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스티스 리그>
저스티스 리그

감독 잭 스나이더

출연 벤 애플렉, 헨리 카빌, 갤 가돗, 제이슨 모모아, 에즈라 밀러, 레이 피셔

개봉 2017 미국

상세보기

마블에 이어 DC도 드디어 영웅들의 반창회를 시작했다. 이미 <배트맨 대 슈퍼맨: 저스티스의 시작>(이하 <배대슈>)에서 사전 모임을 가졌고, 악당들의 미팅도 <수어사이드 스쿼드>를 통해 선행된 바 있지만 성공적인 흥행 성적과 달리 비평적으론 그리 좋은 평가를 얻지 못했다. 그래서 이번 슈퍼맨과 배트맨, 원더우먼 외에 한 번도 극장 나들이를 못했던 플래시와 아쿠아맨, 사이보그까지 출격하는 <저스티스 리그>에 기대와 함께 우려도 동시에 드는 게 사실이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DCEU(DC Extended Universe)의 총책임자인 잭 스나이더가 딸의 자살로 인한 충격으로 하차하는 비극적인 상황까지 닥치는 바람에, <어벤져스>의 성공을 이끈 일등공신 조스 웨던을 데려와 그 공백을 최소화하고자 했다.

잭 스나이더(왼쪽) 감독과 헨리 카빌

이미 촬영이 모두 끝난 <저스티스 리그>지만 조스 웨던의 투입으로 상황은 뒤바뀌었다. 후반 작업만 맡아서 진행할 것이란 예측과 달리, 소규모 영화 제작비에 해당하는 2500만 달러를 들여 두 달간의 대대적인 재촬영이 이뤄지며 애초 잭 스나이더가 구상한 것과는 조금 다른 결을 지닐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각본 크레딧에 조스 웨던의 이름이 올라간 만큼 상당량의 수정이 이뤄졌음을 시사하고 있다. 그가 그간 작업했던 결과물들이나 성향을 봐선 지금까지 어둡고 진중한 색채를 유지해오던 DCEU에 일대 지각변동(!)을 초래할 것으로 보이는데, 시사회 반응 역시 예측대로 밝아졌단 평이 주류를 이루고 있어 잭 스나이더와 조스 웨던의 이종교배가 어떤 시너지를 낳았을지 궁금증을 자극한다.

<저스티스 리그>에 각본으로 이름을 올린 조스 웨던 감독
슈퍼히어로 음악의 장인 대니 엘프만의 투입

조스 웨던의 발탁은 당연하게도 후반 작업의 후폭풍(?)을 불러왔는데, 가장 큰 변화는 <배대슈>가 끝난 이후부터 오랫동안 음악으로 내정돼 있던 정키 XL의 하차다. 한스 짐머가 히어로물 음악에 대한 고충을 토로하며 물러난 것도 모자라 최후의 보루(!)였던 정키 XL까지 그만두며, <배트맨 비긴즈>를 시작으로 십여 년간 DCEU의 분위기를 주도했던 리모트 콘트롤 프로덕션의 짐머리스크 색채는 옅어질 것으로 보인다. 대타로 선택된 이는 1989년 팀 버튼의 <배트맨>을 시작으로, TV시리즈 <플래시>와 샘 레이미의 기괴한 안티히어로 <다크맨>, 아티피셜한 분위기를 던져준 <딕 트레이시>, 그리고 21세기 슈퍼히어로물의 초석이 된 <스파이더맨> 삼부작을 비롯해, 이안 감독의 <인크레더블 헐크>와 길예르모 델 토로의 <헬보이2: 골든 아머>, 조스 웨던과 호흡을 맞췄던 <어벤져스: 에이지 오브 울트론>까지 꾸준히 크레딧을 올려 가히 히어로 스코어의 장인이라 할 수 있는 대니 엘프만이다.

정키 XL

사실 엘프만은 <어벤져스: 에이지 오브 울트론>에서도 비슷한 경험을 한 바 있다. 기존의 음악으로 내정된 이는 <토르: 다크월드><아이언 맨 3>의 음악을 담당한 브라이언 타일러였는데, 후반 작업을 거치며 대니 엘프만이 긴급하게 투입되어 알란 실베스트리가 작곡한 어벤져스테마를 편곡한 건 물론, 상당 부분의 음악 작업을 추가로 진행했다. 하지만 타일러와 엘프만의 스코어가 공존하던 마블에서의 상황과 달리, 이번 <저스티스 리그> 작업에서 정키 XL의 이름은 완전히 지워졌다. 이에 따라 미니멀한 선율에다 장중하고 묵직한 분위기로 압도적인 초인의 등장을 알렸던 잿빛 사운드 스케이프는 사라지고, 고전적이고 전통적인 심포닉 사운드가 영화를 지배한다. 그간 DCEU에서 사라졌던 히어로익한 팡파르가 돌아온 것이다.

이전과 달라도 너무나 다른 <저스티스 리그>의 음악
대니 엘프만

오랜만에 DC로 복귀한 대니 엘프만은 그간 봉인되다시피 한 자신의 배트맨 테마를 중심으로, 존 윌리엄스의 그 유명한 슈퍼맨 테마와 기존의 한스 짐머와 정키 XL이 만든 원더우먼 테마까지 모든 요소들을 발판 삼아 새로운 <저스티스 리그>의 음악을 만들어냈다. 뚜렷하고 명징하게 들려주기보다 스케치하듯 각각 히어로들의 테마를 변주해내며 팀플레이에 적절한 분위기를 자아내는데, 이번 영화의 정체성을 대번에 느끼게 해준다. 앞서 언급한 <어벤져스말고도 알프레드 히치콕 감독의 고전을 똑같이 복제한 구스 반 산트 감독의 <싸이코>에서 버나드 허먼의 음악을 복기한 바 있고, <미션 임파서블>에선 랄로 쉬프린의 테마를, <터미네이터: 미래 전쟁의 시작>에선 브래드 피델의 테마를 자기 것으로 체화한 바 있는 엘프만이기에 기존의 재료들로도 충분히 독창적인 사운드를 완성해낼 수 있었다.

물론 개봉에 앞서 사운드트랙 음원이 먼저 공개되며 의견은 분분하게 갈리고 있다. 대니 엘프만이 작곡한 스코어가 너무도 분명하게 그간 한스 짐머 사단이 주도했던 DCEU 스코어들과 선긋기에 나서고 있기 때문이다. 짐머와 그 휘하의 작곡가들이 때론 과감하게 현대음악적인 요소들과 사이키델릭한 록 사운드의 차용 그리고 귀를 얼얼하게 만들 정도로 휘몰아치는 퍼커션의 물량공세로 슈퍼 파워에 대한 위압감과 공포, 구원과 희망을 설파했다면, 엘프만은 특유의 그로테스크한 어둠을 간직한 낭만주의적 사조로 영웅들의 규합과 단합 그리고 부활에 대해 묘사하고 있다. 그것이 너무도 급격한 변화와 단절이 아니냐며 기존 DCEU 팬들은 아쉬움을 토로한다.

고전적이고 전통적인 방식으로의 회귀

지금의 배트맨과 슈퍼맨이 팀 버튼과 리차드 도너가 만들었던 시절의 배트맨과 슈퍼맨과 다르듯이 굳이 과거의 테마들을 가져와 지금의 프랜차이즈에 덧입힐 필요가 있냐는 지적도 있다.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으라는 말처럼. 하지만 조스 웨던은 그 분의 죽음과 부활, 새로운 연합의 탄생과 세계관의 확장을 위해 오히려 과거의 위대한 테마들이 가지고 있는 상징성과 불멸성을 적극적으로 이용하고자 고전적인 대니 엘프만을 기용했고, 존 윌리엄스의 테마까지도 수용한 건지 모른다. 시대가 바뀌어도 그 선율이 만들어내는 분위기가 있듯이. 마블에서 포스트 존 윌리엄스라 불리는 마이클 지아치노를 중용하고, 어벤져스의 마무리를 위해 <어벤져스: 인피니티 워>와 2019년 공개 예정인 <어벤져스> 4에서 다시 알란 실베스트리를 불러온 것처럼 고전적인 심포닉 스코어가 가지고 있는 정서적 울림과 청각적 쾌감은 꽤나 강력하다.

과거 대니 엘프만이 음악을 맡아 범접하지 못할 다크 포스를 카리스마 넘치게 내뿜었던 그 시절의 테마들에 비한다면 선공개된 ‘Hero’s Theme’이 다소 부족하게 느껴질 수 있는데, 여전히 그만의 어둡고 독특한 사운드는 희미한 지장처럼 남아있다. 일렉트릭 첼로로 강렬하게 표현되던 원더우먼 테마는 중후한 관현악 사운드로 무장돼 ‘Wonder Woman Rescue’에서 짧게 휘몰아치고, ‘Friends and Foes’에서 파편화돼 흐르는 존 윌리엄스의 슈퍼맨 테마는 그 선율을 알고 있는 팬들에게 전율을 주기에 충분하다. 이들 외에 뚜렷하게 각인을 남겨주는 새 테마들이 부재하다는 게 조금 아쉬운데, 올해 6월에 전격적으로 음악의 교체가 이뤄져 상대적으로 시간이 부족했으리란 점도 이해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그럼에도 1980~90년대를 주름 잡았던 DC의 관현악 위용을 떠오르게 한단 점에서 인상적이다.

그리고 잊을 수 없는 전설적인 삽입곡들

그 외 삽입곡으로 너무나도 유명한 팝 넘버 두 곡이 리메이크되어 실려 있는데, 하나는 저음이 인상적인 음유시인 레너드 코헨이 불렀던 ‘Everybody Knows’, 다른 하나는 별다른 수식어가 필요 없는 비틀스의 히트곡 ‘Come Together’. 전자를 일렉트릭 비트와 피아노로만 이뤄진 반주 위로 1996년생 노르웨이 여성 싱어송라이터 시그리드가 나른하면서도 시크한 목소리로 불렀다면, 후자는 정키 XL이 편곡하고 게리 클락크 주니어가 기타로 연주하며 부른 버전이 엔딩 크레딧에 흐른다. 그리고 2016년 샌디에이고 코믹콘에서 처음 공개된 티저에서 흘러나왔던, 강력한 기타 루프가 끈끈하게 귓속을 파고드는 화이트 스트라입스의 ‘Icky Thump’도 빼놓을 수 없다.


사운드트랙스 / 영화음악 애호가

재밌으셨나요? 내 손 안의 모바일 영화매거진 '네이버 영화'를 설정하면 더 많은 영화 콘텐츠를 매일 받아볼 수 있어요. 설정법이 궁금하다면 아래 배너를 눌러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