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장 36년 만의 귀환.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는데 강산이 3번이나 바뀌는 대격변 이후에야 '인간 퇴치사' 마이클 키튼을 다시 만날 수 있었다. 9월 4일 개봉한 <비틀쥬스 비틀쥬스>의 주인공 비틀쥬스는 악동 같은 악령으로 1988년 영화 <비틀쥬스>에서 등장했다. 유령이 된 부부에게 '인간을 퇴치해주겠다'며 꼬드긴 후 나중엔 인간 리디아 디츠(위노나 라이더)에게 청혼(!)하는 등 그야말로 구제불능인데, 오히려 그의 매력에 푹 빠진 팬들이 생겨 영화는 애니메이션과 뮤지컬로 미디어믹스되기도 했다. 그렇기에 이번 36년 만에 '원조' 마이클 키튼의 귀환 또한 눈길을 끈다. 천연덕스럽게 비틀쥬스를 돌아온 마이클 키튼을 TMI로 정리했다.
비틀쥬스 그자체


이번에 다시 돌아온 비틀쥬스는 마이클 키튼의 대표 캐릭터 중 하나다. '대표 캐릭터' 정도가 아니라 '비틀쥬스 그자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왜냐하면 비틀쥬스 특유의 비주얼, 마치 곰팡이와 이끼가 핀 오래된 시체 같은 그 모습이 마이클 키튼의 아이디어였기 때문. 팀 버튼에게 캐릭터 설명을 들은 마이클 키튼은 "손가락을 콘센트에 꽂아 전기가 흘렀을 것 같은 헤어스타일" "곰팡이 피부" "턱을 뒤덮은 이끼" 등을 캐릭터의 외형 아이디어를 제시했고 이것이 비틀쥬스의 포인트가 됐던 것. 이외에도 <비틀쥬스> 시리즈에서 "번호 뽑고 기다리세요" 하고 나오는 사후세계 대기실 또한 마이클 키튼의 아이디에서 출발했다고 한다. 사실 비틀쥬스의 캐릭터성은 비하와 차별적인 부분이 많아 요즘같이 PC(정치적 올바름)가 중요한 시대에 어떤 모습으로 그려질지 기대 반 걱정 반이었는데, 팀 버튼과 마이클 키튼 모두 이런 부분이 비틀쥬스다운 것이라고 확실하게 결정해서 악동스럽고 변태스러운 성격 그대로 돌아올 수 있었다고.
아니 코미디 아니라고요;; 영화 홍보 빨리 시작한 이유

마이클 키튼과 팀 버튼은 <비틀쥬스> 이후 함께 <배트맨>을 준비했다. 문제는 마이클 키튼이 배트맨에 캐스팅됐다는 소식이 발표되자마자 수많은 팬들이 반발했던 것. 마이클 키튼은 당시만 해도 '코미디 배우' 이미지가 강했기에 배트맨 같은 (그것도 무척이나 어두운) 슈퍼히어로와는 맞지 않는다는 것이 그들의 입장이었다. 물론 이후 마이클 키튼은 '역대 최고의 배트맨'이란 평가까지 들을 만큼 브루스 웨인/배트맨 연기를 훌륭하게 해내며 재평가 받았다.

위의 일화는 꽤 유명한데, 사실 여기에 숨은 일화가 하나 더 있다. 단순히 마이클 키튼의 배트맨에 반발한 것은 아닌데, 영화의 장르를 오해한 사람도 적지 않았던 것. 팀 버튼과 마이클 키튼의 조합에 <배트맨>이 1966년 TV 시리즈 <배트맨>처럼 우스꽝스러운 코미디라고 오해한 이들도 있었다. 1966년판은 그 유명한 '춤추는 배트맨'과 '상어 퇴치용 배트 스프레이' 등이 나온, 대놓고 코미디로 만든 시리즈. 그러나 (지금이야 모두가 알다시피) 팀 버튼의 <배트맨>은 조금 과장되긴 했어도 꽤 진지한 정극이었고 배급사 워너브러더스는 "<배트맨> 신작은 코미디가 아니다"란 사실을 알리기 위해 어느 때보다 홍보를 일찌감치 시작해야 했단다.

시리즈의 얼굴이 될 뻔

이번 <비틀쥬스> 시리즈와 <배트맨> 시리즈를 제외하면 시리즈 출연이라곤 거의 없는 마이클 키튼이지만, 그가 <고스트버스터즈>의 얼굴일 뻔했다면 믿을 수 있을까. 마이클 키튼은 80년대 꽤 많은 작품을 거절했다. 그중 이걸 왜 거절했을까 싶은 영화는 <고스트버스터즈>다. 그는 피터 벤크맨(빌 머레이)과 이곤 스펜글러(해롤드 래미스) 두 캐릭터를 제안받았는데 모두 거절했다고 한다. 그가 직접 이유를 밝힌 바 없으니 왜 거절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가 이 작품에 합류해 흥행스타로 자리 잡았다면 <비틀쥬스>는 존재하지 않았을지 모르겠다.



이외에도 톰 행크스가 출연한 로맨스 영화 <스플래쉬> 또한 마이클 키튼이 거절했다. 각본이 들어왔을 당시 <미스터 마마>(1983)를 준비하고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두 영화는 같은 해에 개봉했고 거의 비슷한 흥행 성적을 남겼다(<스플래쉬>가 좀 더 벌긴 했다). 또 데이비드 크로넨버그의 대표작 <플라이> 또한 제프 골드브럼 전에 마이클 키튼이 1순위였던 영화였다고 한다. 클린트 이스트우드 감독의 <미스틱 리버>는 대본 리딩까지 했지만 감독과의 견해 문제로 하차했다고. 이후 케빈 베이컨이 해당 역으로 투입됐다. 그밖에 최근 인터뷰에서 "인생에 한 번뿐인 아들의 성장을 보기 위해" 꽤 큰 작품의 출연을 포기한 적이 있다고 밝혔다. 아들이 태어난 1983년부터 '꽤 큰 작품' 1989년 <배트맨>까지 다소 소박한 작품들이 이어진 이유가 여기에 있었던 듯.
버스터 키튼, 다이안 키튼과 관계 없습니다


중견 배우가 된 지금이야 이런 오해가 없지만, 마이클 키튼이 영화계에 막 발을 들였을 때까지만 해도 '키튼'이란 성 때문에 여러 오해를 빚곤 했다. 영화계엔 버스터 키튼과 다이안 키튼, 두 대표 키튼이 있었기 때문. 그렇지만 마이클 키튼은 사실 예명이다. 그의 본명은 마이클 더글라스. 70년대부터 활동한, 후에 <월 스트리트> <원초적 본능>으로 스타가 된 배우 마이클 더글라스가 있었고, 방송계에서 본인의 이름을 단 토크쇼까지 있는 방송인 마이크 더글라스가 있었다. 인지도 문제가 있는 데다 배우조합에 '동명 활동 금지' 조항이 있었기에 마이클 키튼이란 예명을 선택했다. 다소 신기한 건 키튼이란 성을 고심해서 고른 것이 아니란 점. 언뜻 버스터 키튼 혹은 다이안 키튼의 영향이 있지 않았을까 싶지만, 본인 말로는 K 항목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성을 골랐다고 한다.


단 한 번의 아카데미 후보


마이클 키튼은 1980년대부터 지금까지 점점 연기력이 무르익으며 현재 믿고보는 캐릭터 소화력을 과시한다. 그렇지만 평소 출연작에 장르영화가 많아서인지 긴 세월에도 아카데미 후보에 오른 적은 딱 한 번뿐이다. 그가 남우주연상 후보에 오른 영화는 <버드맨>. 당시 다른 후보 배우들은 <이미테이션 게임> 베네딕트 컴버배치, <아메리칸 스나이퍼> 브래들리 쿠퍼, <사랑에 대한 모든 것> 에디 레드메인, <폭스캐처> 스티브 카렐. <버드맨>이 당시 가장 화제작이었고 골든글로브에서 남우주연상(코미디/뮤지컬 부문)을 수상해 마이클 키튼의 수상이 점쳐졌으나 아쉽게도 최종 수상자는 에디 레드메인으로 발표됐다. <버드맨>이 작품상을 수상하긴 했으나 마이클 키튼으로선 일생일대의 기회였을 텐데 아쉬울 법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