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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작 게임까지 역주행 시킨 바로 그 드라마,〈폴아웃〉

씨네플레이
〈풀아웃〉
〈풀아웃〉


게임 IP로 만들어진 드라마가 성공한 첫 사례는 아니지만, 이렇게 파급력이 좋은 드라마는 꽤 오랜만이다. 왠지 한국에서는 아직도 대중적이지 않은 느낌의 OTT 아마존 프라임 비디오 독점 콘텐츠인 <폴아웃> 시리즈 이야기다.
 

​1997년에 첫 타이틀이 발표된 이 시리즈는 게임으로서의 역사만 해도 장장 27년에 달하는데, 그만큼 이야깃거리도 많고 세계관도 방대하다. 즉 실사화 콘텐츠로서 새로운 이야기를 꺼낼 만한 기반은 충분히 갖춰져 있고, 그걸 기대하는 팬들도 많았다는 뜻이다. 물론 비슷한 상황이었던 '헤일로' 실사화가 혹평을 받는 바람에 우려의 시선도 없지는 않았으나, 결과적으로 <폴아웃>은 성공했다.
 

​드라마로 '폴아웃'이라는 세계를 접한 관객들 대다수는 즐겁게 시청한 것 같아 보인다. 시리즈는 인기를 얻었고, 시즌 2를 준비 중이며, 원작 게임은 전 세계 매출 차트에 실로 오랜만에 이름을 올리기까지 했다. 그래서 원작을 재미있게 플레이했던 팬들도 마냥 축배를 들었을 것 같기도 하지만... 의외로 그건 아니다.


 냉전 시대의 대체 역사, 건재한 소련과 미중전쟁
 

핵 전쟁 포스트 아포칼립스 〈풀아웃〉
핵 전쟁 포스트 아포칼립스 〈풀아웃〉


프라임 비디오의 드라마 <폴아웃>과 원작 게임 시리즈는 동일한 세계관을 기반으로 하고 있는데, 이 세계에서 냉전은 종식되지 않은 채 장기간 유지되고 있다. 현실의 냉전이 소비에트 연방의 몰락으로 종전되었던 데 반해, '폴아웃'의 세계에서는 소련이 몰락하지 않았으며 중국이 새로운 사회주의 진영 강자로 발돋움한다.


오랜 세월 지속된 냉전이 다시금 전쟁으로 발화된 것은 석유 파동 때문이었다. 미국은 알래스카를 두고 다시금 중국과 전쟁을 벌였고, 결국 미국이 승리한 것처럼 보였으나 2077년 어느 날 미국 전역에 핵폭탄이 투하된다. 미국은 즉시 반격을 시작했고, 세계는 섬광과 함께 폐허가 되고 만다.

 

'볼트'의 문으로 표현한 〈풀아웃〉 티저 이미지
'볼트'의 문으로 표현한 〈풀아웃〉 티저 이미지

 
드라마의 시작은 이 지점이다. 2077년, 후대 사람들이 '대전쟁'이라고 부르는 그날로부터 모든 이야기는 출발한다. 사람들은 저 멀리에서 버섯구름이 피어나는 걸 목격하고, 눈부신 섬광과 함께 밀려온 폭발의 여파에 저마다 도망친다. 누군가는 미리 준비된 방공호로 피신했으나 대부분은 어디로도 피하지 못한다. 그리고 인류의 운명은 여러 갈래로 나뉘게 된다.


부유층과 권력자들은 몇백 년간은 살아갈 수 있을 만한 환경이 마련되어 있는 거대한 주거 시설 '볼트'에 정착한다. 나머지 사람들은 방사능 피폭을 피할 수 없었는데, 막대한 방사능에 노출되고도 방사능에 강한 유전자를 타고났거나 하는 이유로 신체가 변이되는 대신(이라긴 뭐하지만) 수명은 10배 늘어난 '구울'이라는 변이체가 되기도 했다. 이들은 황무지에서 제각각의 모습으로 삶을 견뎌나간다.

 

새로운 이야기, 루시의 여정
 

드라마 〈풀아웃〉의 주인공 루시
드라마 〈풀아웃〉의 주인공 루시


볼트 33에서 나고 자란 루시는 '볼트 거주자'답게 언젠가 지상의 방사능 수치가 안정되면, 볼트의 주민들이 다시금 미국을 구원할 거라는 믿음을 갖고 있다. 볼트의 규칙에 따라 루시는 볼트 감독관이 지정한 옆 볼트의 남성과 결혼하게 되지만, 첫날밤을 치르고 난 직후 그가 볼트 거주민이 아니라 볼트 33을 노리고 잠입한 지상인임을 알게 된다.


루시가 살고 있던 볼트 33을 습격한 지상인들은 거주민들을 학살하고, 감독관이자 루시의 아버지인 행크를 납치해 황무지 어딘가로 끌고 가 버린다. 고대하던 결혼이 첫날부터 망한 상황이지만 루시는 굴하지 않고 아버지를 구하러 나갈 계획을 세운다.


볼트의 굳게 닫혀 있던 출입구의 문턱을 넘자마자 루시는 만들어진 태양과 영사된 풍경이 아닌 진짜 날것의 환경을 처음으로 보게 된다. 그리고 황무지를 여행하며 수많은 인간군상을 보게 되고, 평생을 우물 안에서 살았던 주인공은 서서히 진실과 현실에 눈을 뜨기 시작한다. 아버지의 과거, 세계가 숨겨왔던 비밀은 루시가 믿어 의심치 않았던 토대를 완전히 무너뜨리고, 이제 루시는 스스로의 힘으로 다시 발을 내디뎌야 할 순간을 마주한다.

 

 원작 팬들에겐 설정 붕괴?
 

게임 '폴아웃' 시리즈의 '폴아웃: 뉴 베가스'
게임 '폴아웃' 시리즈의 '폴아웃: 뉴 베가스'


여기까지만 보면 왜 논란거리가 되는지 의아할 법도 한데, <폴아웃: 뉴 베가스>의 전개와 드라마 속에서 전개된 스토리가 맞지 않다는 게 가장 큰 이유였다. 간단히 설명하자면, 드라마 속에서는 2277년에 이미 몰락했다고 나오는 도시 셰이디 샌즈는 세계관 내에서 매우 중요한 세력 중 하나인 '뉴 캘리포니아 공화국'의 수도이며, 2281년이 배경인 <폴아웃: 뉴 베가스>에서는 이 국가의 건재함과 더불어 번성한 모습을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같은 세계관을 공유하는데 드라마에선 4년 전에 이미 수도가 몰락했고, 게임에선 국가가 멀쩡히 세를 확장해 나가고 있으니 설정 충돌이 아니냐는 게 논란의 요지였다. 앞서 말했듯 이 게임 시리즈는 특유의 멀티 엔딩 시스템 때문에 오피셜한 입장이 나오기 전에는 소위 정사(正史)인지 아닌지, 즉 세계관에서 공식적으로 채택한 스토리인지 아닌지를 알 수 없기에 드라마 쪽이 맞다고 인정받는다면 인기작이었던 <폴아웃: 뉴 베가스>의 스토리는 정식 스토리가 아니게 되는 것이기 때문.

 

〈풀아웃〉
〈풀아웃〉


이외에도 대전쟁의 기폭 요인, 즉 '누가 먼저 핵 공격을 시작했는가'에 대한 간접적인 대답과 세부적인 설정 요소 등이 원작 게임과 달라 게이머들 사이에서는 이래저래 말이 많았다. 사실 플랫폼이 달라지고, 원작 팬들이 아닌 광범위한 대중을 상대로 하는 콘텐츠이다 보니 보다 이해하기 쉽고 빠르게 설명해야 했을 테니 여러 가지로 납득은 가는 부분이긴 하다. 하지만 원작 시리즈의 오랜 팬들 입장에서 아쉬움이 남는 것도 이해는 간다.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는 모르겠지만, <폴아웃: 뉴 베가스>의 스토리와 드라마의 스토리 둘 모두 정식 스토리로 공식 인정을 받았으며 2077년 핵폭발도 폴아웃 역사상 실제 있었던 일인 것으로 정리되었다. 아마도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는 제작을 확정한 시즌 2에서 풀어야 할 숙제일 듯.

 

〈풀아웃〉
〈풀아웃〉


게임 원작 실사화 프로젝트가 불운과 불행을 더하던 시절도 이젠 과거에 넣어둘 때가 된 걸까. <라스트 오브 어스>와 <위쳐>, 그리고 <폴아웃>까지 여러 작품이 성공을 거두면서 이제까지 실사화되지 못했거나 아픈 과거를(...) 갖고 있는 수많은 명작 비디오게임들을 새삼 돌아보게 된다.


아무래도 IP와 관련하여 호재가 생기면 원작 게임도 판매량이 증가하는 편이기는 하지만, <폴아웃>의 경우 4월 10일 드라마가 공개된 직후인 12일에 동시 접속자가 평균 2만 명에서 3.5만 명으로, 14일에는 4배수가 넘는 8.3만 명에 이어 최대 17만 명까지 기록했다고 한다. 실제로 주변에서도 드라마를 보고 나니 게임이 더 하고 싶어졌다는 유저들이 꽤 있었고, 기회를 놓치지 않은 베데스다(현 판권 보유사)는 폴아웃 시리즈에 대폭 할인을 적용해 달달한 파급효과를 즐기기도 했다. 물론 작품이 좋아야겠지만(드라마 <폴아웃>은 93%의 높은 평가를 받았다), 괜찮은 미디어믹스가 IP 전체를 캐리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새삼 들기도 했다.


물론, 여전히 게임을 영상화하는 데에는 여러 가지 고민이 필요할 것이다. 게이머로서 캐릭터를 직접 조작하면 느꼈던 그 상호작용에서 오는 재미가, 내러티브로서의 재미와 상통할 것인가도 고민해 봐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폴아웃>은 꽤 재미있는 이야깃거리가 될지도 모르겠다. 멀티 엔딩이 장점이었던 게임의 실사화가 이렇게나 성공적으로 이어질 수 있게 되었다는 점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