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노량: 죽음의 바다>에서 <시민덕희>, 최근 종영한 tvN 드라마 <마에스트라>까지. 배우 이무생은 순애보를 간직한 중년의 말간 얼굴과 자비 없는 악인의 민낯을 시치미 뚝 떼고 오간다. 중저음의 보이스와 정석의 슈트핏으로 '이무생로랑'이라 불리며 전성기 구가하는 이무생. 오늘은 그의 상반된 두 얼굴을 모아봤다.
순애보 편
<마에스트라>, <부부의 세계>, <서른, 아홉>
집착 광공 '차친놈'
<마에스트라>(2023)

전 세계 단 5%뿐인 여성 지휘자 마에스트라, 전설로 불리는 차세음(이영애)이 자신의 비밀을 감춘 채 오케스트라를 둘러싼 사건의 진실을 찾아가는 미스터리 드라마 <마에스트라>에서 이무생은 차세음의 과거 연인이자 투자계의 거물인 UC 파이낸셜 회장 유정재로 등장한다.
차세음에 대한 집착인지 사랑인지 모를 감정으로 폭주하는 유정재를 처음에는 스토커쯤으로 오인했다. 하지만 살인, 불륜 등의 세파에 시달리는 차세음의 곁을 든든히 지키는 그의 배려가 애절한 순애보임이 드러나자 시청자들은 이무생을 ‘차친놈(차세음에 미친놈)’이라 명하며 그의 연기에 큰 호평을 보냈다.
<마에스트라> 속 이무생의 매력은 패션에서도 터져 나왔다. 소화하기 힘든 핑크 셔츠부터 다양한 소재와 컬러의 슈트까지 완벽 소화하며 역시 '이무생로랑!'이라는 감탄을 자아냈다.
'이무생로랑'의 시작
<부부의 세계> (2020)

2020년 최고의 화제작 JTBC <부부의 세계>에서 이무생은 남편의 외도 사실을 알게 되면서 폭력의 위험에 노출되고 극단적인 복수심에 휩싸인 지선우(김희애)의 유일한 편이 돼준 신경정신과 의사 김윤기로 분했다. 지고지순하게 지선우의 곁을 맴돌다가도 전 남편 이태오(박해준)가 선우에게 접근할라치면 차갑게 차단하는 카리스마를 발산해 대중에게 이무생을 각인시킨 작품.
선우를 향한 다정다감한 행동과 순애보로 “존재 자체만으로도 명품 같다”라는 반응 불러일으키며 ‘이무생로랑(이무생+생로랑)’이라는 고급미 넘치는 별명이 만들어진 계기가 된 드라마다.
업계 TOP 눈물 연기
<서른, 아홉>(2022)

마흔을 목전에 둔 세 친구의 우정과 사랑, 삶에 대한 이야기를 다룬 <서른, 아홉>에서 이무생은 챔프엔터테인먼트 대표 김진석으로 변신해 췌장암 말기의 시한부 판정을 받은 정찬영(전미도)과 마지막 사랑을 나눈다. 가정이 있는 극 중 설정으로 찬영과의 로맨스가 "불륜 미화 아니냐"라는 시선도 받았지만, 오래전 완성하지 못한 애틋한 사랑을 전미도, 이무생은 연기로 100% 납득시킨다.
"나 췌장암이래, 4기야. 살 확률이 0.8%래"라는 찬영의 고백에 남김없이 감정을 쏟아내며 오열하는 장면은 단연 압권. 매사 차분하고 어른스럽던 진석이 아이처럼 무너져내린 순간, 배우 이무생은 대사 없이 우리에게 말한다. "우리의 이별이 언제인지 모르니까 우리는 오늘, 지금 사랑해야 해"라고.
악인 편
<시민 덕희>, <노량: 죽음의 바다>, <더 글로리>, <봄밤>
어떻게 슈트발을 미워하겠어
<시민덕희> (2024)

<시민덕희>에서 이무생은 악랄한 보이스피싱 총책으로 분한다. 보이스피싱을 당한 평범한 시민 덕희(라미란)에게 사기를 친 조직원 재민(공명)의 구조 요청이 오면서 벌어지는 통쾌한 추적극을 다룬 영화에서 이무생은 수천억 원을 좌지우지하지만 누구에게도 존재를 드러내지 않는 인물로 남다른 카리스마를 선보인다. 시종일관 벙거지 모자로 얼굴을 가리며 비밀스럽게 움직이던 총책이 얼굴을 드러내는 순간, 양가감정이 교차한다. 나쁜 놈이지만, 공항에서, 화장실에서 유감없이 발휘되는 슈트발은 미워할 수 없기에.
비중은 작지만, 결정적 인물!
<노량: 죽음의 바다>(2023)

<노량: 죽음의 바다>에서 이무생은 임진왜란 중심에 있던 왜군 선봉장 고니시를 연기한다. 고니시는 퇴각이 어려운 절체절명의 위기에서도 왜의 승리를 위해 이순신(김윤석) 장군을 제거하기 위한 최후의 전략을 펴내는 인물. 비중은 작지만 결정적 역할이다. 자세히 보지 않으면 극중 고니시가 배우 이무생이라는 것을 알아보기 쉽지 않다. 그만큼 완벽하게 자신을 지우고 왜군으로 변신했다.
2분 등장으로 시선 강탈!
<더 글로리>(2022)

2022년 최고의 화제작 <더 글로리> 파트 1에서 단 2분간의 출연으로 쟁쟁한 출연자들의 연기를 압도한 활약도 빼놓을 수 없다. 이무생은 주여정(이도현)의 아버지를 살해해 교도소에 수감 중인 반성 없는 냉혹한 사이코패스 강영천으로 분해 시청자들의 공분을 샀다.
특히 강영천이 구속돼 있는 교도소에서 피해자 가족인 주여정의 엄마 상임(김정영)과 그가 대면하는 장면은 모두에게 섬뜩함을 안겼다. 상임은 영천에게 수감 중에도 여정에게 계속 편지를 보내며 정서적으로 괴롭힌 이유를 묻는다. 처음에는 눈가를 붉히며 반성한다 말하던 그가 이내 삐져나오는 웃음을 참으며 "심심해서요"라고 이죽대는 장면은 영광도 없겠지만, 용서도 없을 것이라는 드라마의 주제를 확인시켜주고 복수의 당위성을 높여준다. "사이코패스에 관한 서적을 참고해 캐릭터에 접근"한 이무생의 연기 열정으로 그렇게 또 하나의 명장면이 탄생했다.
분노 유발자
<봄밤>(2019)

<하얀거탑>(2007), <밀회>(2014),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2018)까지 안판석 PD의 드라마에 연달아 출연한 이무생은 <봄밤>(2019)에서 악질의사 남편 남시훈을 연기하며 주목을 받는다. <봄밤>은 미혼부 유지호(정해인)와 그가 아는 선배의 연인이었던 이정인(한지민)의 사랑을 통해 한국 사회에서 연애는 오롯이 개인의 것이 될 수 없다는 씁쓸한 현실을 비추는 드라마. 속물적 인간들이 득실대는 드라마에서 남시훈은 단연 눈에 띄는 빌런이다.
아내에 대한 폭행 전력에도 이혼에 협조하지 않겠다며 뻔뻔한 태도를 보이며 뒤로는 자신에게 유리한 수를 계산하는 양아치 같은 면모로 분노 유발 가정폭력 남편의 정석을 보여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