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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가위 감독의 첫 번째 TV시리즈 〈번화〉, 12월 27일부터 방영 시작! 그 반응은?

주성철편집장
〈번화〉 포스터
〈번화〉 포스터


왕가위 감독의 첫 번째 TV시리즈인 30부작 <번화>(繁華, Blossoms Shanghai)가 12월 27일 4개의 에피소드를 공개하며 첫 방송을 시작했다. 중국 국영방송사인 CCTV-8과 온라인채널 텐센트 비디오에서 방영이 시작됐으며, 국내에도 지난 10월 출간된 진위청(金宇澄)의 소설 『번화』가 원작이다. 2012년 발표되어 중국문학계에서 가장 권위있는 문학상 중 하나인 마오둔문학상을 수상한 『번화』는 문화대혁명 시기를 거쳐온 상하이 젊은이들의 삶과 도시의 풍경을 진솔하고도 생생하게 그려낸 작가 진위청의 대표작이다. 왕가위 감독은 “먹고사는 일, 생업 외에도, 한 도시에는 생활이 필요하다. 도시 상하이에도 상하이만의 생활, 정신, 문화의 지층을 보여주는 이야기가 있다. 그 이야기가 바로 『번화』”라며 원작에 매혹된 이유를 밝히기도 했다.  

 

〈번화〉 포스터
〈번화〉 포스터


1952년 중국 상하이에서 태어난 진위청은 1969년 중국 공산당의 ‘지식청년 상산하향(上山下鄕)’ 정책(하향의 ‘향’은 중국어로 ‘향촌’, 즉 농촌이란 뜻으로 하향운동이란 도시의 학생이나 지식인들이 농촌으로 돌아가서 농촌 대중과 함께 대중을 위한 문화를 구축하려고 하는 운동이다)에 따라, 중국 헤이룽장성의 농장에서 일하다 문화대혁명이 끝난 1976년 상하이로 돌아왔다. 1985년 잡지 <맹아>에 단편소설 「잃어버린 강물」을 발표하며 작품활동을 시작, 그해 상하이청년문학상을 수상했다. 1988년부터는 잡지 <상하이문학>에서 편집자로 일하며 헤이룽장성에서의 자전적 경험을 담은 소설집 『경한』, 『방도』 등을 출간했다. 마오둔문학상을 수상한 『번화』는 국내 출간된 그의 첫 번째 소설이다. 마오둔문학상(茅盾文學賞, 모순문학상)은 루쉰과 함께 중국 현대문학의 거목으로 인정받고 있는 마오둔(茅盾)이, 1981년 중국 장편소설의 발전을 위해 자신의 원고료 25만 위안을 중국작가협회에 기부하면서 설립된 상이다. 당시 마오둔문학상 심사위원들은 『번화』에 대해 “중국문학의 새로운 길을 보여주는 소설이다. 『번화』의 주인공은 시대의 흐름 속 변화하고 성장하는 도시 상하이 그 자체다”라고 심사의 변을 밝혔다.  

 

국내 출간된 진위청 작가의 『번화』
국내 출간된 진위청 작가의 『번화』


TV시리즈 <번화>의 시간은 2019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일대종사>(2013) 이후 <동사서독>(1995)의 재편집 버전인 <동사서독 리덕스>(2013)을 공개하고 양조위, 금성무 주연 영화 <파도인>(2016)을 제작한 걸 제외하면 자신의 연출작을 내놓지 않았던 왕가위 감독이, 2019년 3월에 진위청 원작 『번화』를 영상으로 옮길 계획을 발표한다(당시 영제인 ‘블러썸’으로 알려졌다). 더불어 <화양연화>(2000)와 <2046>(2004)으로부터 이어지는 자신의 ‘화’(華) 3부작의 세 번째 작품이 될 것임을 밝혀 팬들의 기대가 증폭됐다. 이후 왕가위 감독의 의지가 반영되어 ‘상하이 방언’에 충실한 각본 작업이 진행됐다. 드디어 2020년 3월, 상하이에서 본격적인 제작 준비에 들어갔고 과거와 현재를 넘나드는 시대를 재현하기 위해 상하이의 오래된 물품들을 모으기 시작했다. 그리고 홍콩의 ‘레전드’ 촬영감독이라 할 수 있는 피터 파우(포덕희)가 참여하면서 드디어 2020년 9월 촬영에 들어갔다. ‘<와호장룡>의 촬영감독’으로 유명한 피터 파우는 <진용>(1990), <백발마녀전>(1993), <동성서취>(1993), <와호장룡>(2000) 등을 촬영했으며 <파도인>(2016)의 촬영감독이기도 했다. 그렇게 <일대종사> 이후 왕가위의 10년 만의 연출작을 만나게 됐다. 

 

〈번화〉의 호가
〈번화〉의 호가


1990년대 상하이를 배경으로 국내에도 <랑야방>(2015), <위장자>(2015) 등을 통해 큰 인기를 얻은 호가가 주인공 아바오를 연기한다. 실제로 그는 1982년 상하이 태생으로 상하이희극학원 출신이기도 하다. 공개된 스틸과 예고편에서는 얼핏 <화양연화>의 양조위 같은 느낌을 풍기기도 하여 많은 팬들의 기대를 모았다. 자수성가한 사업가 아바오(호가)는 기회와 희망으로 가득 찬 1990년대 상하이에서 레스토랑을 열고 비즈니스를 해나가는 가운데, 경제 호황으로 변화하는 세상사와 맞물리며 이런저런 일들을 겪게 된다. 사업에 도움이 되는 사람들과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 그를 계속 스쳐 지나간다.  

 

〈번화〉
〈번화〉


공개된 에피소드에 대한 평가는 ‘왕가위 특유의 무드와 톤 앤 매너가 잘 살아있다’는 내용이 주를 이루고 있다. ‘작품 속 소품 하나하나 왕가위의 색깔이 짙게 배어 있다’는 대목도 눈에 띈다. ‘시대극과 현대물을 자유자재로 오가는 호가의 연기가 대단하다’는 평가도 많다. 이 모든 것들이 공개된 스틸과 어우러져 깊은 호기심을 자아낸다. 왕가위 감독은 기자회견에서 “내 고향인 상하이로 돌아가는 매우 개인적인 여정이자 모험이 될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번화〉
〈번화〉


국내 출간 당시 책 소개 글을 발췌하자면, 다음과 같이 정리하고 있다. “1960년대부터 1990년대까지, 세 청춘의 삶에 스며든 상하이의 수많은 사람과 골목, 음식, 그리고 시대와 공간을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듯 세밀히 묘사하며 과거와 현재를 촘촘히 직조해낸다. 『번화』는 후성, 아바오, 샤오마오가 살아가는 공간과 마주하는 사건들, 인물들 등 삶의 면면을 날줄로 서술한다. 영화관에 갔던 일, 우표 수집, 권법 수련, 일하는 공장에서 목도한 밀회 현장 등 일상의 소소한 모습들이 묘사되는 가운데 수많은 거리와 골목, 건물, 음식, 과거로부터 소환된 무수한 민담과 기억의 편린 등이 등장한다. 한편 이들을 둘러싼 수많은 여인들의 이야기는 씨줄이 된다. 어쩌면 이들의 삶을 이끄는 동력은 심오한 철학이나 거창한 역사 담론 따위가 아닌 순수한 욕망이다.” 

 

〈번화〉
〈번화〉


더불어 원작을 빌어오자면, “혁명은 이제 그물 사이로 빠져나가는 물고기가 되어버린 것 아니야?”라던가, “정치계와 비즈니스계에서 약간의 지위가 있는 사람들은 옷차림을 상당히 중시하지요. 캉 사장이 말했다. 치장은 상하이 사람들이 가장 잘하잖아요” 등의 문장들을 볼 때, 시대의 변화와 맞물리는 속세 인물들의 다양한 군상들, 그리고 상하이라는 대도시가 뿜어내는 다채로운 에너지가 작품에 가득할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원작이 출간됐을 때 ‘중국판 『데카메론』’이라는 평가가 많았다. 제작발표 당시 왕가위 감독도 “진위청의 기념비적인 소설 『번화』는 고향 상하이에 대한 저의 사랑을 시각화하고 공유하기에 완벽한 배경이었다. 이 시리즈를 통해 시청자들이 현대 상하이의 번영을 위한 길을 닦은 흥미진진한 시기인 1990년대 초 상하이와 그 주민들의 음모에 뛰어들도록 초대하고 싶다”고 연출의 변을 밝힌 바 있다. 아무튼 이제 본격적으로 에피소드가 여러 편 더 공개되면서 <번화>에 대한 평이 이어질 것이다. 평소 왕가위 감독이 팬이라면 이미 공개된 스틸만으로도 충분히 ‘In the Mood for Shanghai’를 느끼기에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