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 자매가 모두 같은 직업을 갖기도 쉽지 않은데, 세 자매가 한 일터에서 만났다. 지난 2일 종영한 SBS 드라마 <지옥에서 온 판사>에 출연한 김재화, 김혜화, 김승화 배우는 자매다. <지옥에서 온 판사>에서 김재화는 코믹과 반전을 넘나드는 장명숙 역으로, 김혜화는 노봉경찰서의 김소영 경감으로, 그리고 김승화는 장명숙(김재화)의 딸로 출연했다.
김재화가 분한 장명숙은 강빛나(박신혜)가 사는 황천빌라의 주인으로, 드라마 초반에는 감초 역할로, 그리고 후반부에는 극의 감정선을 이끄는 역할로 활약했다. 특히나 그가 장례식장에서 아들을 잃고 신을 원망하는 연기는 가히 압권이었다. 더불어 강력반 팀장 역을 맡은 김혜화는 액션에 도전하며 연기 스펙트럼을 한층 넓혔으며, 특별출연한 김승화는 실제로는 자매지간인 김재화와 모녀 연기를 펼치며 절절하게 가슴을 울렸다.
예술가 집안의 세 자매가 모두 배우를 하기까지

세 자매가 모두 비슷한 꿈을 갖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김재화-김혜화-김승화의 부모님은 학교 연극부에서 만나 결혼한 부부다. 또한, 그들의 큰아버지는 시인 김홍성, 고모는 퀼트작가 김홍주와 동양화가 김홍진으로, 소위 ‘예술가 집안’인 셈. 김 씨 세 자매는 어려서부터 명절 때 가족들이 모이면 만담, 콩트 등 연극을 했고, 집안에 그림을 걸어 놓으며 전시를 하는 등, 말 그대로 종합예술을 하며 자랐다고 한다.

김 씨 세 자매 중 가장 잘 알려진 배우 김재화는 사실 연기 ‘엘리트 코스’를 밟은 인물이다. 안양예고와 중앙대에서 연기를 공부한 김재화를 따라 배우 김혜화 역시 예고에 진학하고 싶어 했지만, 부모님이 반대하셨다고 한다. 그러다가 김혜화는 부모님께 영화감독이 되겠다고 설득해 한양대 연극영화과에 진학했고, 이후에는 배우로 노선을 굳혔다.
김재화는 80년생, 김혜화는 82년생, 김승화는 93년생으로 막내와 언니 두 명의 나이차가 꽤나 나는 편이다. 큰 언니와 13살 차이가 나는 막내 김승화는 언니들의 오디션을 도와주다 연기의 재미를 느껴 배우 활동을 시작했다. 지금도 명절에 가족들이 모이면, 세 자매의 부모님도 독백집을 읽으신다고 한다.
서로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주는 동료이자 자매
김 씨 세 자매는 그들이 모두 같은 직업을 가지고 있다는 이점을 적극 활용한다. 세 명은 함께 화술, 외국어 스터디를 하기도 하고, 서로의 연기를 피드백하는 등 동료이자 선후배 배우로서 모두의 발전을 도모한다. 가히 ‘학구파 자매’라고 할 법한데, 그들은 ‘마이즈너 레피티션’(샌포드 마이즈너의 연기 훈련법, 상대 배우와의 교류를 통해 자의식을 없애고 교류하는 것)을 하며 연기 연습을 하기도 하고, 프랑스어, 영어, 일본어 등으로 연기를 하며 해외 캐스팅 디렉터에게 보낼 영상을 찍기도 한다. 또, 세 자매는 함께 시나리오를 쓰기도 했다. 심지어는, 한 작품의 오디션에 차례로 들어가서 연기를 한 적도 있다고. 김재화와 김혜화는 모두 영화 <러브픽션>(2012)의 오디션에 참가했는데, 결과적으로 이는 두 명이 동반 출연한 첫 작품이 되었다.
둘째 김혜화·셋째 김승화는 누구

맏언니 김재화가 가장 먼저 널리 알려지게 됐지만, 김혜화와 김승화도 차츰 자신의 이름을 알려가고 있는 배우다. 둘째 김혜화는 2021년 tvN 드라마 <마인>의 막장 재벌 한진희 역을 맡으며 대중에게 알려졌다. 그는 <마인>에서 크림빵을 집어던지며 부하직원들에게 갑질하는 연기를 너무나 차지게 해낸 나머지, 네티즌 사이에선 ‘크림빵 언니’라는 별명으로 불리기도 했다. 더불어 김혜화는 외국어 공부를 게을리하지 않은 덕분인지, 극중 영어 대사도 쫄깃하게 소화해냈다.
더불어, 프랑스어에도 능통한 김혜화의 장기는 작품에서 재치 있게 발현되기도 한다. 2023년 김혜화는 티빙 드라마 <잔혹한 인턴>의 워킹맘 금소진 과장 역을 맡아 일과 육아를 동시에 해내느라 좌충우돌하는 여성을 연기했는데, 극중 사무실에서 프랑스어로 전화 통화를 하며 자신의 능력을 과시하는 장면이 웃음을 자아냈다. 또한 최근 종영한 tvN 드라마 <손해 보기 싫어서>에서 김혜화는 오지랖 넓은 ‘공은영 차장’을 연기했는데, “올랄라”(Oh là là)라며 프랑스어 감탄사를 하는 것이 특징. 이외에도 김혜화는 최근 영화 <용감한 시민>, 넷플릭스 <경성크리처> 시즌 2, <마스크걸> 등에 출연하며 활동 저변을 넓혀가고 있다.

막내 김승화는 신인 축에 속하는 배우다. 서경대 공연예술학과 재학 당시 대학내일의 표지모델이기도 했던 김승화는 드라마 <파친코> <설강화: snowdrop> 등의 작품에서 단역을 맡으며 매체 연기 활동을 시작했다. 김승화가 단역으로 출연한 작품 중 가장 큰 임팩트를 남긴 작품이라면, 단연 넷플릭스 시리즈 <더 글로리>가 아닐까. 김승화는 <더 글로리> 속 혜정(차주영)의 후배 승무원 역을 맡았는데, 그는 혜정이에게 ‘옷 핏을 맞추라’라는 강요를 당하며 짧지만 강한 인상을 남겼다. 김승화는 최근 디즈니플러스 시리즈 <강매강>에 출연해, 정정환(서현우)의 아내이자 네 남매의 엄마 역할로 ‘현실 연기’를 선보였다.
세 자매가 동반 출연한 작품

첫째 김재화와 둘째 김혜화는 앞서 말한 <러브 픽션> 이외의 작품에도 동반 출연을 꽤나 자주 한 편이다. 김재화와 김혜화는 영화 <상의원>(2014), 워쇼스키의 넷플릭스 시리즈 <센스8>, 2022년 JTBC 드라마 <클리닝 업> 등에 함께 출연했다. <센스8>는 김혜화에게 먼저 오디션 요청이 들어왔으나, 김재화가 함께 도전해 두 사람 모두가 작품에 출연하게 됐다고. 한편, 당시 얼굴이 잘 알려지지 않았던 김혜화는 <센스8> 출연 당시 유창한 영어 실력으로 인해 한국계 미국인으로 오해를 받기도 했다.

더불어 <지옥에서 온 판사> 이외에도, 막내 김승화를 포함한 세 자매 모두가 동반 출연한 작품이 있다. 김홍기 감독의 단편영화 <중성화>는 남자친구의 고양이를 중성화하러 동물병원을 찾은 혜수의 이야기를 다룬 코미디다. <중성화>에서 김재화는 주인공 혜수 역을, 김혜화는 수의사 역을, 김승화는 동물병원 간호사 역을 맡았다. 극중 세 사람은 묘한 긴장감이 흐르는 관계이기도 한데, 자세히 설명하면 스포일러가 되니 직접 감상하길 권한다. <중성화>는 왓챠에서 감상할 수 있으며, 옴니버스 영화 <숏버스 이별행>에도 수록되어 있다.
씨네플레이 김지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