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정 기념일만 되면 기억나는 특정 작품들이 있을 것이다. 추석에도 그런 영화들이 있을까 기자들이 고민하던 중 각자 이맘때면 꼭 케이블영화채널에서 이런 영화들이 했었던 것 같다, 고 의견이 모아졌다. 그래서 각자 기억하는 '케이블영화채널이 말아주는 오마카세'라는 느낌으로 케이블영화채널에서 자주 만날 수 있는 영화들을 소개한다. 9월 17일 KBS2에서 오후 21:55시에 방영하는 <달짝지근해: 7510>를 비롯해 케이블영화 하면 생각나는 대표작(?)들까지 만나보자.
* 가장 먼저 생각나는 <쇼생크 탈출>은 형평성을 위해 제외했음을 먼저 밝힌다.
주성철 PICK _ <30일>
감독 남대중


2000년대 들어 영화사 시네마서비스를 중심으로 <투캅스>의 강우석 감독을 꼭짓점으로 <신라의 달밤> <광복절 특사>의 김상진 감독, <선생 김봉두> <재밌는 영화>의 장규성 감독, <라이터를 켜라!>의 장항준 감독, <주유소 습격사건> <광복절 특사> 등의 시나리오를 쓴 박정우 감독, 그리고 <킬러들의 수다> <간첩 리철진> <아는 여자> 등 왕성하게 작업하던 장진 감독 등이 한국 코미디영화를 그야말로 대량 생산해내던 시절이 있었다. 그 명맥이 끊겼다고 생각될 즈음 <과속 스캔들> <써니>의 강형철 감독, <남자사용설명서> <킬링 로맨스>의 이원석 감독, 그리고 <극한직업>으로 <명량>에 이어 역대 한국영화 박스오피스 2위에 빛나는 이병헌 감독이 과거의 영광을 재현했다. 최근 <핸섬 가이즈>의 남동협 감독에 이어 빼놓을 수 없는 이가 바로 <30일>의 남대중 감독이다.
얼마 전 모 케이블 채널에서 최초로 단독 방영한 <30일>은 아마도 추석 연휴 기간 중 ‘틀면 나오는’ 영화 중 하나가 될 것이다. 변호사 정열(강하늘)과 방송국 PD 홍나라(정소민)는 잠시라도 떨어져 살 수 없던 연애 시절과 신혼 시절을 지나, 이제는 서로를 잡아먹지 못해 안달 난 부부가 됐다. 그래서 이혼을 결정한다. 하지만 완벽한 이별을 30일 놔두고 동반 기억상실증에 걸리며, ‘초면’이었던 순간으로 돌아가 다시 사랑이 불붙기 시작하는 어이없는 상황이 펼쳐진다. 이미 이병헌 감독의 코미디영화 <스물>(2015)에서 호흡을 맞춘 바 있는 강하늘과 정소민의 개인기도 놀랍지만, 정열의 장모로 출연한 조민수 배우가 뜻밖으로 하드 캐리한다. 마치 딸아이와 헤어지길 요구하는 것처럼 돈 봉투를 내밀고는 “이 돈으로 혼수 장만해요”라는 식이다. 전형적인 부잣집 사모님 같은 이미지를 유지하되 ‘따뜻한 아이스아메리카노’ 같은 변칙적인 느낌을 주길 원했다는 게 남대중 감독의 얘기였다. 그 외에도 여러 웃음 포인트가 있었으나, 개인적으로 가장 마음에 들었던 장면은 화장실에서 롱코트로 ‘철벽’치고 소변보는 윤경호 배우의 모습이었다.
이진주 PICK _ <달짝지근해:7510>
감독 이한


전형적(典型的). 사전적으로 ‘어떤 부류의 특징을 잘 나타내는 것’을 뜻한다. 특색으로 살아남는 영화계에서 ‘전형적이다’는 표현은 해당 영화에 대한 혹평일지 모른다. 하지만 <달짝지근해:7510>만큼은 다르다. 유해진, 김희선 주연의 <달짝지근해:7510>은 추석 명절 남녀노소가 모두 즐길 수 있는 전형적인 로맨틱 코미디이다. 영화 <달짝지근해:7510>은 전 인류적 행복 요소인 사랑과 유머를 두루 갖추어 추석 명절 모두가 머리를 비우고 편안하게 감상할 수 있다.
영화 <달짝지근해:7510>은 현실 감각이 없는 제과 연구원 치호(유해진)과 긍정 마인드의 싱글맘 일영(김희선)의 사랑 이야기를 담는다. 영화는 유해진의 첫 로맨틱 코미디이자 김희선의 20년 만의 스크린 복귀작이다. 배우 유해진과 김희선이 의외의 케미스트리를 보여주는데다 석호 역의 차인표, 병훈 역의 진선규, 은숙 역의 한선화까지 조연을 맡은 배우들 역시 맛깔나는 연기를 선보여 극의 재미를 강화한다. 개봉 당시 로맨틱 코미디가 제대로 힘을 못 쓰는 한국 영화계 분위기 속 큰 기대를 받지는 못했는데 입소문을 타고 역주행하면서 개봉 18일 만에 누적 관객 수 100만 명을 돌파했다.
김지연 PICK _ <김씨 표류기>
감독 이해준


최근 방송에서 한 행복심리학자는 세간의 편견과는 다르게, 내향인은 타인과의 교류에서 행복감을 크게 느끼는 사람이라고 말했다. 그처럼, 아무리 혼자가 편한 사람이라도 타인과의 연대와 교류는 종종 삶을 살아가게끔 하는 동력이 된다. 꽤 오래전, 케이블 채널을 돌리다가 우연히 접한 <김씨표류기>의 한 장면은 포스터에서 접한 영화의 느낌과는 확연히 달랐다. 굉장한 B급 코미디 영화인 줄 알았으나, 까고 보니 사회에서 소외된 자들의 눈물겨운 연대를 다룬 뭉클한 영화였다. <김씨 표류기>는 2009년 영화지만, 지금 보면 더 적절한 것이, 히키코모리도, SNS로(그때는 싸이월드고 지금은 인스타그램이지만) 자신의 결핍을 채우기 위해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인 척하는 일도 흔한 시대가 도래했기 때문이다. 지금 보면 반가운 배우 구교환, 이규형도 찾아볼 수 있으니 명절을 맞아 가족과 함께 다 같이 두런두런 모여 영화를 보는 것도 좋을 터. 12세 이상 관람가로, 유해한(?) 장면이 단 한 컷도 없다.
추아영 PICK _ <콘스탄틴>
감독 프란시스 로렌스

감히 비공식 천만 영화라 말하고 싶다. DC 코믹스 레이블 중 하나인 버티고의 만화 「헬블레이저」를 각색한 영화 <콘스탄틴>은 <나는 전설이다>, <헝거 게임> 시리즈의 프란시스 로렌스 감독이 찰지게 연출해 마니아를 양산한 작품이다. 영화의 탄탄한 세계관과 허세 가득하지만 중독성 있는 톤앤매너는 한 번 시작하면 끝까지 몰입하게 만든다. 그 시절 키아누 리브스의 퇴폐미와 천사 캐릭터를 맡은 틸다 스윈튼을 볼 수 있는 진귀한 작품이기도 하다. 영화는 기독교적 주제를 곁들인 오컬트물이다. 지상에 존재하는 혼혈 천사와 혼혈 악마를 구분하는 능력을 지닌 콘스탄틴(키아누 리브스). 그는 원하지 않은 자신의 능력으로 인해 괴로워하다 자살을 시도하지만 실패하고 만다. 되려 그는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 했던 죄 때문에 지옥에 가야만 하는 운명에 처한다. 죄를 씻고 천국으로 가는 기회를 얻기 위해서는 지상에 있는 혼혈 악마를 지옥으로 돌려보내야 한다. 어느 날, 형사 안젤라(레이첼 와이즈)가 그를 찾아가서 그녀의 쌍둥이 여동생의 죽음에 얽힌 미스터리를 풀기 위한 도움을 요청한다. 콘스탄틴은 안젤라를 돕는 과정에서 지상에 사탄의 아들 마몬을 불러오려는 혼혈 천사 가브리엘(틸다 스윈튼)의 계획을 알게 되고 이를 막기 위한 사투를 벌인다.
성찬얼 PICK _ <황산벌>
감독 이준익

딱 잘라 말한다. <황산벌>은 대한민국 영화사상 다시없을 ‘거시기’다. 백제와 신라의 격돌에 ‘거시기’와 ‘니 미칬나’를 곁들인 영화의 콘셉트는 지역감정을 볼모로 만들어진 코미디로 착각하게 한다. 그러나 뚜껑 열어본 <황산벌>은 단순히 코미디라고 정의할 수 없는 폭넓은 감상을 안겨준다. 언어의 지역성을 활용한 정보의 차이를 바탕으로 한민족이나 적인 백제와 신라의 구도를 절묘하게 비튼다. 웃음은 원초적이나 스토리와 캐릭터, 극의 디테일까지 고차원적이다. 이처럼 전혀 이질적인 요소를 완벽하게 조율해 연주한 건 <황산벌> 이후로 <기생충> 정도나 돼야 찾을 수 있다. (노파심에 덧붙이자면 한국영화의 수작이 적다는 것이 아니고, 서로 다른 요소를 조율한 방식만을 기준으로 말한 것이다)
개인적으로 이 영화를 케이블채널에서 할 때마다 봤던 이유 중 하나는 배우들의 열연이다. 포스터만 보면 한껏 익살스러운 박중훈과 정진영이지만(극에서도 다소 코믹하게 나오지만) 계백과 김유신이란 ‘위인상’을 현실적으로 펼쳐내는 연기는 그야말로 용호상박이다. 뒷배도 없기에 용맹함과 투지로 상대를 지레 겁먹게 하는 박중훈의 계백과 상대의 속셈을 눈치채고도 능청스럽게 구는 정진영의 김유신은 각자의 캐릭터 소화력이 작품 전체를 장악할 수 있다는 근거가 된다. 뿐만 아니라 곳곳에서 튀어나오는 낯익은 얼굴들도 보는 재미를 더한다. 어린 시절 유독 코미디영화에 박했던 탓에 친구들 모두 보러 갈 때 가지 않은 것이 한없이 후회스럽다. 다만 딱 한 가지 흠이 있다면 종종 선을 넘는 민망한 성인유머가 있어 ‘온가족용’ 딱지를 붙일 수 없다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