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얀 설산과 하늘이 맞닿아있는 곳에서 대원 두 명이 자전거를 타고 돌아다니며 확성기에 대고 오늘의 메뉴를 소개합니다. 이곳은 해발 3,810m, 평균기온 영하 54도에 해당하는 남극의 돔 후지 기지. 관측 대원인 여덟 명의 아저씨들은 넓은 테이블에 빙 둘러앉아 이제 막 식사하려 합니다.

몇몇은 땀을 뻘뻘 흘리면서도 후루룩 소리를 내며 미소 장국을 마시기에 여념이 없고 명란젓, 성게 알, 연어, 장조림 등이 들어간 오니기리를 우적우적 씹는 이도 있습니다. 바삭바삭해 보이는 튀김에 연근 무침, , 데리야키 소스를 끼얹어 끓인 생선조림까지 남극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다양한 음식들로 잘 차려져 있는 이들의 식탁. 영화는 전반부에서는 이 식탁을 보여주며 앞으로 꺼내려는 얘기를 짐작하게 합니다.

떠올리기만 해도 추운 기운이 느껴지는 남극은 그 어떤 동물도, 심지어 감기 바이러스조차 살 수 없는 장소입니다. 이곳에 모인 여덟 명은 대기학자 하라, 통신담당 료, 의사 후쿠다, 기상학자 히로시, 차량 담당 켄, 설빙학자 모토와 그의 팀원인 니이얀, 그리고 요리사 니시무라 준입니다.

가족들과 떨어져 외로운 기러기 생활을 하는 이들에게 유일한 낙이 있다면 니시무라의 요리를 먹는 것입니다. 영화를 보면 이들이 남극을 탐사하러 간 건지 음식을 먹기 위해 간 건지 헷갈릴 정도입니다. 니시무라를 제외하면 모두 요리를 먹을 줄만 알지 할 줄은 모르는 남자들이니 웃지 못할 에피소드도 많습니다.

한 예로 오늘의 요리가 최대의 관심사인 대원들은 우연히 재료 창고에 있는 새우를 발견하고 니시무라에게 에비 후라이(새우튀김)’를 해달라고 보챕니다. 하지만 이 새우는 이세에비라고 불리는 종으로 생선만한 크기라 회라면 모를까 튀김으로는 적합하지 않습니다. 니시무라가 아무리 얘기를 해도 대원들의 마음은 이미 에비 후라이로 대동단결한 터! 결국 대원들의 뜻에 따라 튀김을 만든 그날, 대왕새우의 크기를 보고 놀란 대원들은 멍한 표정으로 역시 큰 새우는 회가 좋을 뻔했다고 말하며 힘겹게 튀김을 먹습니다. 우리나라 대표 예능 프로그램인 무한도전’, ‘12’ 등을 보면 남자들끼리 모여 엉뚱한 실수를 늘어놓는 게 너무 재미있는데요, 이 영화도 그런 비슷한 코드로 웃음을 유발하는 듯합니다.

니시무라가 만드는 근사한 요리는 여기에 그치지 않습니다. ‘푸아그라라 불리는 거위 간 요리에 잘게 썬 고기와 생선, 와인, 허브 등을 넣어 찐 뒤 차게 식힌 테린’, 발사믹 소스를 곁들인 농어 찜 요리, 중국 코스 요리를 연상케 하는 깐쇼새우, 해파리냉채, 딤섬, 볶음밥까지! 영화에도 등장하는 대사처럼 여기가 남극이 맞나요?’ 묻고 싶을 정도입니다.

하지만 이 많은 요리 중에 제 기억에 가장 남는 건 닭튀김 요리인 가라아게였어요. 이 요리는 영화에 총 두 번 등장하는데, 처음은 남극으로 오기 전 니시무라의 아내가 만들어줬던 것이고, 두 번째는 대원들이 상심한 니시무라를 위해 만든 가라아게죠. 둘 다 요리에 서툰 사람들이 만든 터라 눅눅하고 기름이 잔뜩 배어 나옵니다. 하지만 이 음식에서 아내에 대한 그리움과 대원들의 따뜻한 마음을 동시에 느낀 니시무라는 눈물을 짓습니다. 음식에 대한 추억은 니시무라를 비롯한 대원들이 남극 생활을 버텨내는 힘이기도 합니다.

이 영화는 실제 남극 관측대원들의 조리를 담당했던 니시무라 준의 에세이 <재미있는 남극 요리인>을 원작으로 하고 있습니다. 이야기가 실화에 바탕을 두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나니 머나먼 남극에서 외로움과 싸워야 했을 대원들의 사연이 좀 더 애틋하게 느껴졌어요. 차갑고 외로운 땅 남극에 고립되어 있는 대원들에게 요리가 얼마나 큰 위로를 주는지 영화는 잘 전달하고 있습니다.

남극의 쉐프

감독 오키타 슈이치

출연 사카이 마사토, 코라 켄고

개봉 2009 일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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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속 메뉴 따라 하기

니시무라가 남극으로 오기 전, 아내가 만든 가라아게(닭튀김)를 보며 잔소리를 시작합니다. “ 왜 이렇게 눅눅한 거야? 좀 더 바삭하게 하면 좋잖아. 두 번 튀겼어? 180도에서 2! 불이 약했단 말이야.” 듣고 있으면 요리사의 아내란 쉬운 일이 아니구나 싶은 생각이 들 정도죠.

가라아게는 밑간한 재료(생선이나 고기)에 녹말가루나 밀가루를 묻혀서 튀겨내는 요리인데, 일반적으로 닭고기로 많이 만듭니다. 니시무라의 말대로 닭튀김을 할 때는 낮은 온도에서 튀기면 기름을 너무 많이 먹어서 눅눅해지기 쉽고 먹었을 때 소화도 잘 안되죠. 한 번에 오래 튀기기보다는 두 번 튀겨내면 더 바삭하고 속까지 잘 익습니다. 아래 소개하는 가라아게는 마늘칩을 넣어 마늘향을 더했어요. 니시무라의 얘기를 떠올리며 맛있게 만들어보세요.


가라아게

▶ 재료
닭다리살 400g, 마늘 2개, 녹말가루 2큰술, 밀가루 2큰술,
밑간 재료 - 다진마늘 1큰술, 후추 1/2작은술, 소금 1/3작은술, 청주 1큰술, 간장 2/3큰술

▶ 만드는 법
1. 닭다리살은 깨끗하게 씻어서 손질한 뒤 한 입 크기로 썰고, 밑간 재료에 버무린다.
2. 마늘 2개는 얇게 슬라이스해서 준비한다.
3. 밑간한 재료에 녹말가루와 밀가루를 넣고 잘 버무린 뒤 여분의 가루는 털어낸다.
4. 냄비에 기름을 넉넉히 붓고, 170도가 되면 슬라이스한 마늘을 먼저 튀겨낸 뒤 3의 닭고기를 튀겨낸다. 두 번 튀기면 더 바삭하다.


파란달 / 요리 연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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