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애틀에 대해 아는 건 몇 없다. 가장 먼저 영화 <시애틀의 잠 못 이루는 밤>이 떠오르고, 스타벅스 1호점이 처음 시애틀에 생겼다는 것, 그리고 시애틀 매리너스나 시애틀 슈퍼소닉스 같은 스포츠 구단이 있다는 것 정도(그나마 슈퍼소닉스는 없어졌다). 나에게 시애틀은 직관적으로 음악의 도시다. 지미 헨드릭스 같은 거인이 태어난 도시이기도 하고, 무엇보다 1990년대에 찬란히 빛났던 그런지 사운드의 고향이기도 하다. 영화 <싱글즈>는 그런 시애틀의 배경을 안고 만들어진 영화다.

싱글들만 사는 시애틀의 아파트가 등장한다. 그곳을 중심으로 스티브(캠벨 스코트), 쟈넷(카이라 세드윅), 클리프(맷 딜런) 등 젊은이들의 마음과 마음이 오고간다. 줄거리는 다소 헐겁지만 뻔한 청춘들의 이야기를 너무 가볍지는 않게 감각적으로 그려냈다. 영화의 각본을 쓰고 연출까지 맡은 이는 이제 너무 유명한 이름이 된 카메론 크로우이다. 카메론 크로우 역시 이 영화의 등장인물들처럼 젊고 풋풋했다.

영화는 한국에서 정식 개봉조차 되지 못했다. <싱글즈>란 제목은 다소 뜬금없이 <클럽 싱글즈>란 제목의 VHS 비디오테이프로 나왔을 뿐이다. 그만큼 영화 자체는 한국에서 크게 회자되지 않았다. 오히려 <싱글즈>의 영화포스터가 더 유명했다. 각종 카페와 호프집, 그리고 당시 힙스터들의 벽에 걸려있던 영화포스터는 영화를 안 본 이들에게조차 익숙할 만큼 한국에서 많이 소개됐다.

포스터만큼 사람들의 관심을 끈 건 사운드트랙이었다. ‘음악의 도시란 이미지를 카메론 크로우는 적극 이용했다. 카메론 크로우 역시 엄청난 음악애호가다. 그는 1992년과 시애틀이라는 시공간적 배경을 영화에 적극적으로 옮겼다. 너바나의 <Nevermind>라는 엄청난 앨범이 발표된 게 1991년이다. 이후 세상은 얼터너티브 혹은 그런지 광풍이 몰아쳤다. ‘얼터너티브라는 작명에 가장 어울리는 지역이 시애틀이었다. ‘그런지 4인방혹은 시애틀 4인방이라는 말이 등장할 정도로 시애틀은 새로운 유행(음악)의 성지가 되었다.

너바나, 펄 잼, 앨리스 인 체인스, 사운드가든이 시애틀과 연관을 맺고 있었고, 얼터너티브의 인기를 주도한 밴드 가운데 시애틀과 무관한 팀은 스매싱 펌킨스(시카고) 정도였다. 하지만 카메론 크로우 감독은 스매싱 펌킨스마저도 영화의 사운드트랙에 참여시킨다. 그러니까 <싱글즈> 사운트트랙에는 너바나를 제외한 얼터너티브 네임드들이 모두 참여했다. 이 이름들 말고도 마더 러브 본이라거나 스크리밍 트리즈, 머드허니 같은 선배 밴드들까지 참여했다. 리플레이스먼츠의 리더였던 폴 웨스터버그와 시애틀의 거인 지미 헨드릭스도 빠지지 않는다.

Alice In Chains - Would?


당연히 음악 팬들은 이 영화와 사운드트랙에 열광할 수밖에 없었다. 영화에서 클리프가 몸담고 있는 밴드 시티즌 딕스의 멤버들이 펄 잼의 멤버들이라는 사실, 또 사운드가든의 크리스 코넬이 단역으로 등장하고, 앨리스 인 체인스가 클럽에서 연주하는 모습 등 흥미로운 장면들이 계속해서 등장한다. 앨리스 인 체인스의 히트 싱글 <Would?>로 시작해 스매싱 펌킨스의 <Drown>으로 끝나는 사운드트랙은 당시를 체험하지 못한 이들에게 그런지 사운드가 무엇인지 보여줄 수 있는 가장 결정적이며 중요한 기록물이다. 이 위대한 사운드트랙은 작년, 25주년을 맞아 18곡의 새로운 노래를 추가해 두 장의 디스크로 다시 나왔다. 젊고 에너지 넘치는 대안적음악의 매력은 여전히 그대로다. 25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생생하고 끓어오른다.

Smashing Pumpkins - Drown

김학선 / 대중음악평론가