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요즘처럼 복잡한 시대에 선의는 도리어 오해를 쌓는 시발점이 되기도 한다. 나의 입장에서 제시한 선의는 상대에게 선의가 아닐 수 있고, 그러다보면 어느새 돌이킬 수 없는 오해나 상황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그렇지만 선의는 말그대로 좋은 마음, 좋은 뜻에서 비롯된 것. 그런 시대에 조금이나마 선의의 참뜻을 상기시키고 시대에 필요한 '최소한의 선의'를 제시하는 영화 <최소한의 선의>가 개봉을 앞두고 관객과 만날 준비를 하고 있다.
<최소한의 선의>는 고등학교 교사가 자신이 맡은 반 학생이 임신을 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며 벌어지는 일을 그린다. 2015년 단편영화 <은하비디오>를 시작으로 여러 차례 단편을 발표하고 2023년 <흐르다>로 장편 데뷔를 마친 김현정 감독의 신작이다. 학생의 임신을 알게 된 교사 희연 역은 <베테랑> <세자매> <눈물의 여왕> 등으로 배우로서 완벽히 자리매김한 장윤주가, 자신을 둘러싼 여러 일에 부딪힐 수밖에 없는 고등학생 유미 역은 <우리들>(2016)로 혜성처럼 등장한 배우 최수인이 맡았다. 10월 15일 용산구에 위치한 CGV용산아이파크몰에서 열린 언론배급시사회 후기와 기자 간담회 요약을 전한다.


고등학생의 임신과 장윤주라는 이름에 언뜻 소동극 형식을 연상하는 <최소한의 선의>는 오히려 그 제목처럼 묵직하게 해당 문제에 접근한다. 유미는 임신에도 매일 학교에 등교하고, 최대한 자신과 남자친구의 선에서 어떻게든 임신 문제를 마무리하고자 애쓴다. 하지만 학생의 신분으로 이런 문제를 해결하긴 힘들고, 결국 학교에 소문이 나기 시작한다. 유미의 반 담임 희연은 새집으로 이사했지만 부실시공에 속이 끓고, 임신 시도는 매번 실패한다. 그 과정에서 학교는 '퇴학당하면 재입학이 힘든데 자퇴하면 재입학이 쉽다'는 이유로 유미를 자퇴하게끔 설득하도록 희연에게 제안한다.
마치 학생과 교사의 갈등으로 시작하는 듯하지만 <최소한의 선의>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유미와 희연, 두 사람 각자의 사정과 이야기로 영화를 이어간다. “앞선 작품까지 현실적이고 갈등 위주의 작업물을 해왔는데 이 시나리오는 한걸음 더 나아간 이야기”라고 느껴 연출을 맡았다는 김현정 감독의 말처럼, 영화는 두 인물이 서서히 가까워지고 마침내 서로를 신뢰하게 되는 과정을 그린다. 엄마와의 이혼으로 생계를 책임지기 위해 늘 일터에 있는 아버지를 대신해 동생 유정을 돌봐야만 하는 유미는 아이도 어른도 아닌 교묘한 지점에서 스스로 책임감을 다잡으려 하고, 희연은 학생을 위한다며 내세운 자신의 선택이 정말 옳은지 고심하며 선생님이자 어른으로서 이 상황이 버겁기만 하다. 한 사람은 엄마를 열망하지만 실패하고, 한 사람은 엄마라는 이름이 이르게 도착한 상황은 임신과 출산이 그저 축복 혹은 족쇄로 그려지는 현 세대 매체에서 보기 드문 통찰의 순간을 가져온다.

두 사람의 이야기뿐 아니라 주변 사람들의 모습들 또한 묘사하며 '청소년 임신'을 바라보는 사회의 시선을 놓치지 않는다. 특히 영화 후반부 유미의 재입학 여부를 두고 열린 평가위원회 장면은 유미와 희연의 시선을 따라 현 상황을 보던 관객들에게 이 문제가 결코 영화 속 한 인물의 문제가 아님을 환기한다. 청소년 임신이란 문제 안에서도 불공정한 처우를 지적하는 일련의 대화는 영화의 직전 톤앤매너와 사뭇 달라 다소 의아하긴 하지만, 희연의 대사를 통해 관객을 다시 서사로 끌어들인 후 영화의 제목 '최소한의 선의'가 어떤 것인지 각자 되돌아보게 한다.

“올해도 어김없이 내 노래가 나오네 싶었다”
엔딩곡 '그 마음들이 모여'를 부른 배우 장윤주
유미와 희연의 이야기를 마지막까지 함께 한 관객들은 장윤주가 부른 '그 마음들이 모여'를 만날 수 있다. 이번 엔딩곡은 이민휘 음악감독이 작곡하고, 김현정 감독이 작사에 참여했는데 김현정 감독은 “장윤주 배우가 캐스팅됐을 때부터 (엔딩곡을) 부탁드리고 싶었다”며 팬심을 내비쳤다. 이렇게 김현정 감독이 쓴 가이드 가사를 이민휘 음악감독이 손 본 후 장윤주가 불렀다. 장윤주는 “아실지 모르겠지만 미니앨범 포함 3집까지 있다”며 너스레를 떤 후 “촬영이 끝나고 1년 만에 녹음한 곡인데, 첫 테이크를 간 후 이민휘 음악감독이 지금은 유미 같았다며 희연의 입장에서 불러달라고 요청했다. 다시 가사를 곱씹어보니 희연선생님의 속마음 같아 울컥했다”고 녹음 당시를 떠올렸다.

“소중하고 애틋한 작품”
유미 역의 최수인
최수인은 굉장히 오랜만에 주연으로 스크린에 돌아왔다. <우리들>에서 이선을 연기하며 관객들을 영화 속 세계로 안내했던 그는 이번 <최소한의 선의>가 성인이 되고 출연한 첫 작품이라고 밝혔다. 그는 "<우리들>은 오래전 영화지만, 처음 만난 영화라서 소중하다”며 “<최소한의 선의>는 성인이 되고 만난 첫 작품이라 또 다른 소중하고 애틋한 작품이다”라고 소회를 밝혔다. 그는 또 유미가 임신한 상태를 연기하기 위해 출산 경험이 있는 장윤주에게 조언을 구해 정말 많이 배웠다고 말했다. “(임신하면) 이렇게 아프겠지? 힘들겠지? 그렇게만 알고 있었는데 연기를 하면서 왜 아프고, 왜 힘들고, 산후우울증이 왜 오고, 오면 어떻게 우울해지는지 등을 알아야 했다”며 “저희 엄마에게도 물어보곤 했지만 장윤주 선배님이 있으셔서 정말 많이 배웠고 다행이라고 생각했다”고 감사를 전했다.
“소비되는 이미지에서 더 보여주고 싶어 내 옷도 가져가”
희연 역의 장윤주
<최소한의 선의>에서의 장윤주는 낯설다. 평소 그의 방송 속 모습이나 영화 속 캐릭터와도 판이하게 다르다. 학생들에게 조심스럽게 얘기를 꺼내고 퇴근 후에도 남몰래 노력을 기울이는 희연은 배우 장윤주의 새로운 얼굴을 보여준다. “이 영화와 <눈물의 여왕>을 같은 시기에 촬영했다”는 그는 “평소 소비되는 이미지에서 더 보여주고 싶은 갈망이 있었다”고 입을 열었다. 그래서 그는 평소 자신의 작업 방식을 일부 밝혔는데 바로 캐릭터가 입을 만한 옷을 직접 구성해보는 것. <베테랑> 시리즈나, <눈물의 여왕> 때처럼 <최소한의 선의> 때도 희연이 입을 만한 의상을 가져와 감독과 의상감독에게 보여주며 의견을 맞춰갔다. 덕분에 <최소한의 선의>에 나오는 희연의 의상 중 80%는 본인의 옷이었다고.

“각자가 보내는 선의와 배려”
“상대방의 입장에서 한 번 더 생각해보는 것”
“영화 속 인물들이 보여준 선의들”
김현정 감독, 장윤주, 최수인
마지막으로 각자가 생각하는 '최소한의 선의'에 대해 묻는 질문에 김현정 감독은 “이 영화를 작업하는 동안 스스로에게 많이 던졌던 질문”이라며 “생각이 많이 달라졌는데 지금은 타인에게 보내는 관심이지 않을까 싶다. 그것이 시작하는 지점은 상대를 바라보는 지점”이라고 대답했다. 장윤주는 “최소한의, 라는 말은 어디에나 붙일 수 있는 재밌는 워딩이다. 관객분들께서 최소한의 성의를 보여주시면 어떨까”라는 농담을 던진 후 “관심만 가져서는 안되고 소통하고 더 나아가 행동과 도움까지 파도처럼 이어지면 좋을 것 같다. 상대방의 입장에서 한 번 더 생각해보면 그 사람과 그 상황의 어려움을 나 또한 조금이나마 알게 될 테니까”라고 생각을 전했다. 최수인 배우는 “희연 선생님이 유미에게, 유미가 선생님이나 친구나 자신의 아이에게 보여준 선의들, 그런 것들이 모여 최소한의 선의이지 않을까 싶다”고 영화와 관련해 의견을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