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썰미 있는 씨네플레이 독자라면 눈치 채셨을 겁니다. 포스팅 마지막에 쓰여진 에디터들의 이름 중 달랐던 하나가 있다면, 바로 '인턴'입니다. 이 글을 마지막으로 저의 인턴 생활은 끝이 납니다. 이대로 떠나긴 아쉬워 지난 9개월간의 연대기를 8편의 영화와 함께 훑어볼까 합니다. 인용구 속에 포함된 글은 TMI(Too Much Information)이니 알아서 걸러 보시길~


겟 아웃
백인 여자친구 집에 놀러간 흑인 남자에게 수상한 일들이 일어납니다. 마주친 흑인들은 눈물을 흘리고 코피를 쏟는 등 기이한 행동을 보입니다. 남자는 정신과 의사인 여자친구 어머니의 최면 탓이라고 생각합니다. <겟 아웃>은 영화 내내 무시무시한 공포감을 자아냅니다.

<겟 아웃>은 처음으로 언론 시사회에서 본 영화여서 의미가 남다릅니다. 깜짝 놀래키는 장면은 극혐이지만 첫 시사회니 좋기만 했습니다.
겟 아웃

감독 조던 필레

출연 브래드리 휘트포드, 앨리슨 윌리암스, 캐서린 키너, 다니엘 칼루야

개봉 2017 미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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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자
<옥자>는 슈퍼돼지 옥자와 미자의 우정을 통해 동물을 대하는 인간의 이기심을 꼬집는 영화입니다. 미자를 연기한 또랑또랑한 목소리의 안서현과 온기 넘치는 눈동자를 가진 옥자. 사랑스러운 둘의 모습에 저는 한동안 "옥짜야"를 외치고 다녔습니다.

옥자가 살생되지 않길 바라는 마음에 눈물을 흘렸지만, 고백하자면 영화를 보기 직전 돼지고기를 먹었습니다. <옥자> 시사회가 열린 충무로 대한극장 근처 필X면옥의 제육은 지금껏 먹었던 제육 중 으뜸이었습니다. 날이 더워지기 시작하던 이 시기에, 육쌈냉면밖에 몰랐던 초딩입맛 인턴은 선배들 덕분에 평양냉면에 눈을 뜨게 됩니다. 복날엔 삼계탕 말고 평양냉면이라며 정X면옥에 데려가 주시던 모 선배를 어떻게 잊을 수 있을까요.
옥자

감독 봉준호

출연 틸다 스윈튼, 폴 다노, 안서현

개봉 2017 대한민국, 미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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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은 밤 갑자기
<택시운전사>, <군함도>...7월엔 극장가 여름 대전이 있었지만 저에겐 이 영화가 강렬히 박혀있습니다. 부천국제판타스틱 영화제에서 상영된 <깊은 밤 갑자기>는 명성대로 강렬한 공포심을 조성합니다. 나비채집가 강 박사가 미옥을 가사도우미로 데려오는 것으로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선희(故 김영애)는 어린 미옥과 남편이 바람을 피운다고 의심하며 이 모든 게 미옥이 애지중지하는 목각인형 탓인 것처럼 느낍니다. 결국 선희는 정신착란증세까지 보입니다.

목각인형이 뭐 그리 대수라고 싶겠지만 실제로 보면 그렇게 무서울 수가 없습니다. 손으로 눈을 가리고도 놀랐던 영화는 처음입니다.
깊은 밤 갑자기

감독 고영남

출연 윤일봉, 김영애, 이기선, 한혜리

개봉 1981 대한민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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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비 드라이버
작년에 본 해외 영화 중 1위입니다. 베이비란 이름을 가진 운전사의 이야기를 화려한 액션과 신나는 음악과 함께 담은 영화입니다. 베이비의 출중한 드라이빙만으로도 눈이 휘둥그레지는데 모든 행동들이 음악 박자에 딱딱 맞추어지기까지! 지금껏 이 정도로 인상깊은 음악 영화는 없었습니다. 한동안 운전면허 뽐뿌가 오기도 했습니다. 

박사와 동료의 대화를 몰래 녹음한 걸 베이비가 믹싱해 탄생시킨 곡 'was he slow?'를 기억하시나요. 씨네플레이의 한 에디터는 이 음악을 입으로 따라하는 묘기를 종종 선보였고(거의 비트박서) 그때마다 전 자지러지곤 했습니다. '안녕하세요' 같은 인삿말로 가사를 바꾸어 불러주었던 것을 영원히 잊지 못할 것 같습니다.
베이비 드라이버

감독 에드가 라이트

출연 릴리 제임스, 안셀 엘고트, 제이미 폭스, 존 햄, 케빈 스페이시, 에이사 곤살레스

개봉 2017 영국, 미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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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한당
죄조직에 몸담고 있는 한재호(설경구)와 그에게 접근하기 위해 교도소에 잠입한 경찰 조현수(임시완), 두 인물이 등장합니다. 두 사람의 서로에 대한 마음이 차곡차곡 쌓여가는 과정을 보여줍니다. 하지만 인물들의 엇갈리는 마음은 가슴 아플 수밖에요.(김희원이 연기한 고병갑의 마음도 엇갈리죠..)

위 기사는 6월에 개봉한 영화 <불한당> 팬덤 '불한당원'의 열성적인 애정으로 9월까지도 꾸준히 대관 상영회를 이어온 것에 흥미를 느껴 시작한 아이템입니다. 글 작성에 도움을 받기 위해 <불한당>을 보게 됐는데.. 아.. 맞았습니다. 이것은 그냥 영화가 아니었습니다. 그날부로 저는 불한당원이 되어버렸습니다. 한 동안은 현수가 불쌍해서 스틸컷만 봐도 눈물을 쏟곤 했습니다.
불한당: 나쁜 놈들의 세상

감독 변성현

출연 설경구, 임시완

개봉 2016 대한민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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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의 건너편
망명 신청을 거절당한 시리아 난민 칼레드가 파리 날리는 음식점에서 일하게 되는 이야기입니다. 아키 카우리스마키 감독은 <르 아브르>에 이어 소외된 계층의 이야기를 특유의 유머와 함께 꼬집습니다. 등장인물들은 무표정으로 일관하는데 그 속에서 느껴지는 온기가 인상적인 작품입니다.

작년 추석은 열흘간 이어진 황금연휴였습니다. 씨네플레이는 비상의 달이었습니다. 연휴 기간에 올릴 콘텐츠를 미리 제작해야 했기 때문이죠. (물론 인턴은 당직 면제로 황금연휴를 보냈..) 한바탕 비상시국을 마친 뒤,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본 영화여서인지 <희망의 건너편>은 강렬히 기억 속에 박혀있습니다.
희망의 건너편

감독 아키 카우리스마키

출연 사카리 쿠오스마넨, 빌레 비르타넨, 카티 오우티넨, 토미 코펠라

개봉 2017 핀란드, 독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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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타임
<굿타임>은
한마디로 '힙한 영화'입니다. 시작한 지 30분이 지나서야 뒤늦게 뜨는 오프닝 크레딧, 귀가 째질 것 같은 신시사이저 음악, 정신없이 몰아치는 클로즈업까지 모든 게 새롭습니다. 무엇보다 로버트 패틴슨이 연기한 코니가 인상적입니다. 코니는 동생을 구해야 한다는 목표만으로 전심전력으로 내달리며 계속해서 또 다른 범죄를 저지릅니다. 코니는 상황이 악화될수록 오히려 더 날뛰는 위태로운 인물입니다. 불안함으로 일관하다가도 마지막엔 묘한 슬픔의 정서가 드러나는데, 어떻게 이런 <굿타임>을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요. 아직 올해가 한 달도 채 지났지 않았습니다만 올해 개봉작 중 최고의 영화를 꼽으라면 무조건 <굿타임>입니다.

굿타임

감독 베니 사프디, 조슈아 사프디

출연 로버트 패틴슨, 베니 사프디

개봉 2017 미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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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말투나 억양은 누구나 다르지만 이 간단한 인삿말을 쓰지 않는 사람은 없을 겁니다. 예의를 차리기 위해 쓰는 이 말은 사실 쓸데없는 말입니다. TV를 얻기 위해 떼쓰는 두 형제는 '어른들은 쓸데없는 말을 한다'는 논리로 침묵시위를 이어갑니다. 한 마을에서 일어나는 여러 사건들이 결국에는 하나로 관통되어 완벽한 마무리를 짓습니다. 오즈 야스지로의 영화는 내내 사랑스럽고 포근해서 입을 다물지 못하게 만듭니다.
극장에서 이렇게 크게 깔깔거려본 것도 처음이고요.

저는 귀여운 뱃지도 있답니다.
안녕하세요

감독 오즈 야스지로

출연 사다 케이지, 쿠가 요시코, 류 치슈

개봉 1959 일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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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개월의 시간 동안 감사했습니다. 앞으로도 씨네플레이 사랑해주세요!
이젠 정말 마지막으로 쓰는 제 이름이네요.

씨네플레이 인턴 에디터 이지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