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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카모토 류이치 트리뷰트 콘서트에서 만나는 영화음악

김지연기자

故 사카모토 류이치(1952-2023)가 세상을 떠난 지 일 년이 지났다. 더 이상 그가 직접 연주하는 그의 곡들을 들을 수는 없지만, 그가 좋아했다는 문구 "Art is long, life is short"(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이라는 말마따나 그의 음악은 영원히 남아 많은 이들에게 위로와 울림, 감동을 선사하고 있다.

 

사카모토 류이치 트리뷰트 콘서트 포스터

3월 24일 ‘사카모토 류이치 트리뷰트 콘서트’가 서울 잠실 롯데콘서트홀에서 열린다. 콘서트에서는 한주헌 예술 감독과 서울비르투오지 챔버 오케스트라의 연주로 사카모토 류이치가 남긴 곡들을 들을 수 있다. 콘서트 세트리스트는 사카모토의 앨범에 수록된 곡들과 영화음악으로 쓰인 곡들로 이루어져 있는데, 본 기사에서는 트리뷰트 콘서트 세트리스트 중 사카모토의 영화음악들을 소개한다. 알고 들으면 더욱 잘 들리는 법이니.

 


Bibo No Aozora

영화 <바벨>(2006)

‘Bibo No Aozora’는 ‘아름다운 푸른 하늘’이라는 뜻의 일본어를 그대로 음차한 제목이다. 영화 <바벨>은 알레한드로 곤잘레스 이냐리투 감독의 작품으로, 개별적인 네 가족의 이야기가 서로 연결되는 구조를 취하는 스릴러다.

사카모토 류이치의 ‘Bibo No Aozora’는 <바벨>의 엔딩에 삽입되어 영화의 여운을 더한다. 사카모토 류이치는 <바벨>의 음악감독은 아니었지만, <바벨>의 엔딩곡을 작곡한 인연으로 인해 훗날 알레한드로 곤잘레스 이냐리투 감독의 <레버넌트: 죽음에서 돌아온 자>의 음악감독을 담당하게 된다.

 


Solitude

영화 <토니 타키타니>(2004)

무라카미 하루키의 동명 단편을 바탕으로 한 영화 <토니 타키타니>의 주된 정서는 단연 ‘고독’이다. 건조한 무채색 화면을 고스란히 음악으로 옮긴 듯한 사카모토 류이치의 사운드트랙은 화려한 세션 없이 피아노 솔로로만 이루어져 영화처럼 단조롭고 쓸쓸한 정서를 품고 있다. 그중 ‘Solitude’는 영화의 주된 테마로, 우울하고도 아름다운 선율이 돋보인다.

 


출성(King’s March)

영화 <남한산성>(2017)

사카모토 류이치는 한국의 전통 음악에도 많은 관심을 가졌다. 지금은 넷플릭스 시리즈 <오징어 게임>의 감독으로 더욱 유명해진 황동혁 감독은 사카모토 류이치에게 <남한산성>의 음악 작업을 의뢰했고, 사카모토 류이치는 본격적으로 한국 전통 음악을 배우고 싶어 흔쾌히 수락했다. 사카모토는 현대의 서양 교향악과 한국의 전통 음악을 혼합한 스코어를 선보였는데, 현악기와 피아노, 대금, 아쟁과 피리 등을 접목해 아름답고도 박진감 있는 사운드를 만들어냈다. 그중 ‘출성’(영문 제목: King’s March)은 치욕스러운 역사를 음악으로 표현한 듯, 비장한 듯하면서도 쓸쓸한 정서가 배어 있다.

 


Rain, The Last Emperor

영화 <마지막 황제>(1987)

아시아 아티스트 최초로 사카모토 류이치에게 아카데미 음악상과 그래미상을 안긴 작품, <마지막 황제>. 사카모토는 이 작품으로 미국 아카데미 이외에도 골든 글로브, LA 비평가협회 등 주요 시상식의 음악상을 휩쓸었다. (사카모토는 <마지막 황제>에서 ‘아마카스 마사히코’라는 일본군 장교 역할로 출연하기도 했다.)

<마지막 황제>에서 가장 많은 사랑을 받은 사운드트랙은 단연 ‘Rain’이다. ‘Rain’의 부제는 ‘I Want A Divorce’인데, 황제의 두 번째 부인이 “우리 이혼해요!”라며 빗속으로 뛰쳐나가는 장면에 삽입되었다. 영화의 메인 테마곡인 ‘The Last Emperor’는 외국인이 느끼는 ‘중국의 색채’가 진하게 밴 트랙으로, 과연 이탈리아인 감독이 연출한 중국 역사 영화에 걸맞은 음악이다.

 


 

 

Aqua

영화 <괴물>(2023)

사카모토 류이치의 마지막 영화음악 작업은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괴물>이 되었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은 <괴물>의 촬영 장소인 호숫가 마을을 보고 사카모토 류이치의 음악을 떠올렸고, 사카모토 류이치에게 기존 곡을 사용해도 된다는 허락을 받았다. <괴물>의 엔딩에 삽입된 ‘Aqua’는 본래 사카모토 류이치의 앨범에 실린 곡으로, 국내에서는 <괴물>의 인기와 함께 다시금 역주행하고 있다. 고레에다 감독은 <괴물>의 엔딩 장면에 사카모토의 ‘Aqua’를 삽입한 이유로 “축복하는 정서를 담기 위해”라고 전하기도 했다. ‘Aqua’는 사카모토의 딸이 태어났을 때, 그가 축복의 의미로 만든 곡이기 때문이다.

 


Merry Christmas, Mr. Lawrence

영화 <전장의 크리스마스>(1983)

〈전장의 크리스마스〉 속 사카모토 류이치.
〈전장의 크리스마스〉 속 사카모토 류이치.

영화를 본 적이 없어도, 트랙의 제목을 몰라도, 멜로디를 들으면 누구나 “아! 이 노래!”라고 할 법한 곡이다. ‘옐로우 매직 오케스트라’(YMO)에서 활동하던 사카모토 류이치가 영화음악 작업에 나선 건 영화 <전장의 크리스마스>가 시작이었다. 사카모토 류이치는 이 영화에서 주연을 맡아 데이비드 보위, 톰 콘티, 기타노 다케시 등과 호흡하기도 했다. 현재는 그가 영화에 출연했다는 사실보다도(특히 국내는 90년대말부터 일본 문화 개방이 본격화됐기에) 영화의 테마곡이 훨씬 유명해져, ‘Merry Christmas, Mr. Lawrence’는 사카모토 류이치의 대표곡으로 자리 잡았다.

 


 

 

 

Shining Boy & Little Randy

영화 <별이 된 소년>(2005)

<별이 된 소년>은 일본 최초의 코끼리 조련사, 사카모토 테츠무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로, <아무도 모른다>로 칸영화제 남우주연상을 최연소 수상한 야기라 유야가 생애 두 번째로 출연한 영화이기도 하다.

<별이 된 소년>은 태국의 이국적인 풍광과 코끼리와 소년의 교감, 그리고 소년의 성장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다만, 실존 인물은 20세의 어린 나이에 세상을 떠났는데, 실화를 모티브로 만든 영화 역시 따뜻하고 감동적이면서도 먹먹하다. 그래서인지, 영화 제목과 동명의 사운드트랙인 ‘Shining Boy & Little Randy ’는 고요하고 평안하면서도, 묘하게 서글픈 정서를 담고 있기도 하다.

 


The Sheltering Sky

영화 <마지막 사랑>(1990)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 감독이 <마지막 황제> 이후에 선보인 작품은 <마지막 사랑>이다. 베르톨루치 감독은 전작에 이어 <마지막 사랑> 역시 사카모토 류이치에게 영화음악 작업을 맡겼다. 결국 이 작품으로 사카모토 류이치는 다시금 골든 글로브에서 음악상을 수상해, 베르톨루치 감독의 선택은 역시나 옳았음이 증명되었다.

여담으로, 사카모토 류이치는 암 투병 중 “나는 앞으로 몇 번의 보름달을 볼 수 있을까”라는 말을 자주 중얼거렸다고 하는데, 이는 그가 음악감독을 맡은 영화 <마지막 사랑>의 대사이기도 하다. 영화의 메인 트랙 ‘The Sheltering Sky’는 사카모토 본인에게도, 그리고 사카모토를 추모하는 우리에게도 각별한 음악인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