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이 글은 실제 출연자가 쓴 것으로 상당히 주관적인 글일 수 있음을 미리 밝혀둡니다.
<방구석1열>도 돌아오고 나도 돌아왔다. <방구석1열>이 ‘확장판’이라는 부제를 달아 시간대도 옮기고 출연진도 바뀌었을 때, 즉 내가 잘렸을 때 얼마나 우울했던가. 하지만 <방구석1열: 확장판>이 8부작으로 장렬하게 막을 내렸을 때, 겉으로는 농담처럼 속 시원하다고 말은 했지만(<돌아온 방구석1열> EP 0, ‘정신차리고 돌아온 방구석1열’ 편 참조) 솔직히 안타까웠다. 확장판에도 몇 번 출연했기 때문이 아니라, 지상파에서 그처럼 긴 시간 영화 토크를 주고받는 프로그램 자체가 완전히 사라졌기 때문이다. 국내 대형 포털 사이트에서도 ‘영화’ 섹션이 ‘연예’ 섹션 아래로 자취를 감추는 시절이니, 갈수록 영화의 설 자리가 줄어드는 것 같은 안타까움이었다고나 할까.

드디어 지난 9월 27일부터 2회에 걸친 ‘홍콩영화 기행기’로 <방구석1열>이 돌아왔다. 봉태규 배우, 변영주 감독, 주성철 <씨네플레이> 편집장 3인 MC 체제로 <돌아온 방구석1열>이라는 새로운 이름의 유튜브로 찾아온 것. 이에 지난 20세기부터 활동을 시작한 원로배우 봉태규 MC는 <방구석1열>이 드디어 ‘사이버’ 세상에 발을 내디뎠다며 감격해했다. 구한말 우미관에서 뤼미에르 형제의 <열차의 도착>(1895)을 보며 영화감독의 꿈을 꾸었던 원로감독 변영주 MC도, 이 소식을 북한산에서 전서구를 통해 전해 들은 뒤 ‘이제 <방구석1열>을 핸드폰으로도 볼 수 있게 된 것이냐’며 함박 울음을 터트렸다. 그처럼 <돌아온 방구석1열>은 이제 매주 수요일 JTBC 공식 교양 유튜브 채널 ‘차클 플러스’(@JTBCPLUS)에서 만나볼 수 있다. JTBC2 채널에서도 격주로 일요일 오전 10시 30분에 방영되고 있으니, TV로 보는 것이 익숙했던 시청자들에게도 여전히 ‘일요일 오전’의 영화 친구가 되어줄 것이다.
EP1. 로맨스의 성지 홍콩섬.
EP2. 누아르의 고향 구룡반도.
일단 시작이 좋았다. <돌아온 방구석1열> 1회와 2회는 이전과는 다른 ‘영화 여행’ 컨셉으로 홍콩을 다녀왔다. 방구석에 앉아 언제 빨았는지도 모를 쿠션 소파에 앉은 채로 꿉꿉하게 영화 얘기를 하던 것에서 벗어나, 실제 영화 촬영지들을 돌아다녔다. 무엇보다 <헤어진 이들은 홍콩에서 다시 만난다>라는 레전드 ‘홍콩영화 여행 가이드북’을 쓰기도 했던 베스트셀러 작가 주성철 MC의 해박한 지식이 프로그램을 더없이 풍성하게 만들었다. 툭 치면 쏟아져나오는 정보들에 다른 두 MC는 그를 향한 존경의 눈길을 감추지 못했다. 비록 <중경삼림>에서 패스트푸드점 ‘미드나잇 익스프레스’로 다가와 왕페이와 처음 만나던 경찰 양조위를 똑같이 따라 하다가 ‘같은 공간 다른 종족’이라는 비교 자막으로 굴욕을 당하긴 했지만, 30년 전의 영화 촬영지가 여전히 건재함을 보여주며 구독자들로 하여금 너나 할 것 없이 홍콩행 항공권을 예약하게 만들었다. 그렇게 <중경삼림>과 <아비정전>을 테마로 홍콩섬을 다니고, <영웅본색>과 <무간도>를 테마로 구룡반도를 다닌 ‘홍콩영화 순례기’는 50만 조회수에 육박하는 반응을 끌어내며, ‘과연 <돌아온 방구석1열>이 이전과는 다른 컨셉으로 다시 사랑받을 수 있을까’ 걱정했던 김미연 PD를 편히 잠들게 했다.



예나 지금이나 <방구석1열>의 이른바 ‘퀄리티’는 정신적 지주 변영주 감독과 첫 회부터 함께 해온 김미연 PD 덕분이다(JTBC의 또 다른 영화 예능 프로그램 <전체관람가> 2개 시즌도 모두 김PD의 작품이다). 그로 인해 <중경삼림>과 <아비정전>, <영웅본색>과 <무간도> 사이에서 왕가위와 장국영, 그리고 양조위에 대한 찬사로 다소 뻔하게 마무리될 수 있었던 에피소드에, 홍콩영화 역사의 전설적 스튜디오들인 쇼브라더스와 골든하베스트, 그리고 전영공작실 이야기가 멋지게 뿌려질 수 있었다. 사연은 이렇다. <영웅본색>에서 홍콩을 뜨려는 주윤발과 적룡 일행이 돈가방을 들고 온 이자웅 일당을 맞이했던 구룡반도 동쪽 끝 클리어워터베이의 틴하우 사원을 찾아 떠난 홍콩여행 두 번째 날, 버스를 타고 이동하던 길에서 옛 쇼브라더스의 낡은 건물과 마주치자마자 변영주 감독이 게슴츠레한 눈을 번득이며 “우리 그 얘기 좀 하면 어떨까”라고 말을 꺼냈다. 전날의 과음으로 인해 눈이 떠진 것 자체가 기적적인 일이었기에 어쩌면 그것은 운명이었다. 홍콩에 온 만큼 그 ‘영화 역사’도 짚어주면 좋을 것 같다는 ‘역사 덕후’의 아이디어였고, 전적으로 ‘영화 프로그램’이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나영석과 김태호 PD 저리 가라 할 정도로 갑작스런 제안들도 스폰지처럼 흡수하는 김미연 PD와, ‘방구석 공식 AI’라고 언제나 부려온 주성철 편집장이 있었기에 현실화될 수 있는 아이디어였지만 말이다. 돌이켜 보면, 언제나 그런 식으로 스튜디오 안에서건 밖에서건 변영주 감독이 툭툭 던지고 봉태규 배우가 낙하지점을 잡으면서, 생각지도 못한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순간들이 <방구석1열>의 진짜 재미라면 재미였다.
EP 3. [화란] 송중기와 홍사빈 배우, 그리고 한재덕 제작자




EP 4. 설경구, 유준상, 허성태 배우와 정지영 감독.
이후 <방구석1열>은 다시 스튜디오로 돌아왔다. 물론 예전처럼 포근한 방구석 컨셉은 아니고, 마치 신입사원 면접이 이뤄져야 할 것 같은 JTBC 사옥 내 회의실을 무대로 삼아 <소년들>의 설경구, 유준상, 허성태 배우와 정지영 감독, <화란>의 송중기, 홍사빈 배우와 한재덕 제작자 등이 차례로 <돌아온 방구석1열>을 찾았다. 이전 시즌과 비교해보면 ‘띵작 매치’라는 이름으로 두 편을 연결지어 얘기하는 컨셉이 아니라 최신 개봉영화를 소개하고 그 게스트가 출연했다. 볼만한 구작 소개, 혹은 이미 봤던 영화에 대한 깊이 있는 토크가 아니라 마치 영화 가이드 프로그램처럼 최신 영화와 만나게 된 것이긴 하나, 최근 영화 홍보 방식이 전문 영화 채널이 아닌 이른바 유명 유튜버, 혹은 셀럽이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에 나와 영화 토크와는 다소 거리가 있는 내용들이 주를 이뤘던 것을 감안하면, 꽤 흥미 있는 이야기들이 오갔다.


특별판. [너와 나] 조현철 감독.
어쨌거나 이제 스튜디오에서 매회 한 편을 집중적으로 얘기하게 됐고, 유튜브에서는 다소 긴 느낌이긴 하나 35-40분 정도의 러닝타임을 갖게 됐다. “편안하게 영화 이야기를 풀어내는 <방구석1열>만의 장점을 잃지 말자”는 것이 김미연 PD의 변함없는 생각이다. 그래 주1회 공개와 별개로, ‘특별판’이라는 이름으로 20분 이내의 영상들을 종종 제작하려 한다. 지난 10월 24일 <너와 나> 개봉으로 조현철 감독을 게스트로 모신 회차(‘한국 영화계에 등장한 확신의 천재, 조현철 감독 방구석 등장’ 편)가 그렇고, 안타깝게도 지난 9월 18일 세상을 떠난 배우 변희봉 추모 회차도 개봉 영화와 무관하게 제작한 영상으로 곧 업데이트될 예정이다. <방구석 1열>의 오랜 팬이라면 반가울 임필성 감독이 변희봉 배우와는 봉준호 감독의 <괴물>을 함께 한 인연으로 모처럼 게스트로 등장한다. 주성철 편집장의 자리를 호시탐탐 노리고 있던 그는, 녹화 직전 봉준호 감독과 직접 길게 통화했지만 변희봉 배우에 대해 그 어디서나 들을 수 있는 얘기들을 전했다는 후문이다.
EP 7. 환상숲 곶자왈과 제주의 환경, 그리고 다큐멘터리 [수라].
<돌아온 방구석 1열>에서 가장 최근 업데이트된 영상은, 홍콩에 이어 제주도로 다녀온 두 번째 영화 여행기다. 개인적으로는 방송 하차를 빌미로 내세운 제작진의 강압에 못 이겨 인간 감귤이 되고 해녀 분장을 했다, 고 말하고 싶지만 솔직히 모두 자발적으로 그렇게 했다. 오히려 더 센 분장 아이디어를 내놓지 못한 작가진을 꾸짖었다. 아무튼 황윤 감독의 <수라>로 환경 문제를 다룬 첫 번째 회차(<돌아온 방구석1열> EP 7, ‘어딘가 엉성한 주 가이드와 함께한 제주 시네필 여행’)와 제주 우도에서 촬영한 <인어공주>를 소재로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된 해녀의 역사를 들여다본 두 번째 회차(<돌아온 방구석1열> EP 8, ‘해녀의 매력에 푹~ 빠져버린 방구석과 함께 숨 참고 제주무비 다이브’) 촬영을 즐거이 마쳤다.




7회에서는 제주의 천혜의 자원을 그대로 보존하고 있는 원시림인 ‘환상숲 곶자왈’을 다녀왔다. 각각 숲과 덤불을 뜻하는 제주말 ‘곶’과 ‘자왈’의 합성어인 곶자왈은 제주만의 독특한 생태 지형이다. 과거에는 경작을 할 수 없는 쓸모없는 땅이라 여겨졌지만, 지금은 ‘제주의 허파’로 불릴 정도로 생태학적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환상숲에서 이지영 숲해설사님과 시간을 보낸 후 숙소에 돌아와서는 황윤 감독의 다큐멘터리 <수라>(2022)에 대한 얘기를 나눴다. 새만금간척사업으로 잃어버린 갯벌에 대해 얘기하는 <수라>가 제주를 배경으로 삼은 작품은 아니지만, 곶자왈과 갯벌은 갈수록 사라져가고 있는 고유의 생태 지형이라는 점에서, 또한 환경 보존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곳이라는 점에서 통하는 바가 있다. 그렇게 서해의 갯벌과 제주의 숲이 만났다.
EP 8. 영화 [인어공주]와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제주 해녀의 역사.




8회에서는 박흥식 감독, 전도연 주연 <인어공주>(2004)를 통해 제주의 환상적 풍광이 어떻게 판타지로 기능하는지에 대해 얘기를 나눴다. 영화에서 현재의 딸 ‘나영’과 과거의 젊은 해녀 엄마 ‘연순’이라는 1인 2역을 맡은 전도연은, 갑자기 사라진 아버지를 찾아 제주 우도로 떠난다. 그곳에서 미스터리한 시간 여행을 하면서 젊은 엄마와 조우하게 되는데, 박흥식 감독은 어떤 거창하고 요란한 시간 여행으로 보이게끔 연출한 것이 아니라, 그저 현재의 딸이 과거의 아빠 뒷모습을 슬쩍 쳐다보는 시선의 변화만으로 시간 여행을 시도한다. 아마도 제주의 풍광 자체가 주는 힘이 있기에 그런 지극히 심플한 판타지 장면 연출이 가능했을 것이다. 이상 <돌아온 방구석1열> 제주 촬영 현장 스케치와 더불어 변영주 감독, 봉태규 배우 독점 영상 인터뷰는 <씨네플레이>에서 확인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