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17일 개봉을 기다리고 있는 염정아 주연의 <장산범>은 사람 목소리를 흉내내는 미지의 존재에 대한 영화입니다. 영화가 무서울 때 우리는 반사적으로 눈을 감습니다만, 그래도 파고드는 ‘소리’는 당해낼 수가 없지요. <컨저링>의 박수소리와 <주온>의 토시오가 내는 고양이 소리는 이미 알고 감상해도 언제나 무섭잖아요. 오늘은 소리가 무서운 공포영화들을 추천해드립니다.
<기담>
일제강점기의 종합병원, 교통사고에서 상처 하나 없이 홀로 살아남은 아사코가 누워있습니다. 아사코는 자신이 교통사고의 원인이었다는 죄책감에 시달리는데요. 그래서인지 밤마다 죽은 엄마의 귀신이 찾아옵니다. 이때, 엄마 귀신이 방언처럼 내뱉은 기괴한 소리는 아마도 한국 공포영화 사상 가장 무서운 사운드 디자인일 것입니다.
엄마 귀신이 나타나기 전, 일제강점기의 종합병원은 기분 나쁠 정도로 정갈하고 조용합니다. 아사코의 상태를 걱정하는 의료진의 대화 장면에서도 폴리(Foley, 상황에 맞는 일상음)가 절제되어 있습니다. 의료진이 퇴장하고 어둠 속에서 눈을 뜬 아사코에게 엄마 귀신은 먼저 ‘소리’로 존재를 알립니다. 단순히 사람을 놀라게 하는 일차원적인 사운드 이펙트가 아니라, 기분 나쁠 정도의 정적을 영리하게 쌓아놓고 크지 않은 음량으로 신경을 서서히 긁어대는 ‘구음’입니다.
이 영화의 제작비는 28억. 시대극인 상업영화를 만들기에는 분명 빠듯한 예산이었습니다. 그러나 엄마 귀신 역할을 맡은 박지아의 놀라운 연기력은 제작비로 만들 수 있는 것이 아니었지요. 그래서인지 <기담>은 공포영화 마니아들에게 꾸준히 사랑받는 작품입니다.

- 기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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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정식, 정범식
출연 진구, 이동규, 김태우, 김보경
개봉 2007 대한민국
<죠스>
인간에게 아직도 바다는 미지의 영역입니다. 지구의 70% 이상을 차지하는 이곳에서 최강의 살육자인 ‘상어’는 충분히 공포의 대상이지요. 그래서 상어를 주인공으로 하는 공포영화는 이번에 개봉한 <47미터>를 포함해, 작년에 개봉했던 <언더워터> 그리고 태풍을 타고 상어가 날아다니는 병맛 영화 <샤크토네이도> 시리즈까지 다양하게 변주되었습니다. 그렇지만 역시 범접할 수 없는 명작은 <죠스>겠지요.
놀랍게도 이 영화에서 상어가 모습을 온전히 드러내는 장면은 1시간 20분이 지나서입니다. 촬영장에서 ‘부르스’라는 애칭으로 불리던 상어 로봇을 실물로 보면 공포를 자아내기에 조악한 수준이었습니다. 살짝 귀엽기까지 한 정도였지요. 게다가 고장이 너무 잦아서 제작진의 애물단지였습니다.
그러나 스티븐 스필버그는 ‘죠스’의 모습을 좀처럼 보여주지 않으면서도 효과적인 연출로 서스펜스를 만들어냈습니다. 거기에 존 윌리엄스의 위대한 주제곡이 큰 몫을 합니다. 사실 카메라가 수면 위아래를 오가며 사람들이 해수욕하는 장면은 어떠한 공포도 만들어내지 못합니다. 그러나 서서히 빨라지는 존 윌리엄스의 주제곡만으로 카메라의 시점은 상어의 시점이 됩니다. 아무것도 모르고 놀고 있는 사람들이 물속에 담근 신체의 절반은 이제 최강 포식자의 먹잇감에 불과합니다. 스크린 밖에 있는 우리는 해수욕을 즐기는 사람들에게 어서 빨리 도망가라고 소리치고 싶어지지요.

- 죠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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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스티븐 스필버그
출연 로이 샤이더, 로버트 쇼, 리차드 드레이퓨즈
개봉 1975 미국
<알포인트>
전쟁이 끝나가는 베트남. 6개월 전 18명의 수색대원이 모두 전사한 것으로 알려진 ‘로미오 포인트’에서 구조요청이 오자, 최태인 중위(감우성)는 새로운 대원들과 현장을 확인하러 떠납니다.
로미오 포인트 그러니까 ‘알포인트’는 베트남의 한 많은 역사가 그대로 집약된 장소로 설정되어 있습니다. 원래 호수였던 이곳은 중국군의 학살 현장이었고 그 위에 만들어진 사원은 프랑스 군의 주둔지였습니다. 이후엔 미군이 전쟁을 시작해서 많은 죽음이 이어집니다. 이 불길한 장소에는 미군 귀신, 전몰한 한국군 귀신 그리고 그들에게 짓밟힌 베트남 여인의 귀신이 오갑니다. 여기에 대원들은 빙의되어 서로를 죽입니다.
이 난전 속에서 폭탄이 터지자, 마치 현장에 있는 듯, 감상자의 귀가 멍해지는 사운드 디자인이 일품입니다. 겉모습만으로 빙의를 판단할 수 없어 상대의 관등성명을 물어 상황을 파악하던 중에 소리에 대한 정보가 차단된 것이지요. 그리고 마지막으로 남은 병사는 눈까지 멀어버립니다.

- 알 포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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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공수창
출연 감우성, 손병호, 박원상, 오태경
개봉 2004 대한민국
<소름>
택시기사 용현이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 같은 미금 아파트에 이사오면서 영화는 시작됩니다. 이 을씨년스러운 콘크리트 구조물은 가난 속에서 범죄의 가해자일 수도 피해자일 수도 있는 사람들이 모여 살아가는 곳입니다. 가정폭력에 못 견뎌 살인을 저지르는 선영도 그 중 하나이지요.
<소름>은 호불호가 갈리는 작품이긴 합니다. 몇 장면을 빼고는 일반적인 공포영화의 문법에 들어오지 않는 작품입니다. 그러나 약올리듯 내달리는 오토바이 배달원이 다른 차와 부딪혀 죽자 잘됐다며 좋아하는 택시 손님이 그런 것처럼 우리 일상에 맨얼굴로 있는 공포를 보여줍니다.
특히, 사운드는 별다를 것 없는 오래된 아파트에 특별한 공감각을 만들어 냅니다. 벽 넘어 들리는 옆집의 피아노 소리는 유년의 아찔한 기억을 자극하고 정교하게 세팅된 빗소리는 건물 안팎을 오가며 인물의 고립을 암시합니다. 영화의 마지막, 공포에 질린 용현은 영원할 것만 같은 계단을 걸어내려와 아파트를 빠져나오지만, 결국 그를 다시 뒤돌아보게 한 것은 저 멀리 아득하게 들리는 자장가 소리였습니다.

- 소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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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윤종찬
출연 김명민, 장진영
개봉 2001 대한민국
<귀신소리 찾기>
마지막으로 영리한 한국 단편 하나를 소개합니다. <봄날은 간다> 이후에, 헤드폰과 붐 마이크를 든 남자는 왠지 로맨틱한 상황에 어울릴 것 같은 환상을 주는데요. 여기에 등장하는 오디오 감독은 좀 다른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금자는 집안에서 들리는 귀신소리에 시달리다가 미스터리 전담 프로그램에 취재 요청을 합니다. 사운드 전문가 필우와 취재팀은 현장을 찾지만 이렇다 할 소리를 녹음하지 못하고 쌍둥이 동생과 남편을 잃은 금자의 정신착란이라고 결론 내립니다. 그러나 금자의 집을 뒤로하고 철수하던 중 그녀의 비명을 듣게 됩니다.
소리를 소재로 한 모큐멘터리입니다. 현장에서 녹음된 다섯 음절의 소리를 퍼즐처럼 맞추다보면 충격적인 마지막 장면을 만날 수 있습니다. 유준석 감독은 <귀신소리 찾기> 이외에도 <인비져블1: 숨은 소리 찾기>(2004)라는 단편으로 소리가 주는 서스펜스를 구현했던 감독입니다. 그는 소리와 관련된 작품을 3편 발표하겠다고 했었는데요. 나머지 한 작품도 무사히 진행되어 관객과 만났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 귀신소리 찾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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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유준석
출연 정의순, 김왕근, 정희태
개봉 2010 대한민국
씨네플레이 객원 에디터 오욕칠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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