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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생충〉의 명예로운 죽음? 틱톡 챌린지 도전한 스코세이지옹의 선택

성찬얼기자

짧고 굵게. 1분 내외의 짧은 영상 스타일 '숏폼'은 등장 이래 따가운 시선을 받아왔다. 숏폼 특유의 자극적인 소재나 빠른 리듬감은 무의식적으로 중독될 수 있기 때문. 하지만 이번만큼은 숏폼을 미워하지 말자. 숏폼이기에 볼 수 있는 진기한 광경을 만날 수 있으니까. 이제는 '옹'이란 명칭을 붙여도 이상하지 않은 80세의 거장 마틴 스코세이지가 숏폼으로 짧고 굵은 영화 이상형 월드컵을 올렸다. 고개를 좌우로 기웃기웃하는 거장의 귀여운 모습과 함께 그가 선택한 영화를 만나보자.


마틴 스콜세이지옹의 딸 프란체스카 스코세이지는 자신의 계정으로 마틴 스코세이지의 영상을 종종 게시하곤 했다. 반려견 '오스카'를 소개하며 연기를 지도하는 숏폼, 비속어 맞추기에 도전하는 숏폼 등등 스코세이지 감독의 일상을 공유해 많은 영화팬들에게 '시네마'스러운 감동을 선사하기도. 이번에 간이 이상형 월드컵 또한 프란체스카가 아빠와 함께 한 영상을 공유한 것.

아직은 신기술이 익숙하지 않은 스코세이지옹
아직은 신기술이 익숙하지 않은 스코세이지옹

 

〈석양의 무법자〉
〈석양의 무법자〉
〈버드맨〉
〈버드맨〉

 

먼저 첫 대진은 세르지오 레오네 감독의 <석양의 무법자>와 알렉한드로 곤잘레스 이냐리투 감독의 <버드맨>. 두 영화 모두 영화사에 남을 걸작이면서 동시에 완전히 다른 스타일이다. <석양의 무법자>는 막대한 현금이 파묻힌 곳으로 가기 위해 서로 쫓고 쫓기는 '좋은 놈 나쁜 놈 못생긴 놈'의 이야기를 그린 웨스턴 영화로, 흔히 말하는 멕시칸 스탠드오프 구도를 가장 잘 보여준 영화다.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연기한 블론디의 '달러 삼부작' 마지막 편으로 영화가 나온 지 50년이 지난 지금도 회자되는 명작. 반면 <버드맨>은 한때 최고의 스타였으나 이제는 퇴물 취급받는 한 배우의 재기를 롱테이크 연출로 그렸다. 슈퍼히어로 연기를 해서 스타가 됐다가 골방 노인 신세를 받는 주인공과 이 캐릭터를 연기한 마이클 키튼의 실제 삶이 겹쳐지는 요소가 특히 인상적이다. 스코세이지옹의 나이를 생각하면 전자를 선택할 것 같은데, 의외로 <버드맨>을 선택했다. 한 번에 선택이 안되자 고개를 까닥까닥하는 스코세이지옹의 모습이 킬포.


〈원더 우먼〉
〈원더 우먼〉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

 

두 번째 대진은 <원더 우먼>과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이하 <원어할>). <원더 우먼>은 DC코믹스의 인기 캐릭터 원더 우먼을 실사화한 작품으로, 해당 캐릭터를 연기한 갤 가돗의 대표작이다. 린다 카터의 <원더 우먼> 이후 시대의 흐름 등 여러 사유로 좀처럼 대중의 주목을 받지 못한 원더 우먼을 다시 대중들에게 각인시킨 영화. <원어할>은 할리우드에서 일어난 가장 충격적인 사건 '폴란스키 가 살인사건'과 피해자 샤론 테이트의 이야기를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이 픽션을 섞어 승화한 영화. 영화는 연기력을 인정받고 싶은 액션 스타 릭 달튼과 그의 전속 스턴트 배우 클리프 부스, 두 가상 캐릭터를 내세원 1969년 할리우드를 재구성한다. 사실 이 대진은 아무리 사람마다 호불호가 있다고 해도, 한쪽의 승리가 너무나도 확실해보인다. 스코세이지도 역시 예상대로 <원어할>을 선택했다.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를 보자마자 다급하게 선택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를 보자마자 다급하게 선택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
〈캐치 미 이프 유 캔〉
〈캐치 미 이프 유 캔〉

 

세 번째 대진은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 대 <캐치 미 이프 유 캔>. 스탠리 큐브릭과 스티븐 스필버그라는, 쟁쟁한 감독들이 즐비한 할리우드에서도 브랜드인 두 감독의 작품이다.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는 인류의 탄생부터 먼 미래까지 아우르는 구성과 무게감이 느껴지는 디테일한 연출, HAL 9000이란 희대의 캐릭터를 선보인 SF 영화다. 스탠리 큐브릭이 아서 C. 클라크와 함께 구상하고 미국 항공 우주국(NASA)의 자료까지 뒤지며 만든 고풍스러운 하드SF. 반면 <캐치 미 이프 유 캔>은 천재 사기꾼 프랭크 윌리엄 애버그네일 주니어와 그를 쫓는 FBI 요원 칼 핸래티의 기나긴 악연을 그렸다. 스필버그 감독의 영화 중엔 특출난 편은 아닌데, 위트 있는 연출과 가족애를 바라보는 따듯한 시선이 묘하게 여운을 남긴다. 하지만 아무래도 상대가 큐브릭의 최고작 중 하나라서 승산은 거의 없는 편. 실제로 스코세이지도 잘못 선택할까 황급히 고개를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 쪽으로 돌리는 모습을 보였다.


〈미스틱 리버〉
〈미스틱 리버〉
〈양들의 침묵〉
〈양들의 침묵〉

 

네 번째 대진은 <미스틱 리버>와 <양들의 침묵>. 두 영화 모두 어두운 과거를 묻어둔 채 살다가 의문의 살인 사건에 엮이는 인물들을 그리나 그 결은 완전히 상이하다. 클린트 이스트우드 감독의 <미스틱 리버>는 어린 시절 친구였으나 모종의 사건으로 갈라선 세 남자가 사건의 중심에 서있고, <양들의 침묵>은 피부 가죽을 채취하는 변태 살인마를 추적하는 FBI 요원 클라리스 스털링이 주인공이다. <양들의 침묵>이 장르적 재미와 캐릭터 묘사에서 우세라면, <미스틱 리버>는 (이스트우드가 연출한 후기작이 그렇듯) 회한의 정서를 극한으로 짚어내는 점이 훌륭하다. 마틴 스코세이지는 <양들의 침묵>의 손을 들어줬다.


 

〈겨울왕국〉
〈겨울왕국〉
〈인사이드 아웃〉
〈인사이드 아웃〉

 

다섯 번째는 할리우드 애니메이션계를 사실상 양분하고 있는 디즈니와 픽사의 대표작이다. <겨울왕국>은 얼음을 다루는 초능력을 가진 엘사와 그의 동생 안나 자매를 주인공으로 '디즈니 프린세스'의 도약을 이뤘다. 실제로 21세기 최고의 히트작 중 하나로 한국에서 유일하게 천만 관객을 동원한(그리고 그 기록을 속편도 차지한) 애니메이션이다. <인사이드 아웃>은 11살 소녀 마음에 존재하는 다섯 가지 감정과 추억을 형상화한 애니메이션. 작품을 발표할 때마다 호평과 흥행 두 마리 토끼 모두 잡는 픽사이지만, 이 작품은 특히 비평적 호평을 받아 <토이 스토리 3> 이후 다소 부진한 픽사의 궤도를 다시 상승세로 돌렸다. 애니메이션 팬이라면 두 영화 중 하나를 선택하기 어려울 텐데, 스코세이지는 <인사이드 아웃>을 선택했다.


〈라따뚜이〉
〈라따뚜이〉
〈기생충〉
〈기생충〉

 

이어진 대진에서도 픽사가 나타났다. 이번 주인공은 <라따뚜이>와 우리 '봉보로봉봉봉'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 <라따뚜이>는 요리에 재능이 있는 쥐 레미와 전설적인 요리사의 아들이지만 요리 실력은 끔찍한 링귀니가 합심하는 과정을 그린다. 쥐가 사람 대신 요리한다는 재치 있는 설정과 '누구라도 예술가가 될 수 있다'는 작품의 주제가 시너지를 내 호평도 받고 흥행도 성공했다. <기생충>은 구성원 모두 백수인 기택 가족이 박사장 가족에게 위장취업하며 벌어지는 일을 다루는데, 봉준호 감독의 유머와 영화에 녹아든 비판 의식이 전 세계를 흔들었다.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과 아카데미 작품상 등을 석권해 이른바 'K-콘텐츠' 부흥기의 선봉장 역할을 했다. 봉준호 감독이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마틴 스코세이지에게 헌사를 바친 만큼 스코세이지에게도 귀한 추억을 안겨준 영화일 터. 물론 작품이 훌륭한 것이 바탕이 됐으므로, <기생충>이 승자로 살아남았다.


거장도 박빙의 승부(?)에 다소 버퍼링이 걸리고 만다.
거장도 박빙의 승부(?)에 다소 버퍼링이 걸리고 만다.

 

〈어둠 속의 댄서〉
〈어둠 속의 댄서〉
〈트와일라잇〉
〈트와일라잇〉

 

이 틱톡 챌린지 영상 통틀어 가장 기이한 대진 <어둠 속의 댄서>와 <트와일라잇>. 앞선 대진에서 거침없이 선택하던 스코세이지도 잠시 멈칫한다. 라스 폰 트리에 감독의 <어둠 속의 댄서>는 불의의 사고로 살인 누명을 쓴 셀마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뮤지컬. 뮤지컬이라고 하지만 할리우드 뮤지컬처럼 화려한 것이 아닌, 공장이나 자연 같은 현실의 사운드를 가공해 만든 '반 아메리칸드림 뮤지컬'에 가깝다. <트와일라잇>은 평범한 고등학생 벨라와 인간으로 위장한 뱀파이어 에드워드의 로맨스 영화. 소설 원작 영화로 수많은 여심을 울린 로맨스로 유명하다. 다만 객관적으로 영화적 완성도는 비교하기가 어려운 대진. 스코세이지도 어렵지 않게 <어둠 속의 댄서>를 올린다.


〈사랑도 통역이 되나요?〉
〈사랑도 통역이 되나요?〉
〈판의 미로 - 오필리아와 세 개의 열쇠〉
〈판의 미로 - 오필리아와 세 개의 열쇠〉

 

마지막 대결은 <사랑도 통역이 되나요?>와 <판의 미로 - 오필리아와 세 개의 열쇠>(이하 <판의 미로>). 소피아 코폴라 감독의 <사랑도 리콜이 되나요?>는 도쿄에서 마주친 남녀가 서로의 외로움을 공감하는 과정을 그린다. 빌 머레이와 스칼렛 요한슨이 도무지 상상하기 힘든 기묘한 케미스트리를 내며 영화의 깊이를 더했고, 소피아 코폴라로 데뷔작 <처녀 자살 소동>에 이어 연출력을 발휘해 대세 감독에 합류했다. <판의 미로>는 기예르모 델 토로의 잔혹 동화로, 스페인 내전 직후를 배경으로 초현실적인 존재에게 지하 왕국 공주라는 사실을 전해 들은 소녀가 겪는 이야기다. 동화적인 미술과 이에 대비되는 잔인한 현실을 대치해 몽환적이고도 씁쓸한 판타지를 들려준다. 서로 다른 지점에서 많은 사랑을 받은 영화였기에 취향 따라 갈릴 것으로 보이는데, 스코세이지의 픽은 <판의 미로>.


이후 대진은 빠르게 훑어보겠다. <버드맨>과 <원어할>은 <버드맨>의 승리로,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와 <양들의 침묵>은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의 승리로 끝났다. 한국의 자랑 <기생충>은 픽사의 대표작이자 최고작 <인사이드 아웃>을 이기고 올라갔다. 암울한 현실을 다른 시선에서 판타지처럼 승화한 <어둠 속의 댄서>와 <판의 미로> 중 <어둠 속의 댄서>가 스코세이지의 선택을 받았다.

쿨하게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를 선택한 스코세이지.
쿨하게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를 선택한 스코세이지.

 

<버드맨>은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라는 강적을 만나 4강전에서 물러났다. <기생충>은 <어둠 속의 댄서>를 누르고 결승에 올랐다.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와 <기생충>. 인간과 우주를 아우르는 (제목처럼) 대서사시 SF와 자본주의 사회의 폐부를 지역적인 색채와 전 세계에 통하는 재미로 승화한 블랙코미디. 한국인 입장에서 <기생충>의 승리를 살짝 기대하게 되지만, 스코세이지는 가차 없이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를 선택한다. 하기야 큐브릭 감독의 최고작과 맞대결이었으니, 충분히 명예로운 패배라고 할 수 있다.


씨네플레이 성찬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