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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박정민, "〈전,란〉의 브로맨스? 강동원과의 선 지키려 노력"

이진주기자
〈전,란〉 박정민(사진=샘커퍼니)​
〈전,란〉 박정민(사진=샘커퍼니)​

 

박정민의 얼굴은 수시로 변모한다. 지난 11일 공개된 넷플릭스 영화 <전, 란>을 통해 첫 사극에 도전한 그는 '사극은 힘들다'며 너스레를 떨다가도 이내 '인간 사회에 완전한 평등이 있느냐'며 무게감 있는 사유를 공유한다. 담백하고 유연하게 질문에 답을 내놓는 박정민의 모습에서 스스로와의 진실한 만남을 우선시하는 면모를 엿볼 수 있었다. 이 지난한 탐구가 지금의 박정민을 만들었으리라.

영화 <전, 란>은 임진왜란을 배경으로 함께 자란 조선 최고 무신 집안의 아들 종려(박정민)와 그의 몸종 천영(강동원)이 각자 선조(차승원)의 최측근 무관과 의병으로 적이 되어 다시 만나는 이야기를 그린 영화다. 박찬욱 감독이 제작과 각본에 참여한데다 OTT 영화 중 이례적으로 제29회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작에 선정되어 공개 전부터 큰 관심을 받았다. 최근 전 세계적인 반향을 일으킨 넷플릭스 예능 <흑백요리사: 요리 계급 전쟁>을 제치고 통합 콘텐츠 랭킹 1위에 오르며 순항하고 있는 영화 <전, 란>의 배우 박정민의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10월 15일 키노라이츠 기준)


〈전,란〉 박정민(사진=샘커퍼니)
〈전,란〉 박정민(사진=샘커퍼니)

현재 <전, 란>에 대한 반응이 좋다. 소감을 말해달라.

가장 기억에 남는 관객 반응은 ‘이 시대에 필요한 영화가 나온 것 같다’라는 것이다. 호의적인 반응이 있어 한시름 놨다. 나 역시 영화를 보고 ‘내가 찍었던 영화가 맞나’ 싶을 정도로 놀랐다. 음악과 CG가 포함된 완성본을 보니 ‘감독님한테 계획이 다 있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굉장히 마음에 들었다.

 

출연을 결정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나는 하고자 하는 이야기가 분명한 시나리오를 좋아한다. 연기를 하는 방식에서 설계도가 그려지고 감독님과 명확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전, 란> 시나리오가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더해서 내가 맡은 ‘종려’가 양반이지만 양반답지 않은 모습을 보이기도 하고 극 전체적으로 크게 변화를 겪는 캐릭터라는 점에서 도전해 볼 만하다고 생각했다.

 

<전, 란>이 말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무엇이라 생각하는가.

더불어 사는 삶에 대한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어릴 적 학교에서 양반과 노비 등 계급이 있던 사회에 대해 역사 공부를 할 때 그 옛날이야기라고만 생각했다. 그런데 내가 사회에 나와 살다 보니 이 문제가 비단 옛날이야기만은 아닐 수 있겠다고 느꼈다. 이런 생각을 하던 찰나에 <전, 란> 시나리오가 들어왔다.

 

어떤 지점에서 그런 생각이 드는가.

자유, 평등, 권리 등의 가치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인식하고 부르짖고 있는데 인간 사회에서 완전한 평등이라는 게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경제적, 정치적 권력 등으로 인해 집단이 형성되고 그 안에서 또 계급이 만들어지면서 그 단체가 흘러가는 방향이 달라지기도 한다. 예전에 어떤 책에서 ‘평등이라는 가치가 완전히 유지될 수는 없다’라는 글귀를 보기도 했다. 그러다 보니 계속해서 계급 문제에 대해 생각해 보는 것 같다.

〈전,란〉
〈전,란〉

처음부터 종려 역할로 캐스팅을 받았나. 종려를 연기하면서 가장 중점적으로 생각했던 부분은 무엇인가.

그렇다. ‘종려’라는 인물을 연기했을 때 관객으로 하여금 그 인물의 감정 변화가 납득이 되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봤다. 나 자신에게 느껴지는 감정도 중요하지만 그것을 넘어선 무언가를 관객들에게 보여줘야 한다고 생각했다. 때문에 종려의 감정에 깊이 파고들어서 분석했다.

 

종려라는 인물과 감정 변화에 대해 어떻게 이해하고 연기했나.

‘이놈도 어쩔 수 없는 양반이구나’싶었다. 천영에 대한 우정과 애정이 분명히 있지만 그저 무의식적인 호의를 베풀었다고 봤다. 종려 안에도 계급 의식이 있었을 것이다. 천한 것에게 양반이 호의를 베풀었는데 돌아오는 결괏값이 좋지 않으니 종려의 입장에서 충분히 저주를 퍼부을만하겠다 싶었다.

 

검을 이용한 액션신을 많이 선보였다. 어떻게 준비했나.

두세 달 액션스쿨을 다니면서 훈련했다. 내 검이 크고 긴 데다 무겁다 보니 다루기가 어려웠다. 나도 이번에 알게 되었는데 중세 검술을 연구하는 협회가 있더라. 나보다도 어린 협회장님이 오셔서 중세 시대 검술을 알려주셨다. 이전에 액션신을 연습할 때는 그냥 시키는 대로 했는데 이번에는 내 의견을 많이 넣었다. 멋있게 만드는 것보다 천영과의 차별성, 관계성이 보일 수 있도록 수정했다.

 

함께 합을 맞춘 강동원의 액션 연기도 많은 주목을 받고 있다.

(강)동원 선배님은 워낙 고수다. 말로만 알려줘도 바로 해낸다. 그런데 난 합이 바뀌면 구석에 가서 계속 연습해야 되다 보니 따라가느라 바빴다. (웃음)

〈전,란〉
〈전,란〉

 

​주연으로서 첫 사극이다.

맞다. 내 나름대로 도전을 했다. 제멋대로 연기를 하면 안 되겠다 싶더라. 예를 들어 조현철 감독의 <너와 나>의 경우는 내 마음대로 연기했다. 내 마음대로 움직이고 카메라가 쫓아오는 식이었다. 그런데 <전, 란>은 앵글 안에서 정석적으로 연기하려고 했다. 조금 더 단단하게 보이고 싶었다.

촬영하면서 ‘그 옛날 지체 높은 양반들은 왜 이렇게 불편하게 옷을 입고 다니지’ 싶었다. 격식이라는 것이 있겠지만 참 불편했다. 그만큼 사극 분장과 의상은 고되다. 그럼에도 분장과 의상을 해놓으면 그 자체가 주는 힘이 있다.

 

그렇다. 그것이 또 사극의 매력이다.

장식품, 옷, 칼까지 모두 아름답다. 카메라에 담길 때 참 뿌듯하더라. 하지만 촬영할 때는 당분간 사극은 힘들어서 안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웃음)

 

배우 차승원이 아주 독특하게 선조라는 인물을 만들어냈다. 함께 작업하면서 어땠나.

선배님의 선조를 처음 봤을 때 종려를 다시 준비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원래 나는 종려에 대해 선조 옆에서 묵직하고 당당하게 서 있는 동료의 느낌일 것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막상 선조를 보니 어디로 튈지 모르는 인물이더라. 종려가 완전히 납작 엎드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촬영하면서 계획을 수정했다.

선조가 불에 탄 궁을 바라보는 장면에서 “내 백성이 왜”라는 대사가 있다. 나도 뒤에 같은 비슷한 대사가 있어 대구(對句)라고 생각하고 왕이 하던 대로 해야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그런데 내가 생각했던 대로 왕이 해주지 않아서 이 대사를 하는 데에 고민을 많이 했다. 선배님이 준비해오시는 것을 구경하는 재미도 있었다.

 

각본을 맡은 박찬욱 감독님이 현장에 오셔서 직접 연기에 대한 디렉팅을 하기도 했다고 한다. 강동원 배우는 단어의 장단음에 대해 이야기를 들었다던데…

나는 그 장단음에 대한 디렉팅을 <일장춘몽> 때 이미 들었다. 그런데 박찬욱 감독님이 (강)동원이 형에게 장단음에 대해 이야기하길래 ‘이 작품에서도 지켜야 하는구나’ 싶어서 집에 돌아가는 길에 네이버 사전에서 찾아보았다.

 

<전, 란> 팬들 사이에서는 천영과 종려의 브로맨스를 이야기하는 분들이 많다. 촬영하면서 의도한 바가 있었나.

천영과 종려의 어린 시절 사이가 좋을 때를 촬영 초반에 다 찍어서 관계가 자연스럽게 형성되었다. 오히려 ‘선을 잘 지켜야겠구나’ 싶었다. 과해석할 수 있는 여지를 주면 안 될 것 같아 감독님하고 계속 얘기했다.

 

강동원씨가 워낙 꽃미남이라 더 그런 것 아닐까.

그런 게 확실히 있다.

 

후반부의 해무 속에서의 결투 신이 인상적이다.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안갯속에서의 치열한 싸움이 벌어지는데 그 안에 격변하는 종려의 감정이 고스란히 드러나있는 장면이다. 촬영하면서 어려웠던 점은 없었나.

그 장면은 4~5회차에 걸쳐 일주일간 찍었다. 세트에 포그를 깔아 실제로 안갯속에서 촬영을 했다. 나에겐 매우 어려운 장면이었다. 리딩 할 때만 해도 종려의 감정을 잘 모르겠더라. 그래서 아무런 감정적인 준비를 하지 않고 갔다. 계산한다고 나오는 것도 아니고 ‘그냥 한번 가서 해봐야겠다’ 싶었다.

촬영을 시작하고 (강)동원 선배님이 진심으로 울면서 연기를 해주시니 감정이 나오더라. 마지막에 천영에게 “미안하다”라고 말하는데 사실 대본에 없던 것이다. 천영의 얼굴을 보는데 그 말이 튀어나오더라. 현장에서 반응이 좋아서 그렇게 갔다.

〈전,란〉 박정민(사진=샘커퍼니)
〈전,란〉 박정민(사진=샘커퍼니)

2011년 영화 <파수꾼>으로 데뷔 후 벌써 13년 차이다. 그동안 약 46편의 작품에 참여하며 꾸준히 연기를 해오고 있는데 새로움에 대한 갈망이 여전한가.

나도 경력이 조금씩 쌓이다 보니 기존 관객분들이 나에게 가지고 있는 이미지나 얼굴이 있을 텐데 거기에서 벗어난 모습을 보여줄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사실 ‘이제는 더 이상 할 수 있는 것이 없을 것 같다’라는 생각이 드는 중이라 내년에는 쉴 것이라고 말하고 다닌다. 현재는 어렵게 작품 섭외를 고사하고 있다. 개인적인 생활들을 하면서 스스로를 관찰하는 시기를 가지고자 한다. 이제는 내가 조금 더 신나게 할 수 있는 것을 찾고 싶다.

 

내년에 휴식기를 가진다면 무엇을 제일 먼저 하고 싶은가.

내년에는 출판사 일을 열심히 해보려고 한다. 예전부터 책 만드는 걸 해보고 싶었다. 책방을 운영할 때에도 책을 만들고 싶었는데 사실 잘 안됐다. (박정민은 1인 출판사 ‘무제’를 운영하고 있다. 2019년에는 홍대 인근에 책방 ‘책과 밤낮’을 열었다. ‘책과 밤낮’은 2021년 폐점했다.)

앞으로 나올 책이 몇 권 있다. 출판사를 만들고 운영하는 취지가 배려 받지 못하거나 소외된 존재들을 더 들여다보자는 것이다. 그런 취지에 맞게 글을 써주시는 작가분들의 작품이다. 물론 나는 출판사 대표로서 작가들의 모든 것에 동의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나의 역할은 그분들이 세상에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기회를 열어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