촬영현장의 마틴 스코세이지(사진 오른쪽)

※ 영화는 <플라워 킬링 문>, 논픽션 원작은 「킬러스 오브 플라워 문」으로 따로 표기합니다. 다만 국내 개봉명 <플라워 킬링 문>이 아주 근거 없는 제목 붙이기는 아닙니다. 5월에는 자주달개비, 노랑 데이지처럼 키가 더 큰 식물들의 성장에 의해 그보다 작은 꽃들이 가려져 생육에 필요한 빛을 받지 못하고 물을 빼앗겨 죽는데, 이를 두고 오세이지 족이 ‘꽃을 죽이는 달’(flower-killing moon)의 시기라고 부른다는 구절이 원문에 있습니다. 해당 시기가 아닌 살인자들의 행각에 집중하는 영화의 성격상 여전히 어색한 번안 제목이긴 합니다만.

뉴욕에서 텔레비전으로 사트야지트 레이의 <길의 노래>(1955)를 봤을 때 전 “잠깐! 다른 영화의 배경에서 자주 보던 사람들이잖아. 무슨 차이지?” 했습니다. 다른 점은 영화가 그들 스스로에 의해 만들어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나는 새로운 문화, 완전히 새로운 삶, 그리고 그 모든 것의 총체성을 접한 것이었습니다. (중략) 그 시점부터 영화는 나에게 다른 세계의 문화를 열어주었습니다. (중략) 오세이지의 이야기를 찾는 것은 세계의 거의 모든 원주민이 이용당했거나 적어도 다른 문화권의 압도적인 문명과 갈등을 겪는 양상을 대표하는 것이었습니다. 식민화되거나 완전히 추방된 사람들이지요.

마틴 스코세이지

마틴 스코세이지 하면 걸어 다니는 영화 역사의 백과사전과도 같은 지독한 시네필이기도 하지만, 창작자로서 그 영감의 열쇠는 문학으로부터 자주 얻어지곤 했다. 예시를 들자면 <그리스도 최후의 유혹>(1988)은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동명 소설, <좋은 친구들>(1990)는 니콜라스 필레지의 「조직원」, <사일런스>(2017)는 엔도 슈사쿠의 「침묵」, <아이리시맨>(2019)은 찰스 브랜드의 논픽션 「자네가 페인트공을 한다고 들었네만」(국내는 영화 제목으로 발간됐다)를 기반으로 만들어진 바 있다. 심지어 그는 스필버그의 권유로 토머스 케넬리의 소설 「쉰들러의 방주」를 토대 삼아 스티브 자일리언과 함께 시나리오 작업을 준비하다가 도중에 하차, 대신 <케이프 피어>(1991)의 판권을 밀실에서의 딜로 건네받고 스필버그가 직접 <쉰들러 리스트>(1993)를 연출하게 된 일도 있었다.

<카지노>(1995)의 경우는 조금 애매한데 스코세이지는 마치 스탠리 큐브릭이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1968)를 만들 때, 아서 클라크의 소설을 영화와 동시에 추진한 것과 같은 방식으로, 필레지와 손잡고 그가 집필한 내용을 토대로 영화를 촬영하면서 개봉 즈음에 소설이 같이 출간되기를 바랐다. 그러나 필레지가 실제 갱들을 취재하고 소설을 쓰는 동안, 영화가 먼저 완성되어 영화가 원작보다 먼저 나오는 웃지 못할 상황이 되어버렸다.


80세를 넘긴 노령의 그는 평생을 두고 축적한 독서의 편력을 바탕으로 틈틈이 또 다른 영화의 소재를 탐색하고 있었다. 그러던 그의 시야에 들러온 것이 바로 논픽션 작가 데이비드 그린이 10년에 걸친 조사 끝에 2017년 출간한 「킬러스 오브 플라워 문」(Killers of the Flower Moon)이었다. 평소 실화 관련 저작을 흥미롭게 탐독하며 방대한 영역에서 소재를 찾던 논픽션 장르의 애독자로서 이 책이 그의 레이더망에 걸리는 건 시간문제였을 것이다.(여담으로 스코세이지와 디카프리오는 그린의 작업에 지대한 관심을 기울여 남미 끝자락에서 있었던 영국전함 HMS 웨이저 호에서의 선상 반란을 다룬 신간 「웨이저」(The Wager) 또한 차기작의 소재로 삼고자 영화화 판권을 미리 획득했다.) <사일런스>를 마친 직후, 바로 <아이리시맨>을 논의하기 위해 로스앤젤레스로 날아와 벨에어 호텔에 머물러있던 스코세이지는 디카프리오의 매니저이자 프로듀서인 릭 욘으로부터 막 출간된 따끈한 신간을 건네받는다.

<플라워 킬링 문>

오클라호마로 이주한 오세이지 족의 땅에서 석유가 산출되자, 돈방석에 앉은 원주민들. 이들의 토지 이권과 부를 빼앗고자 유산 상속자를 표적으로 현지 백인 커뮤니티가 치밀하게 공모해 벌인 조직적 연쇄살인은 1921년에서 1926년까지 이어졌다. 사건은 29세의 나이로 수사국의 국장이 된 에드거 후버가 적극적으로 해결에 나서면서 진상이 드러나기 시작한다. 이때 후버가 세운 공로가 수사국을 오늘날의 연방수사국, 즉 FBI로 바꾸고 초대 국장 자리에 취임하는 단초가 되었다.(공교롭게도 주연인 디카프리오는 후버의 전기 영화인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제이. 에드가>(2011)에서 후버를 연기한 바 있고, 스코세이지의 이전 작품 중 하나인 <셔터 아일랜드>(2010)에서도 시대 배경상, 대사에 후버의 존재가 간접적으로 언급된다)

엄밀히 따지자면 <플라워 킬링 문>이 오세이지 힐즈 사건을 다룬 첫 영화는 아니었다. 무성영화 시절에 제임스 영 E디어(James Young Deer)가 감독한 <오세이지 힐즈의 비극>(1926)이 이 사건을 극화한 바 있었고, 제임스 스튜어트 주연으로 한 FBI 요원의 경력을 따라가는 무용담 격인 영화 <FBI 스토리>(1959 : 이 영화는 드라마 <트윈 픽스>(1990~91) 시리즈에서 FBI 요원 데일 쿠퍼가 무척 애정하는 영화로 설정되어 작중에 포스터가 등장한다)가 이 사건의 일부를 극적으로 묘사한 바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백인 중심의 인종차별주의가 주류 사회의 상식이었던 시절에 이 사건을 다루는 방식과 깊이는 극히 제한적인데 그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이미 <갱스 오브 뉴욕>(2002)을 통해 미국 역사 초창기의 치부를 적나라하게 드러낸 스코세이지의 입장에서 이 사건의 재조명은 미국이란 국가상에 대한 비판적 해석이라는 그의 작가의식을 펼치기에 좋은 재료이기도 했다.


우리는 얼마나 진실할 수 있고 여전히 진실성과 존경심, 존엄성을 갖고 최선을 다해 진실을 정직하게 다룰 수 있습니까? 이야기를 읽었을 때, 전 이 이야기가 오세이지의 문화에 참여하고 실제로 문화적 요소, 의식 및 영적인 순간을 배치해야만 비로소 다룰 수 있다는 점을 알게 되었습니다. (중략) 첫 만남은 스탠딩 베어 추장과 그의 일행이었는데, 기대했던 것과는 많이 달랐습니다. 그들은 당연히 조심스러웠습니다. 나는 가능한 한 정직하고 진실하게 그들을 대하려고 노력할 것이라고 설명해야 했습니다. 우리는 피해자나 술 취한 인디언이라는 진부한 표현의 함정에 빠지지 않고, 가능한 한 솔직하게 이야기를 전하려고 했습니다.

마틴 스코세이지

책을 읽으면서 스코세이지는 점점 텍사스 레인저와 오세이지 족의 이야기에 빨려들 듯 매혹되었다. 심지어 <아이리시맨>을 제쳐두고 <플라워 킬링 문>을 먼저 해보자고 로버트 드 니로에게 진심으로 제안할 정도였다. 이 제안에 드 니로는 “마티, 이대로라면 디에이징 작업을 더 해야 해. 2년 뒤면 더더욱 힘들어질 거야”라 난감해하며 스코세이지를 설득했다. 의외의 사실이지만 아메리카 원주민의 역사에 대한 관심은 서부극에 대한 사랑과 더불어 스콜세지 본인의 경력 초창기부터 오랫동안 마음속에 자리 잡아온 터였다. 회고에 따르면 그는 1974년에 사우스다코타의 수우족 거주지인 파인 리지 보호구역에 여행 간 며칠 동안 그곳에서 벌어지는 인종차별적 행태에 충격을 받았고, 때문에 <성난 황소>(1980)의 연출로 넘어가기 전에 미 육군 기병대가 벌인 1890년 운디드니에서의 인디언 학살 사건을 영화화할 것을 생각해보기도 했다고 한다. <아이리시맨>을 촬영하는 동안에도 스코세이지는 짬을 내어 <플라워 킬링 문>을 위한 여러 가지 조사와 시나리오 준비 작업을 꾸준히 진행해나갔다.

<플라워 킬링 문>

그 말고도 ‘킬러스 오브 플라워 문’의 영화화 판권에 관심을 보인 이들은 의외로 여럿 있었다. 대표적으로 배우이지만 한편으로는 <굿나잇 앤 굿럭>(2005)과 <킹메이커>(2011)로 연출에도 일가견이 있음을 보여준 조지 클루니, 심지어 J.J. 에이브람스도 차기작으로 오세이지 인디언 연쇄살인 사건을 다룰 걸 진지하게 고려하고 있던 판이었다. 그런데 ‘산 넘어 산’이라고 경쟁자들을 제치고 영화화 판권을 확보한 것까지는 다행히 순조롭게 진행되었지만 본격적인 문제는 그다음부터였다. ‘아 다르고 어 다르다’는 말처럼 하나의 사건을 두고 어떠한 장르적 방식, 어떠한 표현을 취해야 할지를 쉽게 결정 내리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원주민들이 이 수준에서 자신의 이야기를 전달할 수 있다는 것은 역사적입니다. 제가 아는 한 그런 일은 한 번도 일어난 적이 없습니다. (중략) 우리가 수백 년 동안 배신당했다는 사실을 아는 누군가가 필요했습니다. 그는 신뢰의 배신에 관한 이야기를 썼습니다

오세이지 추장 스탠딩 베어


분명 데이비드 그린의 논픽션 원전은 훌륭한 영화화 소재였지만, 이 책에는 ‘FBI의 탄생‘(The Birth of the FBI)이란 부제가 붙어있었고, 따라서 작가의 초점도 수사기관의 조사 과정에 관계된 내용에 상당 부분을 할애하고 있었다. 그런 탓에 <포레스트 검프>(1994)의 각본으로 오스카상을 수상한 바 있던 에릭 로스를 기용해 공동으로 작업하던 초기 시나리오 역시 완성된 지금의 영화와는 방향성이 사뭇 달랐다. 애초의 구상에서 스콜세지는 (그로서는 다소 안이하게도) 영화를 사건의 미스터리한 내막을 밝혀내는 일종의 탐정 스릴러로 만들 작정이었던 것이다. 디카프리오의 초기 배역 역시 원래는 사건의 원흉인 윌리엄 킹 헤일(로버트 드 니로)의 조카 어네스트 버크하트가 아니라, 후버의 명령을 받고 수사에 착수한 요원 톰 화이트로, 사건을 추적해나가는 그의 관점에서 당시 사회의 추악한 진실이 전말과 함께 밝혀지는 전개가 될 예정이었다.(이 배역은 <아이리시맨>에도 출연했던 제시 플레먼스에게 넘어갔는데, 때문에 <놉>(2022)에서 하차한 그의 공백은 스티븐 연이 메꾸게 되었다)

<플라워 킬링 문>

이러한 초기의 구상은 드라마틱한 반전을 맞이하며 완전히 뒤집히게 된다. 영화를 준비함에 있어 현재 남아있는 오세이지 족의 후손들을 방문한 스코세이지는 그들을 만나 시간을 함께 보내면서 이들의 문화에 대해 거의 민속학자에 가까운 인류학적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더 나아가 <비열한 거리>(1973)가 애초에 그가 태어나고 자란 뉴욕 퀸즈의 리틀 이탈리아의 공간과 분위기, 가톨릭 신앙과 남부 유럽의 풍속 내지 문화에 깊숙이 연관되어 있던 것처럼, <플라워 킬링 문>에 있어서도 배경이 되는 공간과 시대상이 이질적으로 느껴지지 않으려면 오클라호마의 풍광과 오세이지 족의 삶에 그만큼 친숙해지지 않으면 안 된다는 필요성을 절감했다. 그러면서 그는 기존에 준비하던 대본이 지나치게 전형적이라는 점 역시 새삼 깨달았다. 만약 수사관 톰 화이트를 포함한 법 집행기관 중심으로 짜여진 구도를 고수한다면 이미 닳을 대로 닳은 서부극의 백인영웅주의를 반복할 수밖에 없고, 따라서 구원자 역할이라도 외부인의 관점에 매여 원주민 문화에 대한 접근과 조명이 피상적일 수밖에 없는 한계에 직면하게 될 것이었다.

<플라워 킬링 문> 로버트 드 니로(사진 왼쪽)와 디카프리오

그리고 <플라워 오브 킬링 문>의 변화에 쐐기를 박은 건 다름 아닌 주연 겸 제작자(이자 오랜 창작의 든든한 파트너)인 디카프리오였다. 에릭 로스의 첫 시나리오를 검토한 후 대본 미팅 자리에서 그는 말했다. “이 영화의 핵심이 대체 어디에 있는 건가요?” 디카프리오가 보기엔 애초에 이 이야기는 FBI가 마을을 방문하는 순간, 등장하는 모든 인물들을 만나는 순간 그들이 모두 나쁜 놈이란 걸 바로 알 수 있기에 애초에 미스터리는 성립할 수 없는 것이었다. 대신에 디카프리오가 욕심을 낸 건 어네스트 버크하트 역이었다. 그는 예상 가능한 정의의 영웅 톰 화이트보다는 (원래의 대본에 비중이 거의 없는 인물이었지만) 아내와 아이들을 사랑하는 가정적인 남편이지만 동시에 아내를 독살하고 주변인을 살해하는 데 거리낌이 없는 어네스트의 복잡다단한 면모, 도덕적 딜레마에 매력을 느끼고 있었던 것이다.

당뇨병 때문에 그녀에게 투여하는 것이 정말 인슐린인가요? 모든 진상은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는 분명히 그녀에게 해를 끼치고 있는데, 어떻게 사랑에 빠져 가족과 아이를 갖고도 그런 짓을 할 수 있을까요? 분명히 그는 삼촌인 빌에게 조종당하고 있는 것입니다. 캐릭터의 약점이죠. 그런 점에서 <사일런스>의 키치지로와 비슷하네요.

마틴 스코세이지

스코세이지는 오세이지 족의 정착촌인 그레이호스에서 250여 명이 참석하는 성대한 저녁식사 대접을 받으면서 한 여성에게서 이런 이야기를 들었던 참이었다. “어네스트와 몰리는 서로를 사랑했습니다. 그 점을 잊지 마세요. 둘은 서로 사랑했습니다.” 그런데 때마침 디카프리오가 자신이 어네스트 역을 할 것을 제안해온 것이다. 여러모로 자극받은 스콜세지는 영화의 초점을 어네스트와 몰리(릴리 글래드스턴)의 사랑 이야기 쪽으로 돌리기로 마음먹는다. 외부자가 아닌 오세이지 공동체 내부자의 관점에서 사건을 들여다보고, 누가 범죄를 저질렀는가를 점진적으로 밝히는 것이 아니라, 즉각 확인하는 정석적인 방식으로 풀어나가야 보다 인물과 세계에 긴밀한 위치에서 이야기를 다루어나갈 수 있다고 생각을 고치게 된 것이다. 문제는 이제까지 각본을 집필하면서 어네스트 버크하트라는 인물에 대해 조사한 내용이 거의 없었고, 만약 바꿀 경우 모든 걸 원점에서 다시 시작해야 한다는 점이었다. 숙고 끝에 스코세이지가 내린 결단은 실로 과감한 것이었다. 2년 동안 줄기차게 작업하고 추진해온, 영화사의 긍정적인 반응을 얻었던 기존의 각본을 완전 폐기하기로 한 것이다. 2019년 중반의 일이었다.

<플라워 킬링 문> 어네스트(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와 몰리(릴리 글래드스톤, 사진 오른쪽)


덕분에 <플라워 킬링 문>의 사전 제작에서 촬영 과정 전반에 걸쳐 제작진은 오세이지 족의 전폭적인 협력과 지원을 얻을 수 있었다. 원주민들이 미국사회에 동화되는 과정에서 많이 퇴색되긴 했지만 전통문화의 복원과 부흥이 추진되는 시점이었고, 전통의식, 아기 이름 짓기, 결혼식, 장례 풍습은 모두 추장인 스탠딩 베어를 비롯한 오세이지 관계자들의 꼼꼼한 감수를 통해 고증되었다. 몰리 역의 릴리 글래드스톤(스코세이지는 켈리 라이카트의 2016년작 <어떤 여자들>을 보고 그녀의 연기에 주목하고 있었다고 밝혔다)은 블랙피트 인디언 보호구역에서 성장한 원주민 출신이었지만 영화를 위해 새로 언어를 배우며 전통의 방식을 몸에 익혀나갔고, 이런 노력은 디카프리오와 드 니로 역시 마찬가지였다. 영화에서 이들이 펼치는 연기나 세트와 의상 등 미장센 전반에 걸친 인류학적 수준의 사실성은 괜히 얻어진 것이 아니다.

이 뒤늦은 결정은 파라마운트 영화사의 반발을 사기 충분했고 실제로 그랬다. 기존의 각본은 알 카포네를 잡아넣은 수사관 엘리엇 네스의 활약상을 그린 <언터처블>(1987)처럼 미국적인 이상과 가치를 담은, 따라서 충분히 상업성 있는 이야기로 받아들여졌다. 그런데 정반대의 방향으로 각본의 방향을 틀어버리자 프로젝트의 개발 기간이 늘어지고, 제작비의 규모 역시 예상하던 걸 훨씬 넘어설 것이 확실시되었다. 엎친 데다 덮친 격으로 2019년 여름에는 들어가기로 했던 촬영 일정은 코로나19 유행의 타격을 받아 무기한 연기되는 판이었고, 갈아엎은 새 대본은 아직 나오지도 않았다. 손을 떼기로 한 파라마운트 대신 좌초 위기의 <플라워 킬링 문>을 구원한 것은 애플 TV였다. 스코세이지는 넷플릭스와 애플 양쪽에 예산과 배급 지원을 요청했고, 2억이 넘는 예산에 부담감을 안고 있던 파라마운트는 다행히 협력할 파트너십의 참여에는 열려있었다. (첨언하자면 <아이리시맨> 또한 파라마운트가 배급하려 했다가 포기하면서 넷플릭스로 넘어갔다.)

<플라워 킬링 문>

그리하여 2021년 4월 19일, <플라워 킬링 문>은 오클라호마의 오세이지 족 거주구역에서 촬영을 개시했다. 언론에 배포한 보도자료에서 스코세이지는 “이 사건이 일어난 땅에서 이 이야기를 전할 수 있다는 것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중요하고 결정적"이며 “이 이야기를 화면에 생생하게 전달해, 결코 잊지 말아야 할 미국 역사의 한 시대를 불멸로 만들기 위해 현지 출연진 및 제작진과 협력하게 되어 매우 기쁩니다”라며 온갖 난관을 거친 끝에, 마침내 역사적인 대작의 연출에 임하는 감격에 찬 마음을 밝혔다. 그리하여 장장 206분에 달하는 러닝타임의 대하서사극으로 완성된 <플라워 킬링 문>은 2023년 5월 20일, 칸 영화제에서 월드 프리미어로 공개되어 상영 종료 후 9분간의 기립박수와 더불어 쏟아지는 평단의 찬사를 받으며 관록의 노장 스코세이지의 귀환을 알렸다.


<좋은 친구들>이 <대부>(1972)와 같은 미화된 범죄 귀족 신화에 면역력을 키우기 위해 뿌리는 일종의 백신(재미있는 점은 코폴라는 한때 <대부 2>(1994)의 감독으로 스콜세지를 파라마운트에 추천했었다는 사실이다)이었고, <갱스 오브 뉴욕> 또한 (에드워드 즈윅의 <영광의 깃발>(1992)처럼) 남북전쟁기의 미국을 국가 통합과 노예제 타파라는 휴머니즘 서사로 포장하는 경향에 대한 반발이었듯, <플라워 킬링 문>은 미국의 정체성이자 국가 이데올로기의 일부로 뿌리박힌 서부극의 환상에 정색하고 메스를 들이미는 수정주의적 해체의 작업이다. 사실상 그의 개인사적 홈 무비나 다름없는 <비열한 거리>의 배경 속 이탈리아 이민자들의 처지가 본래의 터전으로 뿌리 뽑혀 타지로 흘러들어왔고, 때문에 정체성의 혼란을 겪는 이질적 존재들이듯, 오세이지 족 또한 고유의 문화를 잃고 차별과 억압의 대상이 된 타자라는 점에서는 본질적으로 동일한 위상을 갖는다.

<플라워 킬링 문>

다시 말해 배경과 인종은 달라졌지만 <플라워 킬링 문>은 이탈리아계 이민자 2세 출신으로서 낯선 외부자의 입장에 서서 미국 사회에 비판적인 시선을 견지했던 스코세이지의 세계에 가장 적합한 이야기였던 셈이다. 이번 작품이 그의 필모그래피 중 으뜸이라 말하긴 망설여지지만, 그럼에도 분명한 건 감독으로서 그가 평소에 해보고 싶었을 모든 걸 여한 없이 다 해낸 영화처럼 보인다는 점이다. 이건 <수색자>(1956)가 보여주지 않았던 영역 너머로 넘어가 역사의 진실을 대면해본 양가적인 계승이자 도발적인 반역이며,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1939)의 프로덕션 스케일로 구현해본 스코세이지 버전의 <천국의 문>(1981)이라 할 영화이다. ‘갱이야말로 가장 미국적인 정체성의 근원’이라는 식의, 한 작가의 급진적이고 전복적인 해석에 2억 달러를 쏟아부을 여지가 있다는 사실은, 스코세이지 본인이 그토록 근심하는 영화의 미래가 아직 그리 암담하기만 한 것은 아니라는 희망을 품게 만든다.


조재휘 영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