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래퍼>의 주인공 조지(롤라 캠벨)

한 아이를 키우는데 온 마을이 필요하다.

"미안하지만 난 혼자 자랄 수 있어"

영화 <스크래퍼>의 첫 화면


열두 살 조지(롤라 캠벨)는 스스로 생계를 책임지고 가사노동도 능숙히 해낸다. 아빠 역할까지 하던 엄마 비키(올리비아 브래디)가 세상을 떠난 후, 혼자 살아나가기로 결심하고 생긴 의젓함이다. 애도의 첫 세 단계, 부정·분노·타협의 봉우리는 이미 지난 지 한참이다. 현재는 '우울'이라는 하향 곡선을 타는 중이지만, 곧 '수용'이라는 평온한 상태에 도달하리라. 그날을 기다리며 조지는 오늘도 이를 악물며 되뇌어 본다. "미안하지만 난 혼자 자랄 수 있어"

조금은 거친 이 열두 살 소녀는, '거의' 전문 자전거 도둑이다. 미성년자이기에 누군가에게 '인계' 되어 보호받아 마땅하지만, 엄마와의 추억이 담긴 집을 떠나기 싫은 그에게 도둑질은 제법 절실한 밥벌이다. 자물쇠 해제의 전문가이자, 빠른 도주의 대가. 조지는 자전거를 훔친 후, 그것들을 분해하고 조이고 닦아 동네 자전거 가게에 푼돈을 받고 처분해 생활비를 충당한다.

조지(롤라 캠벨, 왼쪽)와 알리(알린 우준)

꽤 괜찮은 자립 생활 아닌가. 별 볼일 없는 부품으로 새롭고 빛나는 것을 만들어 자신의 삶을 꾸려가고, 조지의 우울감을 살피며 온갖 멍청한 짓은 함께해 주는 절친 알리(알린 우준)가 곁에 있으며, 주먹을 날리고, 춤을 추며 시끌벅적하게 사는 일상이란. 편의점 점원의 음성을 녹음해 가상의 삼촌 '윈스턴 처칠'에게 목소리를 부여하자, 사회복지사도, 알리의 엄마도 조지에게 보호자가 있다고 믿는다. 놀아나는 어른들이 우습다. 조지에게 세상은 만만하기만 하다.

제이슨(해리스 딕킨슨)(좌)과 조지(롤라 캠벨)

순탄했던 조지의 인생은 그러나 공동주택의 담을 타고 들어온 한 남자로 인해 혼돈에 빠진다. 트랙수트 차림에 과산화수소에 절였는지 머리는 샛노란 이 남자는 얼핏 슬림 셰이디(a.k a. 에미넴)의 환생처럼 보인다. 첫 만남에 스냅샷으로 제이슨(해리스 딕킨슨)의 머리부터 발끝까지 훑어가는 카메라는 도무지 믿을 구석이 없다는 듯 흔들린다. 세기말에 머물러 있는 듯한 그의 패션은 영국 차브(CHAV, 어원상으로는 ‘농촌 하층 계급 출신의 일탈 청소년’을 의미한다. 악취향의 패션을 즐기고 싸구려를 자처하며 자신들의 취향을 떳떳이 공개하는 영국의 하위 청년문화)의 전형이고, 그것은 곧 제이슨의 계급을 말해주는 단서이기도 하다. 하는 일도 변변찮고 벌어 놓은 돈도 마땅히 없는 사람인 게 분명하다.

설상가상 이 헐렁한 사람이 자신이 조지의 친아빠라 주장한다. 그를 본 기억이 한 번도 없는 조지에게 제이슨은 뱀파이어, 죄수, 갱스터 그 어느 것이 되어도 이상할 것이 없는 존재다. 딸과 애인을 남겨두고 스페인으로 달콤한 삶을 좇아 떠날 때도 막무가내였을 그는 몇 년 만에 제 집인 양 담벼락을 타고 와선, "내가 먼저 살았었다"라는 유치한 말장난과 사회복지사에게 혼자 사는 것을 알리겠다는 겁박으로 조지의 집에 눌러 앉는다.

<스크래퍼>

사실 제이슨은 죽은 비키의 부탁으로 조지의 '아버지'가 되기 위해 이곳에 온 참이다. 그는 설은 노력으로 아이의 마음을 얻고, 불신과 경계의 틈새를 조금씩 좁혀간다. 훔친 자전거의 일련번호를 긁은 후 페인트를 칠해야 경찰의 추적을 피할 수 있다는 조언은 아버지가 자식에게 할만한 것은 아니다. 일반적인 아버지는 자식이 자전거를 훔치는 사이 망을 봐주지 않는다. 모든 것은 둘 사이의 긴장을 누그러뜨리려는 서툴지만 진실한 도모였다. 이 모든 시도 끝, 역할극 놀이를 하는 기차역에서 둘은 마침내 눈을 맞춰 웃고, 이때 둘 사이의 거리는 사뭇 가까워져있다.


샬롯 리건 감독, 롤라 캠벨, 해리스 딕킨슨(왼쪽부터)

영화를 보며 의아해했던 것이 하나 있다. 바로 조지가 낀 보청기다. 영화적 장치일 텐데, 조지의 장애나 불편함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다. 알고 보니, 조지를 연기한 배우 롤라 캠벨이 원래 착용하던 보청기였고, 감독은 그것은 '그녀의 보청기'이기 때문에 별말을 하지 않았다고, 할 필요를 못 느꼈다고 전했다. 시력 교정을 위해 안경을 끼듯, 귀가 안 들려 보청기를 꼈겠지. '모른 척'이 무관심이 아닌, 사실은 존중과 배려일 수 있음을 감독은 영화 속에도 고스란히 녹여낸다.

"난 혼자 자랄 수 있어"라고 호언했던 조지는 사실, 무형의 연결고리로 이어져있다. 어른들은 대충 그녀의 상황을 알고도 모른척한다. 조지가 눈앞에서 자전거를 훔치고 있던 때도 그저 안부를 묻던 선생님, 혼자 사는 것을 알면서도 못 본 척했던 친구 엄마, 자신이 죽은 후 혼자 남겨질 조지가 걱정돼 딸 몰래 연락이 끊겼던 제이슨에게 음성 메시지를 남긴 엄마까지. 보이지 않는 누군가의 존중과 배려가 세상에 혼자 서있다 생각했던 조지를 병풍처럼 감싸고 있었다.

제이슨(해리스 딕킨슨)(좌)과 조지(롤라 캠벨)

밤이 되면 집을 나와 골목 한편에 움츠려 핸드폰 속 엄마의 모습을 보며 조용히 눈물을 훔치고, 엄마가 머문 그 시간 그대로 집을 보전하며 떠난 사람을 그리워하는 조지는 영락없는 열두 살 아이다. 아이에겐 이빨요정의 전설을 들려줄, 빠진 이가 놓인 베개 아래로 모른 척 용돈을 안겨줄 아빠가 필요하다. 제이슨도 나이만 조금 많다 뿐이지, 제대로 사과하는 법조차 모르는 미숙한 인간이다. 조지가 폭행한 친구의 부모를 찾아가 사과의 의미로 돈다발 먼저 꺼내드는 서툰 아빠 제이슨에겐, 아이에게 왜 그랬는지 먼저 물어야 하는 거 아니냐고 되묻는 이웃이 필요하다. 인정과 돌봄, '연결' 없이는 이 둘 계속 거칠고, 미숙할 것이다. 조지에게 그리고 제이슨에게 '온 마을'이 필요한 이유다.

<스크래퍼>

'싸움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는 의미의 단어 스크래퍼(Scrapper)는 운명을 개척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흙수저'를 뜻하기도 한다. 영국 내부의 계급성을 상기시키는 영화 타이틀은 회색빛의 콘크리트 질감이 지배하는 켄 로치식 키친 싱크 드라마(1950년대의 중하층 노동자 계급을 소재로 하는 연극. 영국의 전통적인 희곡 유형에서 벗어나 중하층 계급의 언어 및 사회에 초점을 맞추며 사회 비판적인 성격을 띤다)를 기대하게 하지만, <스크래퍼>의 감독 샬롯 리건은 영화에 생기 넘치고 봄처럼 연한 파스텔톤 색상을 적용해 사회적 리얼리즘의 조각에 소중한 동화적 기운을 한 방울 떨어뜨린다. 오렌지, 민트 그린, 핑크 등 다양한 컬러 팔레트는 감독이 선호하는 리얼리즘은 사회적인 것이 아니라 마법적인 것임을 보여준다.

슬픔이 지배할 때마다 조지는 상상 속으로 퇴각해, 스크린에 장난스럽게 실현되는 환상을 창조한다. 80년대 컴퓨터 게임 캐릭터 스타일로 의인화된 거미들의 대화와 영화 중간에 삽입되는 주변인들의 인터뷰는 자칫 무거워질 수 이야기에 대담한 스타일, 젊은 감각, 발랄한 아이디어를 덧대 경쾌한 호흡을 불어 넣는다. 2023년 선댄스영화제 심사위원대상(월드시네마 드라마 부분)을 수상한 작품으로 <슬픔의 삼각형> 해리스 딕킨슨이 젊은 아빠로 분해 신예 롤라 캠벨과 독특한 매력의 부녀 연기를 펼친다.


문화기획자 하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