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헨리 카빌 하차한 〈위쳐〉 드라마, 이런저런 이야기

씨네플레이
〈위쳐〉 포스터
〈위쳐〉 포스터

 

<위쳐> 시리즈는 시작부터 화젯거리였다. 넷플릭스는 '차세대 왕좌의 게임'이라는 다소 위험한 캐치프레이즈를 내세우며 대대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시즌1이 공개되기도 전에 시즌2가 확정되었고, 프로모션도 빵빵했다. 완성도나 (실사화 프로젝트가 늘 그렇듯) 원작 구현에 대한 갑론을박은 있었지만 대중적인 흥행에는 어느 정도 성공을 거두었고, 자연스럽게 시즌3을 제작 확정한다. 하지만 지금은 화려했던 시작과는 달리, 시즌 5까지로 시리즈의 종료가 예정되어 있으며 주연배우였던 헨리 카빌은 하차 수순을 밟았다.

헨리 카빌만이 유일한 게롤트라고 말할 수는 없겠지만, 시즌이 세 개나 진행된 와중 그것도 5시즌에서 마무리할 예정인 시리즈가 갑자기 주연이자 간판이나 다름없는 배우를 교체한다는 게 썩 탐탁하게 여겨지진 않지만... 어쨌거나 시즌 4는 최초 티저 영상을 공개하고 제작에 들어간 상태다. 헨리 카빌이 게임 <위쳐>의 광팬이기도 해서 그의 캐스팅 소식에 환호했던 팬들 입장에선 즐겁지만은 않은 얘기다. 하지만 왠지 알 것만 같다. 위쳐의 팬이자 게롤트의 팬이라면 지금까지의 <위쳐>가 그리 흡족하진 않았을 테니.

리암 헴스워스가 이어받은 게롤트 〈위쳐〉
리암 헴스워스가 이어받은 게롤트 〈위쳐〉

그래서 이런 얘길 지금 하는 게 맞나 싶긴 했지만, 또 달리 생각하면 이런 얘기니까 지금 해버릴 수도 있다 싶어서 그냥 해 보련다. 드라마 <위쳐>가 왜 마음에 들지 않았었는지. 아마도 헨리 카빌이 정말 게이머이자 팬으로서 게롤트를 연기했다면... 그리고 루머성이긴 하지만 제작진들의 태도가 사실이라면... 지금 팬들이 느끼는 것과 그의 마음이 크게 다를 것 같지는 않기 때문이다.


<위쳐> 시리즈의 시작은 장대한 세계관과 디테일한 설정으로 가득 찬 소설이었다. 하지만 게임으로 위쳐를 알게 된 사람이 더 많을지도 모르겠다. 게임으로 제작된 <더 위쳐>가 연이은 성공을 거두었기 때문인데, 특히 2019년에 출시된 3편이 2주간 4백만 장의 판매고를 올린 데다 크리틱 90점을 기록하는 등 흥행과 평가 면에서 모두 뛰어난 성적을 냈기 때문이다.

〈더 위쳐 3: 와일드 헌트〉
〈더 위쳐 3: 와일드 헌트〉

 

사실 3D 그래픽 오픈월드 RPG는 정말 많다. 수많은 경쟁작들 사이에서 이 게임 시리즈가 유독 수작이냐고 한다면 글쎄 좀 미흡한 부분도 많은 게 사실이었다. 시리즈 1, 2편은 조작이 직관적이지도 않고 최적화도 부족했으며 미묘하게 엉성한 그래픽이라든지 상당히 아쉬움이 많이 남았던 것. 하지만 그럼에도, 사소한 선택이나 행동으로 인해 완전히 달라져 버리는 세계의 운명 속에서 고투하는 게롤트와 함께하는 건 꽤 재미있었다. 물론 여기에는 그, 어른의 놀이라든지(이 게임은 성인 등급이다) 숨겨진 퀘스트라든지, 원작 소설을 알고 있다면 반가울 만한 이스터에그들이라든지 재미있는 요소들이 큰 역할을 하기도 했다.

게임으로서의 뭔가를 떠나서 캐릭터 전체를 본다면, 이 시리즈의 성공은 어쩌면 예견된 부분일 수도 있겠다. 중세 판타지를 기반으로 한 RPG들이 흔히 권선징악의 구도를 택하곤 하지만 <위쳐> 시리즈엔 그런 건 없다. 절대선과 절대악이 존재하지 않는, 생존을 건 현실 속에서 짙은 회색과 옅은 회색을 오가는 것이 위쳐의 선택지들이다. 그야말로 판타지스러운 세계지만, 동시에 가장 현실적일 수도 있는 이야기를 하고 있다.

그래서 비주얼 면에서 가장 현실과 가까운 콘텐츠인 실사화 드라마는 이런 딜렐마를 한층 더 현실적으로 그릴 가능성이 있었다. 원작이 토대를 마련했고, 게임이 이 토대를 기반으로 대중적 인기를 확보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방영된 드라마에는 몇 가지 문제가 있었다. 여전한 이야기와 여전한 재미가 있었지만 아쉬운 맛을 지울 수 없었다.


〈위쳐〉 시즌 3까지 출연하고 하차한 헨리 카빌
〈위쳐〉 시즌 3까지 출연하고 하차한 헨리 카빌

 

실사화되어 어느 정도 성공한 게임에는 몇 가지 공통점이 있다. 가장 큰 공통점이라면 세계관이 디테일하고 주인공들이 매력적이라서 캐릭터의 사건과 삶을 들여다보는 재미를 갖추고 있다는 것일테다. <더 위쳐> 시리즈도 그랬다. 게롤트의 삶을 되짚어가는 여정은 꽤 흥미롭다. 이 살육과 생존의 세계에서 강한 힘을 가진 이들과 함께하는 게롤트는 매순간 선택의 기로에 놓이고 스스로를 증명해야 하는 순간도 마주하곤 한다. 디테일은 이스터에그와 퀘스트, 캐릭터가 접하는 사건으로 구현되었고 재미 요소가 되었다. 그래서 원작 게임을 해본 유저들은 실사화 소식을 들으면 대부분 같은 이야기를 한다. 게임 그대로만 나오면 참 좋겠다.

헨리 카빌의 비주얼이 게임 시리즈를 능가하는 수준이었던 데에 많은 이견은 없을 것 같다. 첫 영상이 공개되었을 때 원작보다 더 게롤트스러운 게롤트라고 했었을 정도니까. 게임을 안 해본 유저들도 그의 게롤트에 흥미를 느꼈다. 하지만 나머지 주연급 캐릭터는 아니었다. 예니퍼와 트리스를 비롯한 다수의 캐릭터들이 기대와는 영 다른 캐스팅으로 등장했다. 대부분의 이유는 비주얼, 인종 변경 문제였다.

〈위쳐〉 트리스는 안나 샤퍼가 배역을 맡아 논란이 있었다. 드라마 첫 등장시 '적발'이 아닌 흑발 곱슬머리였기 때문.
〈위쳐〉 트리스는 안나 샤퍼가 배역을 맡아 논란이 있었다. 드라마 첫 등장시 '적발'이 아닌 흑발 곱슬머리였기 때문.
게임 〈더 위쳐〉 시리즈의 트리스
게임 〈더 위쳐〉 시리즈의 트리스

 

실사화 얘기를 할 때마다 매번 이런 문제가 닥쳐온다. 원작사가 직접 영화화한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에서도 있었던 일이다. 소위 정치적으로 올바른 스탠스, 즉 PC함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 과연 콘텐츠를 바라보는 올바른 시각인가 고민하게 된다. 하지만 원작이 있는 작품의 경우에 설정을 그대로 반영해주길 바라는 건 원작팬들의 공통적인 바람일 것인데, 왜 이들은 그런 선택을 한 걸까 의문에 휩싸이고야 마는 것이다. 중세를 배경으로 하고 있으니 필연적으로 대부분의 인물이(대단한 사건과 개연성이 아니고서야) 백인인 게 당연하지 않은가.

세계관 최고의 미인으로 묘사되는 트리스 캐스팅에 대한 실망도 컸다. 결국 게롤트와 몇몇 조연급 캐릭터를 제외하면 원작과는 영 다른 비주얼로 등장해 버렸던 것이다. 이렇게 되면 원작 팬들의 환호성을 듣기는 어려워진다. 팬들은 예상대로 불만을 표했으나 달라진 건 없었다. 시리즈는 진행되었고 각각의 캐릭터들은 기존 게임과는 다른 형태로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위쳐〉예니퍼 또한 인도계 배우 안야 차로트라가 캐스팅돼 게임 이미지와 달라졌다.
〈위쳐〉예니퍼 또한 인도계 배우 안야 차로트라가 캐스팅돼 게임 이미지와 달라졌다.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원작 팬들의 요구를 일정 수준 배제한다면 이제 남은 건 범대중의 요구를 만족시키는 것이었을 텐데, 게롤트의 서사와 이 세계의 이야기를 모르는 사람들에게 이 드라마는 결코 친절하지 않았다. 원작의 흐름대로 예니퍼와 시리, 게롤트의 이야기를 했지만 시점이 왔다갔다하고 시간대도 명확히 설명하지 않아 집중해서 보지 않는다면 이야기를 명확히 이해하기는 어려웠다. 게임에서도 게롤트의 선택이 따라 이야기가 달라지기 때문에 루트 3개를 반복해서 플레이하지 않으면 정확한 세계관의 역사를 이해하기 어려운 마당에, 해본 사람들이 아니면 시즌 1부터 상당한 혼란을 느낄 수도 있었을 것이다.

2시간 내외의 스크린 개봉 영화였다면 좀 달랐을지도 모르겠다. 어쨌거나 정해진 시간만큼 스크린에 집중하게 하는 개봉영화라면 좀 더 이해하기 쉬웠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 시리즈는 OTT 대표주자인 넷플릭스를 통해 공개되는 콘텐츠였기에 조건이 많이 달랐다. 콘텐츠의 접근 장벽이 갈수록 낮아지는 작금의 시대에 집중해야만 이해할 수 있는 콘텐츠가 대중적으로 대성공하기는 어렵다는 건 사실 설명할 필요도 없질 않나.

〈위쳐〉
〈위쳐〉

 

물론 결과적으로 드라마 <위쳐>는 나쁘지 않은 성과를 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체 IP의 명성에 견줄 만큼 수작이었냐고 하면 그건 아니었다. 그리고 결국 헨리 카빌은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은 모종의 사유로 하차하기에 이르렀는데 당시 루머로는 원작에 대한 제작진의 태도가 주요한 원인이라고까지 한다.

어디까지나 루머이니 속단하기엔 이르겠다. 하지만 시리즈의 팬임을 과시해 왔던 헨리 카빌 입장에서 제작 방향성과 아주 잘 맞았을 것 같지 않다는 섣부른 추측도 많이 나오고 있고, 원작 독자이자 게임의 유저였던 입장에서 그건 꽤 동의할 수 있는 얘기다. 안 그래도 위쳐는 세계관에서 좋지 못한 취급을 받는데 현실에서도 그런 취급을 받았다면 한다면 꽤 문제가 될 소지가 있어 보이지만.


〈더 위쳐 3: 와일드 헌트〉
〈더 위쳐 3: 와일드 헌트〉

원작과 관계없는 서사로도 충분히 성공할 수는 있다. 하지만 거기에는 더 많은 고려점들이 있을 테고 좋은 해답도 있어야 한다. <위쳐> 드라마에 그런 해답이 있었냐고 한다면 상당히 애매한 대답을 해야 할 것 같다. 분명한 건 원작이 존재하는 실사화에서 자유로운 재생산은 얼마든지 가능하지만, 그 자유에 따른 아쉬움도 감당해야 할 문제라는 것이다.

시리즈를 관통하는 중요한 요소들을 담아내는 것도 중요하다. 그건 콘텐츠의 내부적인 디자인 문제다. 더불어 중요한 것은 원작의 팬들이 기대할 수 있는 시각적 비주얼을 담는 것도 그만큼 의미 있는 일이다. 그래서 히어로코믹스의 실사화에서 히어로 수트와 스킬 CG가 화제가 되는 게 아닌가. 기대하지 않았던 것이 기대 이상이라면 너무나 흥미롭겠으나, 그 반대라면 몰입도를 반감시킬 뿐이다.

〈위쳐〉 헨리 카빌
〈위쳐〉 헨리 카빌

 

원작 그대로를 담아내는 게 늘 정답은 아니다. 재해석은 늘 흥미로우니까. 그래서 결국 또 <아이언맨> 1편의 성공을 반추하게 된다. 왜 그때의 토니 스타크는 맞고, 위쳐의 트리스는 틀리다고 느끼게 되는가. 대답은 늘 제작자가 아닌 소비자가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