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넷플릭스 영화 <전,란>이 지난 11일 공개됐다. <전,란>은 왜란이 일어난 혼란의 시대, 함께 자란 조선 최고 무신 집안의 아들 ‘종려’(박정민)와 그의 몸종 ‘천영’(강동원)이 ‘선조’(차승원)의 최측근 무관과 의병으로 적이 되어 다시 만나는 이야기를 그린 영화로, 지난 제29회 부산국제영화제의 개막작으로 선정된 바 있다. <전,란>은 박찬욱 감독이 제작과 각본에 참여했으며, <심야의 FM>(2010) 등의 김상만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다. <전,란>이 공개된 후 많은 시청자들의 다양한 평가가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씨네플레이 기자들의 5인 5색 리뷰를 소개한다.

주성철 편집장 ★★★☆
거시와 미시를 횡단하는 작가 박찬욱의 현재진행형 놈놈놈, 좋은놈 나쁜놈 일본놈
임진왜란 7년 전쟁을 둘러싸고 거시(巨視)와 미시(微視)를 횡단하는 ‘작가 박찬욱’의 계급적 시선이 흥미롭다. 물론 노비 계급을 설명하는 장면을 판소리로 구성한 신선한 도입부부터 오랜 시간 영화 연출과 미술과 음악, 그리고 광고 디자인까지 아우르며 경력을 쌓아온 김상만 감독 특유의 감각을 엿볼 수 있다. 이는 대사와 동작이 딱딱 맞아떨어지게끔 판소리 장면을 구성한 임권택 감독 <춘향뎐>(2000)에 대한 오마주라 한다. 그런 다음 ‘조선 아포칼립스’라는 멋진 별칭을 얻은 이 영화는, 곧장 난리를 피해 궁을 버리고 떠난 선조의 몽진(蒙塵)에 분노한 백성들이 경복궁을 불태우는 장면의 정서로 나아간다. 피난 중이라도 삼시세끼 다 챙겨 먹어야 하는 선조(차승원)는 현실 감각이 완전히 부재한 사이코패스나 다름없다. 그런 있으나 마나 한, 이 아니라 없는 것이 나을 왕들의 세상 밑에서 노비 천영(강동원)은 종려(박정민)를 위해 대리시험을 치러서라도 양인의 신분을 취득하는 면천(免賤)을 원했다. 양반 종려 또한 얼핏 노비 천영과 허물없이 가깝고 반상의 구별에 관대한 파격적 인물처럼 느껴지지만, 부정한 방법으로 벼슬에 오른 무자격 관료라는 사실을 부정할 수 없다. 말하자면 허위와 부정으로 점철된 계급사회였다. 캐릭터로 들어가자면, 몰입감이라는 측면에서 강동원이어서 좋은 장면과 그렇지 않은 장면이 꽤 섞여 있다. 전자가 많은지 후자가 많은지 판단이 잘 서지 않는다. 어쩌면 영화를 영화 자체로 꽤 즐겼기 때문이리라. 아무튼 몽진(蒙塵)을 직역하면 ‘먼지를 뒤집어쓴다’는 뜻이다. 그처럼 먼지를 뒤집어쓴 것 같은 헤어스타일로 등장하는 7년 뒤의 선조는 그 누구의 말도 듣지 않고 경복궁 재건에만 집착하며 생떼를 쓴다. 전쟁이 끝나고 미처 일본으로 돌아가지 못한, 수백수천 명 조선인들의 코를 베어간 왜군 잔당 ‘비귀’ 겐신(정성일)을, 천영을 잡기 위해 정식으로 채용하기까지 한다. 지난 역사가 현실의 반영이라는 것만큼 상투적인 표현은 없지만, 영화 속 상황 하나하나 묘하게 지금의 현실정치와 연결 지점을 갖게 되는 건 무척 자연스러운 일이다. 어쨌건 그것이 <전, 란>을 보다 의미심장하게 즐기는 재미 중 하나가 된다.
김지연 기자 ★★★☆
나라가 어지러워도 궁부터 재건해야 한다는 우두머리에게 바치는 영화
<전,란>은 직관적이고 친절하다. 불평등한 구조에 균열을 내려는 피지배층과 현상유지를 원하는 지배층. 직관적인 구도에 다소 호불호가 갈릴 수 있지만, 그만큼 영화가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강력하다는 뜻이다. 지극히 현실적인 메시지 아래, 각 캐릭터와 시퀀스는 영화의 목표를 충실히 수행하기 위해 기능한다. 분명 우리의 역사를 바탕으로 한 영화지만, 웹툰이나 소설을 원작으로 한 작품이라고 느껴질 정도로 다소 만화적이라고 느껴지는 것은 바로 그 때문이다. 천영(강동원)은 조선에서 제일가는 검 실력을 가졌지만 신분이 미천하며, 종려(박정민)는 노비와 진한 우정을 나누고, 의병장 김자령(진선규)와 천민 출신 의병인 범동(김신록)는 놀랍도록 정의로우며, 일본군 겐신(정성일)은 생사가 오가는 상황에서도 ‘사무라이답게’ 정정당당한 대결을 원하고, 선조(차승원)는 우스꽝스럽게 보일 정도로 광기 어려 있다. 영화 후반부 천영-종려-겐신의 ‘해무 액션’은 만화적인 묘사에 종지부를 찍는 핵심 장면이기도 한데, 취향에만 맞는다면 이 장면을 <전,란>의 백미로 꼽을 수 있겠다.
추아영 기자 ★★★
<아가씨> 브로맨스 버전, 사랑은 청천익과 어사검을 타고
‘임금이나 노비나 대동하다’. 영화 <전, 란>은 천하의 주인이 따로 없다고 주장한 조선의 사상가 정여립의 죽음으로 시작한다. 그의 죽음은 군주와 노비의 삶이 하늘과 땅만큼이나 벌어져 있는 부조리한 시대상을 압축한다. 안타깝게도 조선의 지엄한 신분 제도는 민중의 가냘픈 삶을 도리어 끊어내는 구실로 작용한다. 나라의 지존인 군주는 제 권위를 드높이기 위해 신분의 귀천을 이용하고, 백성들은 군주의 보살핌을 받지 못하고 죽어간다. <전, 란>은 시대의 어둠 속에서 내쳐진 두 청년의 이야기로 역사 속 부조리를 비판한다. 또 조선의 신분 제도를 비판하는 것에서 더 나아가 조선의 유교 사상을 전복하려 한다. 이는 조선 최고의 무신 집안의 아들 종려(박정민)와 도망을 일삼는 노비 천영(강동원)의 짙은 우정에서 엿볼 수 있다. 둘의 관계는 양반과 노비이자 절친한 친구와 동성애적 관계의 경계에 서있기도 하다. 둘의 모호한 관계는 귀족과 하녀의 신분을 뛰어넘고, 호모섹슈얼리티 로맨스를 보여준 박찬욱 감독의 영화 <아가씨>를 상기시킨다.
<전, 란>은 역사는 반복된다는 진리를 다시금 떠올리게 한다. 조선 백성의 코를 베어버린 ‘비귀’(정성일)와 일본 포로들을 이용하여 나라를 지키기 위해 맞서 싸운 의병을 토벌하는 모습은 대한민국 근현대사의 비극 5.18 광주 민주화 운동을 떠올리게 한다. 부도덕한 군주의 초상은 시대를 거듭하고도 쌓여만 갔다. 이것이 <전, 란>이 전쟁 속에 파묻힌 민란의 역사를 다시금 파헤치는 이유다. <전, 란>의 최후는 이를 더욱 잘 드러낸다. 영화는 토착 세력의 승리이자 부정한 권력자를 처단한 민중의 모습을 그린 영화 <플라워 킬링 문>의 마지막 장면을 오마주하며 끝이 난다.
이진주 기자 ★★★☆
믿음이 흔들리는 시대에 부르는 시니컬한 찬가
‘위기’는 ‘기회’인가. 그렇다면 ‘기회’가 ‘위기’일 수도 있지 않은가. 넷플릭스 <전, 란>은 희망과 절망이 동전의 양면이라는 불편한 진실을 펼쳐낸다. 난세에 서로 다른 운명을 타고난 두 인물 천영(강동원)과 종려(박정민)은 그 동전의 가늘고 고르지 않은 옆면에서 서로를 정면으로 마주한다.
넷플릭스 <전,란>은 임진왜란을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주된 인물의 관계와 그들이 처한 상황은 2024년의 우리도 어렵지 않게 감응하게 된다. 누구나 한 번쯤 '모든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동등하다'는 당연한 말에 짙은 의심을 품은 적이 있었을 것이고, 단단한 믿음을 주었던 이에게 배신을 당한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영화는 '전'과 '란'이라는 특수한 전제 속에서 현대인들이 공감할 만한 보편적인 정서를 끌어낸다. 이것이 <전,란>이 가진 힘이다.
물론 임진왜란을 배경으로 의병의 이야기까지 다룬 만큼 국가적 애환과 서민의 고충을 담아내길 기대했던 이들에게 <전, 란>은 다소 당황스러운 작품일 수 있다. 하지만 작가 박찬욱이 주목하는 지점은 상대적으로 미시적이기에 더욱 보편타당한 인간 사회이다.
영화는 왜군의 침입으로 인한 내란을 다루며 여럿의 대립각을 세운다. 자칫 번잡스럽게 흘러갈 수 있는 구도를 <전, 란>은 명쾌한 액션신으로 다듬어낸다. 완벽하게 다른 스타일의 액션을 구사하는 이들이 서로에게 칼끝을 겨누며 관객은 영화를 보다 직관적으로 바라보게 된다.
성찬얼 기자 ★★★☆
하고픈 말도, 하고 싶은 것도 많은데 그래도 정갈하게 담기 성공
냉정히 말하면, 장황하긴 하다. <전,란>이 말하고자 하는 바는 선조(차승원)의 등장부터 또렷해지고 큼지막하게 '쟁'이 뜨는 순간 선명해진다. 그 뒤로 이어지는 이야기는 메시지 측면에서 거의 동일하고 인물들은 도리어 흩어졌으니 몰입도가 전반부만 못하다. 그러나 말은 하는 방법에 따라 설득력을 가지지 않는가. 양반과 노비, 왕과 신하, 조선과 일본 등 여러 집단의 인물을 겹쳐놓으며 장르적인 재미까지 확실하게 챙긴다. <전,란>을 보며 가장 감탄한 부분은 이 점이다. 메시지가 확실할수록 재미까지 챙기기 어려운데, (분명 몇몇 장면은 실패했지만) 전체적으로 둘 다 챙기는 성과를 거뒀다. 자칫 전도될 수 있는 상황에서 풀어내는 방법이 능수능란했다 인정할 수밖에 없다. 작가 박찬욱, 자본의 넷플릭스가 가장 먼저 보이긴 하지만 오랜만의 복귀작답지 않게 이 복잡한 전개와 다양한 인물을 온전히 구성한 김상만 감독도 만만치 않다. 열연을 펼친 배우들은 그 어느 하나 그냥 넘어가기 어려운데, 그중 특히 범동 역의 김신록이 가히 최고의 연기로 이야기 전체의 주제를 공감케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