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명실상부 2020년대 최고의 빅 이벤트, <오징어 게임>이 6월 27일 시즌 3 공개로 한 챕터를 일단락 지었다. 전 세계에서 인기를 끈 작품이니 정말 끝났다고 볼 순 없지만, 적어도 456번 성기훈(이정재)의 대장정은 확실히 마침표를 찍은 셈이다. 지난 시즌에서 ‘반란’이 실패로 돌아간 후, 성기훈과 남은 사람들은 어떤 끝을 맞이했을까. 씨네플레이 기자들도 그 과정을 숨죽인 채 지켜봤다. 파격과 뻔함 사이를 오갔던 이번 시즌, 어떤 장면들이 가장 인상에 남았을까. 씨네플레이 기자들이 각자 취향에 기반해 최고의 순간과 최악의 순간을 뽑아봤다. 이번 기사는 기자들 각자 <오징어 게임> 시즌3에서 가장 마음에 들었던 장면을 소개한다. 여러분들은 어떤 장면이 좋았는지, 댓글로 함께 나눠주길 바란다.
※ 아래 내용은 <오징어 게임> 시즌3의 스포일러를 다루고 있다.

성찬얼 _ 성기훈(이정재)이 줄넘기를 성공하는 순간
누가 뭐래도 <오징어 게임>의 서사는 성기훈이 중심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바이벌 게임’이란 관점에서 성기훈은 활약상이 드문 편이다. 이 드라마에 따라붙는 여러 비아냥 중 ‘운빨 게임’이란 표현도 성기훈 스스로 헤쳐온 것보다 타인 덕분에 넘어온 위기가 많기 때문일 것이다. 때문에 <오징어 게임> 시즌3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이라면 성기훈이 222번(조유리)의 아기를 안고 줄넘기를 넘는 장면일 것이다. 물론 이번 시즌에서 그의 행적이 썩 만족스러운 것은 아니지만, 그 역시 전대 우승자라는 면모를, 그 나름대로 기지가 있음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다. 성기훈이라면 멋있거나 유능하다기보다 우리와 비슷한 소시민적 특징들이 매력인데 이 장면만큼은 그의 의지를 엿보기에 충분하다. 아주 짧지만 가장 인상적인 장면.

주성철_100번 임정대(송영창)가 용궁선녀(채국희)를 밀치고 출구를 닫아버린 순간
지난해 계엄의 시간 이후 정치 과몰입의 시간을 보내다 보니, 지난 3년간 대한민국을 지배한 ‘무속’이라는 말만 들어도 치가 떨린다. 살짝 딴 얘기를 하자면 ‘월드 오브 스트릿 우먼 파이터’를 즐겁게 보던 와중에도 5회에서 ‘팀 코리아’ 범접이 굳이 무속인을 찾아가 우승 가능성을 물어볼 때 (녹화 시점은 모르겠으나) 멘붕이 올 정도였다. 시즌3를 애타게 기다리면서도 가장 우려됐던 것은, 용궁선녀(채국희)가 꽤 오래 살아남아 계속 개소리를 지껄일 텐데 그걸 어떻게 견뎌낼 것인가, 하는 점이었다. 그런데 지난 시즌2 제작발표회에서 “이렇게 말도 안 되는 일(계엄)로 온 국민이 공포와 우울감을 갖고 연말을 보내야 한다는 것이 화가 난다. 탄핵이든, 자진 하야든 최대한 빨리 책임을 지고 행복한 연말을 국민에게 돌려주길 바란다”고 했던 황동혁 감독도 그를 견디기 힘들었던 걸까. 용궁선녀가 천지신명님께 기도하여(?) 힘겹게 찾아낸 ‘나가는 곳’ 앞에서 100번 임정대(송영창)로부터 처절하게 배신당하고야 만다. 솔직히 처절하다고 표현하면 오히려 극적이고, 그냥 최대한 추잡스러운 앵글로 처리됐다고 하는 게 맞을 것 같다. 돌이켜 보면, <오징어게임> 시리즈 전체에서 가장 인상적인 순간들은 결국 쓰레기와 쓰레기가 경쟁하며 그들만의 ‘소확행’을 찾아가는 풍경이다. 이번 시즌3가 마음에 들었던 요소들을 찾아보자면, 바로 그런 순간이 많았다는 것 아닐까.

김지연_과거 '오징어 게임'에 참가한 황인호(이병헌)가 참가자들을 난도질하는 순간
<오징어 게임> 팬들이 시즌3에서 기대한 건, 분명 성기훈(이정재)과 프론트맨(이병헌)의 본격적인 대결이었을 것이다. 시즌2의 반란이 실패로 끝나고, 프론트맨은 자신의 위치로 돌아가 성기훈을 관찰했다. 다만, 관찰‘만’했다. 따라서, 많은 이들의 예상과는 달리, 시즌3에서 프론트맨의 분량은 줄어들었고, 성기훈과 프론트맨의 대결이 전면화되지도 않았다. 그래서 <오징어 게임> 시즌3 5화 초반에 나오는 약 2분가량의 프론트맨의 전사 장면은 더없이 반가웠다. 2015년, ‘오징어 게임’에 참가한 황인호는 지금의 성기훈처럼, 당시의 프론트맨(오일남)에게 칼을 받아 들곤 참가자들을 난도질해 우승자로 등극했다. 황인호는 <오징어 게임>에서 거의 유일하게, 입체적이고 다면적인 캐릭터였다. 짧은 2분가량의 신에서도, 황인호의 복합적인 면모가 드러난다. 그가 사이코패스처럼 냉정하고 굳건하게 다른 참가자들을 죽였다면, 감흥이 덜했을 것이다. 2015년 오징어 게임에 참가한 황인호는 처음부터 사람을 죽이려고 이 게임장에 들어오지는 않았다는 듯, 스스로가 사람을 죽일 수 있을지 몰랐다는 듯, 그러나 우승을 위해 인간다움을 포기할 각오를 한 듯, 불안한 표정과 떨리는 손으로 칼을 쥔 채 경쟁자들을 난도질한다. 황인호는 2015년 오징어 게임에 어떤 마음으로 임했고, 매 게임 어떻게 살아남았을까. 2분의 장면은 너무나도 감질나기에, 그의 전사가 <오징어 게임>의 프리퀄로 나왔으면 좋겠다.

추아영_성기훈이 끝내 인호에게 받은 칼로 참가자들을 죽이지 않는 순간
<오징어 게임 시즌3>에서 성기훈(이정재)이 내린 여러 선택 중 가장 그 다운 선택을 고르라면 두말없이 이 순간을 말하고 싶다. 성기훈은 프론트맨 인호(이병헌)에게서 받은 칼로 다른 참가자들을 죽이면 게임을 중단할 수 있지만, 끝내 죽이지 않는 선택을 내린다. 기훈은 게임을 중단하기 위해 혁명을 일으키고, 그로 인해 친구 정배(이서환)마저 잃었기에, 또 준희가 부탁한 아이를 지켜주기 위해 망설이지만 끝내 칼을 거둔다. 기훈의 선택은 인호가 시스템에 굴복해 프론트맨이 된 길과 극명하게 대조된다. 인호는 상처받은 자가 또 다른 상처를 남기는 악순환을 보여줬다면, 기훈은 끝까지 인간의 존엄을 지키며 게임의 잔혹함을 뒤흔든다. 이 장면은 시즌3의 절망 속에서도 인간성의 마지막 불씨가 꺼지지 않았음을 웅변한다. 기훈의 선택은 단순한 선택을 넘어 <오징어 게임> 시리즈 전체를 관통하는 ‘인간다움’, 인간성이 무엇인지 보여주는 가장 강렬한 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