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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이 세상을 망쳐버린 아버지 세대, 그리고 그 세상에 살고 있는 우리 세대"에 대한 이야기 〈빅슬립〉 김태훈 감독

〈빅슬립〉 김태훈 감독 인터뷰

성찬얼기자
〈빅슬립〉 포스터. 사진 제공=찬란
〈빅슬립〉 포스터. 사진 제공=찬란

생판 모르는 남을 내 집에 들이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다. 이웃이라는 개념마저 낡아 어색해진 요즘 같은 현실엔 더욱이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일 터. 그런데 여기엔 편하게 잠이라도 잘 자라고, 그 모르는 남을 집에 불러들인 이가 있다. 아무런 조건도, 목적도 없이 말이다. “검은 머리 짐승은…” 옛말부터 떠오르는 내가 부끄러워지면서도, 이상한 생각일까 되묻게 된다.

영화 <빅슬립>의 기영(김영성)은 폭력을 행사하는 아빠를 피해 매일 밤 길거리를 헤매는 가출 청소년 길호(최준우)를 기꺼이 자신의 집으로 받아준다. 기영은 길호에게 “야, 너 열일곱 살이면, 네 인생 네가 살면 되는 거지.”라면서, 우선은 자신의 집에서 함께 지내며 앞으로 살 방법을 찾아보라고 말한다. 열일곱 길호와 어딘가 까칠한 기영은 조금씩 서로에게 마음이 열리는가 싶다가도 서로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는 이상한 동거인이 된다. 물론 영화는 두 인물의 호의와 실수가 뒤섞이며, 오해와 갈등이 결국 둘의 우정을 위태롭게 하기도 하면서 예측 불가한 방향으로 나아간다.

​<빅슬립>은 단순히 가출 청소년의 비행과 사회의 시선, 어른의 성찰에 대한 영화가 아니다. 오늘 밤도 아무 일 없이 단잠이라도 자고 싶은 청소년들이 아직도 존재하고, 조건 없이 그들에게 손을 내밀어 주는 어른들도 여전히 많다는, 오랫동안 그런 세상을 잊고 지내왔던 우리들에게 보여주는 섬세한 세상이다.

​작년 제27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올해의 배우상’, ‘한국영화감독조합상- 메가박스상’, ‘오로라미디어상’ 등 3관왕을 차지하며 영화의 존재감을 알린 <빅슬립>이 오는 22일 개봉을 앞두고 있다. “수많은 상처 받은 아이들과 아무런 대가도 없이 기꺼이 그들을 안아 준 어른들을 위해 만들었다”는, 그 쉽사리 짐작하기 힘든 이야기를 듣기 위해 <빅슬립>의 김태훈 감독을 만나 영화에 대해 물었다.


 

〈빅슬립〉 포스터. 사진 제공=찬란
〈빅슬립〉 김태훈 감독. 사진 제공=찬란

실제로 학교 밖 청소년들과 오래동안 만나온 걸로 알고 있습니다. <빅슬립>을 기획하고 제작하게 된 배경이 궁금합니다.

​2010년도에 제가 수업을 처음 시작하고 아이들을 만나게 됐어요. 그때는 제 고향인 영주에서 동네 아이들 모아놓고 무료 수업으로 시작했었어요. 맨땅에 헤딩하듯이 아이들에게 “내가 영화 찍는 거 알려줄게” 이러면서요. 근데 그 당시에 만났던 한 아이가 수업시간에는 뒷자리에서 맨날 잠만 자는 거예요. 저도 수업이란 걸 처음 해 보니까 수업이 재미없나? 선생님이란 직업이 나한테 안 어울리나? 이런 고민을 하다가 그 아이를 불러서 왜 잠만 자느냐 물어봤더니, 아이가 하는 말이 “술에 취한 아버지 때문에 잠 못 자고 계속 길거리를 헤매다가 밤 샜다고 미안하다”고 하는 거예요. 그 얘기를 딱 들으니까 제가 지금 수업을 하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제가 어쭙잖게 수업을 하는 것보다 아이가 여기 와서 그저 잘 자고, 간식이라도 먹여서 보내는 게 더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 아이를 안 깨웠어요.

​시간이 지나고 매 년 더 많은 아이들을 만나면서도, 나중에는 그 아이가 잊힐 만도 한데 계속 마음에 남는 거예요. 생각해보니 저도 어린 시절에 그런 시기를 보냈던 것 같기도 하고, 그러다 보니까 계속 마음이 겹치더라고요. 그래서 그 아이에 관한 이야기를 한번 해보고 싶다, 그저 영화를 빌려서요. 딴 거는 내가 해줄 수 있는 게 없으니까, 영화 안에서라도 좀 깊이 잘 수 있는 그런 선물을 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시나리오를 쓰게 됐어요. 학교 밖 청소년, 가출 청소년, 소년원에 있던 친구들. 굉장히 오랫동안 그런 친구들을 만나다 보니까, 그 인상들이 계속 제 안에서 맴돌다가 이제 하나의 어떤 이야기가 된 것 같아요.

영화 오프닝에서 헤드 랜턴을 이마에 달고 거리를 떠도는 아이들의 이미지가 인상적이었어요.

​시나리오를 완성하고서는 사실 그 헤드 랜턴 장면이 없었어요. 근데 촬영 한 달 남기고 오프닝에 대한 아이디어가 불현듯 떠오르더라고요. 제가 라이트 페인팅이라는 이름으로 아이들과 수업을 많이 했었는데요. 가출 청소년들이나 이런 아이들이 이태원 언덕 위 놀이터 같은 곳에 모인다는 얘기를 듣고서 진짜 테이블 하나 달랑 들고 가서 펼쳐놓고 수업을 한 적이 있어요. 랜턴 몇 개랑 카메라 가지고 가서, 지나가는 아이들 붙잡아서 랜턴 불빛으로 그림을 그리면 제가 그걸 카메라 장노출로 찍는 거예요. 그러면 랜턴 불빛이 사진에 움직이는 대로 그림처럼 잔상이 남거든요. 아주 단순한 방법으로 아이들과 장난치며 재미있게 카메라의 원리를 알려주는 수업인거죠.

​근데 그걸 하면서 제가 진짜 이상한 감정을 느꼈어요. 나는 어둠 속에 있는 아이들을 만나러 왔는데, 랜턴을 쥐어줬던 아이들이 빛이 되어버린 거잖아요. 저한테 아이들이 헤드 랜턴으로 빛을 비추고, 카메라 뒤에 제가 있는 게 너무 기분이 이상했어요. 당시 저에게 아이들이란 그저 어두운 이미지, 그러니까 이제 밖에서 헤매는 아이들이 참 어둡고 힘들다. 이게 처음의 느낌이었는데, 그 수업을 하면서 완전 뒤바뀐 거예요. 그걸 이제 계속 마음에 두고 있으니까, 영화 속에서 그 터널 안으로 돌아가는 그 아이들의 모습이 그냥 어둠 속으로 사라지는 게 아니라 빛이 그 안으로 들어가는 듯한 느낌이면 좋겠다. 나중에 그 빛이 이렇게 파동이 되는 장면도 아이들이 어디에선가 제게 계속 신호를 보내고 있다는, 그런 느낌처럼 다가왔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서 시나리오를 고쳐서 찍은 거죠.


 

〈빅슬립〉 스터. 사진 제공=찬란
〈빅슬립〉 스틸컷. 사진 제공=찬란

공장 노동자로 일하는 기영이라는 캐릭터는 현실감각으로는 누군가를 품어줄 수 있는 환경에 있지는 않아 보입니다. 마음에 여유가 없어 보이는 삶을 살면서도 잘 곳이 없는 길호를 집에 들이고요. 기영이라는 인물을 어떤 어른으로 만들고자 한건지 궁금합니다.

​길호와 기영이 거울처럼 마주보고 있다고 생각을 하면서 만들어 나갔어요. 제일 처음에는 서로가 서로의 과거이자 미래일 수 있다고 생각했고요. 기영이라는 캐릭터에 대해선 어떤 어른이어야 할까 생각하다가, 그렇다면 <빅슬립>이라는 세계에 대해서 고민이 들기 시작한 거죠. 그래서 이 세계는 뭐지? 있는 현실을 그대로 가지고 올 순 없으니 폭력적인 길호의 아버지나, 폭력적이었던 기영의 아버지가 만든 세상이면 어떨까? 그 안에서 기영이라는 인물은 아버지처럼 되고 싶지 않은 사람, 그러나 생김새도 그렇고 또 그 세계에서 자신이 습득하고 배운 것들 때문에 그걸 피할 수 없는 사람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렇게 생각하고 나니까 “아 이 친구 진짜 노력하면서 살고 있구나”라는 생각도 들고요. 아버지처럼 되기 싫어서 길호라는 아이도 집에 들이지 않았을까, 그러니까 길호도 나 같은 또는 아버지 같은 사람이 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문득 들었을 것 같아요. 그리고 그게 기영의 동력이 될 거 같은 거죠. 기영이라는 어른이 길호라는 아이에게 집착하는 것 자체가요.

길호는 거리를 떠도는 친구들과 함께 빈집을 털고, 기영은 공장에서 일하며 불법으로 산 속에 산업 폐기물을 버리는 일을 맡아서 합니다. 가출 청소년인 길호는 그럴 수도 있다 치지만, 기영에게 주어진 불의와 모순이 선뜻 이해가 가진 않아요.

​아까도 이야기한 것처럼 이 세계관에 대한 설정 자체가 아버지들이 만든 세상이고, 이제 그 끝에 폐기물이 있다고 생각을 했어요. 이 세상을 망쳐버린 아버지 세대, 그 안에 살고 있는 우리 세대를 생각했고요. 기영이라는 인물도 사실 어떻게 보면 다른 선택권이 있다기보단, 그 길을 가야만 하는 존재 그리고 그 영향 아래 자신이 짊어져야 할 것들 속에서 위태롭게 서 있는 거죠. 영화 속에서 자세히 설명을 하지는 않지만, 우리 시대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라면 그런 짐들을 다 하나씩 짊어지고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은연 중에 다들 느낄 거라고 저는 믿었어요.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이기 때문에 오히려 그 설명을 하지 않더라도, 우리도 평범하기 때문에 그냥 이해해 줄 거라는 생각으로 시나리오를 썼던 것 같아요. 그래서 어떻게 보면 길호의 이야기가 기영의 과거처럼 보이기도 하고요.

〈빅슬립〉 포스터. 사진 제공=찬란
〈빅슬립〉 스틸컷. 사진 제공=찬란

길호에겐 돌아갈 수 없는 폭력적인 아버지의 집이 있고, 기영에겐 원망 섞인 애증으로 보이는 아버지의 집이 있습니다. 가족의 집이 있으면서도 갈 수 없는 또는 불편한 집이라는 공간이예요. 영화 속 인물들에게 집이란 공간은 안정감과는 거리가 멀다고 느껴집니다.

​저는 기영과 길호가 둘 다 집이 없다고 생각했어요. 기영의 집이라고 설정된 공간은 사실 돌아가신 기영 어머니의 집인 거죠. 그래서 기영의 집은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시간이 멈춰버린 공간이고, 기영은 그 집에 자리 잡지 못하고 성장하지 못한 아이 같은 느낌을 주고 싶기도 했고요. 돌아가신 어머니가 남기고 간 화분, 베란다에 가득 찬 화분에 물을 주면서요.

그러다 기영이 변화하면서 어머니의 화분을 모두 버리고 베란다를 텅 비우게 되잖아요. 그제야 기영의 집이 된 건가요?

​마침내 기영의 집이 됐다기보다는 그런 것들이 다 떠나갔을 때 비로소 기영이라는 인물이 어른이 될 수 있는 가능성이 생겼다 이렇게 생각을 했어요. 그제야 떠났던 길호도 돌아와 긴 잠을 잘 수 있는 집이 되고요. 저는 무언가 상징적인 구조를 만들고자 한 건 아닌데, 이야기가 그렇게 자연스럽게 풀리더라고요.

〈빅슬립〉 스틸컷. 사진 제공=찬란
〈빅슬립〉 스틸컷. 사진 제공=찬란

 


「빅슬립」은 레이먼드 챈들러의 동명 소설이자 40년대 할리우드 영화로도 제작됐습니다. 챈들러의 소설의 「빅슬립」은 깊은 잠, 죽음을 의미하는데, 감독님의 <빅슬립>은 그 의미가 조금 달라요. 죽음보다는 치유에 가깝습니다. 어떻게 <빅슬립>이라는 제목을 떠올리게 되었는지 궁금합니다.

​저도 처음엔 <빅슬립>을 치유나 선물 같은 개념으로 접근했는데, 결국에는 제가 이 영화로 그동안 만났던 수많은 아이들에게 해줄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더라고요. 저는 영화가 이 인물들을 구원했다고 전혀 생각하지 않거든요. 세상은 아무것도 변한 게 없고, 그래서 이 아이들에게 <빅슬립>이란 영화가 어울리지 않다는 생각까지 했어요. 레이먼드 챈들러의 「빅슬립」이라는 소설에서는 「빅슬립」이라는 단어가 죽음을 내포하고 있고 그게 모순적인 의미가 있어 보였어요. 그래서 그 모순성을 가지고 오면 이 영화가 조금 더 확장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해보기도 했고요.

​그런데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상영할 때 관객 중에 한 분이 영화를 보고서 “왜 <빅슬립>인지 고민을 해봤는데, 사회적인 죽음을 뜻하지 않을까요?”라고 저한테 말씀해 주셨어요. 소설 속 죽음이 사실 영화 속에서도 죽음을 의미한다고요. 영화는 삶에 지친 두 인물을 잠으로 끌고 가지만, 이 사회는 죽음으로 내몰고 있지 않나 그런 해석을 해 주시더라고요.

〈명희〉 스틸컷. 사진 제공=김태훈 감독
〈명희〉 스틸컷. 사진 제공=김태훈 감독

감독님이 이전에 연출하셨던 단편영화 <명희>(2014)는 탈북 여성에 대한 이야기지만 기존의 탈북민 소재의 영화와는 다르게 소수자 대상화를 비틀면서 영화제에서 화제작이었던 걸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빅슬립>에 등장하는 캐릭터들도 사실 존재하지만, 여전히 사회 바깥으로 비켜나 있는 인물들이에요.

*영화 <명희>는 2014 미쟝센 단편영화제 비정성시 부문, 2014년 제19회 인디포럼 폐막작으로 선정된 바 있다.

​명희라는 친구도 사실은 수업으로 만난 거예요. 혹시 새터민들하고 수업을 한번 할 수 있냐는 제안을 해주셔가지고요. 그때는 저도 탈북자 분들을 만나본 적이 한 번도 없었어요. 그럼 제가 자신은 없는데 가서 밥이라도 한번 먹어보겠다 해서 만났는데, 사람들이 너무 좋더라고요. 일주일에 두 번 꼴로 만나면서 매일 수업은 안 하고 밥만 먹었어요. 그러다가 같이 수업을 듣던 명희와 친구가 된 거예요.

​저는 제가 그런 선입견을 비틀고 이랬다고 생각 안 해요. 내 친구 얘기라고 생각하면서 찍었어요. 내 친구가 이런 고민이 있고, 내 친구가 매체에서 탈북자, 새터민을 다루는 그 방식 자체가 꼴도 보기 싫어서 TV에 그런 게 나오면 그냥 꺼버린다. 그런 이야기를 들으니까 이 친구가 명희라는 이름으로 여기서 살고 싶은데, 새터민이라는 타이틀 자체랑 싸우고 있는 듯한 느낌을 받았어요. 그럼 <명희>라는 이름으로 우리 영화 한 번 찍어보자. 이렇게 접근해서 찍은 거예요. <빅슬립>도 마찬가지예요. 내가 만났던 아이들, 선생님들 그리고 나 자신. 딱 그거밖에 없었어요. 그 사람들에게 위안이 되고 싶다, 그런 영화를 찍으면 좋을 것 같다. 그냥 이거밖에 없었던 것 같아요.

2019 영진위 독립예술영화 제작지원작으로 선정되면서 제작이 시작된 걸로 알고 있는데요. 그 이후 2020 경기콘텐츠진흥원의 다양성영화 제작투자 지원도 받았고요. 영화가 완성되기까지 우여곡절이 아주 많았다고 들었는데요.

​일단 코로나가 터지기 전까지는 <빅슬립> 제작 진행의 흐름은 어느 정도 있었어요. 뭔가 만들어지는구나, 굴러가는구나, 하면 되겠구나 했었죠. 그러다 갑자기 촬영이 얼마 안 남은 시점에 코로나가 터진 거예요. 그래서 모든 관공서도 그렇고 영진위조차도 이걸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상황이 되어버린 거예요. 당시 제작 들어가는 영화들도 다 엎어버리는 경우도 매우 많았고, 저희도 실제로 엎으려고 회의까지 했었어요. 근데 그때 무슨 생각이 들었냐면 ‘이거 지금 엎으면 나는 절대 이 영화를 다신 못 만들 거다’ 생각을 했어요. 왜냐하면 거기까지의 과정도 쉽지 않았거든요. 스태프를 모으고 배우들을 캐스팅하는 과정까지도 쉽지가 않았고, 그리고 이게 지금 멈추면 이 스태프들과 진짜 치열하게 선택한 이 배우들과는 앞으로 이 영화를 찍을 수 있을지 없을지 미지수가 되어버리잖아요.

​배우들도 그렇고 스태프들도 그렇고 의기투합해서 그냥 해보자, 모르겠고 일단 부딪혀서 어떻게든 해결을 해보자. 이렇게 간 거예요. 진짜로 아무도 협조 못 해주겠다고 하는데도 촬영에 들어가니까 실제로 매일매일 문제가 생기죠. 일단 촬영 협조 전혀 안 되지. 길거리에서 촬영하면 다 마스크 쓰고 있지. 그래서 군중이 나오는 신이 없어요. 다 쓸 수가 없었어요. 또 어떤 배우는 앞부분을 찍었어요. 근데 코로나에 걸리거나 아니면 밀접접촉자가 된 거예요. “저 못 나가요. 감독님.” 이렇게 되니까 찍어 둔 앞부분은 못 쓰잖아요. 그래서 내일 촬영해야 하는데, 배역을 전날 밤에 캐스팅해서 찍고 그랬어요. 그 정도로 촬영 현장이 정말 말도 안 되는 스케줄로 계속 뒤범벅이 되고 하루에 스케줄이 두 번, 세 번씩 바뀌고 새벽에도 자고 있는 스태프들이랑 배우들한테 연락해서 내일 촬영 이렇게 바뀌었다. 이런 식으로 현장이 굴러갔던 거예요. 정말 너무나 현장이 힘들었기 때문에 지금은 스태프, 배우들이 눈물이 많아진 것 같아요. 요즘 상영할 때 오랜만에 만나서 <빅슬립>만 생각하면 다들 울어요.​

〈빅슬립〉 스틸컷. 사진 제공=찬란
〈빅슬립〉 스틸컷. 사진 제공=찬란

감독님께서는 <빅슬립>에 출연하는 배우들의 90% 이상을 공식 오디션을 통해 선발했다고도 하는데, 김영성, 최준우 배우를 비롯한 다른 배우들의 섭외 과정도 궁금합니다. 또 첫 장편영화로 그러한 선택을 하시기 쉽지 않았을 것 같은데요.

​“이 영화 완성의 반은 캐스팅이다.” 이게 제 생각이었어요. 그래서 무엇보다 열심히 했던 것 같아요. 정말 촬영보다 더 열심히 했던 것 같아요. 제가 생각한 이미지 혹은 뭔가 이 사람이면 될 것 같다고 느껴지는 분. 저는 그런 분들을 만나고 싶었어요. 이 배우가 어떤 영화에 출연했었고, 그런 거 전혀 생각 안 하고요. 그래서 오디션 공개를 했는데, 프로필이 3천 명이 넘게 들어온거예요. 그래서 그 3천 명의 영상과 프로필을 진짜 하나도 안 빠트리고 다 봤어요. 정말 잘하시는 분들도 많았지만, 꼭 진짜 만나서 한번 같이 해보고 싶은 분들 모셔서 오디션을 봤던 것 같아요.

​기영 같은 경우는 이제 김영성 배우가 거의 막판에 들어왔어요. 물론 잘하는 분들도 아주 많았고 이 정도면 해도 되겠다는 분들도 계셨지만, 마음 속 한편으로는 진짜 기영이 올 것만 같은 그런 느낌이 계속 있었던 거죠. 근데 마지막 날 문 열고 이제 김영성 배우가 들어오는데, 일단 처음 들어오는 것부터가 기영 그 자체였어요. 그리고 제스처, 눈빛, 심지어 연기하는데 여행 스케치의 ‘별이 진다네’라는 음악이 있어요. 그 음악을 하나 딱 틀어놓고 연기를 누워서 하는 거예요. 그걸 딱 보는 순간 이 사람이랑은 대화를 통해서 뭔가를 만들어 나갈 수 있을 것 같다는 확신이 강하게 왔어요. 길호 역의 최준우 배우 같은 경우는 웬만한 서울, 수도권에 있는 아역 배우들의 프로필을 다 본 것 같아요. 오디션에서 정말 실력이 뛰어나다고 생각했어요. 이 친구가 아니면 길호를 연기할 수 없다는 생각까지 할 정도로요. 그런데 그 당시에 최준우 배우가 교정기를 하고 있었어요. 이 역할은 교정기가 있으면 안 되서, 혹시 떼줄 수 있냐고 진짜 부탁을 해 가지고 촬영할 때만 잠시 떼고 이제 이 역할을 함께 하게 된 거죠.

​저는 비전문 배우들하고 작업을 오랫동안 해왔거든요. <명희> 할 때도 그렇고 그 전후로도 아이들과도 작업을 꽤 오랫동안 했기 때문에 어떤 사람의 가능성을 많이 믿는 편인 것 같아요. 유명한 배우보다는 제가 그 사람의 연기를 보고 또 됨됨이를 보고 가능성을 믿어주는 편이기도 했고요. 오디션 이외에도 주변에서 추천도 많이 받았고, 실제로 독립영화에서 작업 많이 하는 이름 있는 배우들도 만나려고 하기도 했었어요. 근데 결국에는 이제 돌아온 거죠. 안 된다. 유명한 배우와 함께하는 것보다는 오디션을 믿고, <빅슬립>에 미안하지 않도록 만들자. 그래서 지인 배우들도 아예 안 썼어요. 다 미안하다고 얘기하고, 웬만하면 100%는 안 되더라도 90% 이상은 다 오디션을 봤으면 좋겠다 해서 끝까지 찾았던 거죠. 그래서 정말 후회하지 않는 정말 좋은 분들을 만났고, 덕분에 저도 많이 성장했다고 생각해요. 부딪혀 봤기 때문에 너무 좋은 경험이 되었습니다.

〈빅슬립〉 스틸컷. 사진 제공=찬란
〈빅슬립〉 스틸컷. 사진 제공=찬란

마지막으로 <빅슬립>을 볼 관객분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으시다면요?

​시놉시스를 보면 그 무게에 눌려서 그저 어둡고, 무겁고 힘든 영화일 거라고 생각하는 분들이 계신데요. 꼭 그렇지만은 않고, 마음 놓고 즐길 수 있을 만한 영화이기도 하다는 걸 꼭 전해드리고 싶고요. 기회가 된다면 극장에서 GV를 통해서 많은 분들과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는 바람도 있습니다. 결코 어려운 영화는 아니라는 말씀을 드리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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