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호기심이 고양이를 죽인다고 했던가. 필자는 이번에도 차마 외면할 수 없었다. 어쩌다보니 <베놈>을 시작으로 소니 스파이더맨 유니버스(SSU)를 전부 극장에서 본 필자는 <마담 웹>을 그래도 보고 싶었다. <마담 웹> 관련 루머가 흥미로웠고, 출연진도 혹할 수밖에 없는(솔직히 말하자, 얼빠들이여!) 영화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공개 직후 그야말로 '융단폭격'을 맞은 <마담 웹>. 사전 공개 후 평단의 반응은 물론이고 개봉 후 관객들의 반응도 '내 시간 돌려내' '내 안구 건강 돌려내' 같은 반응이 이어졌다. 아, 필자는 거기서도 포기하지 않았다. 정확히 말하면 '그래서 포기하지 않았다'. 히어로덕후로서 아무리 망했다는 소문을 들어도, 쉽게 포기되지 않는 덕심이 문제(이자 생명력이)다.
아무튼 그래서 <마담 웹>을 보고 왔다. 개봉한지 이제 7일째를 맞이한 <마담 웹>은 1만 3천여 명의 관객들의 선택을 받았다. 다른 영화들이 천만 관객 돌파를 향해 달려가는 와중에 1만 관객 돌파만으로도 만인의 이목을 집중시킨 <마담 웹>을 실관람한 입장에서 한 번 털어보겠다.


뉴욕 퀸즈에서 구급 대원으로 일하는 카산드라 웹은 구급 활동 중 거의 죽을 뻔했다가 간신히 회복한다. 다행이라고 안심한 것도 잠시, 그의 일상에 자꾸만 이상한 데자뷔를 겪게 된다. 한편 자수성가 사업가 이지키얼은 의문의 세 여성이 자신을 죽이는 악몽에 시달린다. 이지키얼은 (현재는 청소년인) 세 여성을 찾아내고 이들을 먼저 죽이려고 습격한다. 하지만 운명처럼 이 세 타겟과 함께 있던 카산드라가 데자뷔를 통해 위험을 먼저 알아채고 세 사람을 대피시킨다. 카산드라는 자신을 출산하다 죽은 엄마가 연구한 '아마존 거미'와 이지키얼, 그리고 자신의 초능력이 연관이 있음을 알게 되고, 세 아이를 지키고자 나선다.
정신없고 어처구니없는 구성과 전개
영화 퀄리티에 대한 부분을 차치하더라도, <마담 웹>은 전체적으로 허술한 느낌을 준다. 어쩌면 이 부분은 '마담 웹'이란 캐릭터의 특성 때문이기도 하다. 위의 시놉시스에서 볼 수 있듯 마담 웹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는 초능력을 가진 캐릭터다. 영화는 이 캐릭터의 능력을 보여주기 위해 이미지를 쪼개고 포개고 혹은 주체의 시제를 옮겨 다니는 방식을 선택한다.
문제는 이 <마담 웹>이 히어로영화, 그것도 어떻게 히어로로 거듭나는지 보여주는 기원 서사(오리진)를 보여주는 작품이란 점이다. 고릿적 시절부터 존재한 영웅 서사를 기반으로 한 오리진 서사는 대부분 비슷한 구성을 가져간다. 평범한, 혹은 별 볼 일 없는 사람. 갑자기 얻게 된 능력. 그리고 찾아온 위기. 능력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 위기를 극복하며 영웅으로 거듭남. 오리진 서사는 정형화됐지만 그만큼 모범적인 답안지다. <마담 웹>도 오리진 서사를 취하지만 그 과정에서 부실한 '소니 스파이더맨 유니버스' 세계관을 채우고자 여러 설정을 추가하면서 모범답안을 내지 못한다.

<마담 웹>의 서사를 돌이켜보면 두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하나, 내게 생긴 능력은 무엇인가. 둘째, 저 살인자는 누구인가. 잘 섞었다면 히어로영화와 미스터리 스릴러를 아울렀을 플롯은 큰 장벽에 봉착한다. 스파이더맨 없는 세계관에서 거미를 연상시키는 이 능력을 어떻게 정당화할 것인가. 그래서 <마담 웹>은 카산드라와 이지키얼이 '아마존 거미'에 얽힌 악연이 있었다는 것으로 설정해 '거미' 콘셉트를 유지한다. 거미줄 같은 운명의 실타래를 연상시킬 뻔했던 설정은 그걸 구구절절하게 설명하면서 영화를 헝클어뜨리는 단점이 되고 만다. 예를 들자면, 이지키얼과 엄마의 거미 연구가 관련 있다고 알게 된 카산드라는 거미를 발견한 페루로 날아가는데 그 기간 동안 착하긴 하지만 평범한 동료 '벤 파커'(그렇다, 이 영화 나름대로 스파이더버스의 요소가 있긴 하다)에게 세 아이들을 맡긴다. 방금 전까지 죽을 위기에 처했던 애들을 말이다. 페루로 가야 카산드라가 과거를 알 수 있으니 이렇게밖에 할 수 없던 것이긴 한데, 관객 입장에선 '엥?' 하게 되는 순간이다. 오리진 서사 안에서만 해답을 찾으니 이런 안일한 전개가 답이 되고 만 것이다.
뿐만 아니라 앞서 말한 대로 이미지도 지나치게 혼란스럽다. 긴박감을 주기 위해 편집점을 빠르게 하고, 액션을 극대화하기 위해 앵글을 뒤집는 <마담 웹>의 연출은 효과적이지 않다. 특히 카산드라가 능력을 받아들이며 앞으로의 미래를 내다보는 시퀀스는 짧은 장면을 반복하고 중첩시키는 식으로 신비로운 혼란을 유발하고자 하는데, 전체적으로 토니 스콧의 시퀀스 연출을 떠올리게 한다. 그리고 이제 막 영화 연출에 도전한 S.J. 클락슨은 그 훌륭한 방식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고 이미지 과잉을 하고 만다.


'가성비'까지 닿지 못한 퀄리티
앞서 퀄리티를 차치하고, 라는 말은 퀄리티가 좋다는 것이 아니다. 이야기의 얼개가 더 충격적이었을 뿐. <마담 웹>은 8천만 달러 영화다. 장르영화치고는 제작비 규모가 크진 않다. 오히려 저렴한 편이다. 문제는 그 저렴함을 화면에서 감추지 못하는 것. 페루에서 시작하는 오프닝부터 관객을 아찔하게 하는데, 페루의 전사들 '아라냐'의 의상이 정말 형편없다. 영화의 메인 빌런 이지키얼의 빌런 코스튬도 영 허술하다. 무엇보다 스파이더맨도 없고 베놈도 얼굴을 비추지 않는 영화에서 홀로 스판덱스 코스튬을 챙겨 입는 모습이 안쓰럽다고 할까.


규모가 크지 않은 영화라서 VFX의 허접함을 짚는 게 조금 잔인한가 싶지만, 그러기엔 같은 규모에 훨씬 볼만한 영상을 뽑은 영화가 작년에 나왔다. <크리에이터>는 <마담 웹>처럼 8천만 달러로 제작했다. 더 잔인하게 비교하자면 6천만 달러 <데드풀>이 있고 1200만 달러로 제작해 '아카데미 시각효과상'까지 받은 <고질라 마이너스 원>이 있다. <마담 웹>은 세 영화와 비교했을 때 때깔도, 인상적인 장면도 부족하다. (세 영화가 좋은 영화란 뜻은 결코 아니다.)
아깝다, 아깝다, 아까워!
<마담 웹>은 정말 아깝다. 이 기획은 잘만 했으면 성공했을 법하다. 이전 SSU 영화들이 매번 같은 능력을 가진 대결 구도를 반복해 지겨웠다면(베놈-라이엇·카니지, 모비우스-마일로), 이번엔 능력이 확실히 다른 인물 간의 대결 구도를 잡았다. 그걸 제대로 못 살렸으니 정말 아깝다.
이 영화의 주된 테마도 그렇다. 이지키얼을 대항할 방법을 알아내는 과정에서 카산드라는 아라냐의 수장에게 이런 말을 듣는다. "책임을 받아들이면 큰 힘을 얻을 것이다". 스파이더맨 팬이라면 이 대사가 "큰 힘에는 큰 책임이 따른다"는 스파이더맨의 테마를 변주했다는 걸 곧바로 알아차릴 것이다. 태어날 때부터 영웅의 운명을 타고나 누군가를 보호해야 하는 카산드라의 상황, 그리고 아라냐의 명언. 둘을 잘 엮었다면 <마담 웹>은 굉장히 영리한 영화가 됐을 것이다. 그걸 제대로 못 살렸으니 또 아깝다.

다코타 존슨, 시드니 스위니, 이자벨라 메르세드, 셀레스트 오코너. 이 배우들을 한 영화에서 만나는 것도 좋은데 각 인물별 '헤메코'(헤어+메이크업+코디)도 착붙이다. 당장 후기를 찾아봐도 영화의 착장이나 패션은 호평이 많고 그래서 캐릭터들을 다시 보고 싶다는 반응도 적지 않다. 결국에 영화 <마담 웹>은 배우들이 영화 전체를 건져올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 정작 이들의 진정한 활약상은 나오지도 않았다는 것이다. 이 좋은 배우들을 제대로 못 살렸으니 정말로 아깝다.

결국 SSU의 변화를 꿈꿨던 <마담 웹>은 자신조차 구하지 못했다. 이 영화가 추구한 변화는 원작팬들에겐 너무 낯설고, 영화팬들에겐 너무 투박하다. 영화의 차별점은 전체적인 완성도가 뒷받침되지 않아 가려지고 만다. 안 그래도 히어로영화의 하락세에 <모비우스>로 바닥 친 SSU의 미래는, 이번 영화로 반등을 꿈꿨겠지만 앞으로도 쉽지 않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