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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JIFF] 개막작 미야케 쇼 감독의〈새벽의 모든〉“육체적인 힘듦뿐만 아니라 사회에서 같이 활동할 수 없다는 것도 문제”

추아영기자
개막작 미야케 쇼 감독의 〈새벽의 모든〉 스틸컷
개막작 미야케 쇼 감독의 〈새벽의 모든〉 스틸컷


5월 1일 제25회 전주국제영화제가 개막했다. 개막작은 전 세계 영화계가 주목하고 있는 일본 뉴웨이브 작가 중 한 명인 미야케 쇼 감독의 <새벽의 모든>으로 많은 이들의 기대를 모으고 있다. 미야케 쇼 감독은 2019년 <너의 새는 노래할 수 있어>로 제20회 전주국제영화제를 찾은 바 있다. 그는 5년 만에 다시 전주를 찾은 소감을 밝혔다. “전주에 다시 돌아오게 되어서 너무나 기쁘다. 그 당시 전주에서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느꼈다. 관객뿐만 아니라 모든 스태프들이 영화를 사랑한다고 느낄 수 있었고, 영화를 존중하는 공기를 느꼈다. 이번에도 그런 공기와 자극을 가져가고 싶다.” 제25회 전주국제영화제에서 먼저 살펴본 <새벽의 모든>의 후기와 함께 미야케 쇼 감독의 말을 전한다.


 

후지사와(카미시라이시 모네)
후지사와(카미시라이시 모네)


세차게 내리는 비를 옷이 흠뻑 젖을 정도로 맞고 있는 여자. 몸에 힘이 풀리며 그대로 쓰러진다. 후지사와(카미시라이시 모네)는 월경전증후군(PMS)을 심하게 앓고 있다. 한 달에 한 번 그 주기가 찾아오면, 그녀는 자신의 몸과 감정을 제어하지 못한다. 억누를 길 없는 짜증과 분노가 치밀어오르면 주변의 누군가는 그녀의 희생양이 되고야 만다. 온갖 방법을 동원해도 낫지 않는 PMS로 인해 후지사와는 직장과 주변 환경을 바꾼다. 일이 빡빡한 대기업에서 나와 비교적 여유로운 중소기업 구리타 과학으로 이직한다. 이곳의 사람들은 만사에 너그럽고 인정이 많다. 그녀의 공격적인 분노가 찾아올 때도 아무렇지 않게 반응하며 함께 견뎌준다. 그런데 여기서 만난 또 다른 남자, 야마조에는 좀 이상하다. 그는 다른 동료들과 교류하지 않고, 근무 시간에도 껌을 씹는다. 무엇보다 그가 탄산음료의 뚜껑을 돌릴 때마다 나는 쉭- 소리는 귀에 몹시 거슬린다.
 

야마조에(마츠무라 호쿠토)
야마조에(마츠무라 호쿠토)


구리타 과학에 들어온 지 얼마 되지 않은 신입사원 야마조에(마츠무라 호쿠토). 그는 공황장애를 앓고 있다. 대기업에 다니고, 여자 친구와 데이트를 하며, 친구들과의 약속을 잡는 것에도 서슴없던 시간은 이미 흘러가버렸다. 이젠 그의 방에 붙은 각종 상패들이 무색하게 더 이상 하고 싶은 일이 없다. 경쟁심도 별다른 목적도 없이 일을 하는 구리타 과학사 직원들을 낮잡아보면서도 지금의 자신에게는 적합한 곳이라고 여긴다. 단지 평화롭게 생존에 필요한 돈만 벌고 싶을 뿐이다. 하지만 선배 후지사와가 그의 평화를 깨트린다. 먹지 않는 간식을 챙겨주더니 탄산 새는 소리 때문에 버럭 화를 낸다. 무엇보다 그녀는 그가 애써 숨겨 온 지병을 알게 되면서 그에게 자꾸만 다가간다.

 

더 잘 살아갈 방법을 고민하는 아픈 청춘의 서사
 

(왼) 정준호, 민성욱 공동 집행위원장, 미야케 쇼 감독, 문석 프로그래머
(왼) 정준호, 민성욱 공동 집행위원장, 미야케 쇼 감독, 문석 프로그래머


세오 마이코의 소설 「새벽의 모든」은 PMS에 걸린 여자 후지사와와 공황장애가 생긴 남자 야마조에의 이야기를 담담한 문체로 보여준다. 남자와 여자의 시점을 번갈아가면서 다중 시점으로 전개되는 원작에서 독자는 하나의 사건에 대한 두 인물의 관점을 볼 수 있게 한다. 독자는 두 인물의 시선을 넘나들며 지병에 대한 고정관념과 선입견을 부순다. 세오 마이코 작가는 사회 속에서 사람들에게 오해받기 쉬운 그들의 목소리를 들려준다.


미야케 쇼 감독은 사회의 울타리 밖에 선 사람들의 삶을 섬세하게 포착해 왔다. <너의 새는 노래할 수 있어>에서 어두운 밤을 헤매며 시간을 흘려보내는 청춘들의 무기력함을 포착했다면, <너의 눈을 들여다보면>에서는 청각 장애를 앓는 프로 복서의 힘겨운 일상을 그렸다. 이번 작품에서도 그의 시선은 소외된 자들을 향해 있다. 미야케 쇼 감독은 원작을 각색한 이유로 “PMS나 공황장애뿐만 아니라 다양한 이유로 힘든 사람들이 많을 거라 생각한다. 이 힘듦은 육체적인 어려움보다는 힘이 들 만한 원인을 얻음으로써 사회에서 같이 활동할 수 없고, 직장을 가질 수 없다는 데에서 오는 힘듦이다. 그런 힘듦을 가진 사람들에 대해 생각해 줬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만들었다”고 전했다. 덧붙여 “원작 소설을 보고 주인공들한테 끌렸다. 그들의 병 때문에 끌린 것이 아니다. 그들은 자기가 놓인 상황에 대해서 자문자답하는 과정을 반복한다. 그 과정에서 고정관념을 가지지 않고 더 잘 살아갈 방법들을 고민하며, 어떤 액션을 자꾸만 일으킨다. 그런 주인공들이 귀엽고 매력적이라 생각했다”고 말했다.

 

빛으로 나아가기까지 
 

〈새벽의 모든〉 스틸컷
〈새벽의 모든〉 스틸컷


야마조에는 처음 등장할 때부터 어둠에 드리워져 있다. 빛이 끼어들 기미가 없는 어둑한 미장센은 그의 심리를 함축한다. 후지사와는 자신처럼 힘겨움을 이겨내고 있는 야마조에를 도와주려 한다. 전철을 탈 수 없는 그를 위해 자전거를 주고, 편의점 음식을 사다 주기도 한다. 또 미용실에 갈 수 없는 그를 위해 대신 머리를 잘라준다. 처음에는 그녀의 도움을 섣부른 오지랖이라 여겼던 야마조에는 어느덧 후지사와처럼 변해버린 자신을 발견한다. 그는 PMS로 조퇴하고 집에서 쉬고 있는 그녀에게 회사에 두고 간 휴대폰을 전해주기 위해 그녀가 준 자전거를 타고 나선다. 공황장애가 생긴 이후 타인에게 관심을 두지 않았던 야마조에는 후지사와를 위해 어둠에서 빛으로 들어선다. 야마조에가 후지사와를 만나러 가는 장면은 영화에서 가장 밝은 빛으로 덮여 있다. 후지사와는 야마조에에게 어두컴컴한 밤하늘에서 반짝이는 북극성과 같은 존재다.

 

 외로운 사람들이 연대해 그려내는 오리온자리 
 

〈새벽의 모든〉 스틸컷
〈새벽의 모든〉 스틸컷

후지사와와 야마조에가 다니는 작은 회사 구리타 과학은 어린이용 천체투영기(플라네타륨)를 만드는 곳이다. 그들은 사람들을 초대해 천체투영관을 선보일 준비로 간만에 분주하다. 야마조에는 천체투영관에서 사람들에게 들려줄 해설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30년 전에 구리타 과학에서 근무한 동료가 남긴 플라네타륨 음성이 담긴 테이프와 동료의 노트를 발견한다. 야마조에는 그가 남긴 자료를 빌려 북극성과 별자리에 관한 해설 원고를 작성한다. 천체투영관을 선보이는 날, 후지사와는 사람들 앞에서 먼 옛날 나침반도 없던 시절 길 잃은 자들의 이정표가 되어 주었던 별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천체투영관 안에서 사람들은 그들의 머리 위로 펼쳐져 있는 밤하늘 속 빛나는 별들을 바라보며 감응한다.


미야케 쇼 감독은 <새벽의 모든>에 이르러서 연대 의식을 강화한 세계관을 그려낸다. <너의 새는 노래할 수 있어>에서 하코다테의 세 남녀는 정서적 연결을 이루지 못한 채로 방황하는 청춘으로 남았다. <너의 눈을 들여다보면>에서 케이코는 주변 인물과 함께하는 시간을 통해 성장하지만 그들의 소통은 느슨한 연결에 그친다. 미야케 쇼는 전작 <너의 눈을 들여다보면>에 이어 이번 영화에서도 자신의 전매특허라 할 수 있는 16mm 필름 촬영으로 타인과 연결되지 못하는 이들의 고독감을 화면에 생생히 드러냈다. 다만 <새벽의 모든>에서는 길을 잃고 헤매는 모든 이들을 연대하게 한다. 구리타 과학은 사회에서 일할 권리를 지키기 어려운 후지사와와 야마조에를 받아주고, 야마조에도 그들과 계속 함께 일하려 한다. 각자의 세계에서 외롭게 흩어져 있던 별들은 모여 별자리를 이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