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가 함께 영화를 봅니다. 멜로물을 보며 연애 시절을 떠올리고, 육아물을 보며 훗날을 걱정합니다. 공포물은 뜸했던 스킨십을 나누게 하는 좋은 핑곗거리이고, 액션물은 부부 싸움의 기술을 배울 수 있는 훌륭한 학습서입니다. 똑같은 영화를 봐도 남편과 아내는 생각하는 게 다릅니다. 좋아하는 장르도 다르기 때문에 영화 편식할 일은 없을 것 같습니다. -편집자 주-


3개월 전부터 우리 부부는 피임을 하지 않고 있다. 임신 준비생들의 필수템 엽산과 비타민D도 꼬박꼬박 챙겨 먹는다. 웬만하면 약이나 연고는 피하려고 노력한다. 아참. 술 약속도 확 줄였다.

가슴이 아리더니 배까지 조금 뭉쳐온다. 으슬으슬 감기 기운도 조금 있는 듯하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임테기를 해보지만 한 줄. 그리고 그날 저녁 생리가 터졌다. 그러자 조급해지는 마음.

뭐지, 왜 안 생기지?


영화 <프라이빗 라이프>는 난임으로 힘든 시간을 보내는 40대 부부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레이첼(여)은 41세, 리차드(남)는 47살이다. 그리고 영화는 다소 생경한 장면으로 시작한다. 반쯤 보이는 레이첼의 엉덩이에 리차드는 주삿바늘을 쿡 놓는다. 그리고 36시간 뒤 부부는 난임 병원을 찾는다.

대기실 소파는 만석이다. 앉을 자리가 부족해 끄트머리에 걸터 앉은 사람들까지 있을 정도다. 그리고 부부는 인공수정을 위해 채취에 나선다. 앞서 레이첼이 맞은 주사는 과배란주사였다. 매달 하나씩 배출되는 난자를 여러 개 성숙시켜 건강한 난자를 채취하기 위함이다. 레이첼은 옷을 벗고 몸에 장신구를 다 뺀다. 파란 위생 모자까지 쓰고 나니 레이첼은 무서워진다. 이것이 과연 윤리적인 일일까. 아무래도 정상은 아닌 것 같은데. 불안한 기색을 내비치다 난자 채취방으로 들어간다. 현타가 온 것은 리차드도 마찬가지. 야동을 보면서 정액을 채취한다. 화면 속의 남녀가 온갖 신음 소리를 낸다. 리차드는 한숨을 내뱉는다.

여기서 한 가지 문제가 생긴다. 리처드의 정액에 정자가 없다. 의사 설명을 들어보니 정자가 나오는 입구가 막혀있어 배출이 되지 않고 있단다. 결국 정자를 뽑아내기 위해 별도 시술이 필요하고, 그 비용은 자그마치 만 달러다. 부부는 고민한다. 하지만 레이첼 몸에서 난자 11개를 이미 채취한 상황. 그 난자를 버릴 수는 없다. 결국 부부는 형 찰리에게 손을 벌리기로 한다.


둘이 벌써 몇 년째야

형 찰리는 흔쾌히 돈을 빌려준다. 하지만 찰리 부인 신시아는 이가 영 못마땅하다. “저 정도면 임신 집착증이야”

신시아의 말도 일리는 있다. 레이첼과 리차드는 사이가 좋은 편이 아니다. 몇 년째 임신을 준비하다 보니 일상생활은 거의 망가졌다. 오로지 임신만을 위해 앞만 보고 달리는 경주마 같다. 서로의 마음을 돌볼 여유도 없다.

가뜩이나 화가 나있는데 신시아에게 걸려온 전화 한 통이 그 화를 더 돋운다. 타지로 대학 생활을 하고 있는 첫째 딸의 전화다. 첫째 딸 세이디는 대학은 갔지만 꿈을 못 찾고 있다. 그러다보니 캠퍼스 생활에 적응도 못 했다. 그런 딸의 이야기를 듣자니 신시아는 가슴이 답답하다. 기껏 키워서 대학까지 보내놨더니 한다는 말이 꿈을 못 찾겠단다. 무자식이 상팔자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온다.

그래서일까. 신시아는 레이첼을 좋아하지 않는다. 난임으로 고생한다고 하지만 레이첼의 커리어는 꽤나 완벽하다. 소설가 레이첼은 꾸준히 책을 내왔고, 유명 잡지사에 정기적으로 글도 실리고 있다. 하지만 신시아는 어떠한가. 자식을 키우느라 꿈을 포기한지 오래됐고, 출산 후유증 때문일까. 레이첼보다 두 배는 더 늙어보인다.

우리부부가 아이를 미뤘던 이유도 이 때문이다. 나는 내 커리어를 포기하기 싫었다. 30대라는 나이는 직장에서 자리를 잡아가는 시기다. 불완전한 20대를 거쳐, 겨우 자리를 잡아놨는데. 이제는 임신과 육아로 공백이 나게 생겼다. 모 선배가 표현한 나는 ‘반짝 반짝’이다. 일을 함에 있어 반짝반짝 빛나는 시기에 임신을 해야 한다니. 심지어 지금이 아니면 노산이라 힘들어진단다. 하지만 반짝반짝 빛날 수 있는 시기도 지금일 텐데. 출산을 하고 돌아와 지금처럼 일을 해낼 자신이 없다. 이런 생각들이 내 임신 계획의 발목을 잡았다.

가지려고 한다고 바로 생길 것 같아?

이 말이 제일 무서웠다. 모 선배는 이렇게도 말했다. “2세 계획 조금 늦출 거면 산전 검사라도 받아봐. 난소 나이라든지 조금 있다 가져도 될 것 같으면 진짜 미루고, 아니면 진짜 바로 가져야 할 수도 있어.” 어떤 일이든 경험자의 말이 옳은 법. 하지만 행동에 옮기는 것이 왜 이렇게 힘들까.


레이첼과 리처드도 나와 같았으리라. 그들의 청춘은 반짝반짝 빛났다. 레이첼은 소설가, 리처드는 공연가. 둘은 끝내주는 예술가 부부였다. 하지만 40대가 되고 보니 몸이 맘대로 따라 주지 않는다. 부부는 결국 체외 수정까지 하기로 결심한다.

시험관 시술이라고도 불리는 체외수정은 말 그대로 난자와 정자를 뽑아내 체외에서 수정을 시킨 후 여성의 몸에 주입하는 시술이다. 정자를 여성 몸에 집어넣는 인공수정과는 다르며, 임신 확률도 더 높아진다. 정자와 난자가 합쳐진 배아가 레이첼 몸에 주입된다. 의사의 한마디. “이제 임신해볼까요?” 긴 주사기로 배아를 레이첼 몸에 집어넣는다.

그리고 얼마 후, 사회복지사가 부부의 집에 방문한다. 이 영화는 여러 난임 과정들의 성공 여부를 명확하게 이야기하지 않는다. 다만 사회복지사와의 대화에서 체외수정까지 실패했음을 알 수 있다. “불임치료를 하신 후에 입양을 결정하신 거군요”. 그렇다. 레이첼과 리처드는 입양도 알아보고 있다.

사실 일전에 입양이 성사될 뻔하기도 했다. 작년 겨울 생모 한 명과 만났다. 여기서 입양은 우리가 쉽게 아는 아이를 보고 아이를 데려오는 입양이 아니다. 아이를 낳아 기를 수 있는 여건이 안 되는 임산부와 일종의 계약을 맺고. 그 임산부가 아이를 낳으면 그 아이를 입양하는 구조다. 하지만 이마저도 잘되지 않는다. 생모는 부부와 만나기로 한 날 자리에 나타나지 않는다. 사회복지사 말로는 임신을 하지 않았는데 관심이 필요해서 거짓말을 한 것일 수도 있다고 한다. 레이첼과 리처드는 또 한 번 상처를 받게 된다. 하지만 그 상처를 겪었음에도 입양을 다시 고려한다. 그만큼 레이첼과 리처드에게 아기는 간절한 존재다.


입양을 고려하면서도 엽산과 임신촉진제를 챙겨 먹는 일은 멈추지 않는다. 가슴이 조금 커진 것 같으면 임테기도 여러 번 해본다. 하지만 그때마다 단호한 한 줄. 그렇게 또 시간은 지나간다.

이렇게까지 해야 해?

아이가 진짜 안 생기면 어쩌지?라는 생각을 해본 적이 많다. 하지만 내 결론은 둘이 행복하게 살면 되지!였다. 하지만 이 또한 겪어보지 않은 일이라서 할 수 있는 답변이 아닐까. 진짜 아이를 못 가지게 될 때는? 거기까지는 생각해 보지 않았다. 레이첼과 리처드의 상실감이 얼마나 클지 가늠도 안 된다.

레이첼과 리처드에게 의사는 새로운 방안을 제시한다. “가족을 이루는데 세명이 필요할 수도 있어요” 바로 난자 기증이다. 당황하는 레이첼에게 의사는 말한다. “배속에 품는 것도 당신, 낳는 것도 당신이에요. 거기다 남편 리차드의 유전자도 받을 수 있고요”

하지만 레이첼은 영 마뜩잖다. 아이를 낳는 기계가 되어 버린 기분이다. 하지만 리처드는 해보고 싶다 말한다. “당신 난자로 체외수정 또 하면 임신 확률 4% 밖에 안되잖아. 기증 난자로 하면 65%가 돼. 아이를 갖고 싶어서 유괴 빼고 모든 옵션을 고려한다고 생각하자.”

거기에는 형 찰스의 딸 세이디까지 동원된다. 부부를 존경하고 사랑하는 세이디는 자신이 기꺼이 그 일을 하겠다 말한다. “제가 사랑하는 두 분이 가정을 이루는 데 도움이 된다면 보람된 일이 어딨겠어요? 항상 힘을 주시고. 비판도 하지 않으시고요. 정말 근사한 부모님이 되실 거예요."

물론 처음부터 세이디를 생각한 것은 아니다. 난자 사이트에 들어가 젊은 여성들의 사진도 여러 번 봤다. 여성들은 학벌이며 얼굴 사진이며 모든 것을 내걸고 자신의 난자를 판매한다. 하지만 레이첼은 환멸을 느낀다. 난자 경매 사이트가 따로 없다고 생각한다.

세이디는 난자 기증 적합 검사부터 진행한다. 난자를 살펴보는 생물학적 검사부터, 심리 검사까지 진행된다. 그리고 레이첼이 했듯. 세이디도 과배란촉진주사를 맞는다. 레이첼과 함께 병원도 다닌다. 그렇게 세이디에 몸에서 15개의 난자가 채취된다. 그리고 리차드의 정자를 주입해고 6개가 수정이 된다.


이쯤 되면 임신되겠지?

주인공의 행복을 이토록 바라본 적이 있었던가. 하지만 영화는 또 한 번 좌절을 준다. 레이첼과 리처드는 임신에 실패한다. 레이첼의 담담한 한 마디가 가슴을 쿡 쑤신다. “정말 슬프다.” 이어지는 리처드의 답변도 참 현실적이다. “알아, 다정하게 대하고 위로해줘야 된다는 거. 이성적으로는 알겠는데. 미안하지만 지금은 못하겠어. 나도 기운이 없어.”

이 말을 시작으로 그간의 과정들의 힘듦을 봇물처럼 쏟아낸다. “난 잘 안된 게 다행이라고 생각해. 어쨌든 이제 끝난 거잖아. 잔인하게 들리겠지만 지금 내 심정이 그래. 후련해. 이제 애를 갖는 것도 싫어. 그냥 내 삶을 되찾고 싶어. 우릴 좀 봐. 엉망이잖아. 부부생활은 고사하고 커플이 아닌 것 같아. 그저 당신 엉덩이에 매일 호르몬 주사나 놓는 남자일 뿐이지. 섹스도 안 하잖아. 당신 생각은 어때? 우리가 다시 섹스를 할 수 있을까?”

여성 난임, 남성 난임, 인공 수정, 시험관 시술, 난자 기증 입양. 난임 부부가 맞닥뜨릴 수 있는 거의 모든 난관의 종합세트다. 하지만 영화는 종일 차분하다. 하지만 부부는 사소한 곳에서 터져버린다.


내 아이가 없는데

남 아이가 예쁠 수 있을까

핼러윈 데이를 맞은 동네 아이들이 사탕을 달라고 초인종을 누른다. 레이첼과 리처드는 집 안에서 불도 켜지 않고 속삭인다. “쟤네는 왜 온 거야?” “사탕 때문에.” “젠장.” 아무 죄도 없는 애먼 아이들이 밉고, 아이들이 너무 예뻐서 더더욱 마주하기 싫다.

주변에 아이 없는 부부가 꽤 있다. 가장 가까운 사람은 남편의 이모. 남편의 큰 이모네는 자식이 없다. 자식이 없음에도 그들은 행복하게 잘 산다. 하지만 괜히 눈치를 보는 것은 주변인들. 물론 그들은 아무렇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눈치가 보이는 것을 어떡하나.

얼마 전 시아버지는 환갑잔치를 했다. 물론 성대하게 한 것은 아니고 자식들과 어머님과 파티를 한 것이 전부다. 그리고 그 무렵 이모부네와 식사를 할 일이 생겼다. 하지만 환갑잔치 이야기는 아무도 꺼내지 않았다. “우리 애들이 이런 것도 해줬다.” 평소 같았으면 파티 사진이며 받은 선물이며 자랑을 하고 남았을 시간인데. 그날의 식사는 조용하고 심플했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정작 그들은 괜찮을 수 있다.

그리고 영화는 몇 년 후의 핼러윈 데이를 보여준다. 작년에 왔던 아이들이 또 초인종을 누르는데 이번에 리처드는 아이들을 반갑게 맞이하며 사탕을 준다. 마음을 내려놓은 걸까. 하지만 그 모습에 마음이 아려오는 건 왜일까.


매일신문 임소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