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야말로 신이 점지해 준 내한 타이밍이 아닐까.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이 서울을 방문하기로 예정된 바로 전날 오후, <괴물>이 국내 누적 관객 수 50만 명을 돌파했다. <괴물>은 여러 번 볼수록 새롭게 보여 많은 관객들의 ‘N차 관람’을 이끌어낸 바, 지난해 11월 29일 전국 극장에서 개봉해 약 70여 일간 장기 흥행 중인 <괴물>은 2월 2일 오후 4시경 누적 관객 수 50만 명을 돌파했다. 이는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이 연출한 일본 실사 영화 중 최고 흥행 기록이며, 최근 15년간 나온 일본 실사 영화 중에서 두 번째로 흥행한 기록이다.
지난 3일 내한해 GV 등으로 국내 관객과 호흡한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은 2박 3일의 내한 일정을 마무리하며 국내 취재진들과 진솔하게 소통하는 자리를 마련했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은 인터뷰에서 거듭 한국의 수입사, 배급사, 영화관 등의 관계자에게 감사를 전하며 개봉을 한 후 두 달이 지났음에도 여전히 뜨거운 관심을 받는 것을 당연하지 않게 여기는 모습이었다. 5일 배급사 NEW 사옥에서 진행된 인터뷰의 전문을 옮긴다.
*결말에 대한 스포일러가 다수 포함되어 있으니 <괴물>을 먼저 관람하고 인터뷰를 읽는 것을 추천합니다.

<괴물>은 최근 한국 누적 관객 50만 명을 넘겼어요. 상업영화도 아닌 예술영화로서는 기록적인 흥행이에요. 한국에서의 흥행의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작품이 가지고 있는 힘이 중요했다고 생각합니다. 무엇보다 사카모토 유지 각본가님이 써주신 이야기와 각본의 전개 방식, 그리고 관객들을 끌어들이는 힘이 매우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한국에 여러 번 찾아와준 두 소년(미나토 역의 쿠로카와 소야, 요리 역의 히이라기 히나타)이 이미 많은 팬을 형성하고 있고, 두 소년의 덕이 크지 않나 싶습니다.
<괴물>에 대한 한국 반응이 뜨겁다는 것을 사전에 알고 계셨나요? 또, 서울에 와서 GV 등을 진행하며 가장 기억에 남았던 순간들이 있다면 말씀해 주세요.
한국에 오기 전에는 인터넷에서 평가를 잘 찾아보지 않는 편이라 잘 몰랐습니다. 평가를 보면 심리적으로 좋지 않기 때문에.(웃음) 하지만 먼저 한국에 왔던 두 소년들(쿠로카와 소야와 히이라기 히나타)이 한국에 왔을 때 굉장히 많은 분들이 환대해 주셨다고 말해주었습니다. 또 이번에 서울에 와서 GV를 했을 때, (일본에서처럼) N차 관람을 하시는 분들이 많구나,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벌써 열몇 번을 봤다는 분도 있었고요. 저보다 더 영화에 대해 깊이 포착하시는 분들도 있었습니다.

현재 한국에서는 아동학대나 교권 추락 등에 대한 문제가 화두에 오르고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한국의 사회적인 이슈가 영화의 흥행에도 많은 영향을 미친 것 같은데요. 이런 현상에 대해서 알고 계신지, 혹은 알고 계신다면 소감이 어떠신지 궁금합니다.
한국에서 그런 사건이 있었다는 것은 알고 있습니다. <괴물>이 프랑스에서 개봉할 당시에도, 프랑스의 한 학교에서 왕따 사건이 있었고, 아이가 자살하게 된 일이 있었습니다. 사회적인 사건 때문에 영화를 본 사람이 있을 수도 있지만, 그 일 자체가 좋은 일은 아니긴 하죠. 사실 제가 이 영화를 기획한 건 2018년 12월이었습니다. 코로나19가 발생하기 전에 플롯이 나온 상태였고, 팬데믹 기간에 촬영을 했지요. 영화를 다 찍고 나서 개봉하기까지, 코로나19라는 힘든 일도 있었지만 전 세계적으로 분단이라는 것을 상징할 수 있는 일들이 많이 일어났어요. <괴물>이 그리고 있는 일들이 마치 현재의 사회를 상징하고 있는 듯 느껴지기도 하고요.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것들, 그리고 이해하고 싶지 않은 것들에 대해 이해를 포기하고 그것을 ‘괴물’이라고 치부해버리는 상황이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죠. 사카모토 유지 각본가님은 아마도 시대를 먼저 읽고 시대의 위기의식을 먼저 예견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합니다. 이미 일어난 일을 바탕으로 글을 쓰는 게 아니라 시대의 상황을 예견해서 썼기에, 지금 사회와 맞아떨어지는 게 아닌가 싶어서 그의 재능이 대단하다고 느껴집니다.

<괴물>은 기존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님의 작품과 다소 달라요. 데뷔작 <환상의 빛>을 제외하고는 모두 본인의 각본으로 영화를 만드셨는데요. 이번에는 사카모토 유지의 각본을 연출하셨죠. 만약 <괴물>의 각본과 연출을 본인이 모두 담당했더라면, 어떻게 달라졌을까요?
<괴물>은 내가 썼더라면,이라는 생각조차 해보지 않았어요. 각본을 읽었을 때, 이건 내가 쓸 수 없는 작품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물론 사카모토 유지와 저는 각본에 대해 의견의 캐치볼을 3년간 이어갔고, <괴물>이 나와 거리가 먼 작품도 아니죠. 그런데 사카모토 유지의 각본은 나의 것보다 스토리텔링과 흡입력이 강했기에 내가 쓰지 못하고, 저에게 좋은 공부가 되었습니다. 오래도록 내가 각본을 쓰고 연출을 하다 보니, 영화의 구성이나 인물, 대사가 조금씩 비슷해졌다는 사실을 스스로 느낄 수밖에 없었고, 스스로에게 질리는 측면이 있었습니다. 특히나 <괴물> 중 음악실 장면을 읽고는 굉장한 감동을 받았는데요. 저는 절대 이렇게 못 쓸 것입니다. 제가 <괴물>을 썼다면 이 장면에는 미나토와 요리가 나왔을 것입니다. 전혀 관련 없어 보이는 두 사람(교장선생님과 미나토)이, 한 공간에서 같이 악기를 부는 것은, 사카모토 유지만이 쓸 수 있는 장면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일본과 한국은 특히 보수적인 나라라, LGBTQ를 소재로 한 영화가 일본과 한국에서 흥행했다는 것 자체가 파격이기도 한데요. 처음 LGBTQ를 소재로 영화를 하게 되었을 때, 두려움이나 망설임은 없었나요.
<괴물>의 플롯을 읽었을 때, ‘이 영화에서는 정면으로 퀴어 소년을 그려야 하는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굉장히 섬세한 연출과 대응이 필요하기에, 스태프들에게 공부(LGBTQ)를 하도록 했습니다. 그리고 아이들에게 연기를 지도하는 데에도 새로운 노력이 필요했습니다. 전작(<어느 가족> <진짜로 일어날지도 몰라 기적> 등 아이가 나오는 영화)에서는 아이들을 캐스팅한 후, 각본을 아이들의 개성에 맞게 고쳐 썼는데요. 또 각본 전체를 아이들에게 주지 않고 각 장면에 맞는 대사와 상황을 전달하면서 배역과 배우의 개성이 겹쳐지게끔 연출했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아역 배우들에게 그 작업을 하는 것은 위험하다는 생각을 해서, 처음부터 아이들(쿠로카와 소야, 히이라기 히나타)에게 각본을 읽게 하고 LGBTQ 교육을 했습니다. 성 정체성이라는 것은 어떤 종류가 있는지, 신체적인 변화에는 어떤 것이 있는지 등의 성교육을 보건 교육 전문가를 통해 진행했어요. 그리고 촬영 현장에도 인티머시 코디네이터(신체 접촉, 노출 장면 촬영시 배우와 제작진을 조율, 지원하는 전문가)를 불러 신체 접촉이나 심리 표현 등에 문제가 없도록 진행했습니다. 아이들에게 부담이 가지 않는 방식으로 영화를 연출하려고 했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숙제나 개선점들은 많이 남아 있겠지만요.

<괴물>에서 미나토(쿠로카와 소야)와 요리(히이라기 히나타)가 즐겨 하는 ‘괴물은 누구게’라는 놀이가 일본에서는 유명한 놀이인가요?
저는 그 놀이를 한 적은 없습니다.(웃음) 잘은 모르지만, 일반적인 놀이는 아닐 것 같습니다. 각본가님이 생각해낸 놀이일 수도 있죠. 그 놀이는 자기가 무엇인지 스스로는 모르고 있고, 주위에서 자신을 바라봄으로써 비로소 내가 무엇인지 알게 되어가는 그러한 놀이잖아요. 그래서 <괴물>의 테마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생각했고, 사카모토 유지 각본가가 그래서 굉장히 뛰어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괴물>에는 알쏭달쏭한 장면이 많아요. 예를 들어, 집에서 미나토가 지우개를 떨어트리고, 엄마가 올 때까지 똑같은 자세로 있는다든지요. 이 장면에 대한 해석을 해주신다면요?
이 영화 속에서는 마지막까지도 전혀 해결이 되지 않은 묘사들이 존재하는데요. GV 때도 많은 질문을 주신 부분입니다. 일반적인 영화라면 그런 묘사들의 이유가 후반부에 밝혀지게 되는데, 사카모토 유지 각본가님이 쓰신 이야기를 보면, 엄마의 시점에서는 관객들이 엄마의 기분과 정서에 똑같이 젖어들어가길 바라는 의도가 있었을 거라는 생각을 하고요. 관객들이 엄마가 얻은 정보만으로 엄마가 느끼는 것, 학교 탓을 하게 되는 것과 같은 정서를 느꼈으면 했습니다. 미나토가 집에서 지우개를 떨어뜨리고 엄마가 올 때까지 똑같은 자세로 엎드려 있는 부분은, 그것을 엄마가 봤을 때는 ‘내 아들에게 무언가가 일어나고 있는데, 뭔지 모르겠다’라는 감정을 관객들이 느끼길 바랐습니다. 또 엄마가 슈퍼마켓에서 아이에게 발을 거는 교장을 보는 부분은 ‘저 교장은 말도 안 되는 교장인 것 같다’라고 느끼는 감정을 관객들이 똑같이 느끼게끔 하는 건데요. 아이들에게 이런 장면(알쏭달쏭한 장면)을 연기 지도할 때에는 동작으로 감정을 치환하라는 말을 했었습니다. 기본적으로 감정은 손끝에도 있고, 배에도 있고, 발에도 있다고 말하면서요.

두 아이가 뛰어가는 마지막 장면이 아름다우면서도 슬프고, 또 여운이 많이 남아요. 다양하게 해석될 수 있을 것 같은데요. 마지막 장면은 어떤 부분에 중점을 두고 연출하셨는지 궁금합니다.
엔딩을 찍을 때는 두 배우에게 ‘소리를 질러도 되고, 뛰어올라도 되고, 일단 기뻐해라!’라고 말했습니다. ‘우리는 우리로서 괜찮다’라는 사실에 대해 스스로 축복하라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리고 사실, 포스터에 나온 이미지처럼 원래는 엔딩 장면에 두 아이가 뛰어가가다 멈춰서 뒤를 돌아보는 장면을 넣었었는데요. 故 사카모토 류이치의 ‘Aqua’(아쿠아)를 입혔을 때는, 둘이 멈추는 장면보다 그대로 뛰어가는 것이 더욱 ‘축복’이라는 정서에 잘 어울린다고 생각해, 마지막에 편집을 바꿨습니다. 사카모토 류이치의 ‘Aqua’는 그분의 딸이 태어났을 때 축복하는 마음을 담아 만든 곡이라고 알고 있어서, 더 축복하는 엔딩 장면과 잘 어우러진다고 생각했습니다.

<괴물> 한국 개봉 당시 진행된 화상 기자간담회에서 영화 속에서 가장 괴물 같은 사람을 굳이 꼽자면, 미나토와 요리가 괴롭힘을 당할 때 보고만 있는 ‘방관자’라고 하셨는데요. 그 이유가 궁금합니다.
제가 그런 말을 했었군요.(웃음) 요리의 아버지(가정폭력 가해자)나 교장선생님(손녀를 죽게 만들었다는 의혹이 있는 인물)처럼 인간성을 잃어버린 존재를 괴물이라고 표현하는 건 아주 쉬운 일이죠. 그런데 그런 사람들보다도, 아이들을 궁지로 모는 사람은 오히려 가장 가까이 있는 엄마나 선생님입니다. 호리 선생님이 종종 ‘남자답게’ 등의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말하는 것처럼요. 아무 생각 없이 내뱉는 그런 언어들이 ‘동조압력’, 남과 똑같은 사람이 되어야만 한다는 생각을 심어주는 거죠. 그래서 반 아이들은 tv 탤런트를 따라 하며 요리를 놀리기도 하고요. 그 아이들이 처음부터 나빠서 그랬다기보다는, (아이들에게) 어른들의 가치관이 스며들었기 때문이죠. (저는 <괴물>을 통해) 언뜻 보았을 때 평범한 사람들이 아이가 스스로 “나는 괴물일지도 몰라”라고 생각하게 만드는 가장 큰 원인일 수도 있다는 점을 관객들에게 말하고 싶었습니다. 대부분의 관객이 요리의 아빠나 교장선생님은 아니겠죠. 호리 선생님이나 미나토의 엄마와 같은 입장에서 살아갈 거라고 생각하는데, (평범한 사람들이 스스로가 괴물일 수도 있겠구나 생각을 할 수 있게끔) 그래서 엔딩 장면에 두 소년이 우리들 쪽을 돌아보는 장면을 처음에 넣었던 것이기도 하고요.

이번에 한국에 와서 송강호, 배두나 등 한국 영화인들을 만나신 걸로 알고 있습니다. <브로커>처럼, 다시 한국 배우와 작업할 계획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한국과의 협업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은 없지만, 할 수 있으면 다시 하고 싶습니다. (이틀 전) 한국에 와서 송강호, 배두나를 오랜만에 만나서 맛있는 음식을 먹으면서 가족 얘기 등 즐거운 잡담을 나눴습니다. 같이 일하고 싶은 배우는 너무 많지만, 여기서 몇 분만 거론하면 다른 분들에게 오퍼 하기 힘들어질 것 같습니다.(웃음)
한국에는 일본 영화, 그리고 특히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님의 작품을 좋아하는 팬들이 많습니다. 한국에서의 인기 요인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제가 데뷔했을 때가 마침 부산국제영화제가 시작한 시기와 겹쳤습니다. 그리고 그래서 부국제와 저는 함께 영화를 통해서 걸어왔다고 할 수 있고, 부산은 항상 저를 초청해 주었습니다. 그건 부산국제영화제의 전 이사장 김동호 선생님을 비롯한 故 김지석 선생님(부산국제영화제 수석 프로그래머) 덕분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와이 슌지 등 다른 일본 감독님들의 덕도 있고요. 그리고 한국 관객들이 영화제에서 영화를 보고, 그 뒤로 다른 관객분들이 점점 더 많은 일본 영화를 보게 되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런 분들의 덕이 굉장히 큽니다.
한국에서는 하야카와 치에 감독의 <플랜 75>가 개봉을 앞두고 있어요. 고레에다 감독님이 총괄 제작하셨던 옴니버스 영화 <10년>의 단편으로부터 출발한 작품인데요. 이 작품의 한국 개봉에 대한 소감은 어떠신지 궁금합니다.
<플랜 75>는 단편을 바탕으로 만든 장편인데요. 제가 <10년> 프로듀서를 하면서, <플랜 75>의 단편을 보고 그 감독님의 기획을 특별히 골랐습니다. 저는 이 기획에서 제가 아닌 다음 세대의 재능 있는 감독들을 만나게 되는 소중한 경험을 했습니다. 단편이었던 영화를 장편으로까지 만들어 낸 것이 굉장히 훌륭하고, <플랜 75> 영화 자체가 굉장히 뛰어나기 때문에 여러분도 꼭 봐주시기를 바랍니다. 특히 주인공을 맡은 배우 바이쇼 치에코의 연기가 뛰어납니다. 영화를 꼭 보시고, 기사를 써주세요. (웃음) 또, 저와 함께 분부쿠 그룹에서 영화 작업을 하고 있는 에마 가와와다 감독님의 작품 <마이 스몰 랜드>도 한국에서 곧 개봉을 한다고 들었는데, 괜찮으시다면 꼭 봐주세요. 여기까지는 광고였습니다.
앞으로의 계획과 차기작에 대한 힌트가 궁금합니다.
앞으로도 많이 영화를 만들고 싶지만, 이제는 남아있는 시간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나이가 되었습니다. 언제까지 현역으로 영화를 만들 수 있을지 모르고, 머릿속에 있는 이야기를 다 만들지 못하겠구나 싶긴 합니다. 그런데 일본 밖에서 만들고 싶은 이야기들도 많습니다. 가능하면 빠른 타이밍에 실현하고 싶고요. 꼭 다음 작품도 봐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씨네플레이 김지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