 신인 감독인 김창훈 감독의 데뷔작이자 신예 배우인 홍사빈이 주연을 맡은, 그야말로 신예들이 의기투합한 도전적인 작품과 다름없다. 이야기도, 연출도 독립영화의 호흡과 유사하나 그 스케일은 준상업영화 못지않다. 실제로 <화란>에는 저예산인 40억의 제작비가 투자됐다. 그럼에도 이 영화에서 짙은 상업영화의 향기가 느껴지는 이유는 치건 역의 송중기가 주는 존재감 때문일 테다.

<화란>

송중기는 자신의 과거와 닮은 연규를 도와주는 치건으로 등장해 <빈센조>, <태양의 후예> 등 그간 작품 속에서 보여주었던 캐릭터와는 사뭇 다른 모습으로 연기 변신에 성공했다. 놀라운 점은 저예산 영화인 <화란>에 송중기가 노 개런티로 출연했다는 사실이다. 한 프로그램에 의해 공개된 바에 의하면 송중기의 최근 드라마 회당 출연료는 3억에 달한다(<재벌집 막내아들>). 그럼에도 그가 <화란>에 노 개런티로 출연한 이유는 자신에 의해 <화란>에 상업적인 흥행 공식이 들어가는 것을 막고 싶었기 때문이라고. 

송중기는 "(<화란>은) 기존 상업영화 공식에 따르는 영화가 아니었기 때문에 제작비가 많이 쓰이면 안 될 것 같았다"라며 "이 영화엔 독립영화 같은 매력이 있는데 제작비가 커지게 되면 필요하지 않은 액션신이나 카 체이싱 장면이 들어간다거나 그렇게 상황이 진행되는 게 부담스러웠을 것 같다"고 말했다. 이러한 노력 덕분에 송중기는 영화 <화란>이 제76회 칸 국제영화제 '주목할 만한 시선' 부문에 초청되며 인생 첫 칸영화제 레드카펫을 밟는 영광을 누릴 수 있었다. 한편, 올 10월 부산 해운대구 영화의전당에서 열린 <화란> 야외무대에서 노 개런티에 대한 질문이 이어지자 그는 "얼마 전 제작사 대표님과 식사 자리에서 시계를 개런티로 받았다"라며 "노 개런티는 아니다"라고 웃으며 해명(?) 하기도 했다.

화란

감독 김창훈

출연 홍사빈, 송중기, 김형서, 정재광, 유성주, 박보경, 김종수, 서동갑, 홍서백, 정만식

개봉 2023.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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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해인
<언프레임드 中 블루 해피니스>

<블루 해피니스>
<블루 해피니스>


OTT 플랫폼 왓챠의 오리지널 숏필름 프로젝트였던 '언프레임드'. 배우들이 각자 연출한 단편 영화를 통해 감독으로 데뷔하는 프로젝트로, 박정민과 손석구, 최희서, 이제훈 네 명의 배우가 참여했다. 이중 이제훈이 연출한 <블루 해피니스>는 미래에 대한 불안과 고민을 안고 살아가고 있는 취준생 '찬영'의 이야기를 다뤄내며 2030세대들의 현실적인 공감대를 끌어냈다는 점에서 좋은 평가를 받았다. 주인공을 찬영을 연기한 정해인은 이제훈과의 의리로 노 개런티 출연을 했다고. 이제훈은 "시나리오 단계에서부터 정해인을 염두에 두고 썼다"라며 정해인에 대한 깊은 신뢰감을 보였다. 정해인은 이제훈이 직접 집필한 시나리오를 읽고 곧바로 장문의 메시지를 보낼 정도로 영화의 캐릭터에 대해 공감을 했다는 후문이다. 그는 "촬영 현장에서는 이제훈 감독님이 배우가 편하게 연기할 수 있게 에너지를 북돋아 주셨다"라며 함께 작업한 소감을 밝혔다.  

언프레임드

감독 박정민, 손석구, 최희서, 이제훈

출연 김담호, 강지석, 임성재, 변중희, 오민애, 박소이, 최희서, 정해인, 이동휘, 김다예

개봉 2021.1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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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나영 
<뷰티풀 데이즈>

<뷰티풀 데이즈>
<뷰티풀 데이즈>


결혼과 출산으로 6년간 휴식기를 가졌던 배우 이나영이 공백을 깨고 복귀한 작품 <뷰티풀 데이즈>. 상업영화나 드라마로 컴백할 것이라는 예상과는 달리, 이나영은 독립영화인 <뷰티풀 데이즈>를 선택해 소소한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무엇보다 그녀가 맡은 역할이 탈북 여성이자 어머니라는 점이 눈길을 끌기도. 무엇보다 이나영은 <마담 B>, <히치하이커>로 주목받은 윤재호 감독의 독특한 영화 세계에 대한 확신과 작품의 완성도를 위해 고민 없이 노 개런티임에도 출연을 결심했다고 한다. 이나영은 "저희 영화가 예산이 적고, 공간들도 많이 다른 데다 표현해야 할 것들이 많아서 조금이나마 보탬이 되면 좋지 않을까 해 고민 없이 선택했다"고 출연 이유를 공개했다. 윤재호 감독 역시 "영화가 예산이 굉장히 적었기 때문에 노 개런티로 출연해 준다는 것 자체가 정말 감사했다"라며 출연에 대한 고마움을 전했다. 

뷰티풀 데이즈

감독 윤재호

출연 이나영, 장동윤, 오광록, 이유준, 서현우, 김덕주, 박창희, 설우형

개봉 2018.1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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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현
<성실한 나라의 앨리스>

<성실한 나라의 앨리스>
<성실한 나라의 앨리스>


영화 <꽃잎>으로 연예계 생활을 시작한 배우이자 가수 이정현. 영화 <성실한 나라의 앨리스>는 그 어떤 작품보다 이정현의 필모그래피를 빛낸 작품임에 이견이 없을 것이다. 한국판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이라 불리는 <성실한 나라의 앨리스>는 열심히 살면 살수록 인생의 나락으로 빠지게 되는 수남의 잔혹하고도 애잔한 인생사를 그린 독립 영화다. 이정현은 극중 정수남 역을 맡아 사랑스러우면서도 광기 어린 캐릭터로 압도적인 연기력을 선보였다. 그 결과, 2015년 제36회 청룡영화상에서 여우주연상을 수상하며 연기 인생에 전성기를 누렸다.

<파란만장>


<성실한 나라의 앨리스>가 총예산 3억으로 제작된 독립영화임에도 이정현을 캐스팅할 수 있었던 이유? 그녀가 노 개런티로 작품에 참여했기 때문이다. 연출을 맡은 안국진 감독은 "일반적으로 노 개런티라 해도 기름값 정도는 지급한다. 하지만 정현 씨는 기름값도 안 받고 스태프들의 아침밥까지 챙겨줬다"라며 미담을 전했다. 함께 출연한 이준혁 배우도 "아침마다 커피를 내려주고, 샌드위치도 나눠 먹었다"라며 촬영장 분위기 메이커였다고 언급했다. 이정현이 <성실한 나라의 앨리스>에 출연하게 된 계기로는 박찬욱 감독의 추천이 있었기 때문인데, 이정현과 박찬욱 감독은 2011년 박찬욱&박찬경 형제 감독이 아이폰 4로 연출한 단편영화 <파란만장>을 통해 인연을 맺었다. 당시 박찬욱 감독이 "문소리 배우의 하차로 인해 급하게 연락했음에도 불구하고 이정현이 흔쾌히 출연을 승낙해 고마웠다"고 밝힌 바 있다. <파란만장> 역시 노 개런티로 출연했으며, 이후 박찬욱 역시 개런티를 받지 않고 이정현의 신곡 뮤직비디오를 연출해 훈훈한 미담을 남기기도 했다.

성실한 나라의 앨리스

감독 안국진

출연 이정현, 이해영, 서영화, 동방우, 이준혁, 배제기, 이대연, 박은영, 지대한, 정영기

개봉 2015.0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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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윤아, 김의성
<돌멩이>

<돌멩이>
<돌멩이>


영화 <돌멩이>는 평화로운 시골마을에 지적장애로 8살 지능을 가진 30대 청년 석구(김대명)와 가출 소녀 은지(전채은)가 가까워지게 되고, 은지와 석구에게 예기치 못한 사고가 일어나며 겪게 되는 일을 그렸다. 총 제작비 10억에 달하는 저예산의 영화이지만 김대명, 김의성, 송윤아 등 연기파 배우들이 출연하며 영화의 완성도를 높였다. 이러한 라인업이 완성될 수 있었던 이유는 김의성과 송윤아가 노 개런티로 출연했기 때문이다. 특히 10년 만에 <돌멩이>를 통해 스크린에 컴백한 송윤아는 "시나리오를 다 읽고 그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했다"라며 "감독님이 예산이 작은 영화라고 하셨는데 고민 없이 출연하겠다고 했다. 덕분에 행복하게 좋은 분들과 함께 촬영할 수 있었다"고 출연 소감을 전했다. 씨네플레이와의 인터뷰를 통해 김의성은 "영화가 얘기하고자 하는 바가 좋았고, 우리가 이렇게 모여서 작품을 만들어 갈 수 있다는 게 너무 좋았기 때문에 흔쾌히 노 개런티에 응했던 것 같다"라고 밝혔다.

돌멩이

감독 김정식

출연 김대명, 송윤아, 김의성, 전채은, 이중옥, 김진곤, 한수현, 박성일, 박대원, 이진희

개봉 2020.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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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석
<사의찬미>

<사의찬미>
<사의찬미>


때론 유명 배우의 노 개런티 출연이 작품만이 아닌 장르를 알리는데 큰 보탬이 되어주며 귀감을 사기도 한다. 그 예가 바로 <사의찬미> 이종석이다. SBS 드라마 <사의찬미>는 조선 최초의 소프라노 윤심덕과 그의 애인이자 천재 극작가였던 김우진의 사랑과 시대의 아픔을 그린 단막극 드라마다. 이미 영화, 연극, 뮤지컬 등으로 제작된 콘텐츠이기도 하나, 타 장르 속 <사의찬미> 와는 달리 알려지지 않은 김우진의 작품 세계를 재조명했다는 차별점을 두었다. 첫 시대극 연기에 도전한 이종석은 주인공 김우진 역을 맡아 시대의 아픔에 고뇌하고 애절한 사랑에 고통받는 인물의 내면을 섬세하고 절절하게 표현해내며 연기력을 입증했다. 한편, <사의찬미>는 이종석이 단막극에 대한 애정을 바탕으로 노 개런티 출연을 결심했다는 점에서 화제가 된 작품이기도 하다. 연출을 맡은 박수진 PD는 "평소 단막극에 각별한 애정을 보여온 그가 흔쾌히 노개런티 출연을 결정해 줘 진심으로 감사하다"며 고마움을 표했다. 

사의찬미

연출 박수진

출연 이종석, 신혜선, 이지훈, 한은서, 김강현

방송 2018, S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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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조위
뉴진스 'Cool With You(side B)' MV  

번외로 영화는 아니지만 국내 뮤직비디오에 노 개런티로 출연한 글로벌 스타를 소개한다. 홍콩 배우 양조위다. 양조위는 올해 국내 K 팝 걸그룹 뉴진스의 신곡 'Cool With You (side B)'에 깜짝 출연해 놀라움을 자아낸 바 있다. 양조위는 단 10초 만의 출연으로 강렬한 인상을 남기며 온라인상에 큰 화제를 일으켰다. 출연도 놀랍지만 더욱 충격적인 사실은(?) 해당 뮤직비디오에 노 개런티로 출연한 것이라고. 여기엔 뉴진스 소속사 어도어(ADOR)의 민희진 총괄 프로듀서의 노력이 숨겨져 있었다. 민희진 프로듀서는 지인을 통해 양조위에게 시나리오를 전달했고, 양조위는 분량과 상관없이 캐릭터에 매력을 느껴 출연이 성사됐다고 밝혔다. 양조위는 "좋은 인연이 닿았고, 한국 팬들에게 자그마한 선물을 드리고 싶었다"라며 어도어를 통해 뮤직비디오에 출연한 소감을 전했다. 


씨네플레이 객원기자 루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