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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생〉〈노스탤지아〉... 시간을 조각하는 감독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에 대하여

주성철편집장

가장 좋아하는 영화책을 한 권 고르라면, 나는 주저 없이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 감독의 삶과 철학을 담은 「봉인된 시간」을 꼽는다. 이제 누구도 ‘영화 예술’에 대해 진지하게 묻지 않는 이 시대에, 「봉인된 시간」은 예술의 존재 이유에 대해 끊임없는 질문을 던진다. 「봉인된 시간」에는 예술은 무엇을 위해서 존재하는가, 누가 예술을 필요로 하는가, 예술은 도대체 어떤 누구에 의해서 사용되어지는가, 라는 물음에 대한 타르코프스키의 깊은 고뇌의 사유가 실려 있다. 책에서 “영화와 예술에 관한 나 자신의 정리되지 못한 생각들을 정리하기로 했다”고 밝힌 그는 “어떤 경우라도, 마치 하나의 상품처럼 소비되어지기를 원하지 않는 모든 예술의 목적은 자기 자신과 이 세상에 삶과 인간 존재의 의미를 설명하려는 것이라는 것은 분명한 것”이라고 말한다.

참고로 1991년 출간된 「봉인된 시간」은 이제 절판되고, 30년의 세월이 흘러 2021년 「시간의 각인」이라는 새로운 제목으로 출판됐다. 독일어 번역본을 중역한 과거 버전과 달리 「시간의 각인」은 러시아 원전을 직접 번역했다. 게다가 타르코프스키는 이 책에서 영화감독이 하는 작업의 본질에 대해 ‘시간을 조각하는 것’이라고 강조했기에, 그에 착안한 새로운 책 제목이기도 하다. 그에게 영화란 반복되어 생성되는 순간을 필름에 각인해 넣는 과정의 연속인 것이다.

지난 8월 21일 4K리마스터링해 재개봉한 <희생>(1986)을 유작으로, 1986년 55세의 나이로 세상을 뜨기까지 불과 7편의 장편 극영화만 남기고 떠난 타르코프스키는, 평생 영화로 ‘삶과 인간 존재의 의미’를 탐구했던 영화의 순교자였다. 그래서일까, 과거 「봉인된 시간」 표지에는 잉그마르 베르히만의 다음과 같은 말이 인용되어 있었다. “만약 영화를 예술이라고 부를 수 있다면, 그것은 타르코프스키와 같은 위대한 영상 시인이 있기 때문이다.” 잉그마르 베르히만이야말로 현대 영화 예술의 수호자이지 않았던가. 실제로 <화니와 알렉산더>(1983) 등을 촬영하며 아카데미 촬영상을 수상하는 등 베르히만의 오랜 영혼의 단짝이나 다름없던 스벤 닉비스트 촬영감독은 이후 <희생>의 촬영을 맡기도 했다. 베르히만과 타르코프스키가 세대를 넘어 교감한 빛의 마술은 그렇게 완성됐다.  

<희생>과 더불어 타르코프스키의 영화들 중 가장 좋아하는 한 편을 고르라면, 주저 없이 <노스탤지아>(1983)를 선택할 것이다. 그 이유는 세상과 예술을 구원하고자 하는 영화 속 주인공 고르차코프의 모습에서 타르코프스키의 그림자가 어른거리기 때문이다. 이탈리아를 방문한 그는 러시아로 돌아가는 항공권을 돌연 취소하고 혼자 투스카니 인근의 온천 마을에 머무른다. 그리고는 은둔자 도메니코가 준 촛대에 불을 밝히고 온천을 걷기 시작한다. 도메니코는 군중을 향해 핵 위협에 대한 경고를 천명하고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동상 위에서 분신자살하는데, 그가 ‘두 개의 불이 켜지면 세상은 구원받는다’고 얘기했기 때문이다. 마을 사람들은 도메니코를 미치광이 취급했지만 고르차코프는 마을 변두리에 있는 그의 집까지 찾아가 오랜 대화를 나눈 터였다. 여기서 고르차코프가 말라붙은 온천의 끝에서 끝까지 걸어가는 기념비적인 롱테이크 촬영은 <노스탤지아>의 백미이자, 구원을 갈구하고 신과 인간의 실존에 대해 사색하는 영화 속 고르차코프와 영화 밖 타르코프스키의 진심이 담겨 있다. 촛불이 꺼질 때마다 다시 돌아가 그 촛불을 켜고는 다시 걷기 시작하는데, 두 번의 실패 후 세 번째에 이르러 마침내 건너편 끝에 당도하는데 성공한다. 하지만 타오르는 촛불 뒤로 고르차코프는 그 자리에서 쓰러지고 만다. 그리고는 구원의 안식처럼 베르디의 ‘레퀴엠’이 들려온다. 

그 숭고한 죽음이 끝이 아니다. <노스탤지아>의 가장 유명한 장면이 뒤를 잇는다. 카메라에서 사라졌던 고르차코프가 개 한 마리와 함께 러시아의 고향 집 앞마당에 앉아 있고 그 앞에는 조그만 웅덩이가 보인다. 롱테이크로 카메라가 천천히 뒤로 빠지면서 집 뒤와 옆의 거대한 기둥이 집을 감싸고 있다. 그것은 영화에서 앞서 보았던 이탈리아의 폐허화된 성당, 바로 지붕 없는 수도원인 산 갈가노 수도원이다. 그리고 전경으로 신비롭게 흰 눈발이 날리기 시작한다. 타르코프스키식의 특수효과라 불러야 할 이 장면은 <스토커>(국내 소개 제목 <잠입자>, 1980) 이후 망명해 살 수밖에 없었던 한 예술가의 고향에 대한 그리움과 영혼의 안식이 한데 녹아든 영화사의 명장면이다. 마치 르네상스 시대의 회화를 보는 것처럼, 환상과 현실이 교차하는 가운데 상하좌우 대칭적인 그 구도는 모태 공간처럼 편안하게 다가온다. 앞서 영화 속에서 등장한 회화 중에는 프란체스코의 벽화 ‘수태 중인 마돈나’도 있었다. 그처럼 타르코프스키는 이탈리아로 망명한 뒤 처음 만든 영화 <노스탤지아>를 통해 고향 러시아와 어머니에 대한 노스탤지어를 더없이 아름답고 신비로운, 또한 한 쇼트 안에서 두 개의 다른 공간이 혼합되는 초현실적인 이미지로 완성해냈다. 영화와 미술의 경계 위에서 시공간의 연속성을 해체하며, 예상치 못한 가운데 등장한 그 마지막 장면은 영화계에 큰 충격을 줬고 다른 많은 감독들에게도 큰 영향을 미쳤다. 아마도 그를 ‘위대한 영상시인’이라 부르는 이유는 그 때문일 것이다.

“이전에 천사였던 오즈 야스지로, 프랑수아 트뤼포,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에게 바치는 영화.” 빔 벤더스는 <베를린 천사의 시>(1987) 도입부를 그렇게 시작한다. 그처럼 많은 동료와 후배 감독들은 타르코프스키를 ‘영화의 천사’라 불렀다. 1932년 러시아에서 태어나 첫 번째 장편영화 <이반의 어린 시절>(1962)로 베니스국제영화제 황금사자상을 수상하여 세계적인 명성을 얻기 시작한 타르코프스키는, 몽골제국의 침략으로 피폐해진 15세기 러시아의 화가 안드레이 루블레프의 생애를 다룬 <안드레이 루블레프>(1966), 솔라리스라는 행성에서 벌어지는 기이한 현상을 탐사하기 위해 파견된 과학자가 겪는 신비한 체험을 그린 SF <솔라리스>(1972) 등을 만들며 러시아를 대표하는 감독이 되었다. 하지만 <이반의 어린 시절>을 통해 ‘인류가 어린이들을 위해 어떤 세상을 남겨주어야 하는가’라는 윤리적인 질문을 던진 초창기부터 당국의 제재를 받기 시작했고, <거울> 이후 조국에서의 창작 활동은 사실상 봉쇄되고 말았다. <노스탤지아>를 준비하면서 이탈리아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망명을 선언했으며, 당시 구소련 당국은 입국 금지를 결정했다. 안타깝게도 그런 과정 속에서 뒤늦게 암에 걸렸다는 사실을 알게 됐으며, 결국 유작이 된 <희생>의 개봉을 보지도 못한 채 1986년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타르코프스키의 영화들을 하나하나 심도 있게 연구한 학자 나리만 스카코프는 「타르코프스키의 영화」라는 저서를 통해 “타르코프스키 영화 속 주인공들은 단 한 명의 인물도 궁극적으로 현실과 완전한 타협을 이루지 못한다”며 “동시에 유일무이하고 엄격하며 정신적인 메시지를 전달하고자 노력하는 타르코프스키의 미학과 맞닿아 있다”고 썼다. 그러고 보면 이반이나 안드레이 루블레프, <솔라리스>의 크리스나 <노스탤지아>의 고르차코프, 그리고 <희생>의 알렉산더 등 그의 주인공들은 당혹스러우리만치 복잡하게 얽힌 시공간의 미로 속에서 길을 잃는 인물들이었다. 타르코프스키의 스타일과 미학은 그런 가운데 성립되어 갔다. 르네상스 회화를 연상케 하는 미장센과 느린 카메라의 이동, 때로는 비현실적인 순환 이미지의 사운드와 몽타주 등 그는 영화에 대한 근본적 성찰과 더불어 새로운 영화언어를 ‘발명’한 사람이다. 그에 대해 영화학자 자크 오몽은 자신의 저서 「영화감독들의 영화이론」에서 ‘시간의 예술’이라 말할 수 있는 영화를 두고, (앞서 타르코프스키가 얘기한 시간의 조각과 각인이라는 의미에서) 타르코프스키가 ‘시간을 조각하는 사람’이라 표현했다. 미장센과 몽타주라는 영화의 양대 언어 사이에서 그만의 독창적인 방식으로 영화언어를 혁신한 사람이라는 의미일 것이다.

그처럼 타르코프스키는 세계를 떠돌 수밖에 없었던 망명 예술가로서 그 공고한 형식의 경계를 넘어 자기만의 정서와 철학을 불어넣었다. 그래서일까, 그의 영화에서 별다른 대사나 사건의 진전 없이도 그저 화면을 가득 채운 거대한 나이 든 나무, 물속에서 흐늘흐늘 늘어진 수초, 호숫가에 피어오르는 옅은 아지랑이만으로도 삶의 의미를 되짚어보게 만드는 경건한 순간들이 있다. 크리스나 고르차코프나 알렉산더가 단지 웅덩이에 몸을 숙여 손을 씻는 것일 뿐인데, 그 영화의 팬들이라면 자신의 마음의 때가 씻겨나가는 기분까지 느낄지도 모른다. 나리만 스카코프가 말한 것처럼 “타르코프스키의 주인공들은 항상, 오로지 진실만을 추구”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 인물들은 따로 떨어져 있지 않다. 그래서 타르코프스키가 남긴 일곱 편의 영화는 크게 보아 시리즈처럼 이어서 봐야 하는 한 편의 긴 영화라 할 수 있다. 영화 예술가로서 올곧게 ‘진실’을 추구했던 타르코프스키의 삶은 그 자체로서 현대 예술의 결핍과 마주하게 만드는 소중한 순간을 가져다준다. 이쯤에서 「시간의 각인」에서 그가 긴 고뇌의 시간을 거쳐 예술에 대해 내린 정의를 되짚어 보자. “예술은 마치 일종의 사랑 고백과 같은 것이다. 예술은 우리 인간들이 다른 인간들에게 얽매여 있다는 자백과 같은 것이다. 예술은 고백이다. 예술은 삶의 본디 의미를 표출해 주는 무의식적인 행동이며 사랑이고 희생이다.” 그렇게 우리는 영화를 통해, 예술을 통해 다른 이들과 엮여 있다. 혼자가 아니다. 아마도 그것이 타르코프스키가 전해준 가장 큰 가르침일 것이다.  

 

「봉인된 시간」과 임인덕 신부에 대하여

 

「봉인된 시간」이라는 책 제목이 「시간의 각인」으로 바뀐 데는 사연이 있다. 지난 2013년 선종하신 독일 뉘른베르크 출신의 하인리히 세바스티안 로틀러, 한국 이름 임인덕 신부가 한국에 선교사로 파견된 이후 1972년부터 경북 왜관수도원에서 선교활동을 벌여왔는데, 그는 ‘분도출판사’와 ‘베네딕도 미디어’라는 이름으로 출판과 영화 등을 활용해 사목활동을 벌이며 당시 한국 씨네필들에게 큰 사랑을 받았다. 1990년대 들어 크쥐시토프 키에슬로프스키의 <십계> 연작, 페데리코 펠리니의 <길>, 타르코프스키의 <거울> 등은 물론 ‘침묵 3부작’이라 불리는 잉그마르 베르히만의 <거울을 통해 어렴풋이> <겨울빛> <침묵> 등을 출시한 장본인이 바로 그다. 타르코프스키가 쓴 글을 모아놓은 수기 형식의 「봉인된 시간」 이 바로 분도출판사에서 출판한 책이다. 한때 심한 교통사고를 당하면서 독일과 한국을 오가며 투병 생활을 했던 그에게 큰 힘이 됐던 책이 바로, 독일어판 「봉인된 시간」이었다. 독일에서 이 책을 접한 그가 한국에 돌아와 판권 계약을 한 뒤 황토색 표지의 초판을 냈고, 이후 <노스탤지아> 촬영현장 사진이 삽입된 판본으로 재출판했다. 2000년대 초 직접 왜관수도원을 찾아 그를 인터뷰하며 인연을 맺은 후로 종종 병문안을 가기도 했는데, 그때마다 그의 곁에는 항상 「봉인된 시간」이 있었다. 자주 읽었던 책이라 평소에 다시 꺼내 읽을 일은 별로 없는데, 병원에 갈 때는 왠지 꼭 가져가서 읽고 읽는다고 했고 “이 책을 읽으면 하나도 아프지 않습니다. 어떨 때는 일부러 이 책을 읽으려고 병원에 오기도 합니다”라고 웃던 모습이 눈에 선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