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 침사추이 스타의 거리에 있는 장국영 명판

태풍이 몰아치는 홍콩으로 무비투어를 다녀왔다. 가장 큰 이유는 올해 장국영 20주기를 맞아 4월 1일에 홍콩을 찾지 못한 탓에, 그의 생일인 9월 12일에 최대한 가깝게 다녀오기 위해서였다. 2003년 4월 1일, 장국영은 홍콩 만다린오리엔탈호텔 24층 객실에서 몸을 던져 거짓말처럼 생을 마감했다. 그리고 공교롭게도 홍콩에 머무르는 기간 동안 양조위가 베니스국제영화제에서 평생공로상을 수상했다. 그 두 사람의 역사만으로도 홍콩영화의 지난 세기가 그대로 그려진다. 그렇게 장국영 20주기를 맞아 9월 1일부터 3일까지 2박 3일간, 씨네플레이가 ‘아트제투어’와 함께 홍콩 무비투어를 다녀왔다.


샤틴의 홍콩문화박물관에서 장국영 특별전시가 10월 9일까지 열린다

바로 지금 홍콩을 찾아야 하는 결정적인 이유는, 현재 홍콩 문화박물관에서 장국영 특별전시가 열리고 있기 때문이다. 단, 10월 9일까지여서 얼마 남지 않았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장국영의 팬이라면 무조건 다녀와야 하는 전시다. 그가 남긴 명곡들을 형형색색 손글씨로 장식한 입구를 지나 들어가면 그가 각종 콘서트 무대에서 입었던 의상들과 생전의 여러 영상들, 그리고 그와 관련된 거의 모든 간행물이 빼곡하게 전시관을 채우고 있다. 사진 촬영이 가능한 구역과 가능하지 않은 구역이 나뉘어 있는데, 콘서트 영상과 함께 그 의상을 비교해보는 것만으로도 장국영의 역사가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영웅본색>과 <천녀유혼>으로 톱스타의 입지를 굳힌 장국영은 왕가위 감독의 <아비정전> <동사서독> <해피투게더>에 출연하며 배우이자 가수로서 최고의 자리에 올라섰다. 전 세계 대중문화 역사를 훑어봐도 그 두 분야를 석권한 엔터테이너는 장국영이 거의 유일하지 않나 싶다.


침사추이 스타의 거리와 올해 부산국제영화제를 찾는 주윤발의 명판(오른쪽)

침사추이 ‘스타의 거리’, 성광대도(星光大道)라 불리는 이곳은 원래 빅토리아항을 끼고 인터컨티넨털호텔에서 홍콩문화센터까지 길게 이어진다. 몇 년 전 공사를 진행하면서 페닌슐라호텔을 지나 조금 더 떨어진 침사추이 이스트역 옥상에 스타들의 핸드프린팅과 명판을 옮겨다가 ‘스타의 정원’을 조성했는데, 이제는 정원을 포함해 원래의 모습을 그대로 복원해 완벽한 모습을 갖췄다. 안타까운 건 이 거리 자체가 2004년에 조성된 곳이기에, 한 해 앞서 세상을 뜬 장국영은 동료들과 함께 핸드프린팅을 남길 수 없었다. 장국영과 양조위, 그리고 주윤발, 그렇게 하나하나 보다보면 어느새 밤이 된다.


<중경삼림>의 미드나잇 익스프레스(왼쪽)는 현재 편의점(오른쪽)이다.

란콰이퐁에서 <중경삼림>의 왕페이가 아르바이트를 하던 테이크아웃 전문 식당 ‘미드나잇 익스프레스’가 있던 자리는 이제 편의점으로 바뀌었다. 사실 영화 촬영 직후 미드나잇 익스프레스는 가장 먼저 이른바 ‘금은방’으로 바뀌었었다. 그러다 같은 자리에서 여러 번 업종 변경이 이뤄지더니 가장 최근에 편의점이 들어선 것. 오래전 <중경삼림>을 그리며 ‘캘리포니아 드리밍’(California Dreamin')과 ‘몽중인’(夢中人)을 흥얼거리며 이곳을 찾았을 때, 난데없이 주얼리샵이 있어 얼마나 황망했던가. 그런데 편의점으로 바뀌어서 정말 다행이다. <중경삼림>에는 편의점이 굉장히 중요한 공간으로 등장하기에, 마치 원래 모습을 되찾은 것 같은 착각마저 들기 때문이다. 아무튼 미드나잇 익스프레스 건너편에서 일을 보던 경찰 양조위가 가게를 향해 천천히 걸어와 모자를 벗고 (사실 계속 쳐다보고 있었으면서 마치 그러지 않았던 것처럼 시선을 마주치지 않는) 왕페이에게 다가가 샐러드를 주문하던 정면 쇼트는 <중경삼림>의 가장 기념비적인 순간, 양조위가 우리 마음 깊숙이 다가서던 그 역사의 시작이다.

미드레벨 에스컬레이터

그리고 조금만 더 걸어가면, 장장 800미터에 달하는 세계 최장 에스컬레이터인 미드 레벨 에스컬레이터가 나온다. <중경삼림>이 촬영되던 당시 막 운행을 시작했었다. 그 속도에 몸을 맡기고 천천히 올라가다 보면 마치 눈앞으로 영화 슬라이드쇼가 펼쳐지는 것 같은 근사한 기분이 드는데, 공교롭게도 이날은 태풍으로 인해 에스컬레이터 운행이 중지되어 걸어 올라갈 수밖에 없었다. <중경삼림>에서 실연의 고통을 잊으려 에스컬레이터 옆 계단을 마구 뛰어오르던 금성무가 떠오르는 상황이다. 그래도 이곳을 찾는 사람은 많다. 한참 세월이 흘러 <2046>에 출연한 양조위는 말했다. “다른 시간, 다른 공간에서 스쳤다면 우리의 인연도 달라졌을까?”


초록색 철대문이 인상적이었던 <색, 계>의 양조위 집

홍콩섬 서쪽 케네디타운에서 내려 서쪽으로 트래킹 하듯 한참 걸어가다보면, 리안 감독의 <색, 계>에서 친일파의 핵심인물이자 정보부 대장인 양조위(이 역)의 집이 나온다. ‘막 부인’으로 위장한 탕웨이와 그 동료들이 그를 암살하기 위해 신분을 위장하고 접근했던 대저택 촬영지가 있기에 찾아가기까지 고생이어도 그만큼 보람이 있다. 영화에서 홍콩에 온 탕웨이는 대학교 연극부에 가입하고, 연극을 통해 애국심을 고취하려는 급진파 왕리홍(광위민 역)을 흠모하게 되면서 자연스레 그가 주도하는 항일단체에 몸담게 된다. 드디어 이 암살 계획을 세운 그들은 신분과 정체를 위장한 채 그의 부인(조안 첸)에게 접근하는 데 성공한다. 홍콩에 온 지 얼마 안 되어 센트럴과 리펄스베이 밖에 가보지 못했다는 부인에게 침사추이 구경을 시켜주러 탕웨이 일행이 오게 되는데, 왕리홍은 잔뜩 긴장하고 있는 일행들에게 말한다. “이건 리허설이 아니야!” 그런 다음 굳게 닫힌 저택의 문이 열리고 양조위가 등장한다. 곧이어 거대한 저택의 모습이 드러나며 그들의 목숨을 건 연극의 막이 오른다.

현재 이곳은 ‘시카고 대학 홍콩 캠퍼스’가 들어서 있는데, 그 옆 문화재 보존 센터(heritage courtyard and interpretation centre)가 바로 <색, 계>의 양조위 집이다. 흰 벽돌과 초록색 대문은 물론 그 위의 철조망까지 영화 속 모습 그대로다. 내부에는 박물관처럼 이곳의 역사가 여러 전시물 형태로 비치되어 있고 당시 홍콩 경찰들의 복장도 전시되어 있다. 바로 이곳이 과거 1961년부터 1990년까지 홍콩 경찰의 훈련소이자 구치소였기 때문이다. 1990년부터 2000년대 말까지 사실상 버려져 있던 이곳에서 <색, 계>가 촬영됐다. 공교롭게도 이곳을 찾은 날, 양조위가 베니스국제영화제에서 평생공로상을 받으며 펑펑 울었다. 운명이었을까, 그 시상자가 바로 <색, 계>의 리안 감독이었다.


퀸스카페 노스포인트 지점

장국영이 세상을 떴을 때, 팬들이 가장 많이 떠올린 영화는 <아비정전>이었다. 영화 속에서 아비(장국영)는 “내가 정말 궁금했던 게 내 삶의 마지막 장면이었어. 그래서 난 눈을 뜨고 죽을 거야”라는 말을 남기고 숨을 거두었다. 언제나 결핍의 시간을 보내던 아비는 퀸스 카페에서 휴식을 가졌다. 계모(반적화)의 정부를 흠씬 두들겨 팬 뒤, 계모와 말다툼을 하던 곳도 여기였고 친어머니를 찾아 필리핀으로 떠나겠다고 선언한 장소도 바로 이곳이었다. 영화가 촬영된 코즈웨이베이에 있던 퀸스 카페는 2000년대 들어 문을 닫았다가, 몇 년 전부터 홍콩 곳곳 지점에서 영업을 재개했다. 그중에서 가장 닮은 곳은 노스포인트 지점이다. 장국영, 장만옥, 장학우, 왕가위 등이 사인을 한 <아비정전> 포스터 액자가 걸려 있고, 수리진(장만옥)과 경찰관(유덕화)이 만나던 영화 속 캐슬 로드의 공중전화 부스와 똑같이 생긴 부스도 한가운데 자리해 있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바로 카페 입구의 ‘퀸스 카페’ 글씨다. ‘QUEEN’S CAFE’ 글씨가 닳아서 페인트칠이 벗겨진 것까지 영화 속 모습 그대로다. 이곳 노스포인트 지점만 그렇다.

과거 실제 퀸스카페에서 촬영한 <아비정전> 포스터 컷

장만옥과 유덕화가 만나던 <아비정전> 캐슬로드(왼쪽은 영화 스틸)

<아비정전>에서 장국영은 센트럴의 북쪽 지역에 산다. 미드레벨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가장 위 종점에 내려 더 올라가야 하는 곳이다. 이 근처 캐슬로드에서 장국영에게 버림받은 장만옥과 경찰관 유덕화가 만난다. 장만옥이 기대고 있던 거대한 돌벽과 터널이 인상적인 캐슬로드는 영화 속 모습 그대로 자리해 있다.


<연지구>에 등장한 섹통추이 고가도로

<연지구>의 촬영장소인 섹통추이의 영화 속 의홍루 자리를 찾았다. <연지구>에서 장국영은 처음으로 경극 분장을 했는데, <연지구>가 없었다면 <패왕별희>도 없었을 것이다. 1930년대와 1987년, 두 개의 시간대를 오가는 <연지구>에서 진방(장국영)은 경극 배우를 꿈꾸는 섹통추이의 부잣집 아들이다. 의홍루의 기녀 여화(매염방)와 신분을 초월한 사랑을 하게 되지만, 집안의 반대에 부딪힌다. 결국 두 사람은 함께 죽기로 한다. 그런데 진방은 살아남고, 여화는 죽어서 홀로 저승으로 가게 됐다. 저승에서 50년간 진방을 기다리던 여화는 진방을 찾아 이승으로 다시 온다. 그리하여 1987년, 다시 태어나면 3월 8일 11시에 만나자고 약속했던 의홍루 앞으로 간다. 하지만 의홍루는 유치원으로 바뀌었고, 그 위로는 큰 고가도로가 생겼으며, 진방은 나타나지 않는다. 섹통추이는 10년 전만 해도 여간해서 찾아가기 쉽지 않은 곳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홍콩대학 지하철역이 이 장소 바로 앞에 생겨서 편하게 찾아올 수 있게 됐다. 인도를 따라 거의 햇빛을 다 가릴 정도로 들어선 고가도로를 올려다보고 있으면, 다시 이곳을 찾아 진방을 기다리던 여화가 얼마나 막막했을까 싶다.


태풍이 지나가고 한적한 샤틴 보복산, 장국영을 만나기 위해 한참을 올라가야 한다

장국영의 위패가 모셔져 있는, 동산 하나로 이뤄진 거대한 납골당인 샤틴 보복산(寶福山)을 찾았다. 태풍으로 인해 에스컬레이터가 운행하지 않아 한참을 걸어올라갔다. 문을 열었다는 것만으로도 그 고통은 견딜 수 있었다. 휴일에는 많은 사람들이 각자의 가족을 찾아 보복산을 찾기에, 태풍 때문인지 거짓말처럼 이날 보복산에는 아무도 없었다. 그래서 여유롭다면 여유롭고 쓸쓸하다면 쓸쓸하게 이곳에서 긴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그의 위패를 모신 자리는 보선당(寶禪堂) 965호실 695번이다. 그의 위패를 모신 곳으로 해피밸리에 동연각원도 있는데 그곳이 가족들이 조촐하게 마련한 곳이라면, 보복산은 누구나 찾을 수 있는 거대한 납골당이다. 몇 년 전 4월 1일 기일에 맞춰 이곳을 찾았을 때, 홍콩과 일본은 물론 한국의 팬들도 수많은 선물과 백합으로 그 앞을 가득 채웠었다.

나문, 심전하와 함께 모셔진 보복산의 장국영 위패

이곳에서 그는 생전 특별한 인연을 나눴던 나문, 심전하와 함께 마치 가족처럼 사이좋게 모셔져 있다. 1945년생 나문은 ‘광둥팝의 아버지’라 불리는 인물로, 알란탐과 장국영이 등장하기 전에 이미 화려한 의상과 무대 매너로 홍콩 대중음악계를 호령했던 가수다. 그의 창법과 스타일은 가수 장국영에게도 많은 영향을 끼쳤다. <영웅본색>에는 마크(주윤발)가 과거를 회상하는 장면에서 한국 가수 구창모의 ‘희나리’를 번안한 ‘기허풍우’라는 노래가 들려오는데, 바로 그 노래를 부른 가수다. 2002년 10월 18일 암으로 사망했는데, 그로부터 5개월 뒤 장국영도 세상을 떠났다. 나문과 장국영 사이의 심전하는 홍콩을 대표하는 코미디언이자 배우였다. 늘 똑같은 헤어스타일에 검은 뿔테안경을 쓴 특유의 편안한 캐릭터로 유명했다. 그녀의 전 남편이 바로 <초류항> 시리즈로 유명한 정소추다. 심전하 또한 2008년 2월 19일 오랜 투병 끝에 세상을 떠났다. 유해는 캐나다 몬트리올에 있지만 정소추 사이에 낳은 딸 정흔의가 어머니의 신위를 이곳에 모시고 싶다 하여 장국영의 이웃이 됐다.

홍콩에 불어닥친 역대급 태풍으로 인해, 미드레벨 에스컬레이터도 운행을 중지하고 옴짝달싹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태풍이 지나간 다음 날, 다행히 홍콩문화박물관도 문을 열었고 보복산도 사람들의 왕래가 시작됐다. 그렇게 모든 곳을 둘러보게 된 것, 운명이라면 운명일 것이다.


주성철 씨네플레이 편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