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A24와 워킹타이틀, 그리고 네온. 이처럼 호명하는 것만으로도 무언가 선명한 이미지가 그려지는 영화사들이 있다. 이제는 두기봉 감독의 모든 것이라 불러도 좋을 영화사 ‘밀키웨이 이미지’(Milkyway Image, 이하 밀키웨이)도 그렇다. 아시아에서 가장 창조적인 필모그래피를 쌓아가고 있는 제작사 중 하나라 할 수 있는 밀키웨이는, 두기봉이 1996년 오랜 친구인 위가휘 감독과 함께 설립한 뒤 보다 개인적이고 독창적인 스타일로 놀라운 진화를 거듭하고 있다. 위가휘 감독의 단독 연출작 <넘버원이 되는 법>(1997)이 창립작이었으니, 밀키웨이는 처음부터 자신의 동료나 후배들과 함께 하는 영화사로 시작했다. 그 자신은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에도 초청됐던 유청운, 여명 주연 <진심영웅>(1997)이 첫 번째 밀키웨이 작품이었고 양조위의 악역 연기가 인상적인 <암화>(1998), 감독 스스로 자신의 중요한 터닝 포인트라 말해온 <미션>(1999) 등을 만들며 이른바 ‘밀키웨이 스타일’을 만들어갔다.

밀키웨이 창립 10주년을 기념해 위가휘와 공동 연출한 <매드 디텍티브>(2007) 외에도 유내해 감독의 <천공의 눈>(2007), 올해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폐막작 <구룡성채: 무법지대>를 만든 정 바오루이 감독의 <엑시던트>(2009)처럼 후배들을 데뷔시키는 데도 큰 힘을 쏟았다. 직원 수나 규모를 감안하자면 1년에 서너 편씩 쏟아내는 결과물들의 퀄리티는 믿기 힘들 정도로 놀랍다. 넷플릭스에서 감상 가능한 다큐멘터리 <두기봉: 경계를 넘는 감독>(Boundless, 2013)를 보면, 밀키웨이가 지난 시간 어떻게 홍콩영화계의 가장 창의적인 영화창작집단이 될 수 있었는지 잘 알 수 있다.


10여 년 전 밀키웨이 사무실을 찾은 적 있다. ‘홍콩에서 가장 바쁜 영화사’라고 하면 뭔가 으리으리한 초현대식 빌딩을 떠올릴지도 모르겠지만, 실제 모습은 완전히 다르다. 구룡 반도의 동쪽 쿤통(觀塘) 지역에 자리 잡은 밀키웨이를 찾아가면서 ‘계속 길을 잘못 든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계속 뇌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지하철 쿤통역에서 내려 바닷가 쪽으로 한참 걸어가다 밀키웨이 빌딩이 있는 훙토로드(鴻圖道)에 접어들기까지 공장지대가 계속 펼쳐졌기 때문이다. 정말 주변에는 쿵쾅거리는 기계 소음과 자재를 실어 나르는 트럭 외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Milkyway Building’이라 선 굵게 새겨진 빌딩 앞에 도착하고서도 ‘이곳이 정말 아시아에서 가장 창조적 역량을 자랑하고 있는 영화제작사 밀키웨이란 말인가’라는 생각에 어안이 벙벙했다. 그렇다. 건물 벽의 페인트는 벗겨지고 계단과 복도에는 시멘트를 덧댄 흔적이 그대로 남아있는 ‘밀키웨이 영화공장’이었다.

그런데 빌딩 주변 거리를 둘러보자니 묘하게도 밀키웨이 영화들의 이미지도 차례차례 떠올랐다. 두기봉 영화의 경찰들이 범죄자를 찾아 헤매던 곳, 구체적으로는 <PTU>(2003)에서 갱들과 싸우다 총을 분실한 경찰 로(임설)가 애타게 그 총의 행방을 찾아 떠돌던 거리가 바로 이곳 주변이다. 그리고 주변 골목 이곳저곳에서 정체불명의 가방을 들고 유령처럼 등장하던 조직원들의 모습은 폐소공포증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다. 그러고 보니 두기봉 영화에 등장하는 대부분의 밤 장면이 이곳 영화사 건물 주변에서 다 촬영했을 것만 같다. 안내해준 직원 역시도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공장들밖에 없어서 밤이면 정말 조용하다. 우리 말고는 아무도 없으니 밤 장면을 찍기에는 최적의 거리”라는 게 그의 얘기였다. <대사건>(2004)의 롱테이크 오프닝 시퀀스에 등장하는 거리도 여기서 걸어서 갈만한 곳이었다. 베니스국제영화제 경쟁부문 진출작이자 역시 밀키웨이가 제작한 <엑시던트>(2009)를 만든 정 바오루이 감독도 “밀키웨이는 현장성을 가장 중요하게 여기기 때문에 사무실보다는 현장에서 집합하는 경우가 많다”며 “사무실에는 늘 사람들이 별로 없다”라는 말까지 했었다. 실용성과 신속성이 만들어내는 창의성이라고나 할까.


밀키웨이가 국제적으로 알려지게 된 계기는 <미션>(1999) 이후다. 작품 내적인 완벽한 통제와 여러 인물들이 뒤엉키는 미장센에 대한 탁월한 감각은 그가 이루고자 했던 밀키웨이 스타일의 전범이 됐고, 그것은 첫 번째 정점이라 할 수 있는 <흑사회>(2005) 연작과 창립 10주년 기념작 <매드 디텍티브>(2007)를 지나 두기봉이 단독 연출한 <익사일>(2006), <스패로우>(2008), <복수>(2009), <탈명금>(2011), <마약전쟁>(2013), <삼인행: 생존게임>(2016) 등으로 쉼 없이 이어졌다.


그러면서 임달화, 오진우, 황추생, 임설 등 ‘두기봉 사단’이라 부를만한 친구들의 우정 집단도 만들어졌다. 후진 양성이라는 목적에 맞게 그가 키워낸 감독들의 리스트도 만만찮다. <비상돌연>(1998)의 유달지, <천공의 눈>의 유내해에 이어 정 바오루이 감독의 <엑시던트>가 베니스영화제 경쟁부문에 올랐다. 유내해처럼 밀키웨이의 시나리오 작가 출신인 사도금원이 안타깝게도 일찍 세상을 뜨는 일도 있었다. 그들 모두 두기봉을 꼭짓점으로 두고서 공통적으로 홍콩 도심에서의 탁월한 로케이션 촬영, 신속하고도 합리적인 프로덕션 진행, 그리고 ‘현대 홍콩’의 액션누아르 장르라는 점에서 완벽한 밀키웨이라는 견고한 세계를 구축하고 있다. 그렇게 고집스러운 스타일 면에서, 구성원들의 유사성이라는 측면에서 이렇게 밀접한 영향 관계 속에 놓인 영화사는 세계에서 밀키웨이가 거의 유일할 것이다.


지난 2005년 밀키웨이 설립 10주년 기념 책자로 발간된 「Milkyway Image, Beyond Imagination」에 수록된 글에서 영화평론가 데이빗 보드웰은 밀키웨이를 두고 “두기봉의 지휘 아래, 모든 면에서 진화를 거듭하고 있는 거의 유일한 홍콩영화사”고 썼다. “영화제작 방식의 새로운 룰을 만들어가고 있다”고도 덧붙였다. 여기서 말하는 ‘룰’이란 자급자족하는 놀라운 생명력을 말한다. 홍콩의 영화평론가 스티븐 테오는 이런 점에 대해, 밀키웨이의 영화들을 ‘상업적인 영화’와 ‘개인적인 영화’로 철저하게 구분할 수 있다고 말했다. 유덕화, 정수문 주연의 <니딩 유>(2000)나 <러브 온 다이어트>(2001), 그리고 <고해발지련2>(2012) 같은 로맨틱 코미디 영화들이 전자에 속한다면 <미션>을 시작으로 <흑사회> 시리즈 등 해외영화제의 초청을 받는, 이른바 마니아들의 열렬한 지지를 받고 있는 ‘두기봉표’ 누아르 영화들이 후자에 속할 것이다. 후자의 영화들이 비평적으로 평가가 좋았던 반면 흥행적으로는 썩 만족스럽지 못했지만, 유덕화와 정수문이 주연을 맡은 일련의 작품들을 통해 밀키웨이는 그 스타일을 유지할 수 있는 작품들을 제작비 걱정 없이 만들 수 있었다. 말하자면 그 둘이서 밀키웨이를 먹여 살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래서 과연 이게 두기봉의 작품이 맞나 싶을 정도로, 그 두 부류 작품들의 편차가 큰 것은 놀랍지만 그것이 지금까지 밀키웨이를 이끌어오는 중요한 토대가 된 것만은 분명하다.


지금도 밀키웨이는 그 두 부류의 영화들을 부지런히 오가고 있다. 그에 대해 두기봉 감독은 “전자의 작품들이 생존을 위해서 찍었던 영화들인 건 분명하다. 하지만 그 역시 두기봉과 위가휘의 이름이 새겨진 작품들”이라며 “그저 장르가 다른 영화들로 봐줬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그리고 거기에는 올해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에서 마스터클래스에 앞서 상영된 <용호방>(2004)이나 <스패로우>처럼, 홍콩에 대한 깊은 사랑을 담아 그 두 가지 성향이 조화를 이룬 작품들도 많다. 그 모든 작품들이 앞서 얘기한 그 ‘룰’에 따라 만들어지고 있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룰이라면 역시 밀키웨이를 처음 설립할 때 가졌던 두기봉 그 스스로의 다짐이다. 올해 마스터클래스에서 그는 “밀키웨이를 창립할 당시 홍콩영화계가 극심한 침체기를 겪었다. 내 인생에서 가장 힘든 때였다. 하지만 다시 엔지니어처럼 살던 과거의 나로 돌아갈 생각은 전혀 없었다”며 “뜻이 맞는 동료들과 내가 진짜 만들고 싶은 영화를 만들어야겠다고 더 굳게 다짐했다”고 말했다. 거장(巨匠)과 대가(大家)는 그렇게 창의성과 지구력이 결합해 만들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