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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예진 멜로 영화에서 보는 희로애락 명장면

성찬얼기자
배우 손예진(사진=엠에스팀엔터테인먼트)
배우 손예진(사진=엠에스팀엔터테인먼트)

 

우리가 사랑을 참 귀하게 여기는 건 그 안에 다양한 감정이 있어서가 아닐까. 물론 그 어떤 감정도 각자의 풍부함이 있지만, 상황이나 서사에 따라 다양하게 발현되는 감정은 사랑이 으뜸일 것이다. 그래서일까 갑자기 멜로, 로맨스영화의 장면들은 희로애락으로 나눠보고 싶어졌다. 그것도 지금은 잠시 영화계 공백기를 가지고 있지만 한국멜로영화 하면 세 손가락 안에 들어갈 손예진 배우의 출연작으로. 그가 멜로, 로맨스의 아이콘이었던 2000년대 초반 영화 네 편 중 희로애락을 상징할 만한 장면을 뽑아봤다.


희喜

아내가 결혼했다

〈아내가 결혼했다〉
〈아내가 결혼했다〉
〈아내가 결혼했다〉
〈아내가 결혼했다〉

손예진이 선보인 가장 도발적인 로맨틱코미디, <아내가 결혼했다>는 기쁨에 기쁨이 더해지는 짜릿한 장면이 있다. 아마 (필자 포함) 연배가 조금 있는 관객이라면 이 장면을 볼 때 추억에 빠질지도 모르겠다. 박현욱 작가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이 영화는 인아(손예진)와 결혼에 골인한 덕훈(김주혁)이 인아에게 또 다른 남자가 있다는 말을 들으면서 벌어지는 일을 그린다.

<아내가 결혼했다>에서 '기쁨'에 가장 어울리는 장면은 역시 덕훈의 청혼 장면이다. 인아를 만났지만 원체 인기가 많고 자유분방한 그의 모습에 끙끙 앓던 덕훈. 그러다가 축구를 좋아하는 인아와 함께 2002년 월드컵 거리 응원을 나간다. 이곳에서 함께 국가대표를 응원하다가 덕훈은 반지를 꺼내 인아에게 결혼해달라 청혼한다. 인아의 환한 미소와 함께 두 사람은 기쁜 마음으로 서로를 껴안고, 전광판에는 '한국 4강 진출'이란 글자가 떠오른다. 평생을 함께 할 동반자를 만나는 것, 그리고 국가대표의 4강 진출. 따로 경험해도 인생에 남을 만한 환희가 있을 텐데 두 일을 한 번에 겪었으니 관객들도 두 사람이 느꼈을 기쁨을 엿볼 수 있었다. 지금은 우리 곁을 너무 빨리 떠난 김주혁의 환한 얼굴이 다소 슬프게 느껴지긴 하지만.


노怒

첫사랑 사수 궐기대회

〈첫사랑 사수 궐기대회〉
〈첫사랑 사수 궐기대회〉

멜로영화에서 '빡치는' 장면이라면 보통 연인끼리 싸우는 것일 텐데, 손예진의 영화에서라면 <첫사랑 사수 궐기대회>가 좀 더 다채로운(?) 화를 엿볼 수 있다. <첫사랑 사수 궐기대회>는 손태일(차태현)이 첫사랑 주일매(손예진)와 결혼하기 위해 그의 아버지 주영달(유동근)이 내건 '서울대 합격' '사법시험 합격'을 위해 고군분투하는 내용을 다뤘다. 어떻게 보면 현대판 바보 온달과 평강공주 같은데, 합격을 해서 결혼을 하려면 일매에게 임자가 없어야 가능한 것니 태일은 사사건건 일매의 일거수일투족을 방해한다. 조건이야 아버지가 건 건데, 그것 때문에 태일이 자신의 연애사업까지 방해하니 일매 입장에선 '빡'칠 수밖에 없는 것. 그래서 일매는 역으로 태일이 자신을 건드릴 수밖에 없도록 유혹하기까지 하는데, 태일이 얼마나 우직한지 결코 일매에게 먼저 손대지 않는다. 그러다보니 일매는 결국 폭발하고 만다.

<첫사랑 사수 궐기대회> 속 일매의 분노에서 손예진의 코믹 연기를 볼 수 있다. 태일을 원망하며 대학교 교정에서 꺼이꺼이 우는 장면이나 태일이 안 넘어오자 아예 대놓고 키스하려고 밀어붙이는 장면 등은 손예진의 첫 로맨틱코미디가 성공적이었음을 보여준다. 실제로 영화는 233만 관객을 동원해 손예진의 티켓파워를 공고히 했다. 물론 영화는 이렇게 코믹하게만 진행되지 않는다. 일매가 이렇게까지 연애에 목매는 이유가 밝혀지면서 분위기는 완전히 뒤바뀐다. 어떻게 보면 그 시절 유행한 '로코에서 최루성까지' 가는 주류 멜로영화의 흐름을 알맞게 보여주는 영화.


애哀

클래식

〈클래식〉
〈클래식〉

손예진의 멜로, 더 넓게 보면 한국영화의 멜로가 대부분 눈물로 귀결되긴 하지만, 그중에서도 단연 눈물버튼을 누르는 장면이라면 <클래식>의 그 장면일 것이다. <클래식>은 딸 지혜(손예진)가 다락방을 청소하다가 엄마 주희(손예진)의 비밀 일기를 발견하고, 엄마의 사랑 이야기를 알게 되는 내용이다. 손예진이 1인 2역 연기를 펼치며 각각 다른 사랑 이야기를 들려주는데, 이 장면은 엄마 주희의 이야기에서 나온다.

어느 여름, 시골에 놀러 온 주희(손예진)와 준하(조승우)는 우연히 만나 함께 시간을 보낸다. 두 사람은 서로에게 호감을 느끼지만, 방학이 끝나고 각자의 자리로 돌아갈 수밖에 없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준하는 주희가 집안 간의 정략약혼으로 맺은 약혼남 태수(이기우)의 편지를 대필해주는 친구였고, 이렇게 다시 인연이 닿은 두 사람은 몰래 만나며 사랑하는 마음을 키운다. 하지만 태수가 그 정략결혼을 포기하려다가 아버지에게 극심한 폭력을 당해 자살까지 시도하자, 준하는 죄책감과 태수를 지키려는 마음에 입대한다.

〈〉 〈클래식〉 준하(조승우)는 시각을 잃을 것을 감추려하지만
〈〉 〈클래식〉 준하(조승우)는 시각을 잃을 것을 감추려하지만
주희는 이 사실을 알아챈다 (〈클래식〉)
주희는 이 사실을 알아챈다 (〈클래식〉)

 

그렇게 오랜 시간이 흘러, 다시 재회한 두 사람. 준하는 결혼했다고 밝히며 주희에 대한 마음을 이미 접었음을 넌지시 전한다. 주희는 눈물을 흘리는 와중, 준하가 어딘가 이상하단 걸 깨닫는데 알고 보니 월남전 파병을 간 준하는 부상으로 시력을 잃고 말았던 것. 준하는 주희가 자신을 포기하게끔 몸 성히 돌아온 척한 것이고, 이를 알아챈 주희는 준하에게 왜 숨겼느냐며 오열한다. 도망치듯 떠나려는 준하는 넘어지고, 연습까지 했는데 실패했다며 진심을 털어놓는다.

이 장면은 한국멜로영화 베스트에 들어가는 <클래식>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뽑은 명장면이다. 서로를 사랑하기에 보내줘야 한다는, 어떻게 보면 클리셰적인 이별 장면인데 '감추고 싶은 사실' 하나만으로 더욱 감정을 끌어올렸다. 주어진 상황, 배우들의 연기, 그것을 받쳐주는 음악까지 삼박자가 맞아떨어져 단연 손예진의 필모그래피에서도 가장 슬픈 장면으로 기억되고 있다.


락樂

내 머리 속의 지우개

〈내 머리 속의 지우개〉
〈내 머리 속의 지우개〉
〈내 머리 속의 지우개〉
〈내 머리 속의 지우개〉

 

​먼저 간단한 설명을 하면, '희로애락'에서 희와 락은 비슷한 듯 다르다. 희(기쁨)는 순간적인 감정이라면, 락(즐거움)은 어떤 과정에서 오는 감상 쪽에 가깝다. 그런 관점에서 봤을 때 손예진의 멜로 중 즐거움이 가장 인상적으로 그려진 건 <내 머리 속의 지우개> 속 몽타주가 아닐까 싶다. 물론 이 영화는 철수(정우성)와 수진(손예진)이 알츠하이머 때문에 겪는 고통에 좀 더 무게를 둔 최루성 멜로지만, 그런 슬픔도 두 사람의 행복했던 순간이 있기에 더욱 크게 다가오는 것이고 영화는 그 지점도 놓치지 않고 섬세하게 그린다.

영화 전반부, 그러니까 수진에게 알츠하이머가 발병하기 전까지는 곳곳에서 즐거움의 감정을 느낄 수 있다. 처음 사귀기로 하고 수진과의 만남을 준비하는 철수의 모습, 두 사람이 야구연습장에서 공을 치며 시간을 보내는 장면, 그리고 그 사이에 삽입된 데이트 장면들. 나중에 철수의 면접을 위해 친구들과 양복을 만드는 수진은 '그냥 돈 줄 테니 기성복 사줘라'라는 친구의 타박에도 "왜~, 재밌잖아"라고 말한다. 이렇게 사랑하는 사람을 떠올리며 하는 일, 그 사람과 함께 보내는 시간, 그것은 희로애락 중 락에 가장 가까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