짐 자무쉬의 새 영화 <패터슨>이 드디어 개봉했다. 뉴저지 패터슨에 사는 시 쓰는 버스운전사  패터슨을 주인공으로 삼은 설정에서 자무쉬 특유의 위트가 떠오르는 영화는 '시'를 닮았다. 고요한 리듬 아래 운율 같이  일상이 반복된다는 것인 한편, 영화에 묻어난 지표들을 낱낱이 풀어헤친다는 게 무의미하게 느껴진다는 뜻이기도 하다. <패터슨>의 이야기를 구구절절히 설명하기보다, 이를 물결처럼 즐길 수 있도록 돕는 몇 가지 팩트들을 짚으면서 이 걸작을 소개해보는 게 좋을 것 같다.


월화수목금토일
그리고 월

<패터슨>은 패터슨(애덤 드라이버)의 일주일을 그린 영화다. 월요일 아침 패터슨이 아내 로라(골쉬프테 파라하니) 곁에서 깨어나는 걸로 시작해 그 다음 월요일 여느때처럼 침대에서 일어나는 걸로 맺는다. 그의 하루는 단순하다. 아침에 일어나, 홀로 시리얼을 먹고, 출근해서 동료의 넋두리를 듣거나 시를 쓰고, 버스를 몰고, 그레이트 폴스 공원에 앉아 폭포를 보며 시를 쓰고, 퇴근해서 로라와 대화를 나눈 뒤, 강아지 마빈을 산책시키며 바에서 맥주를 마신다. 이 사이클 아래 일주일이 지나는 사이 드라마틱한 사건 같은 건 벌어지지 않는다. 다만 그 사이클을 보여주는 방식에 때마다 옅은 변화가 더해진다. 잠에서 깰 때 패터슨과 로라의 자세는 조금씩 다르고, 세세하게 찍었던 출근길이 어떤 날은 아예 생략돼 있다. 그 변화에 집중할 때, (시로 빗대자면) 이 구절과 저 구절의 행간을 음미할 때, <패터슨>은 한껏 풍부해진다.


예술에 대한 사랑

톰 웨이츠 / 조 스트러머 / RZA

자무쉬의 예술에 대한 관심은 익히 유명하다. <다운 바이 로>(1986)의 톰 웨이츠, <미스터리 트레인>(1989)의 조 스트러머, <고스트 독>(1999)의 RZA 등 뮤지션을 배우로 기용한 바 있고, 닐 영의 콘서트 투어를 담은 <이어 오브 더 호스>(1997)와 이기 팝의 밴드 스투지스의 흥망성쇠를 기록한 다큐멘터리 <김미 데인저>(2016)를 연출했다. 바로 전 작품 <오직 사랑하는 이들만이 살아남는다>(2013)의 주인공은 언더그라운드 뮤지션인 뱀파이어였다.

이어 오브 더 호스 / 김미 데인저

그의 사랑이 음악에만 국한되는 건 아니다. <데드맨>(1995)의 주인공 윌리엄 블레이크는 저 유명한 시인의 이름을 떠올리게 하고, <리미츠 오브 컨트롤>(2009)에서는 온갖 예술가들을 만난 뒤 무적으로 거듭나는 남자의 여정을 따라간다. <패터슨>은 명백히 시에 대한 영화다. 시인이 되기 위해 컬럼비아 대학에서 영문학을 공부했던 자무쉬는 당시 프랭크 오하라, 윌리엄 카를로스 윌리엄스, 단테 알리기에리 등 시인들을 흠모했다. <패터슨> 속 대사, 장면 곳곳에서 그들의 흔적을 찾아보는 것 또한 영화를 즐기는 길 중 하나다.


한 시인에서 비롯된 이야기

짐 자무쉬는 26년 전 처음 <패터슨>의 이야기를 구상했다. 시인 윌리엄 카를로스 윌리엄스의 작품들에 매료됐고, 그의 시를 더 깊게 이해하고자 그가 살았던 패터슨을 여행했다. 다만 윌리엄스의 대표작인 <패터슨> 같은 난해한 장시보다는 간결한 시편들에 더 이끌렸다고 한다. 자무쉬는 패터슨의 명소인 그레이트 폴스의 폭포를 바라보면서 무언가 강렬한 인상을 받았고, 그 자리에서 <패터슨>의 이야기를 써내려갔다. 물론, 패터슨이 늘상 바라본 폭포와 앉은 벤치는 그레이트 폴스 공원에 실재하는 것이고, 촬영 역시 대부분 패터슨의 곳곳에서 이루어졌다. 시인이자 소아과의사였던 윌리엄스처럼, 패터슨 역시 시인이자 버스운전사로 설정된 건 결코 우연이 아니다. 


영화 속 시는 누가 썼을까?

패터슨은 시인이다. 출근길에, 버스를 몰 때, 점심시간에 휴식하며, 시를 구상하고 쓴다. 패터슨이 쓰는 시는 애덤 드라이버의 내레이션과 함께 몽환적인 화면에 글씨로 새겨진다. 자무쉬는 학부 때부터 꾸준히 교류해온 시인 론 패짓에게 패터슨의 시를 써달라고 요청했다. 'Love Poem', 'Pumpkin', 'The Line' 등 모두 패짓이 쓴 것이다. 단 하나의 시만 빼고. 어느 날 퇴근길에 만나는 소녀 시인이 들려주는 'Water Falls'는 짐 자무쉬가 직접 썼다. 패짓이 한 사람이 쓰는 시만 쓸 수 있다고 고집했기 때문이다. 과연 시인다운 결단이다.


Music by SQÜRL

<패터슨>의 음악은 SQÜRL이 만들었다. 자무쉬의 전작 <오직 사랑하는 이들만이 살아남는다>의 사운드트랙은 요제프 판 비셈이 만들고 그들이 서포트하는 방식으로 만들어졌다. SQÜRL의 멤버는 짐 자무쉬와 카터 로건이다. 즉, <패터슨>의 음악은 자무쉬가 직접 만든 셈이다. 차라리 앰비언트라 부르고 싶은 음악은, 패터슨이 시에 대한 영감에 휩싸일 때 어김없이 등장한다. 패터슨이 느끼는 감정의 타이밍과 형태를 가장 잘 아는 사람은 <패터슨>을 쓰고 연출한 짐 자무쉬일 수밖에 없다. 영화 속에서 음악이 흐르고 있다는 건 알았지만 그게 어떤 선율과 소리를 담고 있었는지 가물가물하다면, 패터슨의 감정과 음악이 서로 완벽하게 녹아들었기 때문일 것이다.


알고 나면 더 반가운 얼굴들

<문라이즈 킹덤> / <패터슨>의 카라 헤이워드, 자레드 길만

단조로운 일상 가운데서 패터슨은 여러 사람들을 스친다. 그 중 재미있는 캐스팅이 몇 가지 있다. 우선 패터슨이 모는 버스 안에서 19세기 이탈리아의 무정부주의에 대해 이야기 하는 학생들. 그들은 웨스 앤더슨의 <문라이즈 킹덤>의 두 주인공을 연기한 카라 헤이워드, 자레드 길만이다. 한 사람도 아니고, 둘을 동시에 캐스팅해 하필 정치적인 이슈에 대해 토론하는 모습을 보여준다는 게 어쩐지 의미심장해 보인다.

메소드 맨


패터슨이  마빈과 밤산책 하는 도중에 빨래방에서 만나는 랩 하는 남자는 저명한 래퍼 메소드 맨이다. 패터슨은 라임을 넣어 랩 연습을 하는  그를 보고 시인이라고 여기는 것 같다. 관객들은 무심코 그를 패터슨에 사는 아마추어 래퍼라고 넘겨짚을 법한데, 정작 크레딧에서  그의 캐릭터명은 메소드 맨이고 배우 이름은 그의 본명인 클리프 스미스로 표기했다. 메소드 맨이 속한 팀 우탱 클랜의 수장 RZA는  <고스트 독>에 음악감독과 배우로 참여한 바 있다. 한편 패터슨이 늘 앉는 벤치에서 만나게 되는 일본인 시인을 연기한  배우는 짐 자무쉬의 1989년작 <미스터리 트레인>에서 주연을 맡은 바 있는 나가세 마사토시다. 최근 개봉한 가와세  나오미 감독의 <빛나는>에서도 그를 만날 수 있다.

<패터슨> / <미스터리 트레인>의 나가세 마사토시

<패터슨> 속 최고의 배우

<패터슨>엔 애덤 드라이버만큼 명연을 선보이는 배우가 또 하나 있다. 패터슨 부부의 반려견 마빈을 연기한 넬리다. 패터슨이 집안에서 느끼는 뭔가 어정쩡한 기분을 마빈이 심드렁한 얼굴로 콕콕 짚어준다. 원래 자무쉬는 마빈을 잭 러셀 테리어로 설정해놓았는데, 잉글리시 불독인 넬리를 만나고 마음을 바꿨다. 마빈은 수컷이지만 사실 넬리는 암컷이었다. 넬리의 연기를 또 보고 싶지만, 안타깝게도 관객들은 영화 크레딧이 다 오르고 나서 뜨는 문구 "In Memory of NELLIE"를 마주하게 된다. 넬리는 <패터슨>이 최초로 공개된 칸 영화제 2달 전 암으로 세상을 떠났고, 영화제는 최고의 연기를 선보인 강아지를 위한 '팜도그상'을 하늘의 넬리에게 바쳤다.

패터슨

감독 짐 자무쉬

출연 아담 드라이버, 골쉬프테 파라하니

개봉 2016 프랑스, 독일, 미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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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네플레이 에디터 문동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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