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메뉴

기사 카테고리

Movie & Entertainment Magazine from KOREA
>인터뷰

[인터뷰] 한국영화의 명장, 〈소년들〉정지영 감독

씨네플레이

아마도 대한민국에서 가장 오랜 시간 동안 (그것도 매우 활발히) 영화감독으로 활약하고 있는 정지영 감독을 만났다. 전작, <블랙머니>(2019) 개봉 이후 4년 만에 공개되는 신작, <소년들> 을 위해서다. 올해는 이 작품의 개봉 말고도 유독 정지영 감독에게 기쁜 일이 많았던 한 해다. <소년들>은 로테르담 국제 영화제에 초청 상영되었고, 최근 서울과 런던에서 ‘정지영 회고전’이 열리기도 했다. <소년들>의 해외 반응과 캐스팅 비화 등, 영화에 대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소년들'
'소년들'

김효정 영화평론가(이하, '김'): 올해 경사가 많은 것 같다. 한국과 런던에서 회고전도 했고, 이 영화가 드디어 관객을 만나게 됐으니 말이다. 정지영 감독의 2023년은 어떤 해인가.

정지영 감독(이하, '정'): 올해 하반기가 정말 바빴다. 당연 영광스러운 한 해다. 다만 바램이 좀 더 커졌다. 영화판에 40년 넘게 있었지만 아직도 감독 정지영을 모르는 관객들이 많은 것 같다 (특히 젊은 관객들은). 이번 <소년들>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찾는 감독이 됐으면 하는 바람이 생겼다.

김: 로테르담 영화제에서 처음으로 이 영화가 (국제적으로는) 공개가 되었고 최근에는 런던아시아영화제(LEAFF)의 개막작으로 초청 상영이 되었다. 영화를 본 해외 관객들의 반응이 궁금하다.

정: 로테르담 영화제만 해도 반응을 민감하게 살피진 않았다. 다만 영화제에서 그곳에 온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는데 런던에서 정지영 감독 데뷔 40주년 회고전을 하면 어떻겠냐는 제안을 받았다. 그래서 그 일이 성사가 되었는데, 생각을 해보니 한국에서 회고전을 한 적이 없었던 것이다. 한국에서 먼저 회고전을 하는 것이 순서라고 생각했고, 이후로는 한국과 런던 회고전이 일사천리로 성사가 된 것이다. 일단 런던 상영에 대한 반응은 매우 좋았다. 놀랐던 것은 해외 관객들은 반응이 매우 즉각적이고 적극적이라는 것이다. 재미있는 부분에서는 박장대소를 하고, 슬픈 부분에서는 소리를 내서 울기도 한다. 뭔가 통쾌한 부분에서는 박수를 치고 환호를 해주었다. 그런 부분이 내게는 즐거웠고, 감동적이기도 했던 것 같다.

 

정지영 감독. 사진 제공=CJ ENM
정지영 감독. 사진 제공=CJ ENM

김: 일단 작년에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이 영화가 처음으로 공개가 되고, 개봉 소식이 없어서 걱정을 했었다. 지금도 개봉을 기다리는 한국 영화가 많지 않은가. 개봉이 결정되기 전까지는 (그 불안한 시간에) 주로 무엇을 하며 지냈나.

정: 주로 글을 썼다. 다음 작품들을 썼다. 이미 써 놓은 것이 하나 있었고, 진행 중인 프로젝트를 각색했다. 4.3. 사건에 대한 시나리오인데 4.3. 평화재단에서 공모 당선된 시나리오다. 처음부터 마음에 쏙 들거나 하진 않았던 작품인데, 내가 직접 각색해서 하면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각색 작업에 매진 했었고, 현재는 거의 준비를 마친 상태다.

김: 또 힘든 사건이다. (웃음)

정: 최대한 힘들게 접근하지 않을 것이다. 4.3 사건을 비극적으로 그린다기보다는 그때의 상처를 치유해 가는 과정을 그릴 것이다.

 

'소년들'
'소년들'

김: 실화를 소재로 하거나 배경으로 한 영화를 꽤 많이 했다. 이번 <소년들> 역시 실화를 소재로 하는데, 수많은 사건들 중에서 영화로 만들어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되는 작품들의 기준은 어떤 것인가. 주로 어떤 사건에 유달리 끌리는가.

정: 일단 내가 잘할 수 있을 것 같다는 확신이 들어야 한다. 또한 <부러진 화살>(2011) 이후로는 계속 권력에 대한 관심을 가졌다. 권력을 가진 자들의 카르텔, 그리고 그들이 저지르는 만행에 대해서 줄곧 지켜보고 비판적인 시선을 유지했다. 그리고 단순히 이러한 사건들을 그리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이 일이 공개되고 세상이 어떻게 (작지만) 바뀌는지, 바뀔 수 있는지 말하고 싶었다. <소녀들>의 원래 제목은 ‘고발’이었는데 그런 메시지를 담아서 그렇게 지었었다. 다만, 너무 뻔하다는 생각이 들어서 나중에 ‘소년들’이라는 좀 문학적인 이름으로 바꾸게 된 것이다.

 

'소년들'
'소년들'

김: 80년대에만 해도 멜로드라마나 다양한 장르를 하셨던 것 같은데 이제는 완전히 정치 사회적인 드라마 쪽으로 방향을 트신 것 같다.

정: 난 태생이 멜로적인 사람이 아니다(웃음). 솔직히 말해서 감수성이 많이 모자란다. (일동 웃음)

김: 이번 작품에서 염혜란, 진경 등 처음 작업하는 배우들이 눈에 띈다. 특히 허성태 배우의 활약이 대단했다. 기존에 그가 전담하다시피 했던 악역이 아닌, 한없이 순박한 연기가 좋았다. 그 역할에 허성태 배우를 떠올린 이유가 있나.

정: 그 점에 있어 허성태 배우는 설경구 배우에게 감사해야 할 것이다 (웃음). 이번 작품의 허성태는 설경구의 적극적인 추천으로 이루어진 캐스팅이다. 사실 나와는 <블랙머니>로 작업을 했던 배우라 좀 더 다양한 배우들에게 기회를 주고 싶어서 다른 배우들을 알아보고 있었던 중이었다. 그때 설경구 배우가 허성태 배우가 너무 좋지 않냐면서 강력하게 추천했다. 좋은 배우인지는 이미 알고 있었고, 나도 받아들이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김: 감독님 작품들에는 늘 정치적인 악역들이 등장하는데 (검사나 경찰 내의 인물들), 이들에게 주는 디렉션이 있나. 워낙 한국영화에 그런 정치극 빌런들이 많아서 좀 차별화를 주고 싶었을 것 같았다. 내가 느끼기엔 너무 원색적이거나 고정관념에서 벗어나지 않는 악역이 태반이었다.

정: 이 악역들을 위해서 내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던 프로필은 모범적인 이미지에 스마트하고 똑똑해 보이는 인상이었다. 다시 말해 다수의 한국 영화에서 등장하는 유들유들하고 얼굴부터 비리가 느껴지는 이미지는 최대한 피하고 싶었다. 유준상(<소년들>에서 무고한 소년들에게 누명을 씌우는 검사역을 맡았다)은 그런 이미지를 가진 배우다.

 

'소년들'
'소년들'

김: 영화의 오프닝 포인트를 어디서 잡을까 궁금했었다. 그 사건의 재현인지, 아니면 이후의 형사의 시점에서의 회상일지, 다양한 선택지들이 있었을 것이다. 영화는 역시 사건이 있던 날, 그 순간부터 시작된다. 마치 캐슬린 비글로우 감독의 <디트로이트>(2017)같은 파워풀한 오프닝이 떠올랐다.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긴장감이 있어 좋았다. 영화의 시작을 구상할 때 어떤 점을 가장 염두에 두었나.

정: 애초부터 오프닝은 사건의 재현으로 시작하기로 마음먹었었다. 굳이 애두를 필요가 없었다. 단도직입적으로 사건의 전제를 보여주고 그 이후의 이야기로 풀어가는 것이 내게는 맞는 순서였다.

 

'소년들'
'소년들'

김: 단편을 포함하여 총 17편의 영화를 연출했다. 다작을 하지는 않은 것 같다. 1980년대와 90년대 작품을 선택했던 기준과, 지금 2020년대에 작품을 고르는 기준이 달라졌는지?

정: 일단 80년대 같은 경우, 영화 검열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다. 더 정확히 말하면 영화 검열에 저촉이 될 주제인지 아닌지가 절대적이었다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남부군>(1990) 이후부터는 하고 싶은 작품을 비교적 자유롭게 골랐는데 문제는 흥행이었다. 흥행에 실패하고 나니, 자기검열을 하게 되더라. 이게 사람들이 좋아할 만한 화제인지 아닌지. 그래서 그 이후 작품은 흥행을 고려해서 <블랙잭>(1997)을 만들었더니 더 망했다(웃음). 궁극적으로는 내가 좋아하는 화제를 선택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소년들'
'소년들'

김: 내가 아는 정지영 감독은 저작권 문제나 영화제 이슈 등 영화계 전반에 있어서 다양한 사안에 관심이 있고, 그만큼 적극적으로 발언이나 활동을 하는 사람이다. 현재 한국영화산업에서 가장 심각하고, 고질적인 문제는 무엇인가. 업계 사람들도 그렇지만 일반 관객들이 좀 알아줬으면 하는 사안이 있을까.

정: 나는 스크린 상한제라고 말하고 싶다. 반드시 생겨야 하는 제도다. 스크린 독과점 이슈에 연장선에 있는 논제라고 생각하면 될 것이다. 한 영화가 극장 스크린의 대부분을 차지하면 관객은 선택할 영화가 없어진다. 따라서 당연히 관객 수는 줄어들 수밖에 없는 것이고. 영화산업의 생태계를 가장 불안하게 하는 것이 이 스크린 독과다. 상한선을 두고 영화적 다양성을 보장해 줘야 한다.

김: 생애 마지막 작품은 어떤 작품이 될 것 같나.

정: 거기까지는 생각도 못 한다. 난 원대한 꿈이 없다. 당장 다음 작품 생각하기에도 바쁘다. (일동 웃음)


 

하루에 여덟 개가 넘는 매체 인터뷰를 소화하고 있는 정지영 감독의 얼굴에서는 시종일관 미소와 웃음이 가득했다. 오랜만의 영화개봉이라는 경사가 분명 그에게는 설레는 일일 것이다. 그럼에도 무엇보다 그가 가장 흥분하고 있는 것은 그다음 작품에 대한 구상과 기대였다. 언제나 '그다음'을 그리는 영화감독, 정지영. 그의 꺼지지 않는 저력과 재능이 경이로운 순간들이었다.

 

김효정 영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