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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부명화] 진상손님 왜 이러세요 〈불멸의 여자〉

씨네플레이

부부가 함께 영화를 봅니다. 멜로물을 보며 연애 시절을 떠올리고, 육아물을 보며 훗날을 걱정합니다. 공포물은 뜸했던 스킨십을 나누게 하는 좋은 핑곗거리이고, 액션물은 부부 싸움의 기술을 배울 수 있는 훌륭한 학습서입니다. 똑같은 영화를 봐도 남편과 아내는 생각하는 게 다릅니다. 좋아하는 장르도 다르기 때문에 영화 편식할 일은 없을 것 같습니다. -편집자 주-


남편의 수화기 너머 날라드는 쌍욕. 누군가 했더니 얼마 전 남편 가게를 찾았던 손님이다. 자초지종을 들어봐도 남편 잘못은 없다. 이것저것 트집만 잡더니 결국엔 돈 깎아 달라는 소리를 시전한다.

남편은 싱크대 공장을 운영하고 있다. 쉽게 말해 고객이 싱크대를 의뢰하면, 고객 집으로 가서 실측을 하고, 그것을 그대로 만들어, 고객의 집에 시공해주는 단계다. A부터 Z. 고객으로 시작 고객으로 끝난다. 그 말인즉슨, 진상 고객을 만날 확률이 높다는 뜻이다.

사랑합니다 고객님

어떤 상황이 와도 미소를 잃지 않는다. 영화 <불멸의 여자>는 서비스직 여성의 활기찬 인사로 시작된다. 영화 <불멸의 여자는> 동명 연극을 원작으로 했다. 그 때문에 이 영화의 화면은 서비스직 여성이 일하는 화장품 가게를 벗어나지 않는다. 연극 같은 영화다.

화장품 가게에는 희경과 승아가 일한다. 그중에서도 희경은 베테랑 직원. 손님에게 성희롱을 당했다는 승아에게 이렇게 답한다. “매장 나올 땐 불쾌한 감정. 우울한 감정 싹 지워야 돼. 오늘 난 행복한 판매원이다. 오늘 나의 미소는 나를 부자로 만든다. 자 따라해봐 스마~일.”

매장에 벨 소리가 울린다. 물건을 반품하겠다는 전화다. 주름 개선 크림을 바르고 잤는데 오히려 눈가에 주름이 더 생겼다는 말. 다짜고짜 환불 해달라며 언성을 높인다. 그럼에도 희경은 숨을 가다듬고 웃으며 답한다. “고객님~ 한번 개봉된 제품은 반품이 어렵습니다. 매장에 오면 다른 신상품으로 서비스하겠습니다. 언제든 고객님 편하실 때 방문 주세요.”

 


 

내 모습 보는 것 같네

영화를 보던 남편이 나지막이 말한다. 그 말에 내 가슴은 미어진다. 그도 그럴 것이 남편도 진상 고객을 참 많이 만난다. 수없는 사건들 중 최근 몇 개만 나열해도 놀랄 노 자다.

원하는 디자인과 크기 그대로 싱크대를 만들어 놨더니 돈을 못 주겠단다. 싱크대 안쪽 색깔이 바깥과 다르다는 이유. 겉감과 안감이 어떻게 똑같겠냐며 온갖 설명을 해줘도 막무가내다. 결국 그 고객은 100만 원이 깎고서야 돈을 입금했다.

이런 적도 있다. 원하는 색깔대로 싱크대를 만들어 놨더니 자기가 고른 색깔이 아니란다. 직접 보고 고른 색상이라고 아무리 설명해도 아니라는 말만 반복. 화가 난 남편이 “다른 곳에서 하세요 그럼. 다 만들어 놓은 거 차라리 손님 집에 넣어주느니 버리겠습니다” 엄포를 놓자 그제야 깨갱. “아니. 조금만 돈 깎아 주고 좋게 좋게 합시다.”

진상 고객에게 이유는 없다. 내가 이 고객에게 어떻게 했기 때문이 아니다. 아무리 완벽하게 해도 만족 못 하는 사람은 분명히 존재한다. 돈을 깎는 게 목적인 사람들에게는 그 어떤 말도 안 통한다.

그렇다고 다른 말이 나오지 않도록 계약서를 꼼꼼하게 써도 진상은 못 당한다. 원하는 색깔, 치수, 소재까지 계약서에 다 쓰고 도장까지 찍었는데 돌아온 말은. “사장님이 마음대로 계약서 작성했잖아요. 나는 이런 거 쓴 적 없습니다.” 하. 정말 인류애가 사라진다.

 

<불멸의 여자>에도 진상 고객의 폭격이 시작된다. 아이크림이 있냐고 묻는 고객의 등장. 이에 승아는 또박또박 제품에 대해 설명한다. 가격을 묻는 고객의 말에는 ”53900원이십니다~“ 라고 매~우 공손하게 답한다. 돈에도 존칭을 붙이는 것은 서비스직의 국룰아닌가.

하지만 고객은 계속해서 질문한다. 시험 문제 같은 말들을 늘여 놓는다. “피부 노화 방지하는 게 블루베리에요, 수용성 콜라겐이에요?” 승아는 질문에 열심히 답변한다. “네 고객님, 블루베리 추출물이죠~.” 그러자 고객은 신나서 공격한다. “땡! 수용성 콜라겐이에요. 여기에도 그렇게 적혀있구만. 교육 더 받으세요.” 작정하고 까내리려는 고객의 질문에 승아는 그만 삐끗하고 만다.

 

알고 보니 아까 전화로 크림 환불을 원했던 그 고객이다. 이제 이 진상 고객은 희경이 자리를 비운 것에 대해 꼬투리를 잡는다. “언제든 오라더니 자리를 비우면 되나요?” 부랴부랴 병원을 다녀온 희경에게 속사포 같은 말을 쏟아낸다. “업무 시간에 병원을 가도 되나요? 아까 전화했을 때는 아무 시간에 오라면서요. 그리고 아까 전화는 왜 늦게 받았나요?” 그리고 그 뒤에 따라붙는 말. “빨리 서비스 제품 주세요.”

경찰에 신고하면 안 돼?

아니면 법적으로 처리하던가.

남편이 진상고객에게 당할 때마다 내가 했던 말. 돈이 깎이면 그나마 낫다. 실컷 싱크대를 만들고 넣어줬더니 돈 없다고 배째라는 식으로 누워 버리는 경우도 있었다. 그래서 법적 절차를 받은 적도 있었다. 어찌어찌해서 배상하라는 판결이 고객에게 내려졌지만 남편 가게는 한 푼도 못 받았다. 그 고객의 재산이 0원이었기 때문. 재산 0원인 사람이 싱크대는 도대체 왜 한 것인가. 말도 안 되지만 아직까지도 그 돈은 못 받았다. 남은 건 법적 절차를 치르느라 소비한 시간과 돈뿐이다.

신발가게 진열장 사건도 있다. 실컷 진열장 만들어 줬더니 “장사가 안 돼서 돈이 없다. 나중에 붙여주겠다”라는 말만 되풀이. 몇 달간의 모르쇠 작전에 남편은 화가 나서 신발가게를 찾아갔다. 그럼에도 고객은 돈을 주지 않았다. 결국 남편은 진열장 돈만큼 신발을 가져왔다. 그 신발은 아직까지도 남편 본가에 박스 째로 보관돼 있다.

희경과 승아도 비슷한 이야기를 나눈다. 진상 고객이 올 때마다 경찰에 신고하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다. 그리고 크림을 발라 주름이 더 생겼다는 고객의 말은 소비자 보호원이 해결해 줄 수 있다. 하지만 희경과 승아는 아무런 대응도 못한다. “소보원에 이런 이야기가 접수되는 순간 우리 평점이 깎이겠지. 또 경찰이라도 불러봐. 우리는 비정규직이고 서비스직인데, 기업 이미지 깎아 먹었다고 우리만 그냥 짤리겠지.”

 


더 이상 못 참겠네

서비스 크림을 받아 간 진상 고객이 다시 나타난다. 서비스 크림까지 다 썼지만 주름이 더 깊어졌다며 소리친다. 희경과 승아는 웃으며 답한다. 웃음은 서비스직의 숙명이다. 그러자 고객은 승아를 때리려고 한다. 웃는 얼굴이 기분 나쁘다는 이유다. 결국 지점장이 등장한다.

고객은 소리친다. “환불해 주고, 저 사람들한테 사과 시키세요. 멀쩡한 사람을 진상 고객 취급하고 말이야. 당장 사과해요.” 그 말에 결국 승아는 터져 버린다. “내가 진짜 못 참겠다. 진상고객 더 이상 못 참아. 내가 그냥 나가고 말지 더러워서.”

고객이 그토록 바라던 환불도 본인의 지갑에서 꺼내서 처리한다. "잘리는 게 아니라 내가 내 발로 그만두는 거야. 더 이상 못해 먹겠네.”

하지만 희경은 고객 앞에 무릎을 꿇는다. “제가 고객님을 특별하게 모시지 못했고, 진상 고객 취급해서 죄송합니다”라며 깍듯이 사과한다. 그러자 고객은 콧방귀를 뀐다. “병신 같은 년.”

희경과 승아는 다르다. 희경은 무릎을 꿇었고, 승아는 퇴사를 한다. 하지만 결론은 똑같다. 달라지는 건 결국 없다는 것. 진상 고객은 또다시 등장할 것이고. 제2의 희경과, 제2의 승아는 계속해서 나올 것이다. 영화는 별다른 해결책 없이 끝이 난다. 어쩌면 이게 현실일 것이다.

 

나도 제2의 승아가 돼볼까?

남편의 말에 차마 대답을 하지 못했다. 더러워도 참고 일하는 ‘제2의 희경'이 되라는 말은 더더욱이나 못 하겠다.

 

 


매일신문 임소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