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백하건대 배우 인터뷰는 필자의 일 중 가장 흥미롭고도 어려운 작업이다. 배우에 질문을 던지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는) 배우의 사적인 영역에 침범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도 그럴 것이, 연기는 아티스트와 아주 밀착되어 있는 예술이다. 음악, 미술 등 타 분야 역시 행위자의 퍼스낼리티가 작품에 큰 영향을 미치지만 개인의 몸과 정신, 감정까지 순간의 재료가 되는 연기는 더더욱 그러하다. 그래서 배우에 다가가는 과정은 그 인간을 이해하는 과정과 맞물려있다.
영화 <메이 디셈버>는 충격적인 로맨스의 주인공 '그레이시'(줄리안 무어)와 그보다 23살 어린 남편 '조'(찰스 멜튼)의 이야기가 영화화되며 시작된다. 20여 년 전, 성인 여성과 미성년자 소년의 부적절한 관계로 미국 전역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이들은 어느새 세 명의 자녀를 둔 부부가 되었다. 이 매혹적인 소재를 놓치지 않는 영화 관계자들은 이들의 이야기를 영화로 만들고 그레이시 역에 인기 배우 '엘리자베스'(나탈리 포트만)를 캐스팅한다. 촬영이 시작되기 전 엘리자베스는 그들의 집에 머물며 그레이시를 연기할 준비를 한다. 야망 있는 배우인 엘리자베스는 부부의 일상을 점점 깊숙이 들여다보고 이로 인해 그레이시와 조 사이에 미세한 균열이 생긴다.

영화의 시점은 사건의 흐름과 함께 스캔들의 당사자 그레이시(1인칭)에서 그를 파헤치려는 배우 엘리자베스(2인칭)로 이동한다. 이어 관객(3인칭)에게 넘어간다. 이 중 배우 엘리자베스가 그레이시를 바라보는 방식에 대한 이야기하고자 한다.
엘리자베스는 ‘그레이시’라는 인물에 접근하기 위해 크게 두 가지 방식을 사용한다. 엘리자베스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는 것과 상상하고 경험하는 것이다. 엘리자베스는 그레이시의 전 남편, 변호사, 사건이 일어났던 펫샵의 주인 등을 만나 그녀에 대해 묻는다. 그들은 과거의 그레이시에 대한 서로 다른 이야기를 내놓는다. 뿐만 아니라 사건의 또 다른 당사자인 남편 조와 그의 아이들, 이웃 등 현재의 그레이시 곁에 있는 사람들과 교류하며 그를 짐작한다.
일반적으로 실존 인물을 연기하거나 특정 직업의 배역을 맡은 배우들은 이와 같은 취재의 과정을 밟는다. <명량>(2014)에서 명량 해전을 치르는 이순신 역할을 맡은 배우 최민식은 이순신에 다가가기 위해 <난중일기>를 마르고 닳도록 읽었다고 전했다. 그간 감독이나 동료 배우와 함께 상의하며 캐릭터를 잡아왔다는 최민식은 “<명량>의 이순신은 지금까지 해왔던 방법이 도통 들어맞지 않았다”며 그 어려움을 전했다.
상상과 체험은 배우에게 중요한 인물 접근 방식 중 하나이다. 흡사 기자와 같이 취재를 하고 나면 파편화된 정보를 연결하고 그 공백을 메운다. <메이 디셈버>의 엘리자베스는 그레이스와 유사한 옷을 입고, 그의 화장품으로 메이크업을 한다. 그리고 그레이스의 과거를 따라가며 직접 그 시간 속으로 빠져든다.
이렇게 엘리자베스는 그레이스의 뿌리를 찾아내려 한다. 인물의 진실성을 발견해 몰입하는 것. 대중들도 흔히 아는 ‘메소드 연기’다. 메소드 연기란 20세기 초 러시아의 저명한 연출가이자 배우인 콘스탄틴 스타니슬랍스키가 고안한 연기론이다. 현대 리얼리즘 연기에 막대한 기여를 한 메소드 연기는 훈련을 통해 배우가 성장할 수 있다는 믿음을 바탕으로 배우와 배역의 간극을 좁혀 최대한 진실한 연기를 선보이는 것을 목표로 한다.

특히 배우의 경험을 중시하여 캐릭터의 특수성을 완벽히 흡수할 것을 강조한다. 대표적인 메소드 배우가 최초로 아카데미 남우주연상 3회 수상자라는 기록을 세운 다니엘 데이 루이스이다. 제62회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수상한 <나의 왼발>(1989)에서 뇌성마비 장애인 배역을 맡은 그는 촬영 전에는 마비 환자 병동에서 시간을 보냈고 촬영 중에는 휠체어에서 내려오지 않았다고 한다. 또한 연극 <햄릿>(1988)에서 햄릿을 맡은 그는 극 중 아버지의 유령을 만나는 장면에서 실제로 기절하여 메소드 연기의 끝을 보여주기도 했다.

한편, 이와 같은 ‘혼연일체’ 연기 방식에 반기를 드는 배우 역시 많다. 게리 올드만을 예로 들 수 있다. <오펜하이머>(2023), <다크 나이트 라이즈>(2012), <한니발>(2001), <레옹>(1994) 등에서 굵직한 연기력을 선보였던 게리 올드만은 자신이 ‘메소드 배우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누군가 연기를 하면서 스스로 그 캐릭터가 되었다고 말하는 배우가 있다면, 그는 전신 분열증이거나 당신을 속이고 있는 것이다”라는 말은 연기가 지극히 객관적인 작업이라는 그의 생각을 드러낸다.

여자로서 메소드 연기법이 실천하기 어렵다고 말하는 이들도 있다. <메이 디셈버>의 엘리자베스 역을 맡은 나탈리 포트만이다. 그는 월스트리트저널과의 인터뷰에서 '메소드 연기를 시도해 본 적이 없다'고 밝혔다. “솔직히 여성이 감당할 수 없는 사치라고 생각한다”라고 운을 뗀 나탈리 포트만은 스스로 배역에 몰입했지만 아이들과 배우자가 이것을 이해해 줄 것이라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뿐만 아니라 <타르>(2022), <캐롤>(2015) 등에서 농도 짙은 연기력을 보여준 배우 케이트 블란쳇 역시 메소드 연기법이 가정과 일의 양립을 어렵게 한다고 전했다. “나는 세 아이의 엄마다. 촬영이 끝나면 아이들을 위해 아침 식사를 준비하고 학교에 데려다준다. 내가 캐릭터에 빠져있다면 엄마 노릇을 할 수 있을까? 나는 프로 배우다. 그런 식으로 일하지 않고 그럴 필요성도 느끼지 않는다.”

<메이 디셈버>의 배우 엘리자베스는 결국 그레이스가 되었을까? 그의 메소드가 통했을지는 모른다. 그레이스역을 맡은 엘리자베스가 연기를 선보이지만 그것만 보고는 알 수는 없다. 메소드 연기는 '연기'라는 거대한 작업의 과정 중 일부이기에 결괏값으로 딱 잘라 판단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다만 영화는 그레이스를 파악했다는 그의 믿음이 강해질수록 이 과정을 메타적으로 조감하는 것으로 답을 대신한다. 아이러니하게도 엘리자베스가 가장 눈이 반짝일 때 조금씩 거리를 두던 영화는 그를 멀찍이 바라보기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