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괴하고도 매혹적인 영화를 선보이며 국내에서도 마니아를 거느린 요르고스 란티모스 감독이 엠마 스톤 주연의 영화 <가여운 것들>로 돌아왔다. 요르고스 란티모스 감독은 <송곳니>의 기호가 조작된 가정집과 <더 랍스터>의 사랑이 의무가 된 도시처럼 폐쇄적인 가상의 공간을 만들어내 현대 사회를 비판하고 풍자해 왔다. <가여운 것들>은 이런 그의 초기작과 공명한다. <가여운 것들>에서 과학자 갓윈 백스터에 의해 통제되는 벨라는 <송곳니>의 사회에서 고립되어 부모의 조작된 교육만 받은 채로 길러지는 세 남매와 같다. 다만 <송곳니>가 잘못된 시스템에 의해 통제되는 상황을 중점적으로 다룬다면, <가여운 것들>은 그 상황을 출발점으로 삼는다. 영화는 이후 통제에서 벗어난 벨라가 현실 세계와 접촉할 때 어떻게 성장하는지 담아낸다. <송곳니>를 비롯한 요르고스 란티모스 감독의 기괴한 세계관을 엿볼 수 있는 작품 네 편을 소개한다.
<송곳니>

제62회 칸국제영화제에서 주목할만한 시선 부문 대상을 받은 <송곳니>는 요르고스 란티모스 감독을 국제적으로 알린 첫 작품이다. 도시에서 멀리 떨어진 외딴곳에 높은 벽으로 둘러싸인 요새 같은 집이 있다. 이곳에는 세 남매를 비롯한 일가족이 외부와 단절된 채 살고 있다. 유일하게 집 밖으로 나갈 수 있는 이는 이 집의 가장뿐이다. 세 남매에게는 아버지가 가르쳐준 세상만이 전부이며, 이들은 송곳니가 빠졌을 때 밖으로 나갈 수 있다고 믿는다. 이 인공적인 세계에서 언어와 기호는 조작되고, 정원으로 들어온 길고양이는 집에 침입한 살인마로 변한다. 아버지는 아들의 성적 욕구를 풀어주기 위해 회사 경비원 여성을 매수해 아들과 성관계를 맺게 한다. 큰딸은 외부에서 온 경비원 여성에 의해 세상과 접촉하면서 집에서 벗어나 바깥세상으로 나가려 한다.

<송곳니>는 인간의 인식을 조작할 수 있는 모든 사회적 통제에 대해 탐구한다. 좁게는 극단적인 양육 방식을 가진 아버지에 의해 일어난 가족 단위의 통제를 보여주고, 넓게는 권력자의 독재와 파시즘에 물든 사회를 풍자했다. 체계적으로 조작된 세계 안에 머무르는 사람은 그 너머를 내다보기 어렵다. 큰딸이 집 밖으로 나가기 위해 아령으로 자신의 송곳니를 내리치는 장면은 조작된 인식에서 벗어나는 일이 그만큼 힘든 일임을 보여준다. 송곳니가 빠지고 피투성이가 된 채 세상으로 나왔지만, 그녀는 여전히 아버지의 조작된 세계 안에 갇혀 있다.
<더 랍스터>

<더 랍스터>의 기이한 세계관은 아일랜드의 시골을 배경으로 하지만 그 어디에도 없는 가상의 공간에서 펼쳐진다. 영화는 독신자가 파트너를 찾지 못하면 동물로 변해야 하는 근미래의 디스토피아를 그린다. 아내에게 버림받고 혼자가 된 남자 데이비드(콜린 파렐)는 커플이 되지 못하면 동물로 만들어버리는 호텔로 보내진다. 호텔에 도착한 이들은 45일 이내에 자신의 파트너를 찾아야만 인간으로 살아갈 수 있다. 사이렌 소리가 울리면 모두 숲속으로 이동해 '외톨이'를 사냥한다. 호텔에서 도망쳐 독신주의를 표방하는 이들을 체포하면 호텔 체류 기간을 늘릴 수 있다. 기간 내에 파트너를 찾게 되더라도 한 달간의 테스트 기간을 거쳐야지만 이름 없는 도시로 나갈 수 있다.

<더 랍스터>는 현대 사회에서 사랑이 어떻게 통제되고 강요되는지 보여준다. 영화의 세계에서 사랑은 선택이 아닌 의무이고, 사랑의 양태는 지극히 단순화된다. 이성애만 사랑으로 인정받을 수 있고 그 외는 모두 금지된다. 남녀의 사랑이라고 해서 다 이루어지지도 않는다. 서로가 공통된 특징을 가져야 한다는 관계 법칙이 따라붙는다. 이를 위해 절름발이 남자(벤 위쇼)는 코피를 자주 흘리는 여자와 맺어지기 위해 평생 스스로 코를 때려 코피를 흐르게 만든다. 데이비드는 비정한 파트너가 개가 된 형을 죽여버렸을 때조차 그녀의 날카로운 눈초리를 피해 화장실에서 울분을 터트린다. 성적 욕구와 신체적 사랑을 집착적으로 보여준 감독의 전작과 달리 <더 랍스터>는 처음으로 정신적인 사랑을 그리고 있다. 이는 이후 <더 페이버릿: 여왕의 여자>와 <가여운 것들>에서도 이어진다.
<킬링 디어>

<킬링 디어>는 <송곳니>에 이어서 일가족 서사로 또 한 번 기괴하면서도 매혹적인 세계로 관객을 끌어들인다. 외과 의사 스티븐(콜린 파렐)은 의사인 아내 애나(니콜 키드먼)와 딸 킴, 어린 아들 밥과 함께 이상적인 가정을 꾸렸다. 이들의 삶은 물질적으로 풍족하지만, 그들이 사는 큰 집에는 적막한 기류가 흐르고 있다. 스티븐은 그를 찾아오는 소년 마틴(배리 케오간)과 이따금 식사를 하고 대화를 나눈다. 스티븐은 마틴을 호의적으로 대하지만 그에게서는 어딘지 불안한 기색이 감돈다. 스티븐은 시간이 갈수록 불편한 말을 늘어놓는 마틴과 거리를 두지만, 마틴은 발길이 뜸해진 스티븐에게 계속 찾아가고 급기야 아이들이 서서히 죽어갈 거란 말을 남긴다. 마틴의 말에 따라 스티븐의 아이들은 의문의 병에 걸리기 시작한다.

언뜻 보면 <킬링 디어>는 요르고스 란티모스의 비현실적인 세계에서 동떨어진 현실적인 영화로 보일 수 있다. 비현실성과 상징성을 덜어낸 미장센은 현실과 닮아 친숙해 보이지만, 그 친숙함은 드러나지 않은 공포에 더욱 숨죽이게 만든다. <킬링 디어>는 배우 배리 케오간의 소시오패스적인 이미지를 각인시킨 영화기도 하다. 그가 연기한 마틴은 좀처럼 감정을 드러내지 않고 어떠한 말에도 동요하지 않는다. 감정적으로 동요되지 않는 그는 이미 스티븐보다 심리적 우위를 점하고 있다. 초점을 잃은 그의 눈빛은 그의 생각을 읽을 수 없기에 두려움을 자아낸다.
<더 페이버릿: 여왕의 여자>

<더 페이버릿: 여왕의 여자>(이하<더 페이버릿>)에서 여성들의 정서적, 성적 유대는 남성들의 정치 책략만큼이나 드라마틱하게 보인다. 18세기 영국 절대적인 권력을 지닌 앤 여왕(올리비아 콜맨)은 신경질적이고 예민하다. 궁정의 시종들에게 소리를 내지르는가 하면 뾰로통한 표정으로 심상에 잠기기 일쑤다. 통풍을 앓고 있는 그녀는 몸과 마음이 쇠약한 상태로 어릴 적부터 절친한 친구인 사라 제닝스(레이첼 와이즈)에게 정치적인 결정을 대부분 맡겨두고 침대에 누워 보고를 받는다. 사라는 그런 여왕의 총애를 이용해 자신의 야욕을 채운다. 몰락한 귀족 가문 출신의 애비게일(엠마 스톤)은 퇴락한 신분을 만회할 요량으로 머나먼 친척인 사라에게 찾아와 일자리를 부탁한다. 사라의 하녀가 된 애비게일은 늦은 밤 앤 여왕과 사라의 밀회를 엿보고, 그들의 비밀을 움켜쥐게 된다. 한편 그녀는 염증으로 고통스러워하는 앤의 다리에 숲에서 캐온 약초를 발라준 일로 여왕과 공작부인의 환심을 산다.

<더 페이버릿>은 요르고스 란티모스 감독이 연기 디렉팅에 재주가 있음을 보여준 작품이다. 비극적인 분위기가 더 도드라지는 이전작과 달리 <더 페이버릿>은 세 여성의 균형 잡힌 유머가 돋보이는 코미디이기도 하다. 앤 여왕의 총애를 독차지하기 위해 사라를 음모하는 애비게일을 연기한 엠마 스톤은 이 영화를 통해 할리우드 배우의 안전지대를 벗어났다는 평을 받기도 했다. 요르고스 란티모스 감독은 전작에서 배우들에게 비현실적이고 양식화된 연기 톤을 유지하게 했다면, <더 페이버릿>에서는 훨씬 더 현실에 가깝고 유머러스한 연기를 선보이게 했다. 또 보통의 영화 현장보다 더 리허설을 길게 가지기도 했다. 란티모스는 한 인터뷰에서 “<더 페이버릿>에서는 배우들이 3주 동안 신체 운동을 포함한 저만의 방법을 따라주었다. 예를 들어 6명의 출연진이 손을 잡고 리허설 공간에서 움직이기 시작하고, 서로 얽히면 어떻게 풀어야 할지 알아내야 했다. 이는 실제 생활에서는 존재하지만 촬영할 때는 예측할 수 없는 상황에 대해 대비할 수 있게 해준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