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일본에서 2025년 개봉작 <쇼타임7>의 예고편이 공개됐다. 굉장히 낯선 제목과 달리 예고편을 보면 어딘가 익숙한 향기가 나는데, 이 영화가 한국영화 <더 테러 라이브> 일본 리메이크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한국과 일본은 역사적 앙숙이긴 하나 서로의 문화에 영향을 주고 있다. 이번 <쇼타임7>이 이외에도 근래 일본에서 제작된 한국 작품 리메이크를 소개한다.
<더 테러 라이브> - <쇼타임7>


2013년 8월에 개봉한 <더 테러 라이브>는 생방송 도중 걸려온 테러범의 전화를 이용하려던 앵커가 도리어 궁지에 몰린다는 내용의 스릴러다. 하정우가 생방송 중 테러범의 전화를 받은 앵커 윤영화 역을 맡아, 보이지 않는 상대와의 연기 호흡까지 완벽하게 소화해 호평받았다. 독립영화 <리튼> 이후 다소 긴 공백기를 가진 김병우 감독이 이 중저예산(약 35억 원) 영화를 성공시키며 관객들의 박수를 받았다. 주인공이 테러범을 발로 뛰며 잡는 것이 아니라 통화하면서 상대해야 한다는 지점이 관객들에게 신선하게 다가왔고, 여러 부조리한 상황이 겹치며 궁지에 몰리는 과정이 관객들에게 다양한 감상을 느끼게 했다.
이번에 공개된 <쇼타임7>은 <더 테러 라이브>와 거의 비슷하게 진행되는 것으로 보인다. '쇼타임7'에서 하차당한 오리모토가 복귀를 목표로 테러범의 협상테이블로 나선다는 이야기다. 사실상 영화의 얼굴이라 할 수 있는 오리모토는 드라마 <트릭>과 <드래곤 사쿠라>, 영화 <걸어도 걸어도> 등으로 우리에게도 익숙한 아베 히로시가 맡았다. 연출은 <키시베 로한 루브르에 가다>로 감독 데뷔를 마친 와타나베 카즈타카 감독이 맡았으며, 그가 각본까지 함께 작업했다. 2025년 2월 7일 일본 현지에서 개봉하는데, 국내에서도 만날 수 있을지 궁금해진다. 과연 아베 히로시의 오리모토는 어떤 얼굴일지, 그리고 그를 상대할 테러범은 어떤 배우가 맡았을지 호기심이 생긴다.
<이태원 클라쓰> - <롯폰기 클라쓰>

근래 본 사람에게도, 안 본 사람에게도 화제였던 일본 리메이크라면 <롯폰기 클라쓰>가 아닐까 싶다. <롯폰기 클라쓰>는 우리나라 드라마 <이태원 클라쓰>를 일본 배경으로 옮긴 작품이다. 드라마는 웹툰을 원작으로 하는데, 일본 드라마는 한국 드라마를 원작으로 했다. 아무래도 지명이 제목에 들어가는 만큼 리메이크를 발표하며 그 제목부터 눈길을 확 끌었다. 외국인이 많아 다양한 문화가 공존하다는 특징을 공유한, 한국 수도 서울의 이태원을 일본 수도 도쿄의 롯폰기로 바꾼 것. 2020년 1월부터 방영한 <이태원 클라쓰>는 중졸에 전과자라는 딱지를 단 박새로이(박서준)가 머리는 좋지만 소시오패스 같은 조이서(김다미)를 만나 이태원에 자리 잡아가며 목표를 이루는 과정을 그린다. <롯폰기 클라쓰>도 인기가 좋은 원작 드라마를 따라 배경만 바꾸다시피 하고 거의 유사한 전개를 보여준다.


실제 드라마에선 당연히 이름도 달라졌지만, 이해를 위해 <이태원 클라쓰>를 대입하자면 박새로이는 타케우치 료마가 맡았다. 조이서 역은 히라테 유리나가, 오수아 역은 아라키 유코가, 그리고 이 드라마의 핵심이자 핵심 장대희는 카가와 테루유키가 연기한다. 제작 발표 당시 꽤 논란이 됐던 건 타케우치 료마였다. 청춘스타였으나 여자친구를 험하게 대했던 사생활이 공개된 후 비호감으로 낙인이 찍힌 터라, 하필 박새로이처럼 불의에 굴하지 않는 캐릭터를 맡겨야 했냐는 분위기였다. 어쨌든 그런 논란에도 무사히 13화 방영을 마쳤고(한국 원작은 16화) 나름대로 인기를 얻었다. 물론 가장 큰 승자는 이 리메이크 발표로 종영 후 다시 넷플릭스 인기순위에 올랐다는 <이태원 클라쓰>였지만.
<SKY 캐슬> - <스카이 캐슬>
가장 최근 공개된 일본 리메이크판이라면 <스카이 캐슬>이 있다. 2018년 11월부터 2019년 2월까지 방영한 <SKY 캐슬>이 원작이다. 스카이 캐슬에 거주하는 상류층 엄마들이 명문대를 보내기 위해 벌이는 '자녀 입시 암투극'이자 그 자녀들의 투쟁을 다룬 드라마로 엄청난 센세이션을 일으킨 바 있다. 염정아, 김서형, 이태란, 윤세아, 오나라 등 베테랑 주연진과 김혜윤, 김보라, 조병규 등 신예 배우들의 대거 빛나며 훌륭한 앙상블을 선사한 것도 인기 요인 중 하나. 물론 핵심은 '저렇게까지?'라는 생각을 들게 한 어마무시한 입시 준비 과정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일본으로 건너건 <SKY 캐슬>은 <스카이 캐슬>로 이름을 바꿨다. 국내에선 '스카이'를 알파벳 SKY로 표기해 명문대를 암시하는 중의적인 의미로 사용했지만, 일본에선 그 이중적인 의미로 통용되지 않으니 SKY라는 표기를 따로 쓰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일본 리메이크에선 고교생의 대학 입시가 아니라 중학생의 명문대 부속고 입시로 변경됐다. 부속고를 입학하면 명문대 입학까지 확정되는 제도를 극의 갈등요소로 삼았다. 현지에서 2024년 7월 방영을 시작해 9월 말 방영을 마쳤는데, 채널J에서 방영한 한국에선 10월 10일 종영됐다. <롯폰기 클라쓰> 제작진이 다수 합류했다고 하니 이렇게 한국 드라마 리메이크 전담 제작진이 생기는 것 아닌가 싶을 정도. 20부작에 달하는 원작을 9부작으로 확 줄였는데, 그 때문인지 평가는 썩 좋지 않다. 1화 시청률이 가장 높았으니 말 다 한 셈. 앞서 서술한 <롯폰기 클라쓰>가 대성공이 아녔음에도 최종화에서 최고 시청률을 경신한 것과 대비된다.
<시그널> - <시그널 장기 미제 사건 수사반>

근래라기엔 나온 지 시간이 좀 흘렀지만, <시그널> 리메이크도 빼놓을 수 없다. 2016년 방영돼 인기를 끈 <시그널>은 2018년 일본에서 <시그널 장기 미제 사건 수사반>이란 이름으로 리메이크됐다. 이 드라마는 무전기를 통해 1990년대에 사는 형사 이재한(조진웅)과 2010년대에 사는 형사 박해영(이제훈)이 미수 사건을 해결하는 과정을 그렸다. 당시 일부 미제 사건을 모티브 삼은 범죄를 해결하는 과정과 동시에 이재한과 박해영과 차수현 세 주인공의 서사를 촘촘하게 풀어놓아 시청자들을 사로잡았다.

<시그널 장기 미제 사건 수사반>은 원작의 구성과 인물 관계를 그대로 가져가되, 몇몇 부분은 현지 상황에 맞게 각색했다. 국내에서도 일본 미남 배우로 인기가 많은 사카구치 켄타로를 비롯, 키치세 미치코와 기타무라 카즈키를 주인공 삼인방으로 캐스팅했다. 16부작의 원작을 10부작으로 압축, 원작과 비슷하게 가되 일부 사건을 삭제했다. 방영 당시 대성공을 거두진 못했는데, 그래도 꾸준히 입소문이 나면서 본편에서 다루지 못한 스페셜 에피소드를 2021년 방영했다. 나중엔 한국 원작에도 없는 오리지널 각본으로 <극장판 시그널>을 개봉해 어떻게 보면 원작보다 더 방대한 세계관을 구축했다. 극장판은 원작과 톤앤매너가 너무 다르고, 감독 스스로 액션 영화라는 식으로 소개했던 만큼 뻔한 수사물이 돼 아쉽다는 반응. 원작이 한국 드라마여서 그런지 <극장판 시그널>은 BTS가 테마곡을 맡아 화제가 된 바 있다. 이재한에 해당하는 역할을 연기한 기타무라 카즈키의 연기가 본편에선 괜찮았는데 극장판에선 혼자 튀어서 아쉽다는 후기가 심심찮게 보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