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7일 가자지구에 벌어진 하마스-이스라엘 전쟁은 다시 한번 무고한 민간인들의 목숨이 희생되는 비극의 역사로 이어지고 있다. 작년부터 이어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여전히 교착 상태에 놓여 있다. 그리고 지난 2021년 8월의 아프가니스탄은 지난 2년과 똑같은 일의 연속이었다. 미군이 탈레반과 2020년 도하 합의를 진행했고, 결과적으로 미군의 아프가니스탄 영토에서 완전 철수를 결정하게 되었다. 아프가니스탄 정부군은 미군의 철수 직전 탈레반에게 완전히 장악당했고, 결국 8월 15일 정부는 항복을 선언하고 탈레반이 아프가니스탄을 탈환해 버렸다. 물론 세 가지 사건이 발생한 원인과 가치 판단은 상대적일 수 있으나, 무고한 사람들이 끊임없이 탄압과 학살의 소용돌이 안에서 고통받고 있다는 점만큼은 똑같다.
그리고 오랜 기간 자국과 주변 아랍 국가의 고통을 고발하기 위해 노력한 영화감독 집안이 있다. 이란 영화계의 거장인 모흐센 마흐말바프 감독과 그 가족들이 주인공이다. 압바스 키아로스타미의 걸작 <클로즈업>(1990)의 주인공이 사칭한 감독의 이름이 바로 모흐센 마흐말바프다. 그는 1983년 첫 영화 <보이콧>을 만든 이후로 40년 가까이 창작활동을 이어가고 있고, 그의 아내 마르지예 메쉬키니와 두 딸인 사미라와 하나 역시 감독이다. 아들인 마이삼은 이 가족들의 프로듀서이자 촬영, 편집을 담당하고 있다. 2005년 이란의 강경 보수파 마흐무드 아흐마디네자드가 정권을 잡은 이후로 그와 그의 가족들은 이란을 떠나 프랑스로 이주하여 아랍과 자국에 대한 영화를 만들고 있다.
부산과도 오랜 인연을 자랑하는 모흐센 마흐말바프 감독이 자신의 둘째 딸 하나 마흐말바프 감독과 함께 이번 부산국제영화제를 찾았다. 아버지 모흐센 마흐말바프의 중편 <강가에서>와 딸 하나 마흐말바프의 다큐멘터리 <아프간 리스트>가 이번 다큐멘터리 쇼케이스 섹션에 초청되었다. 아버지의 작품이 지난 40년에 걸친 마흐말바프 가의 작업 활동을 통해 복잡한 역사적 관계를 지닌 주변국 아프가니스탄과 이란의 이야기를 반추한다면, 딸의 작품은 2년 전 탈레반의 압제를 피하여 아프가니스탄 예술인들의 탈출을 돕기 위해 노력하는 현재의 시간을 다루고 있다. 지난 10월 8일 CGV 센텀시티 5관에서 두 감독은 객석을 가득 채운 관객들과 함께 이란과 아프가니스탄, 그리고 아랍의 참혹한 현실에 대한 생생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이란과 아프가니스탄의 6일의 밤과 낮: <강가에서>
모흐센 마흐말바프 감독의 중편 <강가에서>는 카메라를 등지고 강을 바라보는 마흐말바프의 모습 너머로 이란과 아프가니스탄을 대변하는 두 목소리가 대화를 나누는 영화다. 카메라는 수면을 바라보고, 마흐말바프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아주 오래전 형제의 나라였던 시기부터 동맹과 갈등을 반복하는 작금의 이란-아프가니스탄의 관계를 조명한다. 영화는 단순히 대화로만 이어지지 않고, 마흐말바프가 가족들이 40년간 찍었던 영화들의 푸티지 이미지들이 대화의 주석처럼 삽입된다. 이란의 국경 지역에서 난민 생활을 하는 아프가니스탄 난민의 이야기를 다룬 <사이클리스트>(1989)부터 탈레반 정권이 잠시 퇴진했던 시기 여성들의 담론과 그 너머의 위태로움을 다룬 사미르 마흐말바프의 <오후 5시>(2003)까지 이란의 감독으로서 아프가니스탄을 향한 반성적인 태도를 보였던 그들의 작품을 통해 거시적인 두 국가의 관계를 반추한다.
이란인의 시선에서 아프가니스탄을 바라보는 <강가에서>를 제작하게 된 이유를 묻는 말에 모흐센 마흐말바프는 “지난 40년간 우리 가족은 다큐멘터리와 극영화 수십 편을 통해 우리의 옆 나라인 아프가니스탄에 대해서 다뤄왔다. 정치, 경제, 사회문화적 다양한 관점에서 아프가니스탄 국민들이 부디 평온한 삶을 살기를 바라는 마음이었다. 그리고 복잡한 아프가니스탄의 상황을 전달하기 위해서 만들게 되었다”라고 밝혔다. <강가에서>에서 등장하는 이란과 아프가니스탄 두 나라를 대표하는 목소리는 마치 천지창조의 7일을 떠올리게 만들듯, 6일의 밤과 낮에 걸쳐 두 국가 사이의 정치, 문화, 경제, 사회 등의 역사를 읊는다. 소련과 아프가니스탄 사이의 전쟁에서 자행된 200만 명의 대학살, 미군의 개입, 탈레반이 정권을 차지하면서 이란으로 탈출한 아프가니스탄의 이야기까지 두 영혼의 목소리는 아프가니스탄-이란의 현대사를 빠르게 관통한다. 하지만 <강가에서>는 단순히 역사 다시 말하기에 그치지 않는다. 이들의 대화는 서로에게 도움을 요청했지만 끝내 비극을 함께하지 못한 데에 대한 반성과 부채 의식이 담겨있다.
침묵하는 세계. 탈출을 위한 간절한 몸짓: <아프간 리스트>
하나 마흐말바프의 다큐멘터리 <아프간 리스트>는 2년 전 아프가니스탄 미군 철수와 탈레반 재집권의 시기를 생생하게 다루고 있다. 정확하게는 프랑스에 먼저 망명을 간 마흐말바프 가족이 800명의 아프가니스탄 예술/언론인들을 구출하기 위해 국제 사회에 도움을 요청하는 이야기다. 프랑스를 비롯하여 미국, 영국 등 강대국들에 도움을 요청하지만, 이들은 800명 중 한정된 인원만 탈출이 가능하다는 가혹한 상황을 마주한다. 하나 마흐말바프 감독은 <아프간 리스트>의 출발점에 대하여 “영화를 만들려는 계획이 있다기보다는 무언가 카메라로 기록하려는 습관에서 시작했다. 스마트폰으로 통화와 문자, 그리고 리스트를 작성하는 순간을 촬영했다. 그래서 가족 구성원들이 내가 촬영했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하는 장면도 등장한다. 2년간 아프간 탈출을 위해 노력했지만, 세상은 아프간 사람을 잊어간다는 것을 느꼈다. 이 영화를 통해서 단 한 사람이라도 더 구할 수 있다면 할 일을 다한 것이다. 또한 이를 통해 비극의 역사를 기록함으로 똑같은 일이 되풀이되지 않고, 잊히지 않기 위해 만들었다”고 밝혔다.
특히 그녀는 20년간 미국과 탈레반이 아프가니스탄을 둘러싸고 벌인 역사에 대하여 “20년 전 미국이 아프간을 공격할 때 그들은 ‘민주주의’라는 대의를 명분으로 제시했지만, 기본적인 민주주의와 평화를 이양시키지 못했다. 결론적으로 전부 실패였던 시기인 채로 그들은 철수했다. 내게는 이 사건이 일종의 재앙이나 아포칼립스처럼 느껴진다. 세계 열방은 미군의 철수가 탈레반의 만행으로 이어질지도 다 알고 있었다. 영화 초반에 비행기에서 떨어진 사람들을 기억하는가? 그들은 모두 의사거나 축구선수처럼 엘리트였다. 이들이 무모할 정도로 탈출을 감행한 것은 전부 탈레반에 대한 공포 때문이었다”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영화 상영 후 수많은 관객이 가슴 아파하고 분노했다. 모흐센 마흐말바프 감독은 “이 문제는 모든 인간이 직면하는 문제다. 지금의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전쟁도 동일하다. 영화의 역할은 역사의 어두운 면에 빛을 비추어 사람들에게 보이는 것이다. 40년 전 소련이 아프간에서 10년간 200만 명을 학살했다. 세계는 침묵했다. 탈레반 정권 이후에도 16만 명이 넘게 죽었다. 2021년에 세계는 다시 탈레반 손에 아프간을 넘겨주었다. 여전히 그들은 침묵하고 있다. 다른 곳에서 똑같은 역사가 반복될 것이다. 우리가 목소리를 높여야 한다”고 밝히기도 했다.
또한 그는 아프가니스탄 예술인들의 탈출을 도운 영화제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나눴다. “전 세계의 300여 개의 영화제에 편지를 보내서 아프가니스탄 예술인들의 구출을 위하여 부탁했다. 그때 프랑스와 독일의 두 영화제가 도움을 주었다. 독일에서 68명을 구출했고, 프랑스에서도 여성 예술인 3명의 탈출을 도와주었다.” 이번 GV에는 직접 프랑스에서 3명의 아프가니스탄 예술인들의 탈출을 도운 집행위원장도 참석하기도 했다. 두 감독은 이번 영화를 통해 “아직도 많은 사람이 남아있다. 탈레반을 반대하는 영화를 만들었던 터라 그들은 1급 타깃이 되었다. 우리는 한 사람의 삶을 구하는 것을 꿈꾼다”며 절대 잊지 말아야 하는 아프가니스탄의 현실을 알리기를 당부했다.
씨네플레이 최현수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