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재적인 두뇌의 소유자이자 멋진 콧수염을 지닌 에르큘 포와로는 시리아에서 벌어진 사건을 해결하고 급히 런던으로 와달라는 전보를 받고 이스탄불-칼레 행 오리엔트 급행을 타게 된다. 각양각색의 승객들이 모인 이 열차는 유고슬라비아에서 폭설 때문에 고립되고, 때마침 명탐정에겐 언제나 숙명(!)처럼 따라다니는 죽음의 그림자가 어김없이 드리워지며 희생자가 발생한다. 친구인 철도회사 간부의 부탁으로 경찰이 올 때까지 포와로는 용의자인 승객들을 심문하는데, 심각한 범죄 앞에서 명탐정의 뛰어난 회색 뇌세포가 풀가동되기 시작한다. 그는 기차 안 밀실 살인사건의 범인을 과연 맞출 수 있을 것인가?
 

애거서 크리스티의 대표적인 추리소설

<오리엔트 특급 살인>은 추리소설의 여왕이라 불리는 애거서 크리스티의 대표작 중 하나로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애크로이드 살인사건>과 함께 언제나 수위권에 포진하는 작품이다. 여행 미스터리의 최고봉 중 하나이자 독창적인 트릭과 플롯을 지닌 후더닛 소설로도 손꼽히는데, 그런 만큼 여러 번에 걸쳐 영상화되었다. 특히 그중 가장 유명한 건 제일 처음 만들어진 1974년 시드니 루멧 감독 버전으로, 포와로 역을 맡은 앨버트 피니를 비롯해, 숀 코네리, 잉그리드 버그먼, 로렌 바콜, 앤서니 퍼킨스, 존 길거드, 바네사 레드그레이브, 재클린 비셋, 리처드 위드마크, 마이클 요크, 마틴 발삼 등 초호화 캐스팅을 자랑한다.

캐릭터들의 이름이 조금 바뀌고, 소소하게 기차 객실 설정이 조금 달라졌단 것 외엔 원작에 충실히 각색됐는데, 애거서 크리스티 원작 영화들 중 가장 완성도 높은 작품으로 손꼽힌다. 이는 연극적인 연출과 배우 다루는 데 능한 시드니 루멧의 장기에, 폴 덴의 좋은 각본, 이국적인 풍광을 담아낸 제프리 언스워스의 촬영과 고혹적인 토니 월톤의 의상까지 최고의 스태프들이 모인 결과 때문이기도 했다. 그해 아카데미 시상식에 6개 부문에 후보로 올랐으며, 84세의 애거서 크리스티가 직접 시사회에 참석해 만족감을 표했다. 이는 생전에 그녀가 유일하게 참석한 자신의 원작 영화 시사회이자 마지막 공식행사 자리기도 했다.

오리엔트 특급 살인사건

감독 시드니 루멧

출연 알버트 피니, 로렌 바콜

개봉 1974 영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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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년 만에 리메이크된 초호화 캐스팅

리들리 스콧의 주도로 무려 43년 만에 이루어진 이번 리메이크작 역시 그런 올스타 캐스팅 기조를 충실히 따라가고 있다. 연출과 에르큘 포와로 역을 직접 맡은 케네스 브래너를 비롯해 조니 뎁, 주디 덴치, 윌렘 데포, 페넬로페 크루즈, 미셀 파이퍼, 데릭 제이코비, 조시 게드, 데이지 리들리 등 1974년도 버전에 못지않게 만만치 않은 신구 스타들이 포진돼 앙상블 연기의 진수를 펼쳐보인다. 워낙에 잘 알려진 고전 추리소설이기에 스토리상 신선한 맛은 덜하지만, 세련되고 고급스런 미술과 촬영, 시드니 루멧처럼 연극에서 다져진 케네스 브래너만의 아기자기한 연출 등이 어우러지며 오랜만에 웰메이드한 추리물을 보는 재미를 선사한다.

<토르: 라그나로크><저스티스 리그>, 픽사의 신작 애니 <코코> 등 상대적으로 센 경쟁작들을 맞았음에도 흥행에서 선방하며 후속편의 제작을 확정지었다. 1974<오리엔트 특급 살인>이 성공하자 제작자인 존 브라번과 리처드 굿윈이 애거서 크리스티의 다른 추리소설 <나일 강의 죽음><깨어진 거울>, <백주의 악마>를 쭉 만들었던 것처럼 리들리 스콧과 사이먼 킨버그 등 이번 제작진도 똑같이 두 번째 작품으로 <나일 강의 죽음>을 만들 계획에 있다. 케네스 브래너가 감독과 에르큘 포와로로 다시 돌아올지 아직 확정되진 않았지만, 이번 결과물에 모두 만족을 표하기 있기 때문에 확률적으로 다시 뭉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오리엔트 특급 살인

감독 케네스 브래너

출연 케네스 브래너, 조니 뎁, 데이지 리들리, 미셸 파이퍼, 페넬로페 크루즈, 주디 덴치, 윌렘 대포, 조시 게드, 데릭 제이코비, 레슬리 오덤 주니어

개봉 2017 미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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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차드 로드니 베네트 경의
1974년 <오리엔트 특급 살인>

1974년도 <오리엔트 특급 살인>의 음악을 맡은 리처드 로드니 베네트 경은 무대음악 작곡가이자 영화음악가로 잘 알려진 스티븐 손드하임의 소개로 참여하게 되었는데, 그의 애초 고용 목적은 1930년대의 기존 곡들을 영화에 맞게 편곡하기 위해서였다. 베네트가 전위음악과 재즈, 대중음악과 영화·TV 등에 이르기까지 다방면으로 활동하며 능력을 발휘했던 터라 그의 발탁은 적절했다. 하지만 스튜디오는 이 방식이 진부하다고 여겼고, 기존에 발표됐던 곡들 대신 오리지널 스코어를 쓰는 걸로 감독을 설득했다. 루멧이 원했던 건 1930년대의 유명한 피아니스트 에디 두친 스타일이었고, 베네트는 리차드 아딘셀의 바르샤바 협주곡을 떠올렸다. 이 두 성향이 합쳐져 지금의 그 유명한 왈츠 테마가 작곡되었다.

왈츠는 꽤나 훌륭한 선택이었다. 증기 기관차가 달려가는 모습을 형상화하는 동시에, 에르큘 포와로라는 캐릭터를 얄밉지 않게 스케치해가며, 아울러 철로가 지나가는 동유럽이란 지역적 색채를 희미하게나마 상징적으로 내포하기도 한다. 심문과 증언으로 자칫 지루해질 수 있는 영화에 템포와 리듬을 부여하고 방점을 찍어주는 것도 베네트가 유려하게 직조해낸 왈츠 덕분이다. 뛰어난 피아니스트이기도 했던 그가 직접 피아노 연주를 맡아 유쾌하면서도 여유로운 솜씨를 과시했다. 베네트는 왈츠와 재즈라는 조합을 통해 시대성과 고전 지향적인 스타일에 집중했고, 이건 동유럽이란 이국적 환경을 지워버리고 기차라는 무대의 실내극에 쉽게 몰입하게 만든다. 기존 곡들로 편곡돼 채워졌다면 지금만큼의 아우라를 주지 못했을 것이다.

패트릭 도일의
2017년 <오리엔트 특급 살인>

2017년도 <오리엔트 특급 살인>의 음악을 맡은 건 언제나 케네스 브래너의 영화에 고유명사처럼 이름을 올리는 패트릭 도일이다. 이번 작품은 그들의 13번째 협업작으로, 전작들처럼 뛰어난 솜씨와 완성도를 자랑한다. 스티븐 스필버그 곁의 존 윌리엄스처럼, 팀 버튼 곁의 대니 엘프만처럼, 로버트 저메키스 곁의 알란 실베스트리처럼, 케네스 브래너 곁의 패트릭 도일은 완전무결하다. 어떤 장르, 어떤 이야기가 되었던 간에 고전적인 품격과 세련된 선율로 만족스런 결과물을 뽑아낸다. 앞서 베네트가 1930년대라는 시대에 집중해 크리스티 소설의 아우라와 템포를 조성했다면, 도일은 시대에서 벗어나 이국적인 무대와 다채로운 인물들의 수수께끼에 초점을 맞추며 내러티브 본연에 충실하게 접근해간다.

오스카 음악상 후보에 올랐고 영국 아카데미 음악상을 수상하기도 했던 리처드 로드니 베네트의 아성에 눌리지 않고 패트릭 도일은 자신만의 스타일을 맘껏 펼쳐 보인다. 묵직하고 중후한 스트링을 기반으로 피아노와 목관악기들이 어우러지며 만들어내는 다이내믹하고 감각적인 테마는 왈츠와 또 다르게 기차를 탄 듯한 느낌을 선사하며 특유의 긴장과 스릴을 조성한다. 강렬하고 화려한 서사와 진지한 장엄함이 가득했던 초기작들과 달리 섬세하고 미니멀해졌지만, 패트릭 도일만의 천부적인 멜로디 감각이 남아 귀를 확 사로잡는다. <사랑의 행로>에서 놀라운 노래 솜씨를 보여줬던 미셸 파이퍼를 위해 패트릭 도일은 또 다른 선물도 남긴다. 스산하게 가슴을 파고드는 ‘Never Forget’이 바로 그것이다.

그리고 동양 버전의 오리엔트 특급 살인도 있다!

그 외에 <오리엔트 특급 살인>은 일본에서도 번안되어 2부작 TV특집극으로 만들어졌다. 후지TV 개국 55주년을 맞아 2015년 영화와 연극, TV와 각본에서 다방면으로 활약하는 미타니 코키가 연출을 맡았는데, 영미권 영화들처럼 일본판 역시 초호화 캐스팅이 이루어졌다. 1, 2부 총 5시간에 달할 만큼 방대한 분량을 자랑하는데, 1부가 원작과 동일한 구성이라면 2부는 범인의 시점에서 다뤄진다. 음악을 담당한 건 정상급 색소포니스트이자 EWI 연주자(개발자)이고 영화음악가이기도 한 스미토모 노리히토로, 일본식으로 각색된 애거서 크리스티 세계에 걸맞는 사운드를 들려주고 있다.

오리엔트 특급 살인사건

연출 코노 케이타

출연 노무라 만사이, 마츠시마 나나코, 니노미야 카즈나리, 안, 타마키 히로시, 사와무라 잇키, 이케마츠 소스케, 야기 아키코, 아오키 사야카, 후지모토 타카히로, 후지 스미코, 사사노 타카시, 타카하시 카츠미, 코바야시 타카시, 쿠사부에 미츠코, 니시다 토시유키, 키치세 미치코, 이시마루 칸지, 쿠로키 하루, 사토 코이치

방송 2015, 일본 후지T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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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운드트랙스 / 영화음악 애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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