멈출 수 없는 내리막길인가, 다시 추진력을 얻기 위한 무릎 꿇음인가. 최근 한 외신의 보도로 월트디즈니컴퍼니가 '재평가' 받고 있다. 매체 '데드라인'이 보도한 바에 따르면 2023년 가장 큰 적자를 기록한 영화 5편 중 4편이 월트디즈니컴퍼니 배급이었기 때문. 마블, 스타워즈, 애니메이션 등 프랜차이즈 마왕으로 불렸던 디즈니의 대기록에 대중마저 다소 놀라고 있는 모습이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길래 디즈니가 이처럼 바닥을 친 건지 적자 영화 5편을 전한다.
※ 아래의 내용 중 '총제작비'는 영화 완성까지의 순 제작비 및 개봉 전 마케팅 비용을 모두 포함한다. 할리우드 영화는 일반적으로 순 제작비의 두 배가량을 벌어들일 때 손익분기점을 넘은 것으로 판단한다. 수익은 월드 와이드 성적을 뜻한다.
5
헌티드 맨션
총제작비 2억 6천만 달러 / 수익 1억 4300만 달러
= 1억 1700만 달러 적자

영화 <헌티드 맨션>은 디즈니랜드의 랜드마크급으로 유명한 어트랙션을 실사로 옮겼다. '귀신 들린 집'이 주요 테마인데, 그렇다고 진짜 무서운 공포감을 조성하기보다 다소 환상적이고 유쾌한 분위기로 승객들에게 즐거움을 준다. 이미 2003년 당대 최고 스타 에디 머피 주연으로 영화화된 바 있다. 해당 영화도 어트랙션처럼 모험과 코미디가 강조됐고, 그래서 당시 유치하다는 평가를 받았지만 지금은 고딕풍 어드벤처가 드문 만큼 재평가를 받고 있다.

2023년 나온 <헌티드 맨션>은 2003년 영화보다 좀 더 다양한 출연진과 한층 발전한 기술로 다시 한번 초자연적 코미디를 겨냥했다. 하지만 결과는 제작비 대비 1억 달러 이상을 손해 보는 결과를 낳았다. '디즈니랜드'라는 추억을 공유하지 않는 해외 관객들에겐 '헌티드 맨션'이란 소재가 낯설었고(북미 성적이 해외 성적보다 좋다), 영화가 가족영화라기엔 서늘하고 성인용 영화라기엔 유치해서 타겟층을 제대로 조준하지 못했다는 반응이었다. 그래서 <헌티드 맨션>은 관객몰이에 성공하지 못하고 2023년 최악의 적자 영화 5위에 오르고 말았다. 참고로 <헌티드 맨션>의 한국 관객 수는 2만 명도 되지 않는다.
4
위시
총제작비 3억 6200만 달러 / 수익 2억 3100만 달러
= 1억 3100만 달러 적자

월트 디즈니 컴퍼니 100주년 영화로 공개한 <위시>. 처음 예고편이 나올 때만 해도 반응이 나쁘지 않았다. '소원'이란 테마, 중세 시대를 연상시키는 가상의 나라, 신비한 캐릭터와 말하는 동물, 예고편에서부터 100주년 기념작답게 디즈니 애니메이션의 클리셰를 한껏 아우르는 작품임을 암시했다. 애니메이션으로 흥했던 회사 디즈니의 100주년 기념작이란 타이틀을 내건 <위시>에 기대가 모이는 건 당연했다.

문제는 <위시>가 매력적이지 않았다는 것이다. 디즈니의 뮤지컬 애니메이션 하면 떠오르는 명곡들처럼 관객 뇌리에 콕 박히는 킬링 넘버가 없었고, 주인공 아샤의 이야기가 관객들을 설득시키지 못했다. 오히려 '어쨌든 소원 들어주는 매그니피코 왕이 더 나은데?'라는 반응이 나올 정도로 <위시>의 이야기는 동기도, 동력도 무색무취였다. 거기다 디즈니 작품들에 바치는 오마주는 팬들을 즐겁게 하더라도 일반 관객들에겐 주의산만한 요소에 불과했다. 결과적으로 100주년 기념작이 아카데미 후보에도 오르지 못하는 등 손해만 잔뜩 봤다. <엔칸토: 마법의 세계>가 뒤늦게 역주행을 했던 것을 생각하면 <위시>의 실패가 더욱 뼈아프게 느껴진다.

3
인디아나 존스: 운명의 다이얼
총제작비 5억 1600만 달러 / 수익 3억 7300만 달러
= 1억 4300만 달러 적자

오래간만의 재회는 보통 실망스럽다. 아마 경험상 알고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좋은 이별을 하기 위해선, 때때로 오랜만에 재회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 아마 <인디아나 존스> 신작을 제작하기로 결정한 디즈니가 그런 마음이 아니었을까 추측한다. 전설적인 시리즈의 속편을 만드는 건 '잘 해봐야 본전'인 것이니까. 영원한 인디아나 해리슨 포드가 돌아오고, <로건>과 <포드 V 페라리>를 연출한 제임스 맨골드 감독이 연출을 맡는다고 했을 때 팬들은 불안과 기대를 동시에 느꼈다. 그래도 존 윌리엄스 음악감독이, 연출 대신 제작이지만 스티븐 스필버그가 함께 하는 '인디아나 존스'는 무적일 것 같았다.

그리고 인디아나 존스도 세월은 이길 수 없었다. <인디아나 존스: 운명의 다이얼>은 지지부진했다. 오랜만의 신작이라 힘을 준 탓에 그 성적은 더욱 초라했다. 사실 <인디아나 존스: 운명의 다이얼> 입장에선 억울할 법한데, 영화를 앞두고 말도 안 되는 루머가 돌았기 때문. 영화의 내용을 악의적으로 편집한 '내부자'의 글은 삽시간에 인터넷으로 퍼져나갔고, 한 번 잘못 퍼진 루머는 관심보다 걱정이 많던 팬들을 돌아서게 하기 충분했다(심지어 루머 유포자는 진짜 내부자도 아녔다). 영화 자체의 완성도도 전작들에 비하면 아쉬웠기에 흥행 판도를 바꾸기엔 부족했다. 결국 3억 달러가 넘는 수익을 남기고도 손해를 본 <인디아나 존스: 운명의 다이얼>은 시리즈 마지막 작품으로선 아쉬운 결과를 남기고 돌아서야 했다.
2
플래시
총제작비 4억 500만 달러 / 수익 2억 5천만 달러
= 1억 5500만 달러 적자

잠시 한숨 돌릴 차례. 디즈니 작품이 아니면서 2023년 최악의 적자 영화 2위에 오른 영화는 워너브러더스의 <플래시>다(거꾸로 말하면 디즈니는 이것보다 더 큰 적자를 낸 영화가 남아있단 것). <플래시>는 <맨 오브 스틸>에서 시작한 DCEU(DC 확장 유니버스)의 향방을 결정할 영화였다. 플래시가 멀티버스로 갔다가 다시 원래 세계로 돌아온다는 원작 「플래시포인트」의 내용은 DCEU의 엉망진창 전개를 다시 정립할 수 있는 기회였기 때문이다. 거기에 '배트맨' 마이클 키튼의 복귀까지. DCEU의 유일한 희망이나 다름없었다.

그런데 이게 웬걸, 개봉도 하기 전 DCEU 최후의 희망은 최악의 절망이 됐다. 플래시를 연기한 에즈라 밀러가 '뉴스 사회면'에 나올 법한 일들로 온갖 구설수에 올랐다. 안 그래도 DCEU의 기대감이 떨어진 상황에서 에즈라 밀러의 사건사고는 영화 불매와 개봉 반대 운동으로 이어졌다. 워너브러더스는 그래도 울며 겨자 먹기로 개봉을 추진했고, 이 때문에 '영화가 진짜 잘 나왔나?'라는 진짜진짜 최후의 희망(사항)이 이어졌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하면 <플래시>는 DCEU의 수많은 똥볼에 비하면 그럭저럭 괜찮았다. 먼저 팬심을 자극하는 요소가 많았고, 마이클 키튼과 사샤 카예의 존재감이 상당했다. 그러나 사고뭉치 에즈라 밀러를 2시간 넘게 봐야 하는 것과 갑자기 정신을 놓았는지 막장으로 끝나는 결말, 할리우드 영화 맞나 싶은 VFX 퀄리티는 <플래시>가 악재를 뛰어넘지 못하도록 발목을 잡았다. 결국 <플래시>는 (에즈라 밀러 외) 배우들과 제작진의 고군분투에도 2023년 최악의 적자 영화 2위가 됐다.
1
더 마블스
총제작비 4억 5500만 달러 / 수익 2억 1800만 달러
= 2억 3700만 달러 적자

그렇다. 1위는 <더 마블스>. "말해 뭐해"라고 요약하고 싶지만 그래도 설명을 덧붙인다. 앞선 영화들이 그래도 '기대를 모았다'라고 말할 수 있었는데 이 영화는 그렇게 말할 만한 부분이 별로 없었다. 일단 MCU(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가 <어벤져스: 엔드게임> 이후 줄곧 하락세였던 것이 문제였고, 그 와중에 자꾸 드라마와 영화를 연계하는 게 악수였다. <더 마블스>는 물론 11억 달러를 벌어들인 '캡틴 마블'이 주인공이었으나 공동 주연 캐릭터 모니카 램보와 미즈 마블은 드라마와 원작을 모르는 관객에겐 '듣보'였으니 관심도가 떨어질 수밖에.

결국 <더 마블스>는 우려를 넘지 못했다. 한국에선 <퍼스트 어벤져> 이후 처음으로 100만 관객을 돌파하지 못한 MCU 영화라는 비운의 타이틀까지 거머쥐었다. 북미에선 최초로 1억 달러를 넘지 못했다. 결국 거듭되는 MCU 영화의 흥행 부진에 <더 마블스>가 비수를 꽂았고, 여기에 차세대 메인 빌런 '캉' 배우가 구설수에 오르며 디즈니는 작품 제작-공개 연기를 발표하며 MCU 로드맵 전면 재검토에 들어갔다. 과연 2024년 첫 MCU 영화, <데드풀과 울버린>이 이 기세를 뒤엎고 <더 마블스>의 한을 풀어줄지 궁금해지는 대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