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3, 미국 각종 포털의 메인 화면에 작가 버니 라이트슨의 작고를 알리는 기사들이 올라왔다. DC 코믹스는 그의 사망 후 수개월간 자사의 모든 주간 간행물에 버니 라이트슨을 추도하는 2페이지짜리 삽화를 삽입하였다. 일반인들에게 생소한 만화가에 대한 부고가 이만큼이나 뉴스에 오를 정도라면 자신이 몸담았던 업계에 큰 족적을 남긴 인물이었을 터. 

버니 라이트슨은 1960년대부터 지금까지 호러/오컬트/미스터리 장르만을 꾸준히 그리며 살아있는 전설이 되었던 만화가이다버니 라이트슨의 장점은 펜선을 이용한 극사실적인 세부 묘사에 있다. 만화 외에도 신문과 잡지 삽화 등도 그리던, 다작하는 작가였던 그의 이름을 크게 알린 작품이 있었다. 바로 지금까지도 DC 코믹스의 가장 큰 지적 자산 중 하나인 '스웜프 씽'이다.
 
1970년대에 다시 호러와 미스터리 장르가 화려하게 부활하며 급속도로 인기를 끌자, 미국의 양대 만화 출판사 마블코믹스와 DC코믹스는 <하우스 오브 미스터리>, <하우스 오브 시크릿츠> 등 단편 옴니버스 형식의 만화를 다량으로 쏟아내기 시작했다. 이 두 정기간행물을 그리던 버니 라이트슨은 <하우스 오브 시크릿츠> 96호에 늪지대에서 기어나온 듯한 몬스터를 처음으로 소개한다. 작가는 렌 윈, 그림은 버니 라이트슨이 그렸다.

표지에서도 버니 라이트슨만의 독특한 스타일을 확인할 수 있는 <하우스 오브 시크릿츠> 96호에서는 알렉스 올슨이라는 인물이 등장하는데, 그의 부인을 노리고 있던 동료에 의해 살해당한다. 하지만 죽지 않은 그는 늪지대에서 괴물로 환생하여 동료에게도 복수하고 부인의 목숨도 구한다. 하지만 부인은 괴물이 된 그를 알아보지 못하고, 그는 쓸쓸히 다시 늪지대로 돌아간다는 구슬픈 내용이었다버니 라이트슨과 방을 함께 쓰던 만화 업계 동료들은 이 스토리를 마음에 들어했다. '늪지대 괴물'이라는 개념 자체는 전혀 신선하지 않고, 1930년대 펄프 잡지 시절부터 등장하던 것이었지만 음모, 배신, 복수의 요소가 늪지대 괴물과 만난 것은 퍽 신선했다.

문제는 작가 렌 윈이 수개월 전 경쟁사 마블코믹스에서 똑같은 캐릭터를 이미 데뷔시켰다는 것이다. '-씽'이라는 그 캐릭터는, 얼굴과 배경 스토리만 약간 다를 뿐 엄밀히 말하자면 본질적으로는 동일한 개념이었다. 마블코믹스에서 가만히 있겠냐는 동료들의 걱정에도 불구하고, 렌 윈과 버니 라이트슨은 그냥 같은 스토리를 DC 코믹스에서도 출간해버린다. 다행히 마블코믹스에서는 크게 문제를 제기하지 않았는데, 늪지대 괴물이라는 개념이 이미 식상했다는 사실도 이러한 결정에 한몫을 했다.

그렇게 해서 다시 만들어진 2대 스웜프 씽은 알렉 홀란드라는 과학자다. 식물의 성장 속도를 기하급수적으로 늘려 전 세계적 기아를 해결할 방법을 찾아낸 그는 이 발견과 이해 관계가 있던 정부 관계자들에 의해 실험실 방화에 의한 죽임을 당한다. 불타는 실험실 안에서 온 몸에 화학 물질과 불이 옮겨붙어 고통에 몸부림치던 그는 실험실 밖으로 뛰쳐나와 근처 늪지대에 몸을 투신한다. 그리고 얼마 후, 늪지대에서 식물인지 사람인지 알 수 없는 괴생명체가 일어선다. 스웜프 씽의 탄생이었다.

2대 스웜프 씽은 <하우스 오브 시크릿츠>에 등장했던 괴물과는 형태적으로 달라, 사람들과 의사 소통도 가능하고 얼굴도 좀 더 히어로에 가까운 모습을 하고 있었다. 그래도 본질적으로는 '-씽'의 아류에 가까웠기에 그냥 잊힐 수 있는 캐릭터였다. DC코믹스 편집국에서도 사실 스웜프 씽을 롱런할 캐릭터라 판단하지 않고 있었다.

그런데 1980년대 초, 유능한 영국 출신 작가 앨런 무어(왓치맨, 브이 포 벤데타, 더 킬링조크)가 스웜프 씽을 깊이 있는 캐릭터로 변모시킨다. <사가 오브 스웜프 씽>의 집필을 맡은 앨런 무어는 일단 스웜프 씽을 늪지대 이끼를 뒤집어쓴 괴물이 아니라, 죽은 알렉의 기억과 의식이 전이된 초자연적 영령과 같은 존재로 바꿔버린다. 스웜프 씽은 이로 인해 대자연의 모든 식물들과 대화할 수 있고 그것들을 조종할 수 있으며, 의지에 따라 신체를 자유자재로 변화시킬 수 있는 강력한 존재로 탈바꿈하게 된다.

스웜프 씽은 이미 TV 시리즈와 영화로 수 차례 만들어졌다. 1990년대 초에 100회 분량에 가까운 TV시리즈가 방영되었고 1991년에는 아동용 만화로도 만들어졌다. 1982년에는 웨스 크레이븐 감독에 의해 영화화되었고 후속편도 제작되었다. 추후에 제작 스케줄이 잡힌 영화 <저스티스 리그 다크>에 등장할 것으로 예정되어 있고, 2016년에는 테스트 영상도 공개되었다.


최원서 / 그래픽노블 번역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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