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의 봄>이 영화 외적으로도 큰 영향을 낳고 있다. 전두환과 관련한 서적이나 장태완 장군 자서전의 판매량이 급등하는 것은 물론, 고 김오랑 중령의 추모제에 많은 이들이 방문하기도 하는 등 <서울의 봄>이 불어온 바람은 꽤나 멀리 가는 모양새다. 2030을 중심으로 한 젊은 층이 <서울의 봄> 흥행을 주도하고 있다는 점도 인상 깊다. 그들은 이 사건을 교과서에서만 봤지, 사건의 내막을 담은 드라마나 영화를 보지 못했을 테다. 그도 그럴 것이 <서울의 봄>은 12·12 군사 쿠데타를 다룬 첫 번째 영화이고, <제5공화국>은 벌써 20년이 다 되어가는 드라마다.

<서울의 봄>이 촉발한 현대사에 대한 관심에 힘입어, 드라마 <제5공화국>은 케이블 채널 MBC ON에서 재방영되기 시작했다. <제5공화국>은 2005년에 MBC에서 방영된 41부작 드라마로, 대한민국의 제5공화국 시기를 다룬다. 드라마는 MBC의 ‘공화국 시리즈’의 마지막 시즌으로, <제1공화국> <제2공화국> <제3공화국> <제4공화국>에 이어 방영되었다.
<제5공화국>은 10·26 사건으로부터 시작해, 4화부터 10화까지는 12·12 군사 쿠데타를 다룬다. 다만, <서울의 봄>과 <제5공화국>이 같은 사건에 접근하는 방식은 판이하다. <서울의 봄>은 캐릭터를 선명하고 입체적으로 구성하는 데에 집중한 반면, <제5공화국>은 사료와 재연에 충실한 사극 드라마에 가깝다(물론 <제5공화국> 역시 팩션(fact+fiction)을 표방한다).
<서울의 봄>은 전두광(전두환)과 대립하는 ‘이태신’이라는 인물을 전면에 내세워 두 세력 간의 충돌을 중심으로 사건을 재구성했다면, <제5공화국>에서 다루는 12·12 사태는 전두환의 쿠데타 진행 과정에 초점을 맞춘다. <제5공화국>은 쿠데타 당시의 통화 음성을 삽입하기도 하고, 적절한 내레이션을 활용해 사건의 진행 상황을 설명한다. 다만 <서울의 봄>이나 <제5공화국>이 역사적 사건을 다소 극화했다고 하더라도, 골자가 바뀌는 것은 아니다. 학생들의 <서울의 봄> 단체 관람을 저지하며 ‘승리’했다고 말하는 그들의 말이 타당하지 않은 이유다.
영화의 성공과 드라마의 재소환에 힘입어, <제5공화국>과 <서울의 봄>의 주요 캐릭터들을 비교해보자.
전두환(이덕화) = 전두광(황정민)
노태우(서인석) = 노태건(박해준)

이덕화의 전두환과 황정민의 전두광은 판이하다. <서울의 봄> 전두광은 불나방 같은 면모를 보였다면, <제5공화국>에서는 전두환의 성격보다는 행적이 부각되는 편이다.
그러나 이덕화가 안정적인 연기로 드라마를 잘 이끌어간 덕분에, 방영 당시 ‘전두환 팬카페’가 생기기도 하는 등, 드라마는 ‘전두환 미화 논란’에 휩싸이기도 했다.
그러나 <제5공화국>이 전두환을 미화했다고 보기엔 다소 무리가 있다. 그를 ‘성격파탄자’ 혹은 ‘악마’로 그리지 않는다고 해서, 그를 옹호하는 것이 아님은 분명하다. ‘다큐드라마’를 표방했던 <제5공화국>은 각 캐릭터의 사연보다는 현대사의 흐름을 짚어내는 데에 충실한 작품이었기 때문이다. 또한 방영 당시인 2005년에는 5공 인사들이 곳곳에 포진해 있었고, 실존 인물들은 <제5공화국>의 대본 정정을 요구하거나 명예훼손 소송을 제기하기도 했다. 하물며 실존 인물이 사망한 상황에서 개봉한 <서울의 봄>조차도 일부 극우 인사들에 의해 성과가 부정되는 지금, 실존 인물들이 두 눈 시퍼렇게 뜨고 살아있던 2005년에 나온 이 드라마는 얼마나 파격적인 것이었는지를 새삼 생각하게 된다. <제5공화국>의 일부 장면들은 <서울의 봄>보다 훨씬 날카롭다고 느껴질 정도다.

<서울의 봄>에서 전두광이 노태건에게 담뱃불을 붙여주는 장면은 그들이 한배를 탔음을 시사하는 결정적인 장면이다. <서울의 봄>에서는 노태건의 우유부단한 면모 등 그의 인간적인 성격이 잘 드러난 것과는 달리, <제5공화국>에서 노태우의 성격은 12·12 사건을 다룬 4~10화보다는 드라마의 후반부(노태우가 대통령이 되는 장면 등)에서 더욱 잘 드러난다.
장태완(김기현) = 이태신(정우성)

<서울의 봄> 김성수 감독이 “이태신은 가장 많이 가공된 인물”이라고 밝힌 것처럼, 이태신의 성격은 <서울의 봄>과 <제5공화국>의 가장 큰 차이점이다. <서울의 봄> 속 이태신은 감정의 동요가 적고, 최대한 이성적으로 대응하려고 하는 인물이라면, <제5공화국>의 장태완은 ‘장포스’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로 카리스마로 무장한 인물이다. (다만, 폭발의 정도에만 차이가 있을 뿐이지 사건 당일 전화 너머로 호통을 치는 것은 <서울의 봄>이나 <제5공화국>이나 동일하다) 또한, <서울의 봄> 속 이태신은 권력에 욕심이 없어, 수도경비사령관을 맡기까지 많은 고민을 한 것으로 그려졌지만 <제5공화국> 장태완은 최고의 수경사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야심 있는 인물이다.
김기현이 연기한 장태완이 ‘장포스’라고 불리며 그의 호통 연기가 유난히 빛을 발했던 까닭은 그의 남다른 발성과 성량 때문이기도 한데, 실제로 김기현은 1981년 최초 방영한 애니메이션 <은하철도 999>, 게임 ‘스타크래프트’ 시리즈의 제라툴 등 오랜 시간 폭넓게 활동한 원로 성우이다.
노재현(신국) = 오국상(김의성)

<서울의 봄> 속, 반란군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가장 많은 관객들의 원성을 산 인물은 단연 국방장관 오국상(김의성)이 아닐까. 그는 총성을 듣고 혼자만 피신하는 등, 비겁함의 끝을 달리는 인물로 그려졌다.
<제5공화국> 속 노재현(신국) 역시 비겁한 것은 동일하다. 물론 오국상처럼 잠옷 바람으로 도망간 것으로 나오지는 않지만, 그의 행보는 답답하기 짝이 없다. <제5공화국>에서는 국방장관이 피신하는 모습과 함께 1993년의 국정감사를 교차해서 보여주는데, 국감에서 노재현은 반란군에 무력대응하지 않은 이유에 대해 “사건의 확대가 우려되어서 그랬다. 결재를 하건, 안 하건, 일은 벌어졌다. 무력대응했다면 불바다가 됐을 것”이라며 자신의 줄행랑을 변명하는 모습을 보인다.
최규하(김성겸) = 최한규(정동환)

실존 인물과 외적으로 가장 높은 싱크로율을 보이는 배우가 연기한 배역이라면, 단연 <제5공화국> 최규하가 아닐까 싶다. (여담으로, <제5공화국>에서 박정희 역을 맡은 배우도 실존 인물과 꽤나 닮았다) 최규하를 연기한 김성겸 역시 성우 출신의 배우다.
<서울의 봄>의 최한규(정동환)도 그랬듯, <제5공화국>의 최규하는 원리원칙주의자로 묘사된다. 다만, <제5공화국>의 최규하는 너무나도 확고한 원칙주의자인 나머지 융통성이 전혀 없어 다소 아둔하게까지 느껴진다.
정병주(민욱) = 공수혁(정만식)
김오랑(양동재) = 오진호(정해인)


<서울의 봄>에서 출연 시간 대비 가장 강한 임팩트를 남긴 배우를 꼽으라면, 단연 정해인이 아닐까. 김오랑 소령을 모티브로 한 오진호(정해인)는 특전사령관 공수혁(정만식)을 보호하려다 죽음을 맞는다.
<제5공화국>에서도 김오랑 소령이 죽는 장면은 가장 극적인 순간 중 하나다. 김오랑과 절친했던 친구가 반란군이 되어 그에게 총구를 겨누고, 뒤늦게 김오랑이 죽은 것을 확인하고 오열하는 장면은 더없이 먹먹하다. 이 장면에 삽입된 “불과 몇 시간 전만 해도 동지였던 박종규와 김오랑. 과연 그들에게 쿠데타는 어떤 의미였고, 조국은 어떤 의미였을까”라는 내레이션은 울림을 배가한다.
정승화(박인환) = 정승호(이성민)
이학봉(이재용) = 임학주(이재윤)
허화평(이진우) = 문일평(박훈)



반란군의 육군참모총장 납치는 12·12 군사 쿠데타의 시작과도 같았다. 다만 <서울의 봄>에서는 육군참모총장 정상호(이성민)가 10·26에 관련되었다는 반란군의 모함을 받은 반면, <제5공화국>의 육군참모총장 정승화(박인화)는 김재규로부터 돈을 받았다는 모함을 받는다. <제5공화국>에서는 정승화 참모총장이 보안사 서빙고 분실에 끌려간 후 이학봉(이재용)에 의해 갖은 고문을 당하는 장면이 등장하는데, <서울의 봄>보다 그 수위는 조금 더 센 편이다.
<서울의 봄>에서 진압군의 통신을 미꾸라지처럼 도청하던 문일평(박훈)은 <제5공화국>에서도 어김없이 '도청 스킬'을 뽐낸다. <제5공화국> 속 허화평(이진우)은 장태완과 30사단장 박희모의 통신을 듣고, 박희모에게 "대세는 기울었다"라며 반란군에 협조할 것을 종용한다. 한편, 허화평을 모티브로 한 캐릭터들은 유난히도 미남 배우들(이진우, 박훈)이 연기한 탓에 '실제보다 미화된 거 아니냐'라는 우스갯소리가 돌기도 했다.
씨네플레이 김지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